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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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안에 있는 신령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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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8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2023년 2월이 되었습니다. 코로나 3년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한파가 우리의 삶을 더욱 얼어 붙게 합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니던 때에 저희 가정에도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나라의 경제적 위기 하면 떠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IMF 입니다. 아버지 나이가 제 나이쯤 되었을 꺼에요 집에 소를 많이 키웠습니다. 소들을 키우는데 한순간 어려움이 찾아 왔습니다.
그때 집이 경제적으로 어려워 부식거리 살 돈도 없었나 봅니다. 어머니는 아이들은 어리고 본인은 농삿일로 얼마나 지치고 고단 하셨겠어요. 어머니께서 고기를 좋아 하시는 분은 아닌데 체력이 떨어지고 커가는 아이들 걱정에 고기가 드시고 싶으셨나봐요 그런데 경제적 어려움을 격고 있으니 고기 살 돈도 없고 아버지에게 말할 엄두도 않났었나 봅니다.
그래서 새벽에 나가 기도 하셨답니다. 하나님 고기먹고 싶다고요. 그렇게 기도 하시고 잊어 버리셨을 꺼에요. 어느날 아버지가 돼지 1마리를 잡아 오셨어요. 몇 근 그정도가 아닙니다. 돼지 1마리를 잡아 오셨습니다. 아버지가 차를 타고 집에 오시는데 길에 돼지 한마리가 있었답니다. 아버지가 손으로 잡을수 없으니까. 차로 퉁쳐서 잡아오셨어요. 자라던 우리에서 도망처 산에서 살던 돼지 였는데 크기가 작고 보잘것 없었던것 같아요. 그 돼지는 우리 가족의 일용한 양식이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그것을 잡아서 국도 끊여 먹고 구워도 먹고 실컷먹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맛도 없고 질기고 그런 돼지 였는데 그걸 먹으면서 행복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누군가 이이야기를 들으면 우연히 있었던 일이고 맛도 없는 고기가 잡아 먹어서 뭐하냐 그런가 보다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기도에 응답은 어머니와 하나님 사이에서 이해 할 수 있는 이야기 입니다. 기도 하는 사람만 이해 할 수 있는 신비이고 간증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기도 하는 사람은 느낄수 있어요.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는 사람은 알수 있습니다. 작은 일이지만 나의 신음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수 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왕 주실 꺼면 소고기로 주시지 왜 맛도 없는 고기를 주셨어요. IMF때 생긴 빚좀 갚아 주시지 왜 지금도 어렵게 살게 하세요.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집 사정이 많이 달라진게 없어요 그때 생긴 빚이 아직도 있어요. 부지런하게 사시는 부모님 남들에게 패끼치는 일은 죽어도 싫어 하시는 분들이에요. 정직하게 살아야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게을러서 부자가 못되는 거다. 새벽기도회 다녀오시면 그때부터 일해서 해질때 까지 일만 하시는 분들입니다. 이정도 했으면 물질의 복도 주실만 한데 안주셔요.
하지만 저는 부모님을 존경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지금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인정하고, 세상의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 그분이 진리이기 때문에 묵묵히 자신의 삶의 길을 걸어가는 부분을 존경합니다.
우리는 걸어 가야 합니다. 그분을 따라가는 겁니다. 잘될때도 안될때도 있어요. 그건 중요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의 길을 따라 가고 있느냐. 그분의 자녀로서 순종하며 가고 있는 가가 더 중요 합니다.
항상 위기는 있었고 고난은 우리 가까이 있습니다. 불공평은 우리 옆에 있었고 기울어진 운동장은 변하지 않습니다. 늘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이 걸어온 길은 쉬운 길입니까?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누구보다 어렵게 살아 오셨고 힘들게 살아 오셨다고 생각 해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씀 하실것 같아요.
많이 힘들지 고맙다. 라고 말입니다.
마태복음 5:3–12 (NKRV):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 산상수훈 말씀을 전할때 다 고통과 고난을 당하던 사람들입니다. 가난 했고, 병들었고, 고아였고, 과부였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이런사람은 하나님이 버린 사람들이 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더이상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말씀 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여러분의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기적이 나타납니다. 병든자가 고침받고, 귀신이 떠나 갑니다.억눌린 자가 자유케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증거가 나타 납니다.
