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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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신의 이름의 뜻은? 2. 성문으로 오르다 3. 아무개와 보아스 4. 당신은 어떤 인생을 살기 원하는가?

Notes
Transcript

당신의 이름의 뜻은?

한 가지 질문을 하며 말씀을 나누려고 해요.
우리 모두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것이 있어요. 이 것이 없는 사람은 없어요. 무엇일까요?
정답은 뭘까요? 맞아요. 바로 “이름"이에요. 이름이 없는 사람은 없죠.
여러분의 이름의 뜻은 무엇인가요? 말해줄 수 있는 청년 있을까요? 그 이름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다른 청년들은 어떤가요? 그 이름의 뜻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은가요.
제 이름은 휘석이죠.
빛날 휘 주석 석. 어두운 세상에 주석처럼 은은하게 빛을 비추는 사람이 되라는 뜻이에요.
저는 어렸을 때 제 이름이 정말 싫었어요. 정확하게 말하면 양휘석 이름 세글자 전체가 다 싫었어요. 왜 초딩 때 보면 이름으로 별명을 짓고 막 놀리고 하잖아요?
친구들이 저만 보면 양고기라고 놀렸어요. 그리고 그 당시 유명했던 개그맨이 남희석이었는데, 자꾸 저보고 남희석이라고 불렀어요.
휘석이라는 이름이 어렵다고 친구들이 제대로 불러주지 않았고 선생님들도 저를 희석이라고 불렀거든요.
저는 제 이름으로 온전히 불렸던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했었어요.
나는 왜 우리 나라에서 가장 많은 성인 김,이,박이 아닐까 하다 못해 강, 최도 아닌 것일까?
왜 내 이름은 휘석일까. 왜 이렇게 어렵게 이름을 지었을까.
나도 평범한 이름을 가졌으면 좋았을텐데라는 생각을 진짜 많이 했었어요.
어렸을 때 정말 싫었던 이름이었는데, 지금은 제 이름이 정말 좋아요. 왜냐하면 굉장히 단순한데.. 일단 유니크하잖아요? 양휘석 이라는 이름을 전 또 본 적이 없어요.
그리고 요즘처럼 같은 시대에 갖다 붙이기만 하면 이름이 되더라구요.
저 알파카 닮았잖아요? 그래서 유튜브 채널도 양파카랜드이고, 그 곳에 보면 말씀으로 휘며드는 밤이라는 영상도 있고, 양팡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사역도 했었고, 뭐든 갖다 붙이면 뭐가 나오더라구요.
정말 싫었던 이름이지만, 지금의 저는 제 이름의 뜻처럼 “어두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라는 빛을 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어요.”
성경에도 수많은 이름들이 등장을 하죠.
그 사람들 모두가 자신의 이름대로 살아가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성경은 그 이름들을 다 기록해 두었어요. 왜냐하면 그 이름 하나하나에 하나님의 메시지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에요.
여러분의 이름을 누가 지어주었던 간에, 그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여러분을 통해 이 땅에 이루어내고 싶은 것들이 있기에 허락하신 이름이에요.
성경의 인물들처럼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함께 이루고 싶은 일들이 정말 많다는 것이죠.
이름대로 살지 못해도, 우리가 때론 하나님을 배반하고 멀리하더라도, 그 것까지 감수하시면서 함께 하고 싶어하세요.
그래서 우리에게 그 이름을 허락해 주신 것이에요.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고 싶어하시죠. 아니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죠. 그 것을 알 수 있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여러분의 이름이에요.
이름 뒤에 여러분 각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분명한 계획과 이끄심이 숨어 있어요. 이름을 들을 때마다, 생각 할 때 마다 저와 여러분은 반드시 하나님을 떠올려야 해요.
왜냐하면 저만 여러분만 각자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의 이름을 불러주고 계시거든요.
창조주. 이 세상을 지으신 그 하나님께서 나를 기억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한데, 이름까지 불러주신다는 것.
얼마나 낭만적이에요.
얼마나 기쁜 일이에요.
하나님은 여러분의 이름을 부르며 함께 나의 길을 걷고,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내자고 말씀하고 계시는거에요.
오늘 본문에 바로 그렇게 하나님께서 이름을 부르며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내자고 부르고 계시는 두 명의 사람이 등장해요.

