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가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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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예전 학창 시절에 관한 많은 추억이 있지만,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고 기억에 남는 것은 수련회입니다.
마지막 날 밤, 집회 후에, 전도사님과 선생님과 친구들과 함께 부둥켜 안고 울며, 앞으로는 말씀대로 바르게 살겠다고 많이 다짐했던 기억들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수련회를 마치고 돌아오면서도, 이 마음을 놓지 않겠다고, 변하지 않겠다고 몇 번이고 되새겼던 일도 기억납니다. 그리고 그럴때마다 일주일도 안가 변한 것은 더 잘 생각납니다.
수련회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있습니다.
일상생활에서는 경험하지 못하는 일들, 평소 때는 느끼지 못했을 것도 체험하고 알게 됩니다. 늘 비슷한 프로그램과 늘 비슷한 멤버이지만, 깨닫는 것은 늘 새로웠습니다. 왜냐하면 죄 짓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죄를 놓고 회개하는 것은 결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회개할때마다, 내 죄 된 본성은 처참하게 짓밟혔지만, 내 영혼은 다시 살아나는 새로운 체험이 수련회에는 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 내 삶이 늘 수련회 같았으면 좋겠다. 수련회에서만, 수련회 갔다와서 며칠만, 은혜 충만한 것이 아니라. 항상 은혜 충만한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참 힘든 일이었습니다. 어려움이 찾아오고, 좌절이 찾아오면 다시 제자리였습니다. 세상에서 더 열심히 살수록 더 은혜 없이 살아가는 제 모습을 보였습니다. 저 뿐 아니라, 주변의 친구들도 다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일은, 비단 학생들이나 청년들에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어른도 다르지 않습니다. 예배를 통해,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지만, 살다보니, 살아내다보니, 살아남다보니 은혜를 잊게 됩니다.
오늘은 그런 상황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떨어졌다고 느껴질 때, 내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지 못하다고 여겨질 때, 우리가 성도로서 어떻게 살아야할지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바울 자신이 육체의 가시로 인해 주님께 간구한 내용입니다. 바울은 육체의 가시가 사라지게 하기 위해서 주님께 세 번이나 간구했습니다.
바울의 육체의 가시가 무엇인지 우리는 확실히 알 수는 없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연구했지만 추측만 가능할 뿐 정확히 무엇이라고 말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대게 육체적 질병이나 장애를 얘기합니다. 가능성은 크지만 확실치는 않습니다.
가시가 무엇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크게 상관은 없습니다. 우리는 가시가 무엇인가?가 중요한게 아니라, 가시가 바울에게 있어서 어떤 의미인가?가 더 중요합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가시는 어떤 의미인가요? 바울에게 있어 가시는 복음을 위해 반드시 사라져야할 연약함이었습니다.
바울에게 가시는 괴로움이었습니다. 몸에 병이 있든지, 아니면 장애가 있든지, 어떤 것이든지 간에 바울에겐 괴로움이었을 겁니다.
이전에 제가 전도사 시절에 폐결핵이 걸린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열이 나고 몸이 부셔질 것 같아서 몸살인지 알았습니다. 그런데 몸살이 일주일이 지나도 이주일이 지나도 낫지를 않습니다. 병원에 가도 특이한 점은 없다고, 좀 기다려보라고 해서 집에서 쉬었습니다. 그래도 낫질 않았습니다. 매일 짜증만 났습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습니다. 사역이고 뭐고 다 놓고 싶었습니다.
저와 다를 순 있겠지만, 바울에게 있어서도 가시는 평안을 빼앗고, 삶을 놓게 만드는 이유가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역에 전념할 수 없는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개인적인 것보다, 바울이 더욱 괴로웠던 것은 가시로 인해 복음의 길이 막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요? 아니 자기 병도 못 고치는 사람이 사도라고?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한다고?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이 그런 말을 했을 것이 분명하고, 덕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울이 아무리 온 힘을 다해 사역을 감당한다 해도, 사람들이 바울을 받아들이지 않는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바울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복음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끼지 않는 사람이 바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에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겠다고 말한 사람이 바울입니다.
