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Tone Analysis

Overall tone of the ser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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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otion Tone
A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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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gust
0UNLIKELY
Fear
0UNLIKELY
Joy
0UNLIKELY
Sadness
0UNLIKELY
Language Tone
Analytical
0UNLIKELY
Confident
0.01UNLIKELY
Tentative
0UNLIKELY
Social Tone
Openness
0.1UNLIKELY
Conscientiousness
0.13UNLIKELY
Extraversion
0.44UNLIKELY
Agreeableness
0.6LIKELY
Emotional Range
0.21UNLIKELY

Tone of specific sentences

Tones
Emotion
Anger
Disgust
Fear
Joy
Sadness
Language
Analytical
Confident
Tentative
Social Tendencies
Openness
Conscientiousness
Extraversion
Agreeableness
Emotional Range
Anger
< .5
.5 - .6
.6 - .7
.7 - .8
.8 - .9
> .9
부제 : 순종하여 쓰임 받자.
헌금 : 먼저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드립니다.
받아주옵소서.
또한 우리의 가장 값진 물질을 봉헌합니다.
주님 받으시고 기쁘게 흠향하여 주옵소서.
이 드림이 우리의 예배가 되게 하시고,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을 가장 영광스럽게 하는 예배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 : 266장(주의 피로 이룬 샘물), 십자가 그 사랑
본문 : 요나 1:1-16 (1-10)
1:1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1:2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1:3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
1:4 여호와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에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거의 깨지게 된지라
1:5 사공들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들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1:6 선장이 그에게 가서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아니하게 하시리라 하니라
1:7 그들이 서로 이르되, 자 우리가 제비를 뽑아 이 재앙이 누구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임하였나 알아 보자 하고 곧 제비를 뽑으니 제비가 요나에게 뽑힌지라
1:8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이 재앙이 누구 때문에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말하라 네 생업이 무엇이며 네가 어디서 왔으며 네 나라가 어디며 어느 민족에 속하였느냐 하니
1:9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하고
1:10 자기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함인 줄을 그들에게 말하였으므로 무리가 알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1:11 바다가 점점 흉용한지라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우리를 위하여 잔잔하겠느냐 하니
1:12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1:13 그러나 그 사람들이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로 돌리고자 하다가 바다가 그들을 향하여 점점 더 흉용하므로 능히 못한지라
1:14 무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고 구하오니 이 사람의 생명 때문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주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이다 하고
1:15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가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1:16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
말을 안 듣죠.
말을 안 듣습니다.
불순종하죠.
그러면,
하나님도 난감하셔야 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보세요.
불순종해도,
하나님은 구원 역사를 이루십니다.
16절을 보세요.
“그 사람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
보세요.
불순종해도,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습니다.
문제는 우리 자신입니다.
문제는 우리에요.
우리가 사느냐 죽느냐가 달린 것이지,
우리가 불순종하면, 하나님이 실패하시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심부름을 시키기도 하고,
뭔가 일을 시킬 때도 있습니다.
일을 시키는 이유는, 일 자체에 있지 않아요.
일은 부모님들도 할 수 있습니다.
시키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죠.
우리가 순장을 뽑고 리더를 뽑고, 교회에 일꾼을 뽑고
일을 시킵니다.
또,
하나님이 사람을 따로 불러 일으시키십니다.
삼손을 불러 일으키시고,
사무엘을 불러 일을 시키고,
모세와 여호수아를 불러 일을 시키십니다.
그게 안 해도 하나님께 아무 문제도 안 돼요.
문제는 항상 사람에게 있습니다.
그 사람이 순종하면 사는 것이고,
불순종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일은 일 시키는 사람이 애달아서 시키는 게 아니에요.
일 하는 우리가 사느냐 망하느냐가 달린 것이죠.
교회가 전도를 해야 할까요?
교회가 선교를 해야 할까요?
교회가 다음세대를 살리기 위해 교육에 투자를 해야 할까요?