성문으로 오르다

룻과의 이야기를 마친 보아스가 아침이 밝자마자 성문으로 올라와요. 그리고 성문 주변에 자리를 잡고 앉아요.
왜 우리나라 사극 드라마를 보면, 성문 앞에 시장이 열리고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고 하는 그런 장면들이 나오잖아요?
그 것처럼 베들레헴도 성문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오고 다니면서 물건을 팔기도 하고, 먹고 마시면서 지내곤 했어요.
어떤 일을 처리하고 싶으면 성문으로 가면 모든 것이 가능했어요.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보아스는 성문으로 올라가 그 곳에 앉았어요. 누군가 성문에 앉아 있다는 것의 의미는 법적인 절차 혹은 소송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을 뜻해요.
그가 성문에 앉자마자 때마침 그가 만나려 했던, 기업을 무를 자가 지나가요.
2주 전에 우리 삶에 우연은 없고, 우연을 가장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고 말씀을 나눴잖아요? 지금이 딱 그 상황이에요. 뜬금없이 갑자기 보아스가 만나려 했던 사람이 그 앞을 지나가고 있어요.
보아스가 알고 성문에 앉은 것이 아니에요. 그가 앉자마자 찾던 사람이 지나간 것은 하나님께서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일하고 계셨다는 것을 말하는거에요.
저와 여러분의 삶에도 하나님은 똑같이 일하고 계실거에요.
한순간도 쉬지않고 일하시면서 필요한 때에 맞춰 일자리를 주시는 등 이끌어 주실거에요.

