[하나님의 하드캐리] 다윗, 다시 하나님께로(시3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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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3년 1월 22일 주일 청년부
소제목 : 하나님의 하드캐리
제목 : 다윗, 다시 하나님께로
본문 : 시편 32편 1-11절 *구824
결단찬양 : 여호와께 돌아가자
[도입]
다윗의 삶을 볼 때, 너무 위대한 삶이 뚜렷하게 보이는 동시에, 또 이러면 안되지 하는 타락한 삶이 뚜렷하게 보이는 삶이 담겨져 있다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다윗의 삶을 보며 누군가는 위대함에 롤모델을 삼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타락한 모습에 실망하기도 합니다.
저에게 있어서 다윗은 어떤 존재인가 하고 묻는다면, 저에게 있어 다윗은 ‘롤모델’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잘 나서, 왕이라서 롤모델로 삼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있어 다윗의 두 가지 모습이 제게 롤모델로서 자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먼저는 언약궤가 들어올 때, 기뻐 찬양하는 그 모습. 자신의 몰골이 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수치스러움도 잊고 찬양하는 그의 모습에 ‘이게 진정, 하나님 앞에 찬양하는 자의 모습’이다 라는 생각에 롤모델 삼았고, 또 하나는 우리아의 아내를 탐하고 죄를 범했을 때, 그가 곧장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모습. 즉 회개함에 이유를 두지 않는 모습에 롤모델 삼았습니다.
[다윗의 연약함]
물론 모세의 연약함에는 우리아의 아내를 탐했다 라는 것에만 있지 않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오늘 다윗의 연약함을 풀어보고자 합니다.
먼저, 다윗은 인간의 욕정 앞에 넘어졌습니다. 인간의 3대 욕구라 알려져 있는 식욕과 성욕과 수면욕. 그런데, 이 3대 욕구라 알려진 사실이 잘못 알려진 사실이란 것 아십니까? 아브라함 매슬로에 의하여서 시작된 인간의 욕구는 총 5가지로 나눠두었습니다. 자아실현 욕구인 명예욕. 자기 존중 욕구인 권련욕. 애정 소속 욕구인 애정욕. 안전 욕구인 안전욕 그리고 생리 욕구인 생리욕. 이렇게 5가지로 나눠져 있으나, 어디에도 우리는 성욕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욕이 없다해서, 우리가 성욕이 없다 말할 수 없습니다. 날이 가면 갈수록 인간의 성욕이 더 심해져 가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인간의 성욕에 타당성을 부여하는 것 같은 시대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다윗도 5대 욕구는 아니었지만, 그 또한 성욕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가장 아끼는 장수인 우리아의 아내를 눈에 탐하게 된 것입니다. 눈으로만 탐하게 됩니까? 쟁취하려 합니다. 탐욕이 등장합니다.
탐욕이 다윗을 사로잡자 어떻게 행동합니까? 계획을 세웁니다. 어떤 계획입니까? 우리아를 죽이자! 라는 계획을 세웁니다. 즉 남을 속이고자 하는 거짓의 영이 그를 사로잡습니다.
그의 계획 끝에 결국 우리아는 어떻게 됩니까? 전쟁 중 사망하게 되고, 이에 다윗이 어떤 행동을 합니까? 정말 악한 인간의 끝처럼 보여질 정도의 모습을 취합니다. 사무엘하 11장 26-26절입니다. “우리아의 아내는 그 남편 우리아가 죽었음을 듣고 그의 남편을 위하여 소리내어 우니라 / 그 장례를 마치매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를 왕궁으로 데려오니 그가 그의 아내가 되어 그에게 아들을 낳으니라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
아내 입장에서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승산이 없는 싸움에 보내진 남편이 죽어 돌아 왔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어떻게 우리아의 아내에게 대합니까? ‘그를 왕궁으로 데려와 아내 삼은 후 아들을 낳게 한 것’이 남편의 죽음으로 마음이 찢어진 여인을 향한 대처였습니다.
