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

Sermon  •  Submitted
1 rating
· 32 views
Notes
Transcript

성전 청결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
(요 2:10-22)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던 예수님이
헤롯의 박해 때문에 애굽으로 가셨다가
다시 돌아와 사셨던 곳이 갈릴리 지역입니다.
갈릴리의 나사렛이란 시골 동네에서 사셨습니다.
그리고 서른 살이 되셨을 때에
시골 청년 예수님께서 드디어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자신이 어린 시절동안 자라나신 갈릴리 지역에서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요단강 동편으로 가셔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 다음 유대 광야에 가셔서
40일 금식기도를 하신 후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러신 다음 다시 갈릴리로 오셔서
예수님 친척뻘 되는 혼인집에
다섯 명의 제자들과 함께 가셨습니다.
가나라는 동네에 있는 곳인데
거기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게 하시는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그리고 가버나움에 잠시 가셨다가
드디어 예루살렘에 오십니다.
공생애에서 공인으로써 예루살렘에서
첫 사역을 하시는데,
그것을 기록한 내용이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공생애 시작 시기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처음으로 하셨던 사역이 바로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 시골 청년 예수님은
수도 예루살렘에서
8개월을 머물면서 사역을 하십니다.
당시 예루살렘은 정치, 종교, 사회 문화, 경제,
교육 각 분야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성전’은 중심 중에
중심이었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 보신 당시 성전은
그냥 ‘장사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아버지의 일을 하시는 분이신데,
그분이 아버지의 시선으로 성전을 보실 때
강도의 소굴로 보이셨다는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께서 성전을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전은 하나님의 통치를 상징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백성이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며 순종하는 것을
상징하는 곳이 바로 성전입니다.
구약 당시 사람들이 처음에 계시를 받을 때
그들은 이미 너무 당시 종교적 의식에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집트에서 또 주변 나라에서 수많은 우상을 보며
신은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믿으려고 하질 않았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신앙이 어린 그 백성에게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 가운데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가시적인 상징물로 두신 것이
성전 건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하고 귀한 성전 건물을 향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세요.
1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에 일으키리라”
성전을 헐라니요!
솔로몬 성전이라면 이미 600여년 전에 헐어졌었습니다. 이후 포로에서 귀환하여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다시 성전을 세웠는데, 그것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허물어졌습니다.
그러다가 에돔 족속인 헤롯이 유대의 왕이 되어서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려고 헤롯 성전을 짓고 있었습니다. 스룹바벨 성전터에 예전 성전을 보수하며 지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이 말씀을 하던 당시까지 이미 46년이나 지어졌고, 이후로도 몇십 년 계속 더 지어질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이유가 있을 겁니다. 구지 잘 지어지고 있는 성전을 왜 허물라고 하실까요?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정성 들여서 짓고 있는 성전인데, 왜 허물라고 하실까요?
나라 빼앗긴 백성들이 그나마 성전에서 예배드리는 것은 허락을 받아서, 마지막 자존심이고,
그들 신앙과 생활의 유일한 버팀목인 성전인데, 왜 이렇게 귀중한 건물을 헐라고 하실까요?
그 이유는 그 당시 정치 종교계를 보면
답이 나옵니다. 저들의 탐욕 때문입니다.
당시 대제사장인 안나스는 성경에 따라
대제사장이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로마 제국이 임명한 자였습니다.
하나님 백성의 대제사장인데, 그를 임명한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 권력이었던 것입니다.
안나스는 거금을 주고 제사장권을 샀습니다.
그래서, 투자를 했으니 그 이상 거둬들여야지요.
그래서 제사용품 전매청을 운영합니다.
순진한 백성들의 종교심을 이용해서
성전을 중심으로 돈벌이 장사판을 벌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판에 찬물을 촤악 끼얹는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장사판을 뒤엎는 성전 척결 사건입니다.
그야말로 당시 사회에 공적인 도전장을
내민 것입니다.
예수님 입장에서 예루살렘에 도착하시자마자
이 판을 뒤엎은 일은 무엇을 뜻할까요?
바로 그분 자신을 공적으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갑자기 나타난 나사렛 시골의 한 청년이
당시 최고의 종교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맞선 사건이었습니다.
감히 누구도 건드리지 못했던 이 거대한 세력에
갑자기 나타난 한 시골 청년이 이들을 대항했던
사건이었습니다.
이 유월절 기간에 전국의 많은 남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옵니다.
그런 가운데서 기득권 세력을 대상으로
도전장을 낸 청년 예수는 요주의 인물이 됩니다.
따라서 이후 복음서의 중요한 이슈는,
‘예수, 그가 누구인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향한
당시 사람들의 질문이었습니다.