나와 함께 하시지 않을 것께던 죄인들과 함께 하시지 않을 것 같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신겁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를 주로 믿고 살아가는 여러분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기뻐하고 즐거워 하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다.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찬송하리로다. 이 외침은 말씀을 묵상하는 제 가슴을 떨리게 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바울은 간결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한마디에 바울의 모든 감정이 담겨있다고도 볼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본문을 나누고 설교를 마칠 때에 우리도 함께 찬송하리로다 하고 외치고 있기를 소망합니다.
바울의 상황을 보자면 찬송이 나올수 없는 상황입니다. 감옥에 있으면서 고난을 격고 있는데 하나님을 찬송한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닙니다.
바울이 찬송하는 이유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신령한 복에 있습니다.
3절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그리스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영적인 축복을 주시겠다는 말입니다.
저는 이 안에서 라는 단어를 살펴보면서 선물이 생각났습니다. 선물을 받으면 그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열어 보고 싶습니다.
영적이다라고 말할 때 이 영은 성령님을 가르키며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역사 하심으로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이 영적인 복은 단순히 우리가 생각하는 물질적인 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분입니다. 구약을 살펴봐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질의 축복을 주시는 부분이 있고,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과 마실것을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영적인 복의 본질에만 집중 하고 있습니다. 영원하고 불멸하며 하나님께서만 주실수 있는 그 복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 영적인 복은 그리스도의 사랑안에서 나타 나며
창세 전부터 예정하시고 택하신 백성에게 주시는 복입니다.
우리를 예수그리스도와 같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 구원 받도록 선택하고 예정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우리에게 가장 큰 복이고 영적인 축복 입니다. 복의 근원이십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여기에 있습니다. 첫째는, 사랑으로 그의 백성을선택하신하나님이다(3-5절). 둘째는, 자신의 대속적 죽음으 로 구속자가 되시며, 교회를 택하신 이들 그리스도이다(7절). 마지막은, 그리스도의 사역이 그의 백성에게 적용되어 그것으로 인간 경험 속에서 삼위의 영원한 목적을 실현케 하는 성령이시대(13-14절)
우리에게 모든 영적인 복인 예수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모든 영적인 축복의 근원인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드릴때 우리가 이럴게 차분할수 가 있을까요?
이 날것 그대로인 복음은 이 세상에서는 보잘 것없이 보이고 매력이 없어 보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는 우리에게도 십자가의 복음 앞에 설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뭔가 더 자극 적인게 필요합니다. MSG가더 들어가고 감동을 더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복음에는 그런게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포장지 뜻어보니 내가 원하는게 아니라 실망한 표정들이 가득 합니다. 원하는거 안줬다고 삐져있는 우리들 입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가 원하는 것을 들고 나가고, 축복을 받기를 원하는 것이 우리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여러분 가득한 교회가 부흥하기 원합니다. 여기에 계신분들이 모두 물질 때문에 어려움 당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격고 있고 힘들어 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자유케되기를 기도 합니다. 병들고 아파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분을 위로하시고 치유의 손으로 만져 주시기를 간절이 원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경계해야 하는 것이 있는데
교회안에서 이런 기류가 흐르는것은 주의 하고 경계하시기를 바랍니다.
성장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것이다. 물질의 복을 받지 않으면 믿음이 없는 것이고, 병이 고쳐지지 않으면 기도가 부족한 것이다.
이런 것들이 하나님 앞에 서게 하고 우리를 긴장하게 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되어야 하는데,
열받아요? 열받아 죽겠어요? 나에게 이런 것들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하나님께 실망하게 하고 좌절 하게 만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살아가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저도 목사이지만 이것에 자유롭지 못합니다. 하나님 다 해봤는데 안되요? 좋다는 방법들 다 했는데 결과는 늘 그대로에요. 기도 했자나요? 말씀 읽자나요? 하나님 앞에 예배 하자나요? 왜 안되는 거에요? 늘 하나님앞에서 확인하고 무엇이 잘못된것이 아닌가 걱정과 염려와 불안이 밀려 옵니다.
이럴때 저는 타협을 합니다. 사회과학적으로 안되는 거야, 인간이 한계가 있는거야, 큰교회들도 힘들어하는데 나라고 별수 있겠냐. 작은 교회가 살아 남을 수 있는 3년 안에 1%로라더라 100교회 세우면 1교회 남는다. 이런 말들로 나를 타협합니다. 이럴때는 계산이 아주 빨라요.
그때 마다 뭐라고 하실까요? 여러분에게는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 하시나요?
하늘의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시겠다는 말씀을 보면서 기대했어요. 무엇을 주시려나 내가 원하는게 없어요. 말씀 속에는 세상복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저도 세상의 가치와 기복주의적 신앙에 빠져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을 위해 살기로 결심하고 예수님의 영광을 위해 산다고 말하지만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적인 복보다 세상에 있는 복을 먼저 생각 합니다.
