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알아가는 기도의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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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은 곧 기도생활인데, 가장 중요한 기도의 내용은 무엇일까? 그것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기도'일 것이다. 친밀한 하나님과의 교제를 이어가는 기도야 말로 가장 능력있는 기도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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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들어가는 말

<신앙생활>이란 곧 <○○생활>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 “○○”이란 무엇일까요? 바로 <기도>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삶이 힘들 때,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몸이 연약해 병이 들었을 때 제일 먼저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삶의 양태가 바로 <기도>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기도 외에는 능력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사람들 모두 여러 사역들을 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항상 기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기도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어떤 “능력”을 경험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기도를 하는 행위 자체는 곧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 집중>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문제나 어려움은 나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곧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실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 노력을 하는 것이 기도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사도 바울은 지금 로마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입니다. 시기는 그의 사역 말기에 해당됩니다. 곧 로마 감옥 안에서 순교를 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 안에 있으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상황일텐데도 오늘 본문을 보니 하나님 앞에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본문 16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지금 바울은 <감사함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감사하며 하는 기도에는 큰 능력이 있는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지난 주일에 감사하라 3천번 하기 운동을 하자고 말씀을 드렸었습니다. 이번 한 주간 동안 설명절이 있었는데, 감사하라 고백을 매일 3천번 이상 도전하기로 작정하며 하고 있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만큼 <감사>에는 영적인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바울의 감사기도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1. 지혜와 계시의 영이 임하도록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17절)

오늘 본문에서 바울의 기도에 대해 요약을 해 놓은 부분이 본문 17절~19절까지인데, 내용을 살펴보시면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하실 수 있습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알아 가도록” 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알아가는데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알아가는 기도에 있어서 첫 번째 기도의 방법이 “지혜와 계시의 영”이 임하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이란 무엇일까요? 옛날 개역성경에서는 ‘정신’이라고 표현했었는데, <성령>을 가리킵니다. 성령은 ‘여호와의 영=하나님의 영’이라고도 표현을 하기도 합니다. 이사야 11:2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그렇다면, 왜 사도바울은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향한 중보기도에서 제일먼저 “지혜와 계시의 영”이신 <성령>님이 임하시도록 기도하고 있을까요? 그 이유는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이 하나님을 깊이 만날 수 있고, 하나님을 깊이 알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경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알아가지만, 단순히 성경말씀을 사색하고 읽고 안다고 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2:10-11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오직 성령님만이 하나님의 가장 깊은 것까지도 아시기 때문에 성령을 통해서만이 우리는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게 됩니다.
또한, 바울이 “지혜와 계시의 영”이신 “성령님”이 임하기를 기도한 이유는, <영적으로 분별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앞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전부 육에 속한 <세상의 영>의 영향을 받거나 아니면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의 영향을 받고 살기 때문입니다. 둘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이를 잘 분별해야 천사의 모습으로도 가장해서 도전해 오는 사탄의 세력들을 물리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2:12-13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지혜”라는 헬라어 단어는 (소피아스)라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행하신 사역들을 이해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우리는 ‘지혜의 영’이신 ‘성령님’을 통해 [지금까지 행하고 이루어진 모든 일들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일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계시”라는 헬라어 단어는 (아포칼립세오스)라고 하는데, [하나님의 심오한 비밀을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우리는 ‘계시의 영’이신 ‘성령님’을 통해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들’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성령님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열왕기상 3장을 보시면,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왕이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성전에 나아가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다른 것을 구하지 아니하고 <지혜>를 구한 것에 감동하셔서 그 외에도 많은 것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결국 그것 때문에 유명한 사건이지만, 창기 출신인 두 여자의 한 아기가 죽은 사건에 대하여 명쾌한 판결을 내린 사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 때 이를 지켜 본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열왕기상 3:28 “온 이스라엘이 왕이 심리하여 판결함을 듣고 왕을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지혜가 그의 속에 있어 판결함을 봄이더라.”

2. 영의 눈이 열리도록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18절)

우리가 가진 눈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육신의 눈, 다른 하나는 영의 눈(영안)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눈은 서로를 거스르게 되어 있습니다. 육신의 눈을 의지하면 의지할수록 영의 눈은 닫히며, 영의 눈을 의지하면 의지할수록 육신의 눈을 잘 신뢰하지 않게 됩니다. 창세기 3장을 보시면, 아담과 하와는 뱀의 모습으로 가장 사탄의 꾀임에 넘어가 먹음직, 보암직도 한 선악과를 먹자마자 몸에서 이상한 변화가 일어났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3: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눈이 밝아져’라는 말은 그동안 이들이 장님으로 있었다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육신의 눈으로 의지하며 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죄가 들어옴으로 육신의 눈이 밝아지고, 대신 ‘영의 눈’이 닫혀버리게 되었습니다.
성도님 여러분, 우리는 육신의 눈을 신뢰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고 합당한 것이라 여기지만,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 육신의 눈은 가장 합리적일 것 같지만, 내가 보고싶은 것을 보려는 욕구를 갖고 있기 때문에 가장 불합리한 것입니다. 요한일서 2:16을 보면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안목의 정욕>이 바로 ‘육신의 눈’으로 바라보는 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영의 눈>으로 보는 것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이에 대해 히브리서 11:1-2에서 정확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그러므로 ‘영의 눈’이 열리기를 기도하라는 말씀은, <믿음>을 갖도록 기도하라는 것이며, <믿음으로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열왕기상 6장을 보시면, 아람군대가 이스라엘과 전쟁을 했는데, 숫자나 무기 등을 비교해 보면 아람나라가 월등한데,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는 족족 패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원인을 조사해 보니, 이스라엘 나라에 선지자 ‘엘리사’가 있는데,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서 싸우기 때문에 항상 이기는 것이라는 첩보를 듣게 됩니다. 그래서 마침 엘리사가 ‘도단성’이라는 조그만 성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아람군대가 성주위를 둘러싸게 됩니다. 이른 아침 엘리사의 사환이 일어나 성 밖을 둘러보니 아람군대의 군사와 말과 병거가 어마하게 진을 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두려워떨면서 이 사실을 엘리사에게 알렸을 때, 오히려 엘리사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더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자신의 육신의 눈으로 바라봐도 아람군대가 어마어마한 규모인데 말입니다. 이 때 엘리사는 하나님께 그의 종의 영의 눈을 열어 달라고 기도하게 됩니다. 열왕기하 6:17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성도 여러분, 지금 내 삶의 주변에 수많은 적들로 둘러 싸여 있으십니까? 그렇다면, 오늘 영안이 열리도록 하나님께 구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불말과 불병거 부대가 우리와 함께 하고 있음을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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