‘예수, 그가 누구냐?’
이것이 당시 정치 종교 지도자들의 이슈였습니다.
여러분, 사실 오늘날 우리들에게 있어서도
이것이 가장 중요한 질문이고,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됩니다.
지금 나에게 있어서,
또 오늘 나와 함께 살아가는 모두에게 있어서
‘예수, 그가 누구인가?’하는 질문이
가장 중요합니다.
오늘도 예수 그분께는 관심 없이 성전 건물에만
관심을 갖고 사는 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또 예수에 대해 듣게는 되었어도
‘그가 대체 누군데!, 나와 무슨 상관인데’하고
여전히 종교적 의식에만 집착하는 자들이 있지요.
오늘날도 수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갖고 살고,
또 어떤 이들은 종교적 기득권을 갖고 있습니다.
다른 나름대로 자신들의 성전을 짓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생각하는대로 거룩한 형식을 만들어서
종교적 기득권을 세워가고 있는 것입니다.
몇 년을 했던, 수십년을 했던, 수백년을 했던,
또 로마 천주교처럼 천 년 이상을 했던 간에
이 땅에 사람들이 만든
성전이 떡 하니 세워져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성전에 예수님이 찾아오십니다.
그래서 예수님 보시기에 합당한 성전이라면,
그분께서 기뻐하시며 그곳에 거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또 성전의 공동체는 서로 사랑하며
귀히 여기는 주님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또 성전은 성령님이 친히 거하고 계시는
성령님의 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때나 오늘이나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으로
성전을 열심히 돌아보고 계십니다.
여러분, 오늘 지금 여기 우리 성전 가운데에도
예수님께서 영으로 찾아와 계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오늘 우리 공동체가 예배드리는
이 모임이, 이 시간과 이 장소가,
정말 하나님의 통치가 임할 수 있는 장소인지,
아닌지, 그 여부를 묻고 계십니다.
그런 주님에게 우리가 유대인들이 한 것처럼
표적을 보여달라고 따질 수 있겠습니까?
무슨 권한으로 그러냐면서 따질 수 없지요.
왜냐하면, 성전은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네! 진짜 성전이라면 당연히 주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성전이 특정한 누구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 되도록 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이곳이 주님의 것이 아니라
사람의 것이 되어버린다면,
주님은 “이 성전을 헐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46년이나 지은 성전을 헐라고 하시나요?
게다가 본인이 어떻게 4일 만에 다시 일으키라고
장담을 하시나요?
유대인들은 정말 의아했겠지만,
실상 진짜 성전은 예수님의 몸이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이 유월절 기간에 선포되고 있다는 사실은 굉장히 의미심장합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죽음처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참 성전이신 예수님을 헐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몸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임으로 그분의 몸을 헐 것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써
삼일 동안에 성전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은 이 사실을 몰랐을테니
무슨 말씀인가 의아해했을 것이고,
또 주님의 제자들도 당황했을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들도 주님 부활하신 후에야
이 말씀이 진의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우리는 이 말씀을 여러 번 읽었고,
몇 번 설교를 들었기에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지금 우리 교회 공동체가
주님의 성전으로 바로 세워져 있느냐는 것입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냐는 것입니다.
아니면 강도의 소굴이냐는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영으로 이곳에 오셔서
그것을 따져 묻고 계십니다.
우리 공동체가 모여 예배하는 이 곳이
정말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이곳을 거룩한 주님의 집으로 세운다면
주님은 우리에게 엄청난 복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곳이
곧 하나님의 나라이며,
그곳의 중심에 성전이 있으므로
이곳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거룩한 장소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우리가 거하며 예배하는 성전을
그렇게 세워가야 마땅한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와 우리 자녀 손들이 복을 받으며
오래도록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곳을 종교적 모양만 있을 뿐이고
탐욕이 가득한 장사판으로 만들어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렇게 되면, 이곳에 찾아오시는 주님께서
우리를 향해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뒤엎어버리실 것입니다.
14절로 16절의 말씀입니다.
“성전 안에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쫒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으로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이후 사역을 보면 거친 행동을 잘 하지 않으시는
주님께서 처음 이 사역에서는
굉장히 거친 행동을 하십니다.
왜 이렇게 거치실까요?
아버지의 집을 향한 그분의 열심 때문입니다.
지상에서 한 때
제한적인 힘을 지니셨던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집을 향한 열심으로
그토록 거칠게 다루셨다면, 지금은 어떨까요?
지금 주님은 부활 승천하셔서 그 힘이 제한받지 않으시고, 2천 년 전 팔레스타인 땅이라는
시공간에 묶여있지도 않으십니다.
