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를 내가 지고 (고전 1: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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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영국의 모든 시골길에는 런던으로 통하는 팻말이 붙어있다”
이 말은 아무리 초라하고 볼품없는 시골길이라 해도 런던으로 가는 중앙도로와 연결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삶이라는 지도에서 런던은 하나님의 붉은 사랑이 작렬한 골고다의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에서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어떤 성경구절을 읽어도 그 구절은 하나님의 사랑이 찬란하게 계시된 십자가로 인도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시대에 어떤 삶의 모양을 살아간다하더라도 그 삶이 지향해야 하는 그 종착역은 십자가인 것입니다. 또한 삶의 중심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겠지요. 예수님만 바라보고 나아간다면 어떤 어려운 길이라 할지라도 결국에는 종착지에 도달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사도 바울이 세워 1년 6개월을 목회한 교회입니다. 바울의 기도와 헌신과 땀이 녹아있는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교 여행으로 고린도를 떠난 바울이 에베소에 머무는 동안 고린도교회에 분쟁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가 전해들은 갈등의 소식은 12절과 같이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서로 각기 다른 인물중심의 분파로 나누어졌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바울이 그들에게 전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복음이 아닙니까? 아볼로는 당시에 유창하고 인기있던 설교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전한 메시지가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의 수제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던 게바, 즉 베드로가 전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복음이 아닙니까?
이들 모두가 각기 방법과 나름의 매력을 가지고 하나의 복음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사람들은 그들이 전한 메시지가 아니라 이들의 각기 다른 개성과 매력에 이끌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전하는 복음이라는 아름다운 말과 지혜가 분쟁의 이유가 되고 결국 교회를 나누어지게 만드는 이유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펜을 들어 그들을 향하여 편지를 쓸 수 밖에 없었던 것이겠지요.
바울이 쓴 편지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복음때문에 싸우는 것은 옳지 않다. 다시 마음을 합하여 하나가 되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바울은 이것을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는 표현을 통해 강력하게 당부하고 있습니다.
“같은 마음과 같은 뜻”은 오직 하나의 복음에 붙들려 있는 것입니다. 복음이 가리키는 오직 한 곳, 유일의 참된 지혜를 품고 그곳을 바라볼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앞서의 본문 1-10절을 보면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10번이나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이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품어 붙들고 나갈 때에, 분열아니라 연합으로 분쟁에서 회복이 일어나게 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갈등속에 있는 고린도 교회가 회복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인 것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13절 말씀을 중심으로 교회 공동체는 하나됨을 유지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3절입니다. "13.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
첫 번째로 그리스도는 온전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성도들을 향하여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는 질문을 합니다. 이 질문이 내포하고 있는 뜻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나누어질 수 없는 분이라는 것이겠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어떤 이가 집에 들어갔는데 온 몸이 다 들어가기 전에 문이 닫혀서 다리만 들어가고, 팔이며 몸은 문밖에서 기다리는 신세가 될 수 있느냐라는 질문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은 결코 나누어질 수 없는 분이십니다.
오늘날도 우리는 여러 매체를 통해 수많은 교회와 예배 형식을 접하고, 또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 역시도 “우리 교회가, 우리 목사님이 너희 목사님보다 낫다”라고 시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결코 나뉠 수 없습니다. 주님의 참된 제자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나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의 중심가운데 어떤 평가와 교만이나 구별의 낌새가 있다면,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는 바울의 물음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하나됨을 위한 충성인 것입니다.
두 번째로 십자가에 못박히신 분은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다름 아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는 사실은 교회가 분열해서는 안되는 또 하나의 분명한 이유가 됩니다.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느냐”(13)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더 이상의 인물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시선을 고정할 것을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처음부터 전해들은 것은 바로 예수님과 십자가의 복음이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의 죄악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또 부활하셔서 구원의 은총을 베푸셨다는 것입니다. 이 엄중한 사실을 믿음으로 고백하느냐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기서 누가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엄청난 일을 행하셨습니까? 바울인가요, 베드로인가요, 아니면 오늘의 어떤 유명한 목사님이신가요?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당시 교회 성도들의 관심은 유명한 사람들에게 쏠려 있더라는 것입니다. 요즘의 시선으로 본다면 복음이 아니라 어떤 사람들, 목사들에게 쏠려 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스스로에게 냉철하게 질문을 던져봅시다. 누가 우리를 구원하였습니까? 우리는 어떻게 생명을 허락받았습니까? 누가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었습니까?
기억합시다. 십자가에 못박히시는 분은 우리 주님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만이 구원의 능력이 되십니다. 주님만이 깨어지고 상한 심령을 치유하고 회복시키시며 하나님 나라라는 하나됨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주님은 자신의 십자가를 통해 그렇게 하십니다. 우리는 오로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께 올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하는 곳은 십자가입니다. 우리의 시선을 다른 곳을 향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의 섬김을 받으셔야 하는 분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는 사실때문입니다 .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13) 는 구절이 증거하는 바는 바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는 누구에게 세례를 받았는가가 중요했습니다. 그 누군가에 따라 분파가 결정되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로 생명이 양도되었다는 것, 그의 권위 아래에 들어갸며 그 사람이 시키는 대로 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니, 아볼로니, 베드로니 하는 이들에게 종속되었다는 것은 다름아니라 그들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까? 아니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바울은 사람들의 유명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라는 영광된 이름이 가리워진 가리워진 것에 부끄러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 백성들이 누구에게 세례를 받았다는 설명과는 상관없이 그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고 강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어이없는 행동들을 보면서 부끄러움을 느꼈던 바울의 고백은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의 세례를 받아 다른 누구도 아니라 예수님의 소유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로 하여금 사명을 확인시켜 줍니다.
17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17.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한 처방은 무엇이었습니까? 다름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였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에게 시선이 고정될 때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에게 주신 사명은 다름 아니라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이 명령은 당신의 자녀들 누구에게나 주신 명령입니다. 우리의 시선과 자랑은 어디를 향하여 있습니까? 주님을 보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인생의 사명을 확인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저와 여러분을 세상에 보내심은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고린도 교회의 분열의 모습을 보면서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세상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우리의 모든 중심을 놓기를 원합니다. 주님을 붙들고 나갈 때에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교회로서 날마다 세워지는 우리의 믿음의 고백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되어 감당해야하는 유일의 목적은 오직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하여 같은 마음으로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는 바울의 권면을 듣게 하여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교회로 하나되는 소망을 잊지 않게 하여 주시고, 하나됨 속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리의 중심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의 힘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세상으로 흘려보내는 복음에 붙들린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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