자기 때문에 복음이 막히다니요. 죽고 싶은 심정이었을 겁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이 일은, 죽는 것보다 더 괴로운 일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어떻게 합니까? 세 번이나 기도합니다. 단순히 개인의 만족이나 평안을 위한, 병의 치유를 위한 기도가 아닙니다. 주님의 사역을 위해서, 복음을 위한 기도입니다.
세 번 간구한것으로 적혀 있다고 해서, 단순히 우리가 세 번 기도하고 말았네 라고 여길만한 기도가 아닙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주님께 간절하게, 마음을 찢으며 기도했습니다.
복음을 위해 기도했으니, 아마도 바울은 자신의 간구를 들어주실 것이라는 마음을 가졌을 것입니다. 창에 떨어져 죽은 유두고란 청년도 바울을 통해 살리셧으면 육체의 가시 쯤은 분명 해결해주실 것이라 여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응답이 뜻밖입니다. 바울이 원하고 구했던 바와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시간이 필요하다. 조금 더 기다려라. 아직 때가 아니라는 응답도 아닙니다.
주님의 답은 No였습니다.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바울은 구하기를, 주님 제 안에 육체의 가시로 인하여서 주님의 사역을 하는 것에 걸림이 되고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 주님의 은혜를 도리어 가리는 것이 됩니다. 주님 그러니 이 육체의 가시를 없애주십시오. 라고 간구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대답은 “더 이상 이 일에 대해 간구하지 말라”였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단점들이,
자신의 부족하고 부정적인 것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가리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자신의 연약함, 자신의 부족함, 자신의 단점들을 없애주기를 간구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말씀하시길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였습니다.
주님은 바울에게 “이미 내 은혜가 네게 충분하다, 더 줄 은혜가 없다,
도리어 네가 약하기에 내 능력이 온전해질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바울은 주님의 응답을 통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바울은 생각하기를 자신에게 약한 부분들은 주님의 은혜가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은혜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안에 부족한 은혜들을 채워서 주님의 일을 감당하는 것이 옳다고 여겼습니다. 은혜가 아닌 부분을 은혜로 바꾸는 것이 필요했고, 그렇게 바껴진 은혜로 자신을 채워서 주의 일을 감당하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말은 달랐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은혜가 이미 충분하다였습니다.
또 다른 은혜가 필요하지 않다. 더 줄 은혜가 없다 였습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바울에게 다른 채워질 은혜가 보입니다. 바울의 육체의 가시가 주님이 은혜로 채워져야 할 것처럼 보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내려 육체의 가시가 사라지는 것이 필요한 것처럼 보입니다.
바울도 그래서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 육체의 가시 조차 주님의 은혜였습니다. 바울에게 걸림이 되는 것, 바울의 약점, 바울의 약한부분들, 바울의 모든 부정적인 것들도 주님의 은혜였습니다.
바울은 처음에 자신의 부족함이 주님의 은혜라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부족함을 채우고 싶었습니다. 주님께 세 번이나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바울은 깨닫게 되었습니다. 부족함도 연약함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자신 가운데 온전하게 머물수 있는 것, 자신에게 약함과 부족함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가능합니다. 사라졌으면 좋겠고, 없었으면 좋겠다는 약함이 더욱 주님을 드러내기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바울은 그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는 자랑합니다. 사람들에게 숨기고 싶었던 것, 사람들이 모르길 바랬던 것, 자신의 약한 부분이 내어놓고 드러낼 만한 일이 됩니다. 자신이 약하기 때문에 도리어 그리스도가 드러날 수 있다고 기뻐합니다.
더 나아가 바울은 자신의 연약함 뿐 아니라,
자신이 받는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도, 주님의 은혜라 말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신이 괴로울 때, 그분을 더 붙잡고, 그분의 능력을 의지하기에 은혜입니다.
자신이 모욕 당할 때, 그분의 십자가가 내 안에 더 선명하게 드러나기에 은혜입니다.
자신은 낮아지지만 주님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에 바울은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도 바울의 육체의 가시와 같은 것들이 참 많습니다. 성격, 외모, 질병, 배경 등 무수히 많은 가시가 있습니다. 그래서 간구합니다. 내게서 이 가시가 떠나게 해달라고. 구하고 또 구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실 은혜가 아직 남아있고, 여전히 내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부족하다 여깁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에게 부족하지 않습니다. 완전하신 그분처럼, 그분의 은혜는 우리에게 늘 완전하게, 또 충만하게 우리의 삶에 차고 넘칩니다.