아무개와 보아스

보아스는 그를 보자마자 불러요. 보아스는 그의 이름을 정확히 불렀어요. 그런데 성경을 보면 “아무개"라고 기록이 되어 있어요.
이 것은 그가 아씨 성을 가진 무개이기 때문에 부른게 아니에요. 성경은 그의 이름을 의도적으로 감추고 있어요. 왜냐하면 그는 그가 해야 하는 일. 그 이름대로 해야 하는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기업 무를 자. 라는 것은 죽은 사람의 이름. 그 명예를 되찾아 돌려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에요. 보아스가 찾아왔고 부른 이 사람은 “그 명예를 되찾아 줄 수 있는 가장 최적의 사람"이에요. 그런데 성경은 그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고 있어요.
왜요? 인성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에요. 그 권한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을 사람이기 때문에 성경에 등장은 하지만 이름을 감추고 있는거에요.
저는 이 장면을 묵상 할 때 무서울 때가 있어요.
왜냐하면 나중에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께서 저를 보시면서 “제 이름을 불러주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에요.
아무개도 저처럼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었고, 때가 되면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을 높이던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가 지금 불순종을 해요. 해야 하는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어요. 그랬더니 성경에서 그의 이름을 감추어 버렸어요.
그는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았죠. 바로 저주를 받아 죽지 않았어요. 그는 계속 그 삶을 살아갔어요. 예배 드리고, 제물을 잡아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을 섬기며 살다 죽었을거에요.
그는 그 한 번의 그 불순종으로 인해 이름을 잃어버리게 될 것을 전혀 몰랐을거에요. 평범하게 살아가다가 죽었는데,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으셨어요.
무섭지 않나요? 저만 무섭군요.
이 사람이 얼마나 인성에 문제가 있었는지 좀 더 살펴볼까요?
일단 이 아무개는 “나오미가 베들레헴에 돌아왔고 또 그녀에게 땅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는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어요. 그 땅을 이어 받을 권한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외면하고 있었어요.
지금 자신이 움직이면 그 땅을 내 돈을 내고 구매해서 돌려주어야 하거든요. 그리고 만에 하나 룻과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게 되면, 내 자식이지만, 나오미 가문의 자녀로 족보에 올라가고 그렇게 되면 땅을 자신이 갖지 못하게 돼요.
내 돈을 주어 땅을 사고, 아들을 낳아 다른 사람만 이득을 취하게 되는 상황이 될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는 일부러 모른 척하고 있었어요.
나오미가 이대로 굶어죽거나 늙어서 죽으면 자동으로 그 땅은 자신의 것이 되거든요. 가만히 있기만 하면 저 땅은 내 땅이 되기 때문에 일부러 모른 척 하고 있었어요.
그렇게 조용히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의 계획에 돌발 변수가 생겨요.
바로 보아스에요. 보아스가 성문 앞에 있다 자신을 불렀는데, 부른 것도 모자라 성읍의 원로 10명을 증인으로 세우기까지 해요.
보아스에게 자신의 계획을 이야기하고 조용히 넘어가고 싶은데 원로 10명 때문에 그렇게 할 수도 없어요.
보아스가 10명을 부른 이유는 당시에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최소한의 숫자였기 때문이에요.
회당을 세울 때에도 성인 남자 10명이 있어야 했어요. 그리고 아브라함도 소돔과 고모라를 살리기 위해 하나님 앞에 의인 10명만! 이라고 외치기도 했죠.
10명의 원로는 이제 두 사람의 대화를 증언하고 보증해주는 역할을 하게 될거에요.
아무개는 지금 이 상황이 달갑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땅을 꿀꺽 하려던 자신의 계획이 어긋나기 때문이죠. 그가 듣고 싶지 않았던 “기업을 무르는 이야기"를 보아스가 꺼내요.
돈 주고 땅을 사고 싶지 않았지만 그는 사회적 체면이 있었기에 “내가 무르겠다!”라고 굉장한 의지를 보이며 대답을 해요.
“내가 엘리멜렉의 땅을 사서 나오미에게 주겠다. 그 권한을 내가 행사하겠다!” 라고 굉장히 멋지게 말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이 말에 숨겨진 의미가 있어요.
“여건만 맞으면 못 살 것도 없지. 내가 살게. 대신 모압 여인 룻은 포함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 의미가 숨겨져 있어요.
이 의미를 바로 알아차린 보아스
“응 아니야. 모압 여인 룻도 포함이고, 너는 그녀와 결혼을 해야 해"
“그리고 알지? 룻에게서 아들이 태어나면, 그 아들은 너의 아들이 아니라 말론의 아들이 될거야" 라고 말해요.
