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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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셋째주 청년부예배 >
신앙고백: 사도신경
찬 송: 예수 예수(슬픈 마음 있는 자)
대표기도: ㅇㅇㅇ 청년
성경봉독: 역대하 20:25-26(구약 682쪽)
역대하 20:25–26 NKRV
여호사밧과 그의 백성이 가서 적군의 물건을 탈취할새 본즉 그 가운데에 재물과 의복과 보물이 많이 있으므로 각기 탈취하는데 그 물건이 너무 많아 능히 가져갈 수 없을 만큼 많으므로 사흘 동안에 거두어들이고 넷째 날에 무리가 브라가 골짜기에 모여서 거기서 여호와를 송축한지라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곳을 브라가 골짜기라 일컫더라
말씀증언
반갑습니다.
올 한해 주님의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예배를 준비하면서 새삼 여러분을 다시 보았네요. 좀 더 정확하게는 저의 믿음이 참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저는 사실 오늘 이렇게 모일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설 명절이고 1년에 1~2번 밖에 없는 연휴인데, 이렇게 모인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리라 여겼죠. 그리고 여러분들에게 예배라는 미명으로 모임을 강요하기도 싫었고요.
한편 더 솔직하게는 그 핑계로 오늘 모임을 쉬고 싶은 마음이 제 안에 있었던 것 같아요. 과연 누가 올 수 있겠어라며 말이지요. 아무도 없이 예배할 순 없잖아라고 생각하면서요.
그러다가 담임목사님의 얘기가 떠올랐어요. 전에도 들었던 얘기지만, 놀랍게도 이번 주 화요일에 경건회를 하면서 또 듣게 됐는데요.
과거에 담임목사님이 미국에서 목회를 할 때 이야기였어요. 그곳엔 목회하기에 좋은 환경이 아니었다고 해요. 주변에는 한국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지 않았고, 이미 크고 오래된 한인교회가 주변에 여럿 있었다고 해요.
다시 말해서, 당시 담임목사님이 목회하시던 곳에 올 수 있는 한국인들의 숫자가 굉장히 적었다는 거예요. 그러니 수요예배 때는 교인이 한 명도 없이 텅텅비는 일이 있기도 했고요. 그 과정에서 사모님만을 앞에 두고 설교를 해야하는 일들이 있었다고 해요.
그러면서, 고민이 들었다고 해요. 이대로 예배를 하는 것이 맞는지 하고 말이지요. 아무도 없는데, 예배를 하는 것이 맞는지 하고 말이지요. 그때 하나님이 이런 마음을 주셨다고 해요.
너 누구를 위해서 예배하는 거냐? 사람들을 위해서냐? 아니면 나(하나님)를 위해서냐 하고 말이지요. 그 순간 깨달았다고 해요. 예배는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것인데, 하나님보다 사람들을 의식하고 그것에 마음을 두고 있었다고 말이지요.
그래서 후로부터는 예배당에 사람들이 있던지없던지 그것에 영향을 받지 않고 예배를 했다고 해요.
보통 이런 얘기는 변화된 마음을 가지고 예배를 했더니 하나님이 복을 주셨다는 얘기로 끝나는데요. 담임목사님의 경우도 결과적으론 비슷했지만, 거기에 교훈이 있지는 않았어요.
결국, 우리가 예배할 대상은 하나님이시다는 것이죠. 그 사실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예요. 물론 그렇다고 당장에 제가 여러분이 모두 참석이 어렵다고 하는데, 혼자서라도 예배를 드려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에요.
그래서 조심스레 여러분들의 의견을 구했는데, 뜻밖에 참석 가능하다는 반응에 놀랐네요. 그리고 내가 참 부족한 사람임을 또 깨닫게 됐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성숙한 사람 만들어 주시려고, 이 모임을 허락해 주셨나 싶네요.
여기까지가 서론이고요. 본론으로 들어가서요. 오늘은 ‘찬양’에 관한 얘기를 하려고 해요. 우리가 조만간 ‘찬양의 밤’이라는 행사를 앞두고 있잖아요. 이에 관해서 저 개인적으로는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았어요. 어쩌면 여러분들에게도 그런 부분이 있을 듯한데요.
현재까지의 상황을 놓고 진행에 관해서 좀 간략하게 말씀을 드리고 갈게요. 아마 아실 분들은 아실 텐데요. 올해 이뤄질 찬양의 밤은 작년과는 다른 형식으로 진행이 될 거예요. 거의 찬양팀이 처음과 끝을 주도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거예요.
그리고 이 일을 청소년부와 청년부가 함께 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요. 사실은 청소년부가 중심이 되어 있긴 해요. 그래서 이러한 방식과 구성에 관해서 저는 고민이 참 많이 되었는데요.
이에 관해서 청소년부 임원들과도 얘기를 나누고 청년부 임원들과도 얘기를 나눴고요. 최종적으로 담임목사님과 얘기를 나눠서 보완해 가면서 진행중에 있어요.
그런데 한편 저의 고민이라는 것이 이런 거였던 같아요. 오늘의 예배를 놓고 한 고민과 비슷한 고민이요. 과연 이 모임에 누가 올 수 있을까하는 고민말이지요.
왜냐하면, 저는 이 일을 준비하는 이들이 수고하고 노력한 결과들에 따라서 좋은 결과를 맞이했으면 했고요. 또 그것이 마땅한 보상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제 생각에는 그와 다를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드는 거예요. 가령, 그런 거예요. 앞에서 찬양하는 팀보다 앉아 있는 사람들의 숫자가 적으면 어떻하지, 앞에서 준비한 팀들이 크게 실망하거나 마음이 상하지 않을까 하는 거요.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서 앞으로 이러한 일들을 아예 하지 않게 되지 않을까하는 판단이요.
