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하드캐리] 솔로몬, 그의 몰락이 오늘날 우리를 알게하다(왕상1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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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3년 1월 29일 주일 청년부
소제목 : 하나님의 하드캐리
제목 : 솔로몬, 그의 몰락이 오늘날 우리를 알게하다
본문 : 열왕기상 11장 6-13절 *구532
결단찬양 : 세상의 유혹 시험이
[도입]
솔로몬은 우리에게 있어 지혜의 인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솔로몬의 평 또한 전반적으로 긍정적입니다. 잠언을 기록하며, 또 전도서를 작성하며 매우 지혜로운 자로써 정평이 나 있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과연 솔로몬이 지혜로운 자가 맞는가? 우리가 생각하던 그 인물이 맞는가에 대한 의문을 품게 합니다.
또 지금까지 다루어왔던 인물들과는 모습도 상이합니다. 모세와 여호수아, 그리고 다윗은 분명 하나님 앞에 회개함을 기점으로, 자신을 다시 내려놓음을 기점으로 새사람입은 자의 삶을 살아냈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은 조금 다릅니다. 결말이 좋지 못합니다.
오늘은 이런 솔로몬의 말년을 보며 ‘우리도 망하는 말년을 보내보자.’가 아닌, 그래서 이런 모습을 보며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내야 하는가, 어떤 것들을 경계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함께 나눠보고자 합니다.
[솔로몬의 행적 : 1. 솔로몬의 재판]
먼저, 솔로몬이 하나님을 떠나기 전 그가 걸어온 길들 몇 가지를 살펴 보고자 합니다. 우선 유명한 솔로몬의 심판 사건이 있습니다.
이 심판의 핵심 내용이 무엇입니까? 한 아이를 두고 두 여종의 설전 아닙니까? 그러자 솔로몬이 내린 판결이 무엇입니까? 열왕기상 3장 25절입니다. “왕이 이르되 산 아이를 둘로 나누어 반은 이 여자에게 주고 반은 저 여자에게 주라”
산 아이를 둘로 나누어 주라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이 판결이 ‘왜 지혜로운 판결인가?’에 대한 의문점은 늘 있었지만, 성경이 지혜롭다 하니, 지혜로운 판결이거니와 하고 살아 왔습니다. 한 여종이 ‘그럴 바엔 이 아이를 저 여종에게 주라.’는 대답에, ‘저 여인이 진짜 엄마다.’라고 상황을 이끌어 내는 것이 뭐 그리 지혜로운가 의문을 가지고 살아 왔습니다.
하지만, 부모가 되어보니 얼마나 지혜로운 판결이었는가를 단숨에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솔로몬의 판결이 얼마나 잔인하고 상상조차 못할 판결이었는지, 아엘이에게 상황을 대입해보며 단번에 이해해버렸습니다.
‘오히려 제 목숨까지도 내어주면 내어주었지, 어찌 이 작디 작은 아이의 생명을 해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에, ‘진짜 부모라면 아이를 내어주는 것이 맞다.’ 는 상황에 100번이면 100번 다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솔로몬의 행적 : 2. 성전 건축]
이후 솔로몬은 ‘성전 건축’에 힘을 쏟기 시작합니다. 열왕기상 5장 3절부터 5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당신도 알거니와 내 아버지 다윗이 사방의 전쟁으로 말미암아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고 여호와께서 그의 원수들을 그의 발바닥 밑에 두시기를 기다렸나이다 / 이제 내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게 사방의 태평을 주시매 원수도 없고 재앙도 없도다 / 여호와께서 내 아버지 다윗에게 하신 말씀에 내가 너를 이어 네 자리에 오르게 할 네 아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라 하신 대로 내가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려 하오니”
성전 건축의 시작은 다윗이었습니다. 하지만, 왜 다윗때 이 성전을 완공할 수 없었습니까? 그것은 기록된 것처럼 ‘다윗이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성전 건축과 완공은 솔로몬에게 넘어갔으며, 끝내 솔로몬은 성전을 완공하기에 최선을 다합니다.
이때까지만 하여도 솔로몬이 걸어온 길에는 늘 여호와 하나님이 기준이었습니다. 지혜의 판결을 내릴 때도 하나님의 지혜에 힘 입었고, 성전이 완공되는 것 조차도 여호와의 이름을 위한 일이었습니다. 그에게 기준은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 이었습니다.
[솔로몬의 행적 : 3. 언약궤 이동]
그리고 그 기준은 계속 이어져 갑니다. 성전을 여러가지 물건들로 채웁니다. 여러 규례들을 따라 성전을 채워갑니다. 그리고 언약궤를 성전 안으로 들이고자 했습니다.
