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말라기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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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말라기 3:10(구약 1330쪽)
말라기 3:10 NKRV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반갑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늘 충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마 작년 초였던 것 같은데요. 제가 인도하는 새벽기도회 시간을 통해 특별히 월요일에는 성경의 각 권을 살펴보겠다는 말씀을 드렸던 것이 말입니다.
그것이 오늘에서야 구약성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에 이르게 되었네요. 돌이켜보니깐, 목표는 거창했는데, 막상 진행을 해보니, 용두사미가 되어가는 것 같네요. 더욱이 속도가 매우 더디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가급적 이 목표를 잃어버리지 않고 가려고 합니다. 물론 제 지식의 한계로 인해서, 구멍난 부분들이 많이 있긴 하겠지만요. 여전히 성경을 두루 살피는 일은 중요한 것임에는 틀림없으니까요.
이러한 배경으로 오늘 우리가 구약성경 말라기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구절은 다소 잘못 남용되어 사용되곤 합니다. 그러니깐, 십일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성경 구절로 많이 사용되고요. 한편 그것은 본래의 뜻과 어긋나게 사용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분명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구절은 십일조에 관한 이야기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말에는 맥락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예전에 들었던 어떤 이야기가 있는데요. 남자와 여자의 사고방식이나 표현방식이 많이 다르다면서 나왔던 얘기입니다. 실제는 어떤지 모르지만, 나름 공감이 가는 이야기였어요.
어떤 연인의 여자분이 남자분에게 말합니다. ‘오빠, 그 옷 참 좋아하나 보다.’ 남자분은 여자분의 의도를 전혀 모른채 ‘그렇다’고 답합니다. 그러나 여자분의 마음 속에서는 ‘제발 그 옷 좀 입지 말라’고 하는 마음을 담은 말이었다고 해요.
이렇게요. 말은 어떤 의미에서 곧이 곧대로만 듣는 것은 아닙니다. 그 말을 하는 이유를 살펴야 말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요. 말라기에서 십일조의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 이유를 설명해보자면 이렇습니다. 말라기 예언자가 활동할 당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생활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오던 시기였습니다. 보통 그것을 포로귀환이라고 부릅니다.
바벨론 제국에 나라가 멸망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훗날 페르시아의 왕인 고레스의 칙령으로 고국인 이스라엘로 돌아갈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돌아온 고국의 예루살렘에서 무너졌던 성전을 재건하게 되는데요. 사실 이 일은 꽤 힘겨운 일이었습니다.
고국인 이스라엘은 폐허가 되어 있었고, 그에 따라 먹고살기도 막막한데, 주변 나라들의 위협도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지만, 학개를 비롯한 선지자들의 격려와 스룹바벨의 훌륭한 지도력을 바탕으로 결국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기에 이릅니다.
그것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과거 다윗이 통치했던 시절의 복을 주실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성전은 재건되었지만,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은 팍팍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그들을 포로로 잡아간 나라들은 번영해갑니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낙담하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심지어는 불신에 이르기까지 합니다.
마치 그런 느낌과 같아요. 일전에 읽었던 책에서 본 내용인데요. 고3 수험생이 원하는 대학을 목표하며 공부도 열심히 했지만, 새벽예배부터 예배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고 해요. 주변 사람들은 그와 같은 열심에 하나님이 뜻한 바를 이루게 해주실 것을 응원해 주었는데요.
아쉽게도 그 학생은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어요.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 주변에서도 그런 일들이 종종 있잖아요. 어떤 목표를 가지고 그 목표를 위해 더욱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였음에도 아무런 보응을 받지 못하는 경우들이요.
물론 그 노력이 순수하지 않았다고 할지 몰라도요. 사실 우리는 문제가 생기고 어떤 어려움이 닥칠 때 하나님을 더 찾게 되는 것이 보통이니까요.
그런데 그 학생의 이야기가 놀랍게 다가온 것은 이 지점이었어요. 그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그래도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교인들에게 떡을 돌렸다고 해요.
