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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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13-16

마태복음 5:13–16 NKRV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오늘 말씀의 제목은 “나는 무엇인가?” 입니다.
이 질문은 미래형도 아니고 과거형도 아닌 바로 현재의 나의 상태에 대해서 묻습니다.
“나는 무엇인가?”
여러분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말씀에서는 여러분을 바로 소금이고 빛이라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에게 소금과 빛이 되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소금과 빛이라고 선언합니다.
소금과 빛인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냐면
바로 예수를 믿고 예수를 따르는 사람 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말씀은 소금과 빛인 사람들에게 전하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단호하고도 제한적인 말씀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 말씀은 여러분을 교회안에 가둬두거나 제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러분을 세상으로 보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여러분이 어떠한 책임을 가지고 있는지를 가르치고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 인으로써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마음판에 세기고 결단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먼저 13절에 등장 하는 소금입니다.
1세기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소금이 가졌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은 오늘날 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오늘 날의 소금의 주요 기능은 짠맛을 내주는 조미료의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고대에서 소금의 기본적 기능은 ‘방부제’ 이었습니다.
생고기에 밑간을 하는 맛에 관련하여 소금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고기를 보존하기 위해 소금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소금에 다양한 불순한 물질이 섞인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예를 들면 흙이라던지 먼지라던지
이것을 생고기를 보존하기 위한 것으로 충반한 가치가 있을까요?
그 가치를 잃어 버린 겁니다.
방부제의 역할을 잃고 도리어 더럽게 만드는데 도움을 주는 꼴이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말씀에서 “짠맛을 잃다”는 것은 바로 “더러워지다”로 읽힙니다.
예수님은 오늘 말씀을 비유로 말씀하시며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어떠한 역할을 가졌는지
기능적인 측면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좋은 것은 건전하게 지켜야합니다.
부패한 것을 반대해야합니다.
사회가 더욱 선해 질수 있도록 사회 속으로 들어가야 하며
사회 속에서 도덕적 방부제 역할을 해 주어야 합니다.
염화 나트륨이 불순해 지면, 침출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땐 소금의 성분이 깨져 소금의 기능을 잃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더이상 우리는 소금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소금의 기능을 잘 감당하고 계십니까?
혹 소금의 기능을 부담스럽게 여겨 피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 소금의 기능을 잊은체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이 세상의 방부제로 더 좋은 세상, 더 아름다운 세상이 될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왜냐면, 이세상은 부패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십자가를 짊어 지셨고,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불러 자신의 자녀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부패한 이 세상에 여러분을 보내셨습니다.
만일 그러지 못했을 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힌다 표현합니다.
이 표현을 누가복음에서는 더욱 적랄하게 이야기합니다.
누가복음 14:34 NKRV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누가복음 14:35 NKRV
땅에도, 거름에도 쓸 데 없어 내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니라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써 이 세상에 살아가지 못할 때 세상의 반응을 이야기하는 대목입니다.
부패를 저지하지 못하는 소금은 이 세상을 선하게 변화시킬
예수님의 대리인으로서 가치를 잃게 됩니다.
기독교는 세상과 평화를 이루고 박해를 피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역할을 수행할 수 없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세상과 타협하기 시작한다면,
세상 사람들은 궁극적으로 우리를 거부할 것입니다.
짠맛에는 힘을 의미합니다. 이 힘을 잃으면 힘이 없어 쓸모가 없어지는 겁니다.
복음의 힘을 여러분이 잃는다면,
여러분에게는 복음의 힘이 없어 이 세상에 가치가 없어진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속해 있는 곳에서 여러분은 어떠한 역할을 감당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이 속한 바로 그곳에서 부패를 막는 도덕적 방부재의 역할 잘 감당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속한 곳에서 복음의 힘을 잃지 않고 복음의 힘으로 그곳을 지켜내는 소금으로 쓰임받길 바랍니다.
이어서 1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5:14 NKRV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다시한번 선언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일반 사람들이 아닌 예수님께 헌신된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말씀임을
다시한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안된 친구들은
그렇기에 이 말씀이 어렵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런 친구들은 이렇게 살아갈 수 있기를 꿈꾸고 소망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빛이라는 표현은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12 NKRV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한복음 9:5 NKRV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그리스도는 자신이 빛이십니다.
반면 우리는 빛이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로써
그리스도의 빛을 반사시키는 거울과 같은 자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악의 어둠으로 덮힌 이 세상에 직접 빛으로 임하셨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그 빛으로 직접 밝히시는 방법 대신에
그 빛을 반사해서 이 세상을 밝히는 방법을 택하셨습니다.
어두운 바닷길을 비추는 등대의 불빛이나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추는 등불처럼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도록 자신의 선행을 세상 앞에 비춰야 합니다.
남산타워는 숨기고 싶다고 해서 잘 숨겨지지 않습니다.
세상에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마치 이와 같은 사람입니다.
세상의 모습과는 분명히 구별됩니다.
선한 행동을 통해 그리스도의 빛을 반사시켜 그들의 어두운 마음을 밝혀주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선한 행동을 할 수 있잖아요?
도덕적 방부제 역할을 할 수 있잖아요?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도덕적 방부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의가 아닌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이 있기 때문이고
우리가 선행 행동으로 빛을 비출 수 있는 것은 내가 빛이기 때문이 아니라 빛되신 그리스도가 나를 비추기에 그 빛을 반사시킬 뿐인겁니다.
대중 앞에서 선한 행동을 함으로써 자신에게 영광 돌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으로 그리스도의 빛을 세상에 비추고
그리스도의 통치를 이 땅에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남산타워와 같은 존재로 세우셨다는 겁니다.
남산타워는 색깔로 공기의 질을 알려주고 경계를 하게 해줍니다.
파란불일때는 좋음을 초록불일 때는 보통임을
노란불일 때는 나쁨을 빨간불일 때는 매우나쁨을 보여줍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이 속한 곳에서 이와같은 역할을 감당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속한 곳에서의 상황이
마치 미세먼지 농도의 단계와 같이 파란 불부터 빨간불까지 여러가지 상황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그곳에 속해 있다는 것은, 그 불의 색깔과 관계없이 여러분에게 빛을 비추시는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통해 그곳을 비추시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소금의 기능을 감당할 수 있는 힘또한 있음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빛을 비추는 것은 선택하고 하지 않을 수 있는 옵셥이 아닙니다.
우리의 본성이 바로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 그 빛을 비추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를 삶의 방향과 목표와 꿈을 정의내리는 기준점이 되어야 합니다.
나는 무엇으로 이 세상에서 소금의 기능을 감당할 수 있을까?
나는 어떻게 이 세상에서 빛을 비출 수 있을까?
--종찬이 예시--
왜냐면 이 세상은 말씀이 쓰여진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부패와 어둠의 환경에 속에 놓여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여러분을 빛과 소금으로 부르셨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빛과 소금으로 산다고해서
이 세상의 법과 가치가 기독교화 된다는 확신도 약속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복음을 그 사랑을 은혜를 잘 간직하고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만이 아닌 세상 속에서
왜냐면 여러분은 이미 빛과 소금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엇입니까?
바로 내가 속한 곳이 더 악해지지 않도록
내가 속한 곳을 지키고 보호하는 방부제 입니다.
우리가 무엇입니까?
여전히 어둠 속에 갇혀 어디로 가고있는지 가야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착한 행실로 바른 길로 인도해주는 등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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