다윗이 시온으로 가지고 왔던 그 언약궤를, 솔로몬은 이제 성전 안으로 들이려 합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셀 수 없이 수많은 제사와 행위들로 그 무엇보다 언약궤 옮기기에 신중했고 열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목표로 했던 언약궤가 성전 안으로 들어오자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열왕기상 8장 10절과 11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하매 /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함이었더라”
언약궤가 시온에서 성전으로 옮겨지자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히 차고 넘치는 현상이 펼쳐집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었고, 또 하나님을 위한 일이었기에 영광이 그곳에 차고 넘치게 됩니다.
[솔로몬의 행적 : 4. 솔로몬의 기도]
마지막으로 볼 것은 이 모든 일을 걸어감에 있어 '솔로몬이 어떤 삶을 살아 왔는가’ 라는 것입니다. 그가 여호와를 기준으로 삼아 살아낸 것처럼, 늘 기도로 하나님과 소통하기에 힘쓰는 자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런 솔로몬을 향해 어떻게 반응하셨습니까? 열왕기상 9장 3절을 보니, 솔로몬을 향한 여호와의 반응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기도와 네가 내 앞에서 간구한 바를 내가 들었은즉 나는 네가 건축한 이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내 이름을 영원히 그곳에 두며 내 눈길과 내 마음이 항상 거기에 있으리니”
늘 솔로몬의 기도를 들으셨고 또 응답하셨고 이끄셨습니다. 또 솔로몬이 완공한 그 성전에 마음을 두셨고, 그런 솔로몬을 위해 열방이 솔로몬 앞에 엎드려지도록 행하셨습니다. 그 어느 누구도 솔로몬을, 이스라엘을 건들 자가 없게 하셨습니다.
[어쩌다 그가 하나님을 떠났는가?]
이처럼 솔로몬은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자였습니다. 오늘날 ‘예수쟁이’들마냥 하나님 없이, 말씀 없이, 기도 없이 살 수 없는 자였습니다. 오늘날의 예수쟁이, 오늘날의 션과 같은 독실한 크리스천이 바로 솔로몬 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본문은 예수쟁이의 모습도, 독실한 크리스천의 모습도 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 속 솔로몬의 모습을 보며 우리가 함께 경계해야 할 것은 무엇이며, 어떤 삶을 살아내고자 최선을 다해야 할까 나눠보자면, 저는 세 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솔로몬의 몰락이 주는 교훈 : 1. 세상의 헛된 것들로부터 자유하라]
먼저는 ‘세상의 헛된 것들로부터 자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떠나 악을 행할 때, 그 순간 그의 마음에 무엇을 품었습니까? 바로 우리아의 아내를 마음에 품었습니다. 세상의 정욕이 그를 덮었고, 그는 그 정욕을 이기지 못해 살인과 사기와 거짓을 행했습니다.
부전자전이란 말이 이럴 때 쓰여도 될지 모르겠지만, 다윗의 연약했던 모습이 솔로몬에게도 동일하게 등장합니다. 오늘 본문 1절입니다.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
솔로몬도 정욕이라는 걸림돌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바로의 딸 외에도 그는 많은 여인을 사랑했습니다. 물론 저는 솔로몬이, 그 많은 여인들을 ‘진짜 사랑’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정욕이라는 세상의 걸림돌에 넘어졌다고 봅니다.
전도서를 보면 솔로몬이 세상 것들로부터 이렇게 기록한 것이 나옵니다. 전도서 1장 2절입니다.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또 12장 8절,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그는 세상의 헛된 것에 걸려 넘어졌고, 그 넘어짐을 통해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물론 그가 말년에 하나님 앞에 온전한 회복을 이루었는가 알 수는 없습니다. 열왕기상 11장 41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솔로몬의 남은 사적과 그의 행한 모든 일과 그의 지혜는 솔로몬의 실록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그의 말년은 기록되지 않습니다. 지금껏 많은 이들이 마지막 말년에 정말 하나님 앞에 다시 회개하고 세워져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렴’ 이라 말했던 것과는 다르게, 그의 말년은 조용합니다.
또 전도서가 기록된 시기가 솔로몬이 이스라엘을 다스린지 7세기가 지나 작성되었다는 소견이 있기에, 그가 정말 말년에 하나님 앞에 회개했는가 알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성경에 기록됨은 분명 하나님 앞에 다시 나아왔으나, 예전과 같은 하나님 앞에 온전함을 되찾지는 못했을 것이라 추측합니다.
허나 확실한 것은 솔로몬은 헛된 것에 넘어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세상의 헛된 것을 따르자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졌습니다. 날마다 기도로 하나님 앞에 묻던 자가 세상의 지혜로 살아갑니다.
