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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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한복음 3장 22절-30절

요한복음 3:22–30 NKSV
22 그 뒤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대 지방으로 가셔서, 거기서 그들과 함께 지내시면서, 세례를 주셨다. 23 살렘 근처에 있는 애논에는 물이 많아서, 요한도 거기서 세례를 주었다. 사람들이 나와서 세례를 받았다. 24 그 때는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기 전이었다. 25 요한의 제자들과 어떤 유대 사람 사이에 정결예법을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26 요한의 제자들이 요한에게 와서 말하였다. “랍비님, 보십시오. 요단 강 건너편에서 선생님과 함께 계시던 분 곧 선생님께서 증언하신 그분이 세례를 주고 있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에게로 모여듭니다.” 27 요한이 대답하였다. “하늘이 주시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28 너희야말로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고, 그분보다 앞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다’ 한 말을 증언할 사람들이다. 29 신부를 차지하는 사람은 신랑이다. 신랑의 친구는 신랑이 오는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신랑의 음성을 들으면 크게 기뻐한다. 나는 이런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30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

주연인가 조연인가?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 보면 주연보다 빛나는 조연을 만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조연이라는 말이 영어로는 supporting role 즉, 받쳐주는 역할입니다. 제 93회 아카데미 수상식에서 ‘미나리'라는 작품에서 한국에서 아이들 봐주기 위해서 온 외할머니 역할을 맡아, 여주 조연상을 탄 윤여정 배우는 영화에서는 조연일지 모르지만 현실에서는 빛나는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조연상을 주는 조건은 무엇일까요? 그 작품을 빛나게 해 준 연기를 한 배우에게 그 상을 줍니다. 혼자서 잘 한 연기가 아니라 주연배우와 각 배우들과 서로 조화를 이루고, 무엇보다도 그 작품이 하고자하는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또렷하게 전달해서 그 작품이 빛나게 한 사람을 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우리는 명품 조연 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배우로서 누가 조연을 하고 싶겠습니까? 특히 주연을 하던 여배우라면 더욱 그럴 것입니다. 윤여정 선생님의 시상 소감 중에 “늘 연기하러 나가라고 독려하던 두 아들에게 영광을 바친다"는 그 말 속에는 윤여정 배우가 두 아들을 위해서 자신이 이전에 가지고 있던 배우로서 자조심을 깨어지고 그 두 아들을 위한 노력과 그 두 아들의 이해 속에서 지금의 자신이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교회는 세상 속에서 주연일까요? 조연일까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주연이어야 할까요? 조연이어야 할까요? 우리가 세상에서 주연이든지 조연이든지 중요한 것은 우리가 부르심을 따라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고 있는가가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요? 주연일 수도 있고, 때로는 조연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경쟁적인 영적인 일

그런데, 사역을 하다 보면 많은 경우 교회와 교회가 그리고 단체와 단체가 선의 경쟁을 넘어서서 비교하고 경쟁하고 그로 인해서 연합하지 못하고 누가 더 주인공인가 싸우게 됩니다. 세례요한의 사역과 예수님의 사역은 사람들에게 주는 메시지가 동일했습니다.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느니라"입니다.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은 이제 세례를 주시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예수님에게로 더 많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세례에대한 논쟁이 당시에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이 베풀던 세례가 있었는데, 지금 이 정결예식의 세례를 베푸는 이유가 무엇인지 세례요한에게 따져 묻습니다. 왜냐하면,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메시야적 세례인지 유대 지도자들이 와서 그가 그리스도, 즉 메시야 인지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베푸는 세례에 사람들이 몰립니다.
요한복음 3:26 NKSV
26 요한의 제자들이 요한에게 와서 말하였다. “랍비님, 보십시오. 요단 강 건너편에서 선생님과 함께 계시던 분 곧 선생님께서 증언하신 그분이 세례를 주고 있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에게로 모여듭니다.”
예수님은 유대지방에서 세례를 주고 있었고, 세례요한은 살렘 근처의 애논이라는 곳에서 세례를 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예수님과 제자들이 세례를 주는 곳에 더 많이 모여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는 사실 당시 유대인들의 신앙을 갱신하는 운동과 같은 영적인 무브먼트 였습니다. 그 당시에 태어난 유대인들은 이제 세례요한과 예수님과 같은 놀라운 분들을 함께 경험할 수 있었던 축복받은 사람들인것 같습니다. “하나님 나라”와 “신앙회복" , “삶의 실천"등을 위해서 세례를 받던 영적인 일은 유대 사람들과의 논쟁을 넘어서 경쟁의식을 통해서 요한의 제자들에게는 유대 사람들과의 정결예식에대한 논쟁보다 더 중요한 주제가 되었습니다. 즉, 누가 더 주연이냐는 것입니다. “선생님, 저희가 원조 아닙니까? 그런데 예수는 선생님께 세례받는 사람인데, 왜 저 사람에게 사람들이 더 많이 갑니까? 진짜 불편합니다.”라는 비교와 경쟁의식에서 나온 일입니다. 영적인 일이 경쟁적인 대결 구도로 바뀐 상황입니다.
이 땅에 교회와 선교단체가 얼마나 많습니까? 교단도 많습니다. 교단이 얼마나 큰가? 교회가 어떤 사역하고 있는가?에 관심이 많습니다. 영적인 종교적인 일에 얼마나 경쟁하고 있습니까? 경쟁적으로 뛰어든 사역은 옳지 않습니다. 나아가 하나님께서 주신 사역이라면 경쟁하는 마음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그는 흥해야 하고 나는 쇠해야 한다.