그러기에 그때보다 지금은 더 강력하게
더 거칠게 주님께서
그 판을 엎어버리지 않으실까요?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예수님은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히 똑같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시공간과 힘의 제약 때문에
그 정도로만 마치셨을 뿐이고, 지금은 온 세계에서 일어나는 종교 장사판에서
주님이 얼마나 맹렬한 진노를 쏟아붓고
계실까요?
우상을 섬기는 땅과 민족이 경제적으로 궁핍하고
또 수없이 좋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볼 때
주님의 진노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예루살렘 성전은 주후 6년에나 완공됩니다.
무쳐 84년에 걸쳐 성전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완공 후 딱 6년이 지나서, 주후 70년에
로마 군대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될 때에
성전도 함께 불타버렸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예배할 수 없는 성전은
하나님께는 아무런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이 수십 년 동안 지어졌든,
고대 근동에서 가장 화려한 성전이 되었든 간에,
주님께 예배드릴만한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보시는 것은 외형이 아닙니다.
규모가 아닙니다.
절기를 지켜 수백만 명이 모여들어
희생 제물을 드리는 것도 아닙니다.
오늘날 주님이 원하시는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성전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나
삼일 만에 다시 일으켜져 세워진 주님의 몸,
그 몸과 영적으로 연합된 교회가 성전입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우리가 참된 교회가 되려면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야 합니다.
그분에게서 떨어지면 버려져 태워질 뿐입니다.
반드시 우리의 머리이신 주님에게 딱 붙어 있어서
그분의 지체로써 살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몸이면 머리의 지시를 따라야 하지요.
따라서 교회는 온전히 주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의 머리이신 주님이 무얼 원하시나요?
교회가 어떤 교회가 되길 원하시나요?
형식적인 예배,
종교적 장사판이 되길 원하시나요?
아니면 기도하며, 주님의 전을 사모하며,
주님께 간절히 나아가길 원하시나요?
우리가 교회로 모여 주님께 예배할 때는
반드시 간절함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 뵙길 간절히 바래야 합니다.
주님을 뵈려면 마음이 청결해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 마음을 주의 보혈로 씻어야 합니다.
지금껏 지었던 죄를 다 회개하고선
주님의 보혈로 씻겨진 마음을 갖고서
깨끗한 맘으로 주님을 뵐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악이 도사려 있으면
주님 만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죄를 반복하여 짓고 있으면
주님이 우리에게서 얼굴을 돌려버리십니다.
그러니 마음이 청결하여 주님을 뵈려면,
내 안의 죄를 끊어내야 하고,
내 삶의 악을 멈춰야 합니다.
우리는 죄악과 싸워야 합니다.
죄악을 부추기고 미혹하는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그냥 살던대로 살면 안됩니다.
종교적 매너리즘에 빠져서도 안됩니다.
그냥 해오던 방식대로 예배하고 있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자주 종교 형식대로 따라 실행할 뿐
성전에 와서도 주님을 뵙지 못하고 살 때가
너무 많지 않나요?
왜 그렇지요? 우리 안에 있는 탐욕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장사판과 같은 우리의 탐욕스런 마음을
뒤엎어주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회개의 기회를 찾을 수 있길 바랍니다.
여러분, 성전 건물만 왔다가 가시면 안됩니다.
정말 이곳에 오셨으면 꼭 주님 뵙고
가셔야 합니다.
그러니 주님 뵙길 간절히 원하면서
우리의 죄악과 싸우고,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오시길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날 주님의 이름이 걸린 교회에 나와서도
성전 마당만 밟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그렇게 수십, 수백 번을 예배드렸어도
주님 한 번 뵌 적 없는 교인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주님께 대한 아무런 경외심이 없이
그냥 나와 앉은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게다가 종교 행사에 익숙해진 자들이
겁도 없이,
주님의 집을 장사판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니, 과연 그곳이 축복의 통로가 될까요?
정말 거기서 주님께 기도할 때마다
주님의 응답이 있고, 복이 주어질까요?
여러분,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주님을
정말 믿고 있다면,
성령을 받았다면,
이 말씀을 기억하여 결단할 수 있길 바랍니다.
주님의 몸된 성전에 속한 우리가
다시 주님의 거룩한 지체가 되길 위해
기도하고 결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죄악을 멀리하고,
종교적 매너리즘에 빠지지 말고,
이곳을 장사판으로 만들지 말고,
주님이 거하실 전으로 만들어 갑시다.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을
주님뿐 아니라 우리도 갖기를 원합니다.
주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하고,
최선을 다해 예배를 준비하고,
예배의 자리에 올 때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경건한 마음과 자세로 준비하여 옵시다.
그럴 때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우리와 자녀들에게 오래도록
큰 복을 부어주실 줄 믿습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