이런 솔로몬의 모습이 마냥 어색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모습과 너무나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고 찬양하며 살아내어도 잠시 잠깐 한 눈 팔면 세상의 헛된 것에 걸려 넘어지는 모습이 우리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을 걸고 넘어지는 세상의 유혹은 무엇입니까? 여러분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세상 헛됨은 무엇입니까? 또 여전히 그런 헛됨에 양다리 걸쳐 살아가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바라옵기로는 그런 세상의 헛된 것들 하루 빨리 떨쳐내길 소망합니다. 혼자서 죄를 던져버림은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소그룹이 존재합니다. 함께 기도해줄 수 있는 리더가 있고, 함께 위로해주고 축복해줄 수 있는 리더가, 또 그룹원들이 존재합니다.
그들과 함께 기도로, 모임의 유익함을 통하여 세상의 헛된 것들을 이겨내길 소망합니다.
[솔로몬의 몰락이 주는 교훈 : 2.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라]
물론 리더가, 또 그룹원들이 세상의 헛된 것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스스로 존재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이겨내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이것이 필요합니다.
솔로몬의 몰락이 오늘날 우리게 주는 교훈, 두번째는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두 번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속히 돌이키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솔로몬은 그런 하나님의 경고에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어떤 결말을 내십니까? 본문 1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내 언약과 내가 네게 명령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라”
하나님은 솔로몬의 악함을 보시고 두 가지 일을 행하셨습니다. 먼저는 나라의 분열입니다. 솔로몬이 죽자 이스라엘은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분열되게 됩니다. 또 우상으로부터 자유하지 못하게 됩니다. 솔로몬이 이방의 여러 우상을 품자, 곧 이들에게 우상이 자연스레 침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경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못하고 등한시 하자, 이들에게 내려진 결말은 더 많은 것들로부터 하나님을 지키기 위해 싸워 나가야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등한시 할 때, 우리는 세상의 여러 유혹들로부터 고통을 받게 됩니다. 하루만 하나님 말씀 묵상하지 않아도 묵상할 때와의 삶에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이처럼 말씀이 우리 안에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일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우리를 감싸안음을 느끼게 됩니다.
소그룹이 서로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음은, 이 공동체는 그냥 세워진 공동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말씀으로, 하나님을 기준으로 세워진 공동체기에 이겨낼 힘과 능력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바라옵기로는 소그룹을 통해 하나님 말씀의 기쁨을 누리길 소망합니다. 나에게 다가오는 유혹을 이겨내는 능력과 힘을 경험하길 소망합니다.
[솔로몬의 몰락이 주는 교훈 : 3. 내가 아닌 여호와로 사는 삶]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낼 것입니까? 솔로몬이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하기 전의 삶이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솔로몬의 몰락이 주는 교훈, 세번째는 ‘내가 아닌 여호와를 기준’으로 살아내자는 것입니다.
당연한 이야기 입니다. ‘하나님 기준으로 살아내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닙니까?’ 물을 수 있고 반박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뻔하고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뻔하고 당연한 것을 잘 해내고 계십니까? 저는 차마 그렇지 못하고 있기에 떳떳하지 못합니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당연하나 못한다하여 포기할 것입니까? 아니면 해결책을 찾아 견고히 다시 세워 갈 것입니까? 당연히 후자를 택해야 하는 것이 건강한 크리스천의 삶 아니겠습니까?
어떻게 여호와로 살아가겠습니까? 말씀이 여러분들을 여호와로 살아가게 할 것입니다. 말씀, 혼자 묵상하고 나누는 것, 너무 어렵습니다. 그래서 소그룹이 중요한 것입니다.
미국의 한인교회는 코로나 시기 더욱 견고해졌고 성장했다는 조사가 있었습니다. 왜 그런가 보니, 이들이 돌파구로 찾은 것이 바로 ‘소그룹’이라고 합니다.
저는 우리 청년 공동체도 더 많은 소그룹을 양성해내는 공동체 되길 소망합니다. 지금은 세개의 소그룹이 있지만, 이들이 분립해 더 많은 소그룹을 출산해내는 은혜를 누리길 소망합니다.
또 더 많은 리더들이 세워지고, 또 더 많은 섬김이들이 기쁨으로 헌신되어 나아오길 소망합니다. 그래서 성장이 더디다 평가 받는 지금 이 시기에, ‘얘넨 왜 성장하지?’ 라는 질문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자연스럽게 성장하게 되더라.’ 답하는 소그룹, 섬김이, 공동체 되길 소망합니다.
[기도제목]
1. 세상의 헛된 것들로부터 자유한 우리 되게 하소서
2. 하나님이 우리 삶에 기준되시고, 말씀에 귀 기울이는 우리 되게 하소서
3. 서로를 위로하고 축복하는 소그룹이 되게 하소서
4. 더욱 견고한 소그룹이 분가하여 나오는 청년 공동체 되게 하소서
[축도]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 하나님의 감동 감화 역사 임재하심이
세상의 헛된 것들을 떠나 하나님의 말씀에 힘입어 자유하겠노라 결단하는 자들과
더 건강한 소그룹을 위해 힘쓰는 청년 공동체 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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