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가 아니라,
하나님은 어떻게든지 새로운 세대를 일으키십니다.
예배자를 만들어 가십니다.
다만, 우리가 사느냐 우리가 망하느냐가 달린 것이죠.
항상 그런 것입니다.
요나를 보세요.
2절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요나야
일어나서 동쪽으로 가라
동쪽에 큰 도시 니느웨가 있다.
거기 가서 회개의 말씀을 외쳐라.
그들의 사악함이 내 얼굴에까지 도착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이죠.
여기에 순종했나요?
3절을 보니까, 순종하려고 한 것처럼 보여요.
일어나요, 움직입니다.
그런데 방향이 달라요.
동쪽이 아니에요.
서쪽으로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나가 불순종해도 하나님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안 됩니다.
불순종하는 요나를 통해서도,
이방인 선장과 선원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게 하셨어요.
문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항상 문제는 요나 자신에게 있는 것이죠.
우리가 순종해서 하나님께 쓰임받느냐,
아니면 불순종해서 안 좋은 방법으로 사용 당하느냐
그 차이만 있는 것입니다.
3절입니다.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
당시에,
12명의 선원이 필요한 배를 탔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이 배를 요나가
전세를 주고 임대했을 것이다.
라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요나는 이방인들이 싫었어요.
특히 니느웨 사람들이 싫었습니다.
원수죠.
북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원수죠.
이들이 회개하여 예수 믿고 구원 받는다면, 그것은 곧, 자기 나라가 망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웃 옆나라가 잘 되면, 우리 나라가 망하는 것과 같은 것이죠.
그래서 요나는 순종하기 싫었습니다.
자기 민족이 살기 위해서, 다른 민족이 망하는 길을 택한 것이죠.
불순종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그래요.
우리는 원수가 망했으면 좋겠어요.
우리를 괴롭히는 친구가 고통 당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그게 불순종입니다.
그러면 옆친구가 죽는게 아니라, 나만 죽는 것이죠.
하나님은, 내가 싫어하는 그 친구도, 나를 통해 살리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게 죽을만큼 싫어도 순종해야 합니다.
그게 하나님이 그 친구도 함께, 여러분을 살리는 방식인 것이죠.
요나는 설교하기 싫어도 서쪽으로 도망칩니다.
배를 타고 다시스로, 저 멀리 반대편으로 도망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던지십니다.
바다 위에 큰 바람을 던지자,
배가 박살나기 직전이죠.
그러니까,
배에 타고 있던 선장과 선원들이,
자신의 재물과, 자신의 보물들을 바다에 던지기 시작합니다.
같은 단어죠.
하나님이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던지시니까,
이방인 선원들이 자신들의 보물들을 살기 위해서 바다 위에 던지는 것이죠.
인생이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던지시는 바람 한 방에,
우리가 가진 보물들을 내던져야 하는 상황
이것이 인생인 것이죠.
그러니, 이방인 선원들이 다급하여, 공포에 떨게 된 것입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 뭣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이냐? 우리가 한번 제비를 뽑아보자.
자 너부터 뽑아봐라.
아니네.
다음 너 뽑아봐라.
아니네.
다 뽑았니? 우리 중에는 아무도 없네.’
이제 남은 건 배 밑에서 자고 있는 저 손님 밖에 없다.
당신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질렀길래 폭풍이 몰아치고 난리가 난 것이냐?
도대체 뭐냐?
당신 어느 나라 사람이냐?
8절입니다.
같이 읽어봅시다.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이 재앙이 누구 때문에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말하라 네 생업이 무엇이며 네가 어디서 왔으며 네 나라가 어디며 어느 민족에 속하였느냐 하니”
도대체 당신 어느 나라 사람이냐?
어느 민족 사람이냐?
도대체 당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길래, 이 재앙이 우리에게 들이닥쳤느냐?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요나가 회개를 하고,
다시 돌아가자.
다시 돌이켜서 욥바 항구로 돌아가자.
내가 하나님께 불순종해야 그렇다.