제가 아무개였으면 보아스를 걷어 차 버리고 싶었을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보아스는 지금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있는 것과 같거든요. 가만히 있으면 되는데 굳이 원로들을 불러 모아 이 사건을 공론화 시켜서 크게 만들고 있거든요.
아무개가 보아스를 향해서 “너가 뭔데 나서서 이러느냐?”라고 질타를 할 수도 있었고, 다른 사람들도 “보아스가 좀 선을 넘네?”라는 말을 할 수도 있었어요.
그만큼 보아스는 지금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아무개의 입장에서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고 답답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죠.
그럼에도 아무개가 보아스에게 아무런 불평이나 원망의 말을 하지 않은 것에는 그래도 비빌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율법은 결혼을 강요하지 않거든요. “땅을 사서 돌려 줄 때 무조건 결혼해야 한다.”라는 무조건의 조항이 없었던거에요. 그래서 인성에 문제가 있던 아무개는 또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어요.
그에겐 3가지의 선택지가 있었어요.
첫번째, 보아스의 요구대로 땅도 사고 모압 여인 룻과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그들에게 땅을 영구히 돌려주는 것이에요.
이 것을 선택하면 베들레헴 모든 사람들의 리스펙을 받게 되어요. 성경에 이름이 기록될거에요.
두번째, 땅을 사고 결혼을 미루는 거나 거부하는 것이에요.
율법의 사각지대를 활용하는 것이죠. 이렇게 되면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아요. 하지만 땅은 지켜 낼 수 있어요.
세번째, 제안을 거부하고 땅을 포기하는거에요.
이러면 내 돈을 쓰지 않아도 되고, 모압 여인과 결혼도 하지 않아도 돼요.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그냥 지금처럼 살면 되는거에요. 그 누구도 그를 뭐라하지 않을거에요.
이 세가지 중 그가 선택한 것은 무엇일까요?
맞아요. 세번째였어요. 제안도 땅도 거부했어요. “내가 살게!”라고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손해보는 일이라 생각되었던 것이죠.
모든 제안을 거부한 후 그는 신발을 벗어 보아스에게 건네요.
당시 신발은 권력, 소유권 혹은 주권을 이야기 했어요.
그러니까 내 신발을 벗어 너에게 준다는 것은 “그 것에 대한 나의 소유권을 포기한다.” “나는 더 이상 그 것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죠.
그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을 택했어요.
그 결과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 버렸어요.
성경에 기록은 되었으나, 그 이름은 잃어버린 사람이 되어버렸어요.
여러분 혹시 룻과 함께 나오미의 며느리가 되었던 또 다른 모압 여인의 이름을 알고 있나요? 그녀의 이름은 오르바에요.
저주 받은 모압 민족의 여인. 그 여인의 이름도 성경에 기록이 되었어요.
그런데 선택받은 민족 유대인인 아무개는 그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어요.
의미심장하지 않나요?
구원 받을 수 없는, 하나님께서 성경에 기록할만큼 저주를 내린 모압 여인의 이름은 성경에 있는데, 아브라함의 자녀. 유대인인 사람의 이름을 성경에 없어요.
여러분 우리 이 말씀을 그냥 듣기만 해서는 안돼요. 정말 무서운 장면이거든요.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이름을 반드시 기억하고 불러주시는 인생이 되기를 축복해요.
보아스와 아무개를 지켜보던 10명의 원로들이 법적인 선포를 성의 모든 사람들 앞에서 하고 있어요.
11-12절이에요. 분명 그들은 법적인 선포를 해야 했어요. 그런데 그들은 법적 선포를 넘어 축복을 빌어주고 있어요.
첫째, 라헬과 레아처럼.
선조들의 아내처럼 모압 여인 룻이 존귀해지고 또 많은 자손을 낳기를 바란다는 뜻이에요. 모압 여인이 지금 이스라엘이 있을 수 있도록 한, 그들의 시조인 라헬과 레아와 같은 대열에 서게 된거에요.
말이 안 되는 것이죠. 유대인들은 혈통을 굉장히 중요시 여겼던 사람들이에요.
정치적인 이유로 강제로 이방인과 결혼을 해 혼혈이 된 사마리아 사람들을 극도로 싫어 할만큼 순수 혈통을 강조하던 이들이, 지금 모압 사람을 유대인으로 인정하는 것을 넘어 이스라엘의 위대한 어머니들 곁에 세웠어요.
둘째,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해져라.
다시 말해 온 세상에 기념되는 명예를 가지라. 온 세상에 유명한 이름이 되어라! 라는 것이에요. 이스라엘과 연관이 없는 우리도 보아스! 하면 좋은 사람으로 생각하잖아요.
지금도 보아스는 대단한 사람으로 회자되고 있어요. 아예 영어 이름을 보아스로 짓기도 하는 것처럼 그는 명예를 갖게 되었어요.
영원히 기억되도록 하는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을 받았어요.
마지막, 베레스의 집안과 같게 하실 것
베레스의 어머니 다말은 이방 여인이에요. 룻도 이방 여인이죠. 다말과 룻 모두 이방인이지만, 두 여인의 결단과 추진력으로 그 집안은 망하지 않고 기업을 영원히 이어 갈 수 있게 되었어요.
그리고 오늘 이후 룻은 더 이상 그들에게 모압 여인으로 불리지 않았어요.
유대인으로 인정 받게 된 것이죠.