세례요한은 그러한 지혜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 시지 않으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네 맞습니다. 우리 교회에 오신 여러분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3:27 NKSV
27 요한이 대답하였다. “하늘이 주시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한마디로 예수님과 그 제자들에게 세례를 받으러 많은 사람들이 가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야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이 일은 하나님의 주권이지 우리가 관여할 일이 아니란다.”라는 지혜로운 말입니다. 세례요한은 제자들에게 오히려 내가 그리스도가 아니고 그분보다 앞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라고 한 말을 증언해야 할 사람들이 너희들이라고 말합니다.
요한복음 3:28 NKSV
28 너희야말로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고, 그분보다 앞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다’ 한 말을 증언할 사람들이다.
세례요한의 두번째 배울점은 자신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사역의 부르심과 경계선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이는 앞서 세례요한의 겸손에대해서 우리가 함께 살펴 본 바 있습니다. 우리는 세례요한의 이와같은 겸손과 확고함을 배워야 합니다. 제자들에게 세례요한은 “내가 받은 배역은 그리스도가 아니야 나는 앞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서 내 역할이야"라고 확고하게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이와같이 겸손함과 확고한 신념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의 말에서 우리는 예수를 그리스도, 메시야로 인정하고 있는 세례요한의 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역할을 명확하게 다음과 같이 설명하여 줍니다. 그리고, 그 역할로 인해서 기쁨이 가득하다고 합니다.
요한복음 3:29–30 NKSV
29 신부를 차지하는 사람은 신랑이다. 신랑의 친구는 신랑이 오는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신랑의 음성을 들으면 크게 기뻐한다. 나는 이런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30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
당시 유대의 결혼 풍습에서 신랑의 친구는 결혼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습니다. 결혼식의 주인공은 신랑입니다. 그렇지만 신랑 친구는 결혼식 전반을 준비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나라에서는 신부를 신부 아버지가 에스코트 하지만, 유대 결혼식에서는 신랑의 친구가 신부를 신랑에게도 데려갑니다. 우리 나라도 결혼식에서 가장 기쁘게 축하해 주는 사람들이 신랑과 신부의 친구들입니다. 신랑과 신부보다 더 주목받으려는 친구들은 우리는 미련하다고 눈쌀을 찌푸릴 것입니다.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바로 이 기쁨이 넘친다는 것입니다. 조연의 기쁨, 주연을 빛나게 해 주는 기쁨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흥하여야 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이 말은 세례요한의 죽음을 두고 한 이야기 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그대로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자신은 낮아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많이 우리는 흥하여야 겠고 예수님은 가려지게 합니까? 교회는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예수님 앞에 조연입니다. 조연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바로 신부를 신랑으로 이끌어 내는 증인이라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조연의 역할은 증인이며 영혼 구원이 기쁨이다.

요한 복음은 예수님에대한 증인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 독생자를 보내시며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좋아하는 자라고 증언 하십니다. 또한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재하시어서 예수님을 증언합니다. 성령은 예수를 증언하십니다. 나아가, 이제 세례요한도 예수님을 증언 합니다. 그 증언의 내용은 무엇이냐하면 바로
요한복음 3:31–35 NKSV
31 위에서 오시는 이는 모든 것 위에 계신다. 땅에서 난 사람은 땅에 속하여서, 땅의 것을 말한다. 하늘에서 오시는 이는 [모든 것 위에 계시고], 32 자기가 본 것과 들은 것을 증언하신다. 그러나 아무도 그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33 그의 증언을 받아들인 사람은, 하나님의 참되심을 인정한 것이다. 34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성령을 아낌없이 주시기 때문이다. 35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셔서, 모든 것을 아들의 손에 맡기셨다.
이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구원을 증언 하십니다. 그리고 성령과 아버지는 예수님과 함께 계십니다. 우리가 할 증언은 바로 이 것입니다. 전도 한다는 것은 바로 영혼을 예수님께로 데려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신랑되신 예수님께 신부로 데려 오는 신랑의 친구의 역할 즉, 증인의 역할을 맡았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세상에서 주연이 아닐 지도 모릅니다. 얼마나 많이 머리가 되라고 이야기 들었습니까?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가 조연이라고 말합니다. 왜 삶의 기쁨이 사라집니까? 목적 부르심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주의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겸손하게 그리고 부르신 곳에서 예수의 증인으로 예배자로 살아가게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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