기록되어 있지 않아 알 수는 없지만, 진정 위로로 품어준 것은 아닐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저 자신의 정욕에 사로잡혀, 또 거짓의 영에 사로잡힌 행동일 것이라 저는 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아를 속여 ‘살인’이라는 죄도 범하는 이 사건. 참으로 악랄하고 지져분한 이 사건에, 다윗은 인간의 연약한 모든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 나단을 통해 변화되다]
그런 그가 나단 선지자를 통해 책망받게 됩니다. 사무엘하 12장 9절입니다.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
그러자 다윗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사무엘하 12장 13절 상반절이 이렇게 기록합니다.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그의 잘못이 지적되고 발각되자 그는 즉시 회개 했습니다. 만약 나단 선지자를 통해 자신이 범한 죄가 밝혀지지 않았더라면, 다윗이 스스로 회개했을까? 의 의문은 있지만, 어찌되었든 그는 여호와 하나님 앞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그가 우리아와 합하여 낳은 아들이 죽게 되며, 그가 낳은 아들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바로 솔로몬입니다. 하나님께 돌아가자 ‘솔로몬’이라는 역사상 가장 지혜로운 왕이라 불리우는 자가 탄생하게 됩니다.
[다시 하나님께로 : 1. 하나님이 멱살잡고 이끄신다]
이제 다윗이 어떤 모습으로 바뀌는가 보고자 합니다. 먼저 죄성이 그득한 모습 속에서도 다윗 안에는 하나님이 있었습니다. 이게 사실 너무나 중요한 포인트가 됩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죄로부터 자유한 자가 계십니까?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죄로부터 자유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안에 하나님이 거하신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떠날 수 없다는 것 또한 너무 잘 압니다. 이게 너무나 중요한 포인트가 됩니다.
다윗의 모습을 보며 알 수 있는 첫번째는, ‘하나님이 멱살잡고 이끄신다.’는 것입니다.
이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알고 범하는 죄도 허다하지만, 은연 중 범하는 죄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런 모습 또한 품어주시고 또 멱살잡고 ‘너 이렇게 살면 안되자나! 정신차려!’ 라 말해주시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다윗이 죄를 범해 온갖 지저분한 영들에 사로잡힐 때, 그는 하나님이 멱살잡고 이끄셨습니다. ‘정신차려 다윗!’
여러분이 하나님과 관계가 조금 서먹서먹해졌다 해도, 하나님 떠나지 마세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하나님 손 붙들고 살아내는 우리 되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튀어나온 실오라기 한 올이라도 붙잡고 있는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의 모습을 보사 멱살잡고 다시 끌어올리실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이제 다윗을 또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봅시다.
[다시 하나님께로 : 2. 하나님께 죄를 고백한다]
죄를 고백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인 시편 32편 5절, 이렇게 기록합니다.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셀라)”
이게 저는 크리스천과 논-크리스천의 차이라 생각합니다. 두 그룹 모두 죄가 무엇인지 압니다. 다만, 한 그룹은 ‘하나님이 싫어하기에’ 죄라 생가하고, 다른 한 그룹은 ‘비윤리적이라’ 생각하기에 죄라 생각한다는 기준의 차이점이 있지만, 여하튼 세상의 모든 인간은 죄가 무엇인가를 압니다.
이들의 진짜 차이는 ‘회개’에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죄를 점점 합리화 합니다. 술 마시며 취하는 것이 왜 죄인지 알지 못합니다. 성 중독에 빠져서 음란한 생활을 하는 것이 왜 죄인지 알지 못합니다. ‘내 인생 내건데, 나를 위해 즐기며 사는 것이 뭐가 문제인가?’ 라는 생각으로 합리화 합니다.
하지만 크리스천은 다릅니다. 죄를 범할 때, 찔림이 옵니다. 합리화 이전에 찔림이 찾아옵니다. 이는 하나님의 기회입니다. 우리에게 다시는 그 죄를 범하지 말라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기회입니다. 그리고 그 찔림이라는 기회에 우리는 회개 합니다.
다윗도 그렇습니다. 사단 마귀의 악한 영에 사로잡혀 우리아의 아내를 탐했고 범했던 그. 여인 한 사람을 취하기위해 자신이 가장 아끼던 장수 하나를 말도 안되는 계략에 빠뜨려버리는 그.