그러다가 이번 주에 들었던 목사님의 이야기와 찬양의 이유 등을 생각하게 됐어요. 우리가 행하려는 것이 무엇이지? 우리는 아름다운 연주와 노래들로 우리를 뽐내려하는가? 진정으로 우리가 찬양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지?
그러다가 성경의 한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구절인데요. 다시 한번 같이 읽어봅시다.
역대하 20:25–26 NKRV
여호사밧과 그의 백성이 가서 적군의 물건을 탈취할새 본즉 그 가운데에 재물과 의복과 보물이 많이 있으므로 각기 탈취하는데 그 물건이 너무 많아 능히 가져갈 수 없을 만큼 많으므로 사흘 동안에 거두어들이고 넷째 날에 무리가 브라가 골짜기에 모여서 거기서 여호와를 송축한지라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곳을 브라가 골짜기라 일컫더라
고대 이스라엘에 왕이 있던 시절의 이야기인데요. 좀 더 정확히는 분열왕국시대라 분류되는 시절의 이야기에요. 당시 이스라엘의 남쪽 왕국의 왕이 여호사밧이었어요.
그 무렵에 고대 이스라엘은 남과 북이 서로 관계가 좋기도 했고, 주변 나라들에 영향력을 펼치던 시기였어요. 아무래도 서로 반복하던 나라들이 힘을 합치고 있으니깐, 주변 나라들도 쉽게 이스라엘을 넘보지 못했던 시기죠.
그러다 이스라엘의 남과 북이 협력해서 치룬 전쟁에서 패하여, 북쪽의 아합 왕은 죽고, 남쪽의 여호사밧은 겨우 목숨을 부지하여 돌아왔어요. 그 때문인지 한때는 이스라엘에 복속했던 주변 나라들 암몬, 모암, 마온에서 여호사밧이 있는 이스라엘의 남쪽 왕국을 치기 위해 연합군을 편성해서 다가 왔어요.
언제부터 그 일을 준비한 것인지, 그들의 숫자는 어마어마한 것이었어요. 도무지 여호사밧 왕이 그들을 상대로 맞설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그러자 여호사밧 왕은 하나님께 이 상황을 놓고 기도했어요.
그러자 하나님은 야하시엘을 통해 말씀하셨어요. 그 내용을 같이 찾아 읽어볼게요. 역대하 20장 15절에서 17절(구약 681쪽) 말씀입니다.
역대하 20:15–17 NKRV
야하시엘이 이르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과 여호사밧 왕이여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내일 너희는 그들에게로 내려가라 그들이 시스 고개로 올라올 때에 너희가 골짜기 어귀 여루엘 들 앞에서 그들을 만나려니와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내일 그들을 맞서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이 말씀을 들은 여호사밧 왕은 그 다음 구절을 보면,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송했다고 해요. 그리고 다음 날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대를 앞세워서 전쟁에 나갔다고 해요. 그리고 결과는 아마 예상하실 수 있겠지만 전쟁에서 승리하게 된 것이죠.
그리하여서 그것을 기념하여 골짜기에 모여서 찬송했는데요. 그것이 오늘 우리가 맨 처음에 읽은 성경구절 곧 브라가 골짜기에 관한 이야기에요. 브라가는 히브리어로 찬송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 잘 생각해 보셔야 해요. 우리는 결과를 보니깐, 이 모든 일이 결국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순적하게 이뤄진 일임을 아는데요. 결과를 모르는 상태에서 전쟁터에 찬양대를 앞세운다는 것은 사실 제정신이 아닌 행동이라고 할 수 있죠. 무기를 들고 싸워도 이길까 말까한 상황에서 악기를 들고 나가니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죠.
그런데 놀라운 것은요. 이와 같은 일이 그 이전에도 있었다는 것이 성경에 나와요. 아마 여러분이 잘 아시는 이야기일텐데요. 구약성경 여호수아에 나오는 이야기이지요. 한번 찾아봅시다. 여호수아 6장 6절과 7절(구약 326쪽) 말씀입니다.
여호수아 6:6–7 NKRV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제사장들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언약궤를 메고 제사장 일곱은 양각 나팔 일곱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나아가라 하고 또 백성에게 이르되 나아가서 그 성을 돌되 무장한 자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나아갈지니라 하니라
앞뒤 내용을 살펴보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정복하러 가는 장면인데요. 하나님이 무기를 들고 싸우라고 명하신 것이 아니라, 나팔을 불며 언약궤를 메고 여리고성을 돌라고 말씀하세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말씀을 따라 행한 것이고요. 이것의 결과 또한 예측가능한데로 여리고성의 정복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니깐, 찬양을 통해서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 여호사밧 이전에도 있었던 일이고요. 찬양이 한편으로 얼마나 대단한 능력을 일으키는지를 알 수 있게 만들어줘요. 그러나 사실은 찬양이라는 행위가 대단한 것은 아니지요.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는 하나님이 대단한 분이신 것이지요.
우리의 어려움을 살피시고, 우리의 위기를 넘어서도록 도우시는 하나님을 통해 우리는 문제를 넘어서게 되는 것이니까요.
그러니 찬양은 그저 노래가 아닌 거예요. 하나님을 향한 신앙고백인 것이죠. 우리의 하나님이 우리의 문제들을 해결해 주실 것을 믿기에 우리는 찬양할 수 있는 것이고요.
그리하여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한다면 또 그 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것이지요.
바라건데,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그렇게 하나님을 믿음으로 온전히 하나님께 찬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합니다.
같이 기도하기,
- 찬양의 밤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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