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더 알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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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views오늘 본문의 메시지는 선포된 “주의 은혜의 해"로 예수님의 공생애 활동의 성격과 특징을 요약해서 제시한다. 예수님의 공생애는 가난한 자와 억눌린 자들을 위한 활동이 될 것이라고 알린다. 예수님의 첫 메시지는 사회적이며 경제적인 것이었다. 특히 구약의 엘리야와 엘리사 이야기를 언급하는 것은 이방인 과부와 이방인 장군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풀었던 구약의 이야기로, 예수님은 유대인만이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많은 은혜를 베풀 분임을 암시한다. 이외에도 이 본문은 “선지자가 자기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으로 예수님이 자신의 고향인 나사렛에서 배척받고 있음을 강하게 지적한다.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배척했는데, 그들이 그렇게 함으로써 예수님이 바로 선지자임을 역설적으로 입증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누가는 이 본문을 복음서 서두에 두어 고향사람에게 배척당한 예수님은 끝내 자기 백성에게 배척당해서 선지자로서 죽음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Notes
Transcript
Sermon Tone Analysis
A
D
F
J
S
Emotion
A
C
T
Language
O
C
E
A
E
Social
누가복음 4:16–21 (NKRV)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좋아해요.
아마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ㅇㅑ 어떤 친구는 시험에서 만점을 받았대.”
“누구랑 누구랑 싸웠는데 누가 이겼대.”
“옆반 ㅇㅇ이가 너 좋아한대.”
이런 이야기들을 쉬는 시간이나 문자, 카톡으로 이야기해본 경험이 있을 거예요.
“소문”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속담.
2천년 전 예수님이 사시던 동네 나사렛 사람들도 그랬어요.
‘나사렛’은 예수님이 어릴 적 살았던 고향 마을이에요.
예수님은 갈릴리의 다른 지역 여러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고, 가버나움에서 기적도 행하셨어요.
예를 들어서 우리로 치면 예수님이 춘천에서 태어나셔서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어른이 되어서 저기 화천에도 가셔서 병든 자들을 고치시고
홍천에 가셔서 귀신들린 자들을 치료하시는데,
전화기도 없고 카톡도 없고 인스타그램도 없던 그 시대에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고향 동네 춘천에 쫙 퍼진 것.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고 예수님의 말씀을 기뻐했어요.
그 소문이 나사렛에도 퍼졌어요.
“야야 우리 동네 목수 요셉의 큰 아들 알지? 선지자가 되었다며?”
“아주 유명해졌다더라. 얼마 전에 집으로 왔대.”
작은 시골 마을이라 소문은 더 금방 퍼졌어요.
안식일에 예수님은 나사렛의 회당으로 가셨어요.
그리고 성경 두루마리를 펼쳐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읽고서 이렇게 말문을 여셨어요.
“방금 여러분이 들은 성경 말씀이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회당에 모여 있는 모두에게 전하셨어요.
예수님의 말씀이 얼마나 좋은지, 말씀을 듣던 사람들이 깜짝 놀랐어요.
하지만 예수님이 전하시는 힘 있는 말씀을 듣고도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런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나 저 사람에 대해 잘 알아. 그래 봤자 요셉의 아들이잖아.”
“목수 출신인데 뭘~~” 라고 수군거렸어요.
예수님도 수군거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고 계셨어요.
예수님은 그런 나사렛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너희들은 지금 ‘네가 가버나움에서 행한 기적을 여기서도 한번 해봐라' 생각하고 있구나.
선지자는 자기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엘리야 시대에 삼년 반 가뭄이 들었을 때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았지만,
이방인이었던 시돈 지방 사르밧 과부만이 엘리야의 기적을 보았습니다.
또 선지자 엘리사의 시대에 이스라엘에 나병환자가 많았지만,
깨끗하게 된 사람은 이방 땅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습니다.”
회당 안에 있던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듣고 불같이 화를 냈어요.
“아니, 그럼 우리도 기적을 볼 자격이 없다는 말이야 뭐야?”
“가버나움에서는 기적을 행했다더니 다 헛소문이었나보군!”
“자기를 환영해 달라는 거야? 뭐야?”
고향 회당에는 예수님의 어릴 적 친구도 있었고, 예수님의 옆집에 살던 아주머니도 계셨을 거예요.
얼마간 사라졌다 선지자가 되어 나타난 예수님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겠지요.
그들은 예수님이 기적을 행한다는 소문이 진짜인지 확인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원하던 기적은커녕,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에게 베풀어진 기적에 대해 이야기하자 모두들 화가 난 거예요.
그들은 매우 흥분해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벼랑에 끌고 가 밀어버리려 했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들을 유유히 벗어나 자기 길을 가셨습니다.
예수님에게서 기적만을 원했던 사람들을 보시며 예수님은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요?
벼랑 끝으로 자신을 밀어버리려 하는 고향 사람들의 성난 시선에 예수님 마음은 몹시 아프셨겠지요.
예수님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던 나사렛 사람들은 예쑤님에 대한 소문만으로 예수님을 평가할 뿐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려 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더 알아볼 필요도 없이 자신들이 예수님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그렇지 않았어요.
잘 안다고 생각했던 그들은 예수님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우리도 ‘난 이미 예수님을 너무 잘 알고 있어.’라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모태신앙"
‘예수님은 하늘 높은 곳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계신 분이야.’
‘예수님은 예배 시간에 떠드는 친구들을 벌주시는 무서운 분이야.’라고 예수님의 모습을 평가해 버리곤 하지요.
그래서 더 이상 예수님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고, 예수님은 어떤 분일까 궁금해하지도 않아요.
‘예수님은 이런 분!’ 하고는 끝내버려요.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알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이 예수님의 전부는 아니랍니다.
강아지 같은 성도 / 고양이 같은 성도
“주인님, 밥주세요. 놀아주세요.”
고양이 키우는 사람들을 뭐라고 불러요? ‘집사' 고양이가 주인이고, 키우는 사람이 집사, 하인이라는 거예요.
“어이 집사, 밥 좀 줘봐"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이 고양이와 같은 태도로 대하고 있어요.
“어이 예수, 목수 요셉의 아들. 저기 홍천에서도 화천에서도 보여줬던 그 기적 한번 보여줘봐!”
예수님은 우리가 평생에 걸쳐 알아가도 날마다 새로운 은혜의 모습으로 우리를 만나 주시는 분이거든요.
때로는 친구로, 때로는 목자로, 때로는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모습으로 갇힌 것 같이 답답한 우리에게 자유를, 눈이 먼 것같이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우리에게 확 트인 시야를 주시는 분이랍니다.
나사렛 사람들처럼 예수님을 다 안다고, 너무 잘 알아서 더 이상 알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대신에, 여러분은 “나는 예수님을 더 알고 싶어요.”라고 외치세요.
예수님이 단지 기적을 보여 주는 능력자가 아니라 더 많은 모습들로 내 곁에 항상 계시는 분임을 믿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세요.
그러면 여러분은 예수님이 “오늘 말씀이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고 말씀하실 때,
그 감격스러운 자리에서 예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함께 기뻐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오늘 함께 예배드린 친구들 모두 앞으로도 예수님을 끊임없이 더 알아가는 어린이들이 되기를 축복해요.
함께 기도해요.
하나님, 우리의 생각과 지혜로는 예수님을 다 알지 못하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다 알 수 없지만, 예수님이 우리를 정말 많이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지금도 끊임없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만나주신다는 것을 늘 기억하게 해주세요. 우리가 예수님 사랑을 깨닫고, 예수님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해 주세요. 예수님을 더 깊이 알고 예수님을 닮게 해 주세요.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