우리의 신앙의 평가가 세상의 것과 물질의 복이 기준이 된다면,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거리끼는 것이요 미련한 것입니다. 이런 것은 교회를 위험하게 만듭니다. 여기에 속지 않고 신실하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달려가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해 봅니다.
그렇게 잘알고 능력이 있는 사람이 고통당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 하면 될것이지 만날 정죄만 합니다.
우리 신앙의 중심에는 우리의 왕이시고 우리를 구속하신 예수그리스도가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복보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먼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복과 우리가 원하는 무엇인가가 이루어 지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여러분 묵묵하게 하나님을 바라며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며 그분을 따라가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체우실것을 믿습니다
모든 신령한 복이라는 선물을 열어 보니 복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 복은 우리를 만족하게 할 것입니다. 바울은 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고 그 영광스런 모습을 보고 감격과 기쁨에 가득차 찬양합니다. 우리도 예수님 앞에 기쁨과 감격이 가득한 찬양을 올려 드립가다.
로마서 8:31–32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안이라는 이말은 어디에 속해 있어야 하는지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설명해 줍니다.
우리가 함께 해야 하는 분이 누구이며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리를 연합시키시고 하나되게 하십니다.
요한복음 6:56 (NKRV):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우리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마시고 그에게서 나오는 생수를 마십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생명이고 능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영적인 생수를 마시지 못한다면, 우리는 곳 신앙이 흔들리고 쉽게 지치고 말것입니다.
저는 예수님 안에 있다는 이 말이 참 좋습니다. 여러분도 그러신가요?
예수안에 있다 는 것은 우리에게 평안을 줍니다. 삶에 활력을 줍니다. 용기를 얻습니다. 위로 받고 상처가 치유되는 것을 느낍니다. 우리의 영과 육이 생명을 얻는 것을 느낍니다.
반면에
세상안에 있는 나를 생각해 보세요.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면서 하루 하루 버티며 살아가는 여러분 아닙니까? 불안 하고 우울하고 세상에 있는 짊을 지고 가고 있는 우리들 입니다. 보잘것 없고 한없이 나약해 보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 있을때 참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피난처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세상에 아무리 고난이 있더라도, 불합리함과 기울어진 운동장이 우리를 괴롭게 하더라도 코로나와 전쟁이 우리앞에 있더라도 예수그리스도 그분이 우리의 피난처이며 우리와 함께 하시고 회복케 하시는 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아가는 힘이고 능력입니다.
여러분 힘들고 어려우신가요. 불안 하신가요. 불안해서 방법을 찾고 계신가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이 나오지 않으신가요? 그럴때 우리는 쉽게 세상으로 눈을 돌립니다. 번뜩이고 아름다운 방법들이 있어보입니다. 이 방법이라면 불안을 잠재울것 같나요? 신앙이 있는 우리는 하나님께로 나오지 않는 지혜는 멀리 해야 합니다. 세상으로 피하지 마시고 주님께 피하십시오.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하실수 있습니다. 나는 무능하지만 우리 아버지는 큰 능력이 있습니다. 내가 하는 계획 내가하는 생각은 모두 부족하고 연약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닌 사람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하실일을 기대 합니다. 그분이 하시는 일은 그 일은 완벽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실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세상과 구별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세상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으로 살아 간다고 결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살아 간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으로 인정하며 살아가겠다는 고백입니다.
요한복음 16:33 (NKRV): 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세상에서 어떤 것을 인정 받더라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가장 큰 기쁨으로 생각 하시는 가득한 교회 가족들이 되시기를 소망 합니다.
갈라디아서 3:27 (NKRV): 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우리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해 걸어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히미한 빛을 보며 걸어가고 있지만 마지막에는 확실하게 알수 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자기와 함께 가시는 분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 2:8-9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우리 앞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 아는 것은 전적으로 불가능하지만 훨씬 더 중요한 것을 아는 것은 가능합니다. 기이하지만 경건한 한 세대의 미국 설교자가 우리를 위해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나갔으나 자기와 함께 갈 자를 알았더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지상 순례의 대상과 장소를 확실히 알 수 없지만 누가 누구인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건 정말 중요하지 않습니다.
Genesis 12:1–4; John 10:4; 2 Timothy 1:11–12; Hebrews 11:8–10
The Warfare of the Spirit, 97.
A. W. 토저 (A. W. Toz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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