이렇게 대답을 해야 하는데,
아직도 회개할 생각이 없는지, 요나는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9절입니다.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하고”
아이러니죠.
분명, 요나는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서, 서쪽으로 도망치는 중입니다.
마치, 하나님의 얼굴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반대편으로만 가면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을 하죠.
그런데,
그의 신앙고백은 무엇입니까?
자기는 히브리 사람이고, 자기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는 사람이다.
바다도 지으셨고,
땅도 지으셨고,
하늘도 지으신 하나님을 믿는데,
어디로 도망친다는 말이죠?
말은 맞는데,
요나의 신앙고백은 너무도 정확한데,
그의 행동은 마치 하나님께로부터 도망칠 수 있을 것처럼 행동하죠.
우리가,
예배 드릴 때, 신앙 고백을 드립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습니다!
신앙 고백을 드립니다.
그런데 마치 요나처럼, 하나님께로부터 숨어서 보이지 않게 불순종할 수 있을 것처럼 행동을 하는 것이죠.
신앙고백은 뭐에요?
하나님은, 안 계신 곳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삶은 어때요?
바다로 떠나면 하나님이 나를 모르시겠지.
땅으로 숨으면 하나님이 나를 못 찾으시겠지.
요나의 모습이 마치 이와 같다는 것이죠.
여러분, 그런데요
이렇게 불순종해도 하나님의 뜻은 완전히 성취가 됩니다.
하나님은 불순종하는 요나를 통해서도, 이방인들을 구원하셨어요.
13절을 보시면,
요나는 되돌아갈 생각이 없는데,
선원들은 어떻게든지 육지로 되돌아가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어요.
13절에 배를 육지로 돌리고자 하다가.
이 구절에서 ‘돌린다’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슈브’라는 단어를 쓰는데,
돌이키다, 회개하다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요나의 불순종하여 회개하지 않는 모습과,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육지로 돌이키려고 하는 이방인 선원들의 모습이 대조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 당시 북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었던 거에요.
정작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순종하고 회개하는 모습이 없었던 것이죠.
반대로 이방인들이 회개하고 순종하려고 하는 것이죠.
교회가 하나님께 순종하고 회개하는 모습이 없고,
반대로 세상 사람들이 오히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순종하고 회개하면,
이보다 더 큰 아이러니가 있겠습니까?
근데 요나서, 1장이 그런 장면을 그리고 있어요.
요나는 뭐에요?
나는 하나님께 순종할 생각이 없다.
그냥 나를 바다에 던져라.
바다에 던지면은, 바람과 파도가 잔잔해질 것이다.
나는 다시 하나님께로 되돌아갈 생각이 없다.
나를 그냥 바다에 던져라.
그런데 이방인들은 어땠어요?
어떻게든지, 요나를 바다에 던지지 않고 살리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는 것이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을 전도하고 살려야 하는데,
세상 사람들이 오히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애를 쓴다면,
이거 되게 우스운 일 아닙니까?
근데 요나서, 1장이 그런 모습입니다.
말씀의 결론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순종해서 쓰임받느냐
불순종해서 쓰임 못 받느냐
그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불순종해도 하나님은 이방인들을 구원하십니다.
교회는,
사람 살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원수 사랑하는 일도 해야 합니다.
다음 세대를 살리기 위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것이죠.
또 다른 민족을 선교하기 위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순종 안하면,
다음 세대가 죽고,
다른 민족이 죽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순종하지 않는, 우리의 멸망을 두려워하면서,
다음 세대가 회개하고,
다른 민족들이 회심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 우리 자신만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전도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죠.
다음세대를 살리기 위해 수고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위해서 해야 하는 것이죠.
하나님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 문제고,
우리가 사느냐 망하느냐의 문제인 것입니다.
구원 받았다면,
구원 받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다른 사람을 살리고, 한 영혼을 살리는 일에 귀중함과 가치를 느끼고 헌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안 되면, 요나와 다를 바가 없죠.
나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그런데
말씀에 순종하기는 싫다.