당신은 어떤 인생을 살기 원하는가?

돌아오는 주 토요일 그리고 주일이 겨울수련회라는 것 알고 있죠? 겨울 수련회의 주제는 Joyful Community에요.
저는 진심 우리 가온누리가 말이 아니라, 진정으로 기쁨이 넘치는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어요. 그렇게 기도하고 있어요.
그래서 오늘 이 본문이 정말 우리에게 중요해요.
왜냐하면 저도 여러분도 Joyful Community가 되는 것을 막는 아무개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여러분은 어떤 인생을 살아오고 있었어요?
혹시 아무개였던 것은 아니었나요?
만약 챙김을 받으려고만 했다면,
귀찮아질까봐 섣불리 나서지 않고 있었다면
내 믿음은 아직 약해서 나는 못 해. 할 수 없어.
내가 하지 않아도 누군가는 할거야. 라는 생각과 마음이 만약 여러분에게 있었다면
미안하지만 여러분은 “아무개와 다르지 않아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사랑이 메말라 가고 있어요. 손해 보고 희생하는 사람이 점점 사라지고 있어요.
그리고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그러한 모습들이 조금씩 보일 때가 있어요.
여러분 주위를 둘러보세요. 많은 청년들이 앉아있죠? 21년 11월에 제가 왔을 때 드림성전에 빈 자리가 정말 많았어요.
그런데 작년 임원들과 순장들 그리고 제이원을 포함해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낸 결과 이렇게 많은 청년들이 돌아왔고 드림성전에 자리가 채워졌어요.
사람이 많아지면 좋죠. 저도 어깨에 힘이 들어가니까 너무너무 좋죠. (농담이에요.)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저와 여러분은 “내가 아무개가 되지 않도록” 늘 경계하고 조심해야 해요.
사람이 많아지면
“내가 하지 않아도 누군가는 할거야.”
“귀찮아지기 싫어. 안 할래" 라는 생각과 마음이 불쑥 올라와서 여러분을 먹어버리기 때문이에요.
Joyful Community. 말로만 글로만 기쁨이 넘치는 공동체가 아니라
내가 조금 손해보더라도, 내가 조금 양보하더라도,
내가 경험한 하나님의 사랑을 다른 이에게 건네 줄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되길 바래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는 굉장히 역설적이에요.
내가 손해보고 포기하고 양보하면서 낮아지면 낮아 질 수록 저와 여러분의 이름은 생명책에 선명하게 아주 선명하게 빛이 날거에요.
그렇게 하면 할수록 하나님은 우리가 지치지 않도록 우리의 이름을 더 뜨겁게 사랑스럽게 불러주실 거에요.
No name.
내 이름을 내세우지 않고 받은 그 사랑을 그대로 전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정말 진정한 Joyful Community를 바로 이 곳에 세울 수 있게 될거에요.
겨울 수련회가 일주일 남았죠. 수련회를 준비하며 우리 함께 해야 하는 것이 있어요.
Joyful Community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겨울수련회 포스터를 개인 SNS에 올리던지 혹은 카카오톡 프사로 설정하는거에요.
그리고 보면서 마음을 잡으며 기도하는거에요.
Joyful Community를 방해하는 아무개가 되지 않겠다.
Joyful Community를 무너뜨리는 아무개가 되지 않겠다.
Joyful Community를 세워나가는 보아스가 내가 되겠다.
저와 여러분이 보아스처럼 하나님이 찾으시고 주목하시는 Joyful Community를 세워나가는 주역이 되기를 바라며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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