참 귀한 믿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는 잘 되면 내 탓, 잘못되면 남 탓 또는 하나님 탓을 하곤 하지만,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계획임을 믿는 것 그것은 참 귀한 믿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야기가 옆으로 샜는데요. 어째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변화되지 않는 현실에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신하기에 이르렀어요. 그러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일깨우시는 이야기가 구약성경 말라기의 책인데요.
말라기 예언자가 하나님께 불만에 섞인 질문을 토로하고 하나님은 그것에 응답하시는 방식으로 내용이 구성되어 있어요.
그 내용 중에서 바로 십일조에 관한 내용이 나오는데요. 앞뒤 내용을 살펴보면 대략 이런 거예요.
말라기 예언자가 대략 이렇게 묻는 거예요. ‘하나님 세상이 왜 이 모양입니까? 우리가 신실하게 살아도 세상은 더 나아지지 않습니까?’ 이에 대해 하나님이 대략 이렇게 답하시는 거예요. ‘너희가 나를 속였기 때문이다. 나에게 온전한 십일조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깐 결과적으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을 주시지 않은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십일조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얘기잖아요. 그런데. 십일조가 대체 뭐라고 하나님이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 걸까요? 사실 하나님은 온 세상의 주인이신데, 그깟 십일조 없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 않나요?
네, 틀린 말은 아니지요. 그런데 십일조는 당시 사회에서 이와 같은 역할을 했어요. 첫째는 땅이 없는 레위인들 곧 예배 보다 정확히는 제사를 주관하는 이들이 생활할 수 있도록 사용되었어요. 둘째는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로 대표되는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는 것으로 사용되었어요.
그러니깐 십일조는 당시 사회에서 기업이 없고 약자들을 위해 사용된 것이라는 거예요. 다시 말해 십일조가 온전히 행해지 않았다는 것은 예배를 주관하는 이들의 삶이 무너지고 사회적 약자들이 돌봄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요.
그러니 하나님 요구하시는 십일조는 꼭 물질적인 것이라 보다는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며 하나님이 정말로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거예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십일조에 관한 얘기를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데요. ‘나를 시험하여 보라’고 말이지요. 성경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가르치는데요’ 놀랍게도 십일조의 문제 관해서 하나님은 자신을 시험해도 괜찮다고 말씀하고 계세요. 이는 그만큼 십일조의 문제가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것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물질적인 면에서가 아니라, 사회정의의 측면에서 말이지요. 그리고 이를 통해서 알게 되는 것이 있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께 신실하게 해왔다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사실 그러한 삶을 살지 않았던 거예요.
그것이 따지고 보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수 있어요. 그들이 정말로 나쁜 마음으로 십일조를 안했다기 보다는 자신들도 먹고 살기가 힘드니깐, 적당히 타협한 결과라는 거예요.
사실 우리도 많은 경우에 그렇게 살잖아요. 주님을 믿고 따른다고 하면서도 우리의 삶의 중심은 종종 주님이 아니라, 나로 바뀌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래서 예배나 신앙생활을 소홀히 하면서도 나에 관계된 삶의 문제들 곧 학업이나 직업 등등의 일에서 우선순위를 두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것 먹고살자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니 말이지요.
그리고 이렇게 열심히 살면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신앙생활을 이어가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하나님은 아시냐고 반문하고 그렇게 애쓰는데도 내 삶은 왜 이 모양이냐고 원망하기도 하죠.
그런데 잘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참으로 하나님께 신실하게 행해왔는지를 말이지요. 어쩌면 내 입장에서 이만큼 하면 됐죠라고 말해온 것은 아닐까요? 한번 돌이켜 볼 문제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다”라고 말이지요. 그러니 사실 하나님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신실하셨지만, 우리가 불성실하여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한 삶을 살았던 거예요. 그 마음을 돌이키는 일이 참으로 중요하다고 구약성경 말라기는 가르쳐 주는 거예요.
오늘 우리의 삶에 그와 같은 변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내 기준에서 하나님을 판단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참으로 내가 살아가고 있는지를 돌이켜 봅으로 주님의 은혜와 자비를 구하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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