이것만큼 어리석은 사람이 없죠.
오늘 말씀을 잘 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말씀을 전하라고 하시는 것이죠.
우리는 평생 말씀 전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말씀이 곧 하나님입니다.
말씀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쉬지 말고 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자신이 사는 것이죠.
우리가 다른 것은 좀 못해도 되요.
그런데 말씀 전하는 일은, 가장 귀한 일인 것입니다.
가정에서 말씀을 전해야 하고,
직장에서 말씀을 전해야 하고,
어떻게든 말씀 전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직분을 받았으면, 정말 감사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이거, 하나님이 나 살리려고 주신 직분이구나.
다른 사람 살리기 위해서,
내가 말씀을 읽고, 연구하고, 묵상하고, 우리 순원들에게 전하는 것.
이게 나 살리려고 주신 귀한 직분이구나.
이 생각을 하셔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반면교사로 삼아,
일평생 말씀 전하는 사람으로 살기로, 결단하면서,
하나님 은혜를 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찬양합니다.
십자가 그 사랑
*함께 기도합니다.
우리 자신과 이웃들을 위하여 : 자기 자신에게만 매몰되어, 다른 사람의 영혼을 돌보지 못하는 편협한 삶을 회개할 수 있도록.
한 영혼을 살리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도록.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위하여 : 이기적으로 변해가며, 세상을 품고 나아가지 못하고, 현실의 이익과 자기 집단의 이익을 위해 분열을 일삼는 이 민족을 불쌍히 여겨주시도록.
하나님께서 이 나라 이 민족이 하나가 되어, 하나님처럼 세상을 섬기는 나라가 되도록 역사해달라고.
앞으로 세워지는 순장, 리더들, 일꾼들을 위하여 : 하나님의 마음으로 섬기게 하시고, 교회를 사랑하게 하시고, 따르는 청년부 모두가 응원하고 기도하고, 앞서 세워지는 일꾼들이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돕게 해달라고.
관찰
2 너는 일어나라, 너는 가라, 너는 외치라(카라), 그들의 사악함이 내 앞(얼굴)으로 (왔다)
3 요나가 일어나서, 다시스로 달아났다, 여호와의 얼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가 욥바로 내려가서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났다, 그가 값을 주고 들어갔다, 그들과 함께(그들은 이방인이다), 여호와의 얼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여호와의 얼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2번 반복)
2절에서 ‘얼굴’이 나왔다.
니느웨의 사악함이 여호와의 얼굴로 다가왔다.
그런데 요나는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도, 여호와의 얼굴로부터 멀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이방인 니느웨를 구원하는 일을 피하려고,
이방인들과 함께, 이방인들의 배를 타고 있다.
(이런 것이 아이러니다.
우리가 불신자를 멸시하고 무시하면서, 불신자가 하는 행동을 그대로 한다.)
4 여호와가 큰 루아흐(영, 바람)을 던지셨다, 얌(바다)를 향하여.
바다에 큰 사아르(엄청난 돌풍)이 발생하여, 배가 거의 부서져갔다(니팔).
영이 수면 위를 운행하셨다.
여기서는 큰 영이 바다 위로 던져졌다.
이것은 파괴의 바람이다.
큰 돌풍이 발생하여 배가 깨지게 되었다.
요나와, 이방인 선원들의 운명이 동일하다.
5 선원들이 두려워서 각각 자신의 엘로힘을 향하여 부르고, 그 가운데 기구들을 바다에 던졌다.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웠다.
그리고 깊이 잠들었다.
하나님이 큰 루아흐를 바다에 던지시자
선원들은 배 안에 기구들을 바다에 던지기 시작한다.
1:4 하나님이 큰 바람을 던지셨다.
1:5 사공들이 배의 물건들을 던졌다.
1:12 요나가 자신을 바다에 던지라고 말했다.
1:15 사공들이 요나를 바다에 던졌다.
선원들은 각자의 신을 부르고, 살 궁리를 한다.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을 부르지도 않고, 수면을 선택한다.