그러나 그에게 찔림이 찾아왔을 때, 그는 회개합니다. ‘뭐 어때? 남들도 다 일부다처제 시스템 속에서 즐기는데. 이 나라의 왕이라면 내 정욕을 위해 이정돈 괜찮은거 아니야?’ 라고 적반하장의 태도로 나왔더라면, 정말 큰 일이 날 뻔 했는데, 다행이도 회개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저는 이게 크리스천의 강점이자 무기이자 특권이라 생각합니다. 다윗도 그 특권을 누렸습니다. 회개의 자리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회개한 것을 다시는 범하지 않도록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그의 생각, 그의 행동 그리고 그의 주권 등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맡겼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십니까? 죄에 찔림이 여전히 있습니까? 하나님이 아직 기회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만약 찔림이 없다면 더욱 회개해야 합니다. 죄에 무뎌진 나의 모습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회개를 통해 그 죄를 떠나야 합니다.
[다시 하나님께로 : 3. 여호와의 복을 누리는 자가 되다]
그렇게 회개를 통해 죄를 떠나, 하나님만 붙잡고 살고자 다짐한 다윗에게 주어진 결과가 무엇입니다. 시편 32편 1절과 2절을 통해 보니,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마지막으로는 그가 여호와의 복을 구함 뿐 아니라 누리는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니 모든 것이 채워지기 시작합니다.
우리아의 아내를 탐했고 범하여 아들을 낳았습니다. 내가 정말 정욕에 눈이 멀어 그녀와 잠자리를 가지고 아이를 가졌지만, 그 아이는 곧 죽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향해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정욕에 눈 멀어 죄를 범한 자신의 모습을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 엎드려 나아갑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엎드려진 다윗을 향해 어떻게 길을 여십니까? 우리아의 아내, 그 아내와 함께 동거하여낳은 아이. 이름도 모르는 여인과 아이. 그러나 이렇게 결말내시지 않고, 하나님은 다윗에게 ‘솔로몬’이라는 장차 가장 지혜로운 왕을 허락합니다.
물론 주어지는 것만이 복이 아닙니다. 다윗이 누린 복은 상상 그 이상의 복입니다. 6절을 보니, 그가 기도할 수 있는 복이 주어졌습니다. 기도할 수 있다는 것, 세상의 모든 이들이 구하곤 하지만, 그것은 바램에 그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바램에 그침이 아닌 실현케 하십니다. 아이가 돌을 달라할 때, 세상은 아무것도 또는 그저 돌 정도에 그치지만, 하나님은 다릅니다. 돌을 달라해도 떡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 아니겠습니까?
또 어떤 복이 있습니까? 7절을 보니까 보호하신다고 하시네요. 얼마나 감사합니까? 세상의 종교들은 내가 잘해서, 내 덕을 쌓아야 하는데, 그래서 내 육신 내가 잘 지키고 보호해야 하는데, 하나님은 친히 우리를 보호해주신다고 하시네요?
또 8절을 보니 길을 예비하시고 인도하신데요. 9절과 10절을 보니 죄를 멀리하게 된데요. 11절을 보니까 여호와를 기뻐하게 된데요. 하나의 복인 줄 알았는데, 여러개의 복을 부어주시네요. 원 투 원의 개념인 줄 알았는데, 일 대 백의 은혜를 허락하시네요. 이게 다윗이 누린 은혜고 복 아닙니까?
근데 그 복을 누린 다윗의 기점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을 잊지 않았던 것도 있지만, ‘회개’가 그 기점에 있었습니다. 회개하니 하나님을 다시금 보게 되었고, 다시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지요.
[결론]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회개란 크리스천이 가진 특권이자 무기가 됩니다. 그 무기를 귀히 사용하는 우리 모두 되길 소망합니다.
[기도제목]
1. 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우리 되게 하소서
2.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는 우리 되게 하소서, 회개의 영이 임하게 하소서
3. 여호와의 복이 청년 공동체 가운데 임하는 청년부 되게 하소서
[축도]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 하나님의 감동 감화 역사 임재하심이
하나님의 인도하심 따라 살아가겠노라 결단하는 자들과
주 앞에 자복하며 부어주시는 복의 은혜에 감격하는 자들 머리, 머리 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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