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되고 성취되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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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전서 개역개정판 4장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우리의 상황은 어떠한가?
우리의 상황은 어떠한가?
사랑의 방향성에서 범하는 실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많은 자기 욕심
부모님의 왜곡된 사랑
부모님이 자신의 자식에게 가장 많이 실수하는 경우가 자식을 자신의 대리인으로 생각할 때 있다.
이러한 경우 부모들은 자식에게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강요하고 그렇게 되게 하기 위해서 집착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cs루이스의 천국과 지옥의 이혼 이라는 책은 소설의 주인공이 지옥을 탐방하게 된다. 거기서 여러 사람을 만나는데 한 여자는 자신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그렇게 거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끝까지 포기하지 못하는 하나가 있는데 죽은 이후에도 자신의 아들에 대한 집착이 있는 것이었다. 천국과 하나님에 대해 긍정적이다가도 자신은 절대로 아직 살아있는 자신의 아들에 대한 생각을 하면 그러한 모든 것을 잊고 아들만을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랑의 방향성이 왜곡된 것이다.
우리가 연애할 때 자매들이 보통 “착한데 매력이 없다 혹은 부담스럽다”라고 표현할 때가 있습니다. 제가 그것을 고민해본적 있는데 아마 이런 의미인 것 같습니다. 남자는 사랑하는 마음이 커서 열정적으로 그것을 표현하는데 여자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가 생각했을 때 좋은 것 같은걸 계속 해주는겁니다. 물론 자매들의 입장에서 정말 고마운데도 그 표현이나 선물이나 그런 것들이 자신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이죠.
예를 들어 머리띠를 하지 않고 취향이 아닌 자매인데 형제가 좋아하는지도 모른체 선물로 준다던가 하는거죠.
그러면 자매가 사랑을 느끼게끔 실천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나요? 평소에 그 자매가 필요하다고 말하거나 좋아했던 것을 잘 기억하고 있다가 선물로 준다던가, 조용히 챙긴다던가 이런 것들이 정말 사랑을 느끼는거겠죠?
이 또한 사랑의 방향성이 왜곡되어서 생기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방향성이 왜곡될 때 대부분 기준이 “나”가 되었을 때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 사랑은 행동과 실천을 요구하고 자원하는 마음을 추구하게 한다.
두 사례 모두 싫어서 하는 사랑이 아니다. 그러나 기준이 “나”로 오니까 실수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성경은 무엇을 말하는가?
성경은 무엇을 말하는가?
1. 본문은 하나님이 “사랑”이시다 라고 주장한다.
1. 본문은 하나님이 “사랑”이시다 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사랑의 관점이 완전히 나-> 하나님으로 옮겨져야 한다는 것이다.
2. 하나님을 아는 자는 “사랑하는 자”이다.(8~10절)
2. 하나님을 아는 자는 “사랑하는 자”이다.(8~10절)
(1) 서로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8절)
하나님의 속성 중 단순성 교리
‘하나님의 단순성’이란 하나님이 여러가지 성질이 복합적으로 합쳐져 있지 않다는 특성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어떤 여러가지 특징으로 구성되어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하나님은 선하시다는 속성과 하나님은 공의롭다는 속성이 있다.
하나님의 일부만 선하시고 다른 일부가 공의로움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선하심 그 자체이시다. 또한 하나님은 공의로우심 그 자체이시다.
선함은 곧 하나님이시며, 공의로움은 곧 하나님이시다.
8절의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라고 하는 말은 곧 “하나님의 일부의 모습에 사랑이 있으시다”가 아니라 “하나님 자체가 곧 사랑이시다”라는 말이다.
이것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을 알면 곧 사랑을 안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믿는데도 불구하고 사랑하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2) 하나님의 사랑은 그리스도를 통해 ‘구체적’으로 나타났다. (9~10절)
그러나 하나님 그분 자체가 사랑이라는 사실이 우리에게 알려지기 위해선 어떠한 구체적 과정이 필요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계시란?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을 알리시는 것이다. 인간은 결코 하나님이 알리시는 것 즉 계시 없이 하나님을 알 수 없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즉 하나님이 사랑 그 자체이시고 그 사랑에 대해서 알리지 않으시면 그 사람은 사랑에 대해서 알 수 없다.
바로 그 사랑을 알리시는 즉 사랑을 계시하시는 계시의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되었다.
그 계시의 내용은 태초부터 해결할 수 없었던 죄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죄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가로막는 완벽한 벽이다.
그러나 그 죄의 완벽한 벽보다 더 완벽한 다이너마이트가 하나님에게 있었다.
그 다이너마이트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체적으로 나타난 사랑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우리의 죄를 대신한 화목제물 되신 것이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리시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화목하게 하신 제물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 그 자체이신 하나님에 대해서 알리신 즉 계시하신 계시의 완성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사랑의 계시가 완벽한 사랑에 대한 설명이다.
완벽한 사랑에 대한 계시인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사랑을 아는 것이다.
3. 서로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보이게 한다.
3. 서로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보이게 한다.
(1) 서로 사랑함을 통해 하나님은 사랑을 계시하신다.(12절)
더 나아가 오늘 말씀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사랑을 보여주신 것을 넘어서 우리가 서로 사랑함을 통해 사랑을 계시하신다.
이것은 아주 놀라운 일이다. 서로 사랑할 수 없었던 인간들이 서로 사랑하게 되며, 이를 통해 하나님이 보인다는 것이다.
커티스 토마스라는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우리가 서로 분열하면 세상의 조롱거리가 된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 안에서 연합하면 세상은 우리를 통해 그리스도를 보게 된다.”
서로 사랑함은 세상에 그리스도를 보게 한다.