주님의 은혜가 어떤때에는 많고, 어떤때에는 적다고 말하는 우리의 지식과 믿음이 부족한 것이지, 하나님은 전혀 그렇지 않으십니다.
사람은 참 연약합니다. 그래서 너무 쉽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말합니다. 누가봐도 하나님의 은혜라 여겨지는 것들이 우리에게 많이 있을 때에는,, 우리가 은혜 충만하다고 얘기합니다. 얘배 드리는 것이 즐겁고, 기쁘고, 기도가 잘되고, 말씀을 잘 보며 살아갈때에는 우리에게 은혜가 충만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반면에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는, 예배 드리는 것이 너무 힘들고, 기도하는 것이 어렵고, 말씀보며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너무 힘들 때, 내 육체가 병들고 아프고, 삶에 감사가 없고, 불평이 생기면, 반대로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떨어졌다고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서 사라진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도로 가져가신 것도 아닌데, 우리는 주시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언제나 변함이 없고 언제나 우리에게 충만합니다.
다만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은혜를
주님의 은혜로 여기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떨어졌다 말할 뿐입니다.
신앙은 무엇입니까? 신앙은 실패 가운데 한번의 성공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늘 깨지고 부셔지면서도 마지막 때를 바라보고 다시 일어서는 것입니다. 죄를 짓고,넘어지고, 괴로워하면서도, 그리스도를 붙잡고 그래도 주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래서 장밋빛이 아닙니다. 괴로움과 고통이 가득한 잿빛입니다.
성경의 말씀대로 다 지키며 살아야지만 신앙이 아닙니다.
사실 그렇게 살아가지 못할 때가 더 많은게 신앙입니다.
항상 세상 가운데 승리하고 기쁨 가운데, 평안함 가운데 살아야지만 신앙인의 삶이 아닙니다.
날마다 자신의 약함을 마주하고, 날마다 넘어지고 쓰러지는 자신을 보며, 좌절하고 낙담하지만..
그 가운데 다시 주님을 통해 힘을 얻고, 다시 한번 일어나는 것
그렇게 끈질기게 인내하고 살아남는 것, 끝이 보이지 않는 마지막 때를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붙잡는 것.. 이것이 진짜 신앙입니다.
은혜라는 것은 좋은 모습으로만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어떤때는 처절함으로 다가오고, 어떤때는 불행의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옵니다.
그런데 그것을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여기지 않고, 우리가 피해야 할 것들, 우리가 버려야 할 것들, 우리가 간구해서 바꿔야 할 것들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선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을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라고 절대 여겨지지 않을 것도 사실은 주님의 은혜입니다.
불완전의 은혜, 연약함의 은혜, 괴로움의 은혜, 고난과 환난의 은혜, 그 은혜가 성도님들 가운데 충만하길 소망합니다. 그 은혜가 진짜 은혜라고 고백할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누가봐도 좋게 여겨지는 것들, 누가봐도 특별하게 여겨지는 것들, 세상 사람들도 은혜라 말할 수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놀라워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은혜라 여길 수 없는 순간에, 은혜라고 말할수 있는 것은 오직 성도만 가능한 일입니다.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을 믿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만 바라고 온전히 하나님만 붙잡게 하시는,
내 능력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 안에 충만하게 하기 위한 주님의 특별한 은혜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떨어졌다 여기는 지금 이순간에도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 가운데 충만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의 모습이 약해보이고 좋지 않아 보인다 하더라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들과 환경들이 부정적으로 보인다 하더라도,
그 가운데서도 주님의 은혜는 늘 우리에게 임하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깨닫지 못할뿐입니다.
바울이 주님의 은혜를 깨달은 것처럼.. 우리도 주님의 은혜를 깨닫기를 소망합니다. 그분께 내 삶을 내어드리고, 주님의 은혜를 더욱 알아가는 우리의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부끄럽고, 숨기고 싶은 자신의 약함까지도 바울이 도리어 자랑했던 것처럼,
우리의 약함과 우리의 어려운 상황이.. 주님을 드러낼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우리의 약함을 도리어 자랑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