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문으로 들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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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전서 개역개정판 (7장)
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수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수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수 것이니라 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선생님들이나 학부형들이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공부해라, 열심히 해라"는 말입니다.
그런 말을 듣는 학생 쪽의 보편적인 반응은 또 무엇입니까?
"아이고 또 그 소리. 언제나 저 잔소리를 그만 듣게 될까?"
그러나 “공부하라”는 말을 흘려듣고 지나가면 몇 날이 지나지 않아서 쓰디쓴 후회를 하게 될 것이 뻔합니다.
목사가 성도들에게 빠뜨리지 않고 자주 하는 말 중에 대표적인 것이 "기도합시다. 쉬지 말고 열심히 기도합시다!"입니다.
그 말을 들을 때, 어떤 반응을 가지게 됩니까?
기도하는 것을 소홀히 하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구하는 이가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는 이 말씀은 어떤 문을 두고 그 문으로 들어가면 주어지는 삶과 그 문으로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먼저 그 문으로 들어가면 주어지는 삶이 어떤 것입니까?
무엇이 기다리기에 그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 하십니까?
11절에서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악한 부모라 하더라도 자식에게 만큼은 좋은 것을 주는데,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그 문으로 들어가면 좋은 것이 있습니다.
좋은 것이 차고 넘치도록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껏 누릴 수 있습니다.
그 문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말할 수 없이 좋으신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무엇이 좋은지를 다 알고 계시는 능력의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에게 차고 넘치도록 주십니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고 하셨습니다(시34:10).
그러면 이 좋은 것은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5장에서 시작하신 예수님의 주옥같은 산상보훈은 오늘 읽은 본문 7절부터 서서히 막을 내리는 결론부분 입니다.
그래서 좋은 것을 산상수훈과 관련시키면 팔복입니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로 시작하는 이 팔복은 막연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복입니다.
심령이 가난한자가 그 문에 들어가면 천국이라는 복을 받습니다.
가난의 의미는 권력도, 돈도, 건강도 없어지고 아주 형편없이 되어 납작하게 엎드려진 상태입니다. 깨어 질대로 다 깨어져 낮아 질대로 낮아진 상태입니다.
하나님 외에는 아무 것도 의지할 수 없는 사람이 그 문에 들어가면 천국을 소유합니다.
아들 압살롬에게 쫓겨 다니며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 빠져 하나님 외에는 아무것도 의지할 것이 없었던 다윗이 그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하나님께서 자신을 끌어올리시고 발을 반석 위에 두시고 걸음을 견고케 하시고 그의 입에서 새 노래로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애통하는 자가 그 문에 들어가면 위로를 받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당한 비애를 잘 아시는 분입니다.
슬픔과 간고를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마음에 애통함이 있습니까? 좌절이 있습니까?
그 문에 들어가면 철저하게 예수님의 위로를 받고 치료받습니다.
애통한 마음을 가졌던 한나는 그 문에 들어감으로 아들 사무엘을 위로로 받았습니다.
의(義)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그 문에 들어가면 배부름을 얻습니다.
의는 죄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되고 하나님께 옳다 인정받는 자세입니다. 이것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갈망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은 생명에 목마른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그 문에 들어가면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흐르듯이 배부름을 얻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가 그 문에 들어가면 긍휼히 여김을 받습니다.
긍휼은 다른 사람의 아픔 속에 들어가 같이 아파하는 것으로, 그 문에 들어가면 하나님께서 긍휼로 우리의 아픔에 대해 아파해 주시고 사매 주시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 그 문에 들어가면 하나님을 봅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은 부패하고 거짓되어(렘 17:9), 하나님을 본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문에 들어가면 성령으로 새로이 지음 받은 청결한 마음으로, 믿음으로,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고 우상 앞에 무릎 꿇지 않은 청결한 마음으로 그 문에 들어가 하나님을 뵈었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가 그 문에 들어가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습니다.
화평이란 ‘샬롬’으로, 인간의 모든 행복을 종합해 놓은 것입니다.
그 문에 들어가면 이 화평을 하나님의 아들로서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인해 욕먹고 핍박받는 사람이 그 문에 들어가면 천국을 소유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과 같이 살려는 사람이므로 예수님이 받은 박해와 미움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을 인해 고통을 참은 사람이 그 문에 들어가면 그 속에 기뻐하고 기뻐하는 것이 생깁니다.
바울은 감옥에서도 찬송하며 그 문에 들어갔더니 옥문이 열리고 간수가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문에 들어가 누리는 모든 것들은 변함이 없고, 빼앗을 수도, 줄 수도 없는, 환경에 전혀 좌우되지 않는 복입니다.