그는 살 궁리를 하지 않는다.
6 선장이 그를 향하여 가까이 가서, 당신은 뭐냐? 잠든 자여, 너는 일어나라, 너는 외치라(카라) 네 엘로힘을 향하여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마음에 두시면, 우리가 멸망하지 않으리라.
당신은 뭐냐? 잠든 자여.
2절에서 하나님이 하셨던 명령을, 선장이 다시 하고 있다.
너는 일어나라
너는 외치라
선장은 자신의 운명을 요나와 “함께” 둔다.
그러나 요나는 니느웨의 운명을 자신과 “동떨어져서” 둔다.
7 서로 이웃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가라!(할라크), 누구로 말미암아, 이 사악함(라아)이 우리에게 왔는지.
사악함은 ‘니느웨’에게 붙여진 단어였다.
요나가 뽑혔다.
그런데 이 사악함은 곧 ‘요나’에게 붙여질 단어이다.
8 너는 말하라!(나가드 / 명령), 이 재앙(라아)가 누구 때문에 온 것인가? 너의 멜라카(생업, 사업, 일)은 무엇이며, 너는 어디서 왔으며, 네 나라(에레쯔)는 어디며, 어느 민족(암)에 속하느냐?
도대체 이 재앙의 근원지가 어디인가?
생업은 무엇인가?
어디서 왔는가?
나라는 어디인가?
어느 민족에 속하였는가?
재앙의 근원지를 파악하기 위한 질문 같다.
9 나는 히브리 사람이다, 나는 여호와,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엘로힘을 경외한다.
생업?
어디?
나라? 히브리 사람
민족 히브리 사람
10 그들이 큰 두려움으로 두려워하여, 네가 어찌 이렇게 만들었느냐?, 여호와의 얼굴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도망하는 것.
여호와의 얼굴이 또 다시 나온다.
11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바다가 잠잠해지는가?
바다가 점점 더 바람이 몰아쳤다.
12 너희는 나를 들어라!, 바다가 잠잠하리라.
내가 아노라, 이 큰 폭풍이.
나를 들어 던지라
13 육지로 슈브(돌리고자), 이기지 못하였다, 그들을 향하여 바람이 몰아치므로,
14 그들이 외쳤다(카라), 여호와를 향하여, 바라건대, 여호와여,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소서(미완료), 당신은 넘기지 마소서, 우리에게, 상관없는(나키 / 무죄한, 깨끗한) 피를,
요나 대신에 이방인들이 외치고 있다.
15 그들이 요나를 들어올려, 바다에 던졌다.
바다가 그 화를 내는 것(자아프 / 원망하다)것이 섰다.
바다가 화를 내는 것으로 표현한다.
바다는 하나님의 분노를 표현하고 있다.
16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위하여 희생 제물을 드리고, 맹세들로 맹세하였다.
이방인들의 크게 두려워함이 2번 나타난다.
16절
10절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섬기기로 맹세하였다.
연구
독자는 누구인가?
8세기 초, 북 이스라엘 왕국에서 기록됨.
요나는 주전 8세기 전반부에 사역했던 사람이다.
이 때 아시리아는 내부적으로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아시리아는 아다드니라리 왕이 죽은 후 디글랏블레셀이 왕권을 잡을 때까지 매우 혼란스러운 시기를 맞았다.
아시리아는 아람 사람들과 우랄타 사람들을 상대로 생존을 담보로 싸워야 했다.
뿐만 아니라 765-759년에는 나라에 기근이 들었으며, 763-760, 746년에는 내부적인 반란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시리아의 중요한 군주들도 중앙정권에 대하여 예전과 같은 충성이 아니라 형식적인 관계만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정황 때문에 요나서는 ‘아시리아의 왕’이란 호칭보다 ‘니느웨의 왕’이라는 표현을 선호한 것으로 생각된다.
아시리아의 혼란과 무력함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디글랏블레셀이 745년에 취임함으로써 막을 내린다.