그리스도를 알고, 사랑을 알아 서로 사랑함에는 그리스도를 보게 하는 능력이 충분하다.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1. 항상 그리스도를 알아가려는 마음이 사랑의 첫 시작이다.
1. 항상 그리스도를 알아가려는 마음이 사랑의 첫 시작이다.
(1) 사랑은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됐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 전에 그렇다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알고 있는가?
또한 그리스도를 계속해서 알아가려고 하고 있는가?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열망하고 알아가지 않으면 우리에게 사랑은 있을 수 없다.
우리가 사랑을 공급받는 유일한 통로는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사랑이신 하나님이 완벽하게 계시되었기 때문이다.
세상은 점점 “사랑은 사랑이다”라는 가치관으로 물들어간다.
이것이 무슨 소리인가? “사랑은 사랑이다”라는 말 속에는 “인간의 상식에서 생각 가능한 사랑이 사랑이다”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사랑이라고 정의하는 기준이 인간에게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이 사랑이시다”
하나님을 전제하지 않고는 사랑을 논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랑의 근본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랑을 알기 위해선 그리스도를 알아가야 한다. 그리스도를 충분히 아는 것이 사랑을 아는 것이다.
(2) 그리스도를 알아가려는 마음이 있는가? 그것이 사랑의 첫 시작이다.
그리스도를 알아가려는 마음이 있는가? 알아가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조금이라도 있는가?
그것이 없이는 우리는 사랑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 사역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통해 사랑은 비로소 드러난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기 힘써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2. 사랑을 항상 검증하고 검증하라
2. 사랑을 항상 검증하고 검증하라
(1) 사랑의 전제는 하나님이며, 검증 기준은 성경이다.
성경적 사랑의 기준으로 사랑하고 있는가를 검증해야 한다.
간혹 우리는 우리가 열심으로 사랑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할 때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열심으로 하는 사랑이 때로는 집착을 낳고 그것이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스토커들은 자신이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사랑이 아닌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성경적 기준의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적 기준의 사랑은 무엇인가? 희생을 기반으로 한 사랑이다.
나의 만족이 되지 않더라도 그 사람이 정말 잘되길 원하는 마음에서 나의 만족을 희생해야 한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사랑에 대해서 이렇게 잘 설명하는 말씀이 있는가?
사랑은 그 사람이 잘되길 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행동하면서도 “오래 참음”과 “온유함”으로 해야 한다.
동시에 우리의 만족을 채우려는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는” 모습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서도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
이러한 성경의 사랑의 모습을 닮아가려고 하는가?
우리는 항상 성경이 말하는 사랑의 모습으로 사랑하고 있는가를 검증하고 또 검증해야 한다
우리가 연애할 때 자매들이 보통 “착한데 매력이 없다 혹은 부담스럽다”라고 표현할 때가 있습니다. 제가 그것을 고민해본적 있는데 아마 이런 의미인 것 같습니다. 남자는 사랑하는 마음이 커서 열정적으로 그것을 표현하는데 여자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가 생각했을 때 좋은 것 같은걸 계속 해주는겁니다. 물론 자매들의 입장에서 정말 고마운데도 그 표현이나 선물이나 그런 것들이 자신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이죠.
예를 들어 머리띠를 하지 않고 취향이 아닌 자매인데 형제가 좋아하는지도 모른체 선물로 준다던가 하는거죠.
그러면 자매가 사랑을 느끼게끔 실천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나요? 평소에 그 자매가 필요하다고 말하거나 좋아했던 것을 잘 기억하고 있다가 선물로 준다던가, 조용히 챙긴다던가 이런 것들이 정말 사랑을 느끼는거겠죠?
이걸 말하는 이유는 뭘까요? 하나님께서 사랑이라고 인정하시는데는 하나님의 기준에서의 사랑을 해야한다는겁니다.
우리의 기준에서 사랑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기준에서는 아닐 수 있다는거에요
(2)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서 성경을 읽는가?
간혹 우리는 성경이 나의 유익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성경은 나를 위한 말씀이다. 그러나 그 원리가 중요하다.
성경은 1차적으로 하나님을 위한 말씀이다.
우리가 성경을 따르는 이유는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살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그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삶이 바로 우리를 위한 삶이 된다.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성경을 따르는 이유는 단순히 우리를 위한 말씀이기 때문이기보다 그것이 하나님을 위한 삶이고, 그 하나님을 위한 삶이 바로 주위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랑의 원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리신다.
그럼에도 우리가 성경을 읽지 않고,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의 원리를 따르지 않을 이유가 있는가?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 성경을 읽어야 한다. 성경이 말하는 사랑의 원리를 우리의 사랑의 원리로 삼아야 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그리스도가 행하셨던, 하나님이 우릴 위해 행하셨던 사랑의 깊은 원리를 삶에서 실천해야 한다.
3. 사랑의 실천으로 성취되는 하나님 사랑
3. 사랑의 실천으로 성취되는 하나님 사랑
(1) 사랑의 실천으로 하나님 사랑이 성취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감히 우리가 무언가를 해서 하나님의 일하심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 질문은 상당히 겸손한 질문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일하신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4장
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 사랑을 실천하면 사랑이 우리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님으로 인해 완벽히 성취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완벽한 사랑을 받은 우리가 사랑을 실천하면 그리스도의 사랑이 이루어진다.
예수님의 사랑의 성취가 불완전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 완벽한 예수님의 사랑이 우릴 통해 전해진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렇다. 예수님의 완벽한 사랑이 우리를 구원하였으며, 동시에 그 은혜를 받은 우리를 통해서 그 사랑을 다시 전하신다.
우리가 그 사랑의 전달에 나아가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리스도는 무엇을 하셨는가?
그리스도는 무엇을 하셨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