좋은 것 가운데는 일용할 양식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용할 양식은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건강, 지혜, 사업의 형통, 세상에서 지위를 얻는 것, 명예. 자녀들의 형통과 같은 삶에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삶의 현장 속에서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신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는 말씀을 누가복음에서는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눅11:13).
즉 그 문으로 들어가면 성령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좋은 것과 성령을 주신다는 것을 동일한 것으로 봅니다.
요한복음 3장 1-8절에 의하면, 우리는 성령으로 거듭난 순간부터 그리스도인이 되며, 성령은 항상 그리스도인 안에 계십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 이미 성령을 받은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이 다 성령으로 충만 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성령 충만의 생활이란 그리스도께서 주관하시는 삶으로써, 우리 안에 사시는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지배하시는 생활입니다. (요 15장)
그리스도인이 성령 충만의 실재를 알고 순간순간 끊임없이 성령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간다면 그의 하루하루는 가슴 설레는 모험이 될 수 있습니다.
성령은 차고 넘치는 좋은 삶의 원천입니다. (요한복음 7장 37-39절)
성령의 지배를 받으며 사는 사람은 그리스도 중심의 생활을 하며, 성령의 권능을 받아 다른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합니다. 그리고 응답받는 기도 생활을 하고, 하나님 말씀을 깨달아,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좋은 삶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풍성하고 열매 맺는 생활을 성령을 통하여 이루시겠다고 약속 하셨습니다.
또 성령은 하나님의 비밀하신 것을 알려 주십니다(고전2:10-12).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구원의 비밀, 축복의 비밀, 천국의 비밀, 부활의 비밀, 심판의 비밀을 알게 되는 것은 오직 성령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문을 두드리라 하셨습니다.
문을 두드리라는 것은 처한 상황이 문이 굳게 닫혀져 있는 상황을 말합니다.
그러면 좋은 것, 성령으로 넘치는 그 문으로 들어가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그 문에 들어가는 방법은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도하라” “기도하라” 그리고 “다시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산상보훈의 말씀에서 그 문안에 있는 좋은 것들을 말씀하시고, 그 것에 주목하게 하신 후에 "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명령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시장 한 복판에서 삶의 활기를 느낍니다.
사람은 우선 살아야 합니다. 교양 있고 고상한 삶은 그 다음입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삶 자체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심장이 뛰는 소리이고 삶의 리듬입니다.
기도의 박동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릴 때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가 유지됩니다.
사람이 사는 것이 중요하듯이 그리스도인은 기도를 드림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과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도 기도 없이는 살수 없습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기 때문입니다.
기도 말고는 다른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문을 여는 다른 방법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기도의 자세와 방법, 그리고 결과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산상수훈의 말씀을 통하여 이미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잘못된 기도에 대해서 지적해 주셨습니다.
그들은 중언부언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외식적이고 형식적인 기도에 빠졌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먹고, 마시고 입는 것에 대해서 집착했습니다. 염려하며, 의심하며 기도했습니다.
중언부언의 기도는 그것이 응답될 근거도 없는데 많이 하고, 길게 기도하면 이뤄지지 않겠냐는 짐작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강조하신 기도는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것이 너무 확실하기 때문에 그것이 실현되기까지 그치지 않는 끈질긴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주신 최고의 특권인 기도를 통하여 만나주십니다.
기도를 통하여 하늘의 영광과 축복을 내려 주십니다.
기도만이 닫친 문을 열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구하고 찾고 두드릴 때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십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가장 좋은 것을 주셨고, 현재도 주시고, 앞으로도 가장 좋은 것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우리의 개인적인 비밀과 간청을 듣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도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과 함께 나눌 수 없을 만큼 작은 것도 무가치한 것도 없습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열어 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필요한 것이 있을 때 얻고자 하는 불타오르는 열정을 갖고 우리의 소원을 말씀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열정과 진실과 눈물로 바쳐진 믿음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막연한 기도, 열정이 없는 기도는 고장 난 초인종 같아서 문을 열지 못합니다.
그 문으로 들어간 기도의 사람들은 가슴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이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그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문을 열 수 있는 길을 주셨습니다.
즉 그 문에 들어가기를 열망하는 자가 그 문안에 예비 된 엄청난 축복들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성령의 놀라운 역사 속에 살 수 있습니다.
우리 생활 속에 닫친 문을 열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좋은 것, 성령으로 주시리라는 약속이 우리 삶의 실제가 됩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좋은 것을 원하십니까?
성령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리리라는 명령에 따라 구하고 찾고 두드리십시다. 그리하면 주님께서는 천국으로, 참된 위로로, 배부름으로, 긍휼히 여기심으로, 일용한 양식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축복으로 역사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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