그는 정권을 잡은 후 종속국 단속에 나섰으며 유다와 이스라엘도 그의 손에 많은 고통을 당했다.
그의 대를 이은 살만에셀은 사마리아를 파괴하고 주민들을 인질로 잡아갔다.
요나서, 1장 17절에서 2장 10절 사이에는 3일간의 요나의 기도가 나타난다.
이런 3일간의 공백을 서술자는 2장 1-10절로 간략하게 3일간의 모든 것을 요약한다.
2장 8-9절의 “무가치한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은 주의 자비를 저버린 자들이다.”
아직도 요나는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주석
등장인물 : 하나님, 해설자, 요나, 그리고 선장을 포함한 이방인 선원들
하나의 희곡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발단 - 전개 - 위기와 절정 - 그리고 해결
바람을 맞이하는 이방인 선원들은 두려움에 떨면서 문제 해결을 위해 바쁘게 움직인다.
그러나 요나는 태연하다.
이건 요나의 문제다.
주지하다시피 여로보암 2세는 신흥 강대국 앗수르의 세력이 잠시 약해진 틈을 타서 북쪽의 아람을 쳐서 함락시키고 그 수도인 다메섹을 중심으로한 국제 무역을 독점하여 북이스라엘의 국력을 크게 신장시켰다.
뿐만 아니라 가나안 북부 지역 하맛에서 남쪽 염해에 이르기까지 국토를 확장시켰다.
그리하여 이 시기에 북이스라엘은 잠시나마 국가의 위상을 높이고 민족적 자긍심을 내세울 수 있었다.
반면 당시 앗수르는 살만에셀 3세(Shalmaneser 3, B.C. 773-755), 앗술니나리 2세(Assurninari 2, B.C. 755-745) 등에 위하여 통치되던 시대로서 이전의 왕들의 때에 비하여 국력이 다소 약화된 때였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앗수르의 서북방 경계 지역의 신홍 국가인 아라핫과의 전쟁이 장기화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설상가상으로 B.C. 765-759 년 사이에는 전국에 큰 전염병이 돌아 많은 사람이 죽었고 B.C. 763년 6월 15일 무렵에는 완전 일식(日蝕)이 일어나 앗수르 땅이 칠흙같은 어둠에 휩싸이는 불길한 징조로 민심이 크게 동요되어 있었다.
이와 같은 시대 상황은 요나가 니느웨 성에서 회개 경고 사역을 하자 즉각 범사회적 회개 운동이 일어나게 된 배경이 되어 주었을 것이다.
앗수르의 역사 중 유일하게도 이 무렵에 일시적으로나마 유일신을 섬기는 종교적 경향이 있었다는 점도 요나서와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어간에도 여전히 앗수르는 당시 북이스라엘의 안위와 존립을 위협하는 가장 강력한 잠재적 적대 세력이었다.
따라서 이 무렵의 북이스라엘 사람들은 앗수르에 대하여 큰 경계심을 갖고 있었다.
또한 이 당시 대부분의 이스라엘 대중들과 달리 여호와 신앙과 선민으로서의 정체성을 간직한 소위 경건한 소수의 종교 엘리트들은 편협한 선민 의식에 빠져 이방 앗수르에 대하여 무조건적 경멸심과 경원감을 갖고 있었다.
2절.
주님의 명령은 확고하고 즉각적인 수행을 요청한다.
요나는 주님이 그에게 하시는 말씀을 분명히 들었다.
높은 하늘까지 냄새가 난다 -TLB역
사악함은 하나님의 국지적인 심판을 내리게 하였다.
아사리아인들은 잔인한 것으로 고대 세계에서 잘 알려져 있었다.
산헤립의 손자 아슈르바니팔은 피해자의 입술과 손을 찢는 데 익숙했다.
디글랏빌레셀은 희생자들은 산 채로 가죽을 벗기고 그들의 두개골을 엄청나게 쌓았다.
요나는 그들의 악명높은 폭력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니느웨에 긍휼’을 선포하라고 하신다.
3절.
요나는 “하나님의 보편적 임재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를 고백했으면서도, 동시에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다시스로 도망치는 아이러니를 보인다.
요나는 공개적으로 하나님께 반역한다.
요나는 ‘순종할 것처럼’ “일어나”, ‘불순종’한다.
요나는 하나님의 계획을 추측하고 불순종한다.
죄는 처음에는 흥분되지만, 결국에는 비싼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요나가 ‘배 전체’를 임대했을 수도 있다.
요나는 이방인들의 항해 기술로 하나님과 맞서기로 하였다.
요나는 완벽한 ‘신앙고백’을 했지만,
그는 완벽히 ‘반대편’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도망쳤다.’
복음 전파의 사명을 외면하니까, 요나의 인생에 폭풍이 들이 닥친다.
4절.
나레이터는 ‘큰 폭풍’을 하나님의 목적이 있는 폭풍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요나는 하나님을 피했지만, 하나님의 눈은 계속해서 그 위에 있었다.
5절.
깊은 잠.
아마 요나는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기 위해’ 열심히 움직였을 것이다.
그래서 피곤하였을 것이다.
선원들은 그들의 소유물과 보물들을 바다에 던지기 시작했다.
9절.
당신의 죄가 당신을 찾아낼 것이다.
10절.
요나는 제대로 전도하지 않았다.
자신의 출신과 민족을 소개하면서, 하나님에 대하여 잠깐 이야기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방인 선원들이 당하고 있는 폭풍과 상황은, 그들로 하여금 간단한 전도임에도 불구하고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게 만들었다.
이런 모습이 요나, 4장에서도 동일하게 등장한다.
13절.
요나를 바다에 던져 빠뜨리는 방법은 너무나 ‘사악’했기에, 그들은 해안가로 노를 저었다.
그들은 ‘사악함’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들은 사악함을 피하기 위해 애를 썼다.
그들에게 요나를 죽이는 것은 너무 가증한 일이었다.
그러나 요나는 그들을 죽게 하고 싶었다.
(니느웨에 대하여)
16절.
당시 욥바는 블레셋의 도시였으므로, 이들 선원은 블레셋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육지에 도착하여 여호와의 산당 중 한 곳에 가서 여호와께 감사와 화목 제물을 바쳤을 것이다.
하나님은 불순종하는 요나의 예배가 아니라,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이방인의 예배를 받으셨다.
이것도 아이러니다.
당시 북이스라엘의 예배가 타락하자, 하나님은 니느웨를 회개시켜 그들의 예배를 받으시려 하셨다.
구약과 고대 세계에서 ‘서원’은 일반적으로 희생을 드리는 것과 관련이 있다.
선원들은 매년 이 날에 여호와께 어떤 희생을 바치겠다고 서약하였을 수 있다.
묵상
명철아, 네가 필요해서 너를 쓰는 게 아니야.
네가 살기 위해서 내가 너를 쓰는 거야.
두 가지 길
순종의 길 - 동쪽, 복음 전파
불순종의 길 - 서쪽, 침묵
순종을 하든, 불순종을 하든, 이방인이 회개하고 사는 것은 동일하다.
다만 요나 자신이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곧 내가 사는 길이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는 만큼, 다른 사람도 사랑하신다.
이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은 자기 자신에게로만 제한하는 사람이 되면 안 된다.
나를 사랑하시는 만큼, 남도 사랑하신다.
고난이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만큼,
남도 사랑하셔서, 오래 참으시기 때문이다.
죄 짓는 이웃들을 하나님이 즉각 처벌하셨다면, 이 세상에 고난이 없다.
그런데 하나님은 악한 사람들, 죄인들도 오래 참으신다.
그래서 세상에는 고난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내심 때문에 고난을 당하는 것이다.
서론
예배 진짜 안 드리는 사람이 대충 전한 전도의 말을 듣고, 어느 불신자가 회심하여 정말 제대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가 되었다면 이보다 더한 역설이 어디에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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