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자들의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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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상황은 어떠한가?
우리의 상황은 어떠한가?
1. 기독교 패배주의
1. 기독교 패배주의
(1) 패배주의란?
사전적 의미 : 패배주의(敗北主義)는 어떤 일에 성공하거나 경쟁에서 이기겠다는 자신감이 없이, 소극적이며 일을 하여 보기도 전에 포기하는 태도나 사고방식.
패배주의의 원인은 무엇인가? 원인은 정확히 알 수 있으나 분명한 사실은 그 마음에 있다고 볼 수 있다.
(2) 패배주의의 문제
패배주의의 큰 문제는 절대로 승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승리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 승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승리할 수 있다는 생각이 없으면 승리할 조건이 갖춰지더라도 승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즉 패배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승리할 상황이 되었는데도 패배주의적 사고에 휩쌓여 승리하지 못한다는데 있다.
(3) 기독교 패배주의란?
우리의 믿음이 세상에서 어떠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이를 넘어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세상의 사상보다 믿음이 더 뛰어나지 못하다는 패배 의식을 가지는 것이다.
패배주의의 문제는 승리할 상황이 갖춰졌음에도 승리하지 못하게 한다는 점이다. 기독교 패배주의는 믿음이 승리한다는 조건이 갖춰지더라도 승리하지 못하게 한다.
지금 현대의 많은 기독교인들은 패배주의에 휩쌓여있다. 세상이 가지는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그렇게 만드는 것 같은 상황이다.
기독교 패배주의는 기독교 신앙이, 믿음이 세상의 신념이나 철학, 사상보다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느껴지게 만든다.
성경은 무엇을 말하는가?
성경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믿음이 그렇게 하찮은 정도의 사상이나 철학이 아니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세상을 이기는 유일한 힘이 “믿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 승리의 유일한 열쇠는 “믿음”이다. (1-4절)
1. 승리의 유일한 열쇠는 “믿음”이다. (1-4절)
(1) 사랑하는 자들은 하나님께로 난 자들이다. (1-4절)
* 우리는 계속해서 요한일서를 통해 서로 사랑하는 자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라는 점을 들어왔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5장)
2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 4절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2절의 말씀과같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킵니다. 그의 계명은 무엇인가요? 예수님의 새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곧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자들”이다.
(2) 그 하나님께로 난 자들은 세상을 믿음으로 이긴다. (4절)
그런데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로 난 자들이 세상에 패배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현대 기독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처럼 패배주의적 사고를 가지고 살지 않는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5장
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은 세상을 이긴다.
그리고 그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바로 “믿음”이다.
기독교 신앙은 세상 사람들이 치부하는 것처럼 싸구려 사상이 아니다.
혹은 기독교 신앙은 이성이 마비된 사람들이 쇄뇌되어서 종교에 심취하여 삶을 다 버리고 종교에 목매달며 살아가는 것도 아니다.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의 믿음에 대해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오해를 하고 있다.
기독교 신앙은 싸구려 사상이 아니다. 기독교 신앙은 서구 문화를 수천년간 이끌어 온 중심 사상이며, 지금도 변함없이 서구 문화의 뿌리인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여러 다른 새로운 사상들이 영향을 주고 있지만 몇천년간 서구에 변함없이 영향을 주던 사상이 바로 기독교 신앙가들의 사상이다.
또한 기독교 신앙은 이성을 마비시켜서 반사회적인 모습을 보이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올바른 기독교 신앙은 신앙을 중심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의로운 하나님 나라를 오게 한다.
일부 극단적인 기독교인의 모습은 그러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결코 그것이 기독교 신앙의 전부가 아니다. 오히려 아주 작은 모습일 뿐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은 dhg 세상을이기는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
2. 그렇다면 승리하게 하는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
2. 그렇다면 승리하게 하는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
그렇다면 세상을 승리하게 하는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
오늘 본문은 세상을 승리하는 믿음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1) 물과 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음 (6절)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5장
6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물과 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세상을 이기는 믿음이다.
물과 피에 대해서 주석가들의 설명이 다소 갈리긴하지만 아주 많은 신학자들이 또한 저를 포함해서 물은 세례이며, 피는 십자가에서 받으신 희생의 피를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물은 예수님께서 받으신 세례, 피는 십자가의 희생의 피
예수님은 이 땅에서 본격적으로 사역하시기 전에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신다.
예수님이 받은 세례의 의미는 예수님이 공식적으로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로 하나님께 직접 인정받았다는 의미이다. 그 전에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다는 것이 아니라 공식적으로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세례를 통해 선포하신 것이다.
이는 예수님의 신격을 보여준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의 독생자 성부 하나님이시다.
피는 십자가에서 흘리신 희생의 피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셨으나 고난받는 종이셨다. 어린 양으로서 우리를 대신하여 피흘리셨다. 희생 제물이 되어 우리의 죽음을 대신하셨다.
이 두 가지 사실을 모두 믿는 것이 바로 “세상을 이기는 믿음”이다.
예수님께서 성자 하나님이심을 믿음과 동시에 그 성자 하나님께서 우릴 대신하여 피흘리심을 믿어야 한다. 이것이 세상을 이기는 믿음이다.
(2) 증언하시는 이인 성령으로 인한 믿음 (6절)
또한 이러한 믿음은 아무나 생기지 않는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5장
6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바로 이 예수님의 예수님 되심을 증언하는 성령께서 우리를 믿게 하신다.
이 성령님의 증언이 없이는 우리는 예수님을 도무지 믿을 수 없다.
성령님은 어떤 분이신가? 성령 하나님이시다. 우리의 믿음이 성령 하나님께서 증언하시는 것이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이 직접 주시고 증언하시는 이 세상 어떠한 약속보다 더욱 강력한 약속이다.
이러한 믿음이 바로 세상을 이기는 믿음이다.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1. “물”만 바라는 신앙은 올바르지 않다.
1. “물”만 바라는 신앙은 올바르지 않다.
(1) “물”의 의미
“물”은 예수님이 받으셨던 세례였다. 예수님의 세례를 시작으로 예수님의 사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하늘이 열리고 예수님은 모든 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나님께서 직접 하나님의 가장 사랑하는 아들임을 말씀하시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3장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세례를 받은 장면을 우리는 “하늘 대관식”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즉 예수님이 하나님의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시며, 세상의 왕이심을 공식적으로 기름부음받는 자리이다.
세상의 왕으로 인정을 받았으면 예수님이 승리하셨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확실해진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물의 세례로 인한 영광만이 우리가 믿는 바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2) “피”의 의미
본문은 명확하게 수난의 피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십자가의 죽음이다.
예수님의 피 흘리심은 그의 생명을 희생하심이었다.
오늘 성경은 “십자가의 피 흘림”이 곧 우리가 믿어야하는 바라고 말하고 있다.
(3) 우리는 “물”만 바라고 “피”는 기피하지 않는가
우리는 영광의 “물”은 가지고 싶어한다. 예수님께서 받으셨던 그 영광은 함께 누리고 싶어한다.
그러나 결코 우리는 희생의 “피”는 흘리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독교의 믿음은 두 가지 모두 성령님께서 친히 증언하신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의 왕이라는 사실과 동시에 그 왕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서 희생당하시고 피흘리셨다는 사실이다.
기독교가 세상 속에서 승리하는 믿음의 방식은 예수님께서 이미 승리하셨으되 그 승리의 방식이 희생과 사랑의 방식이었다는 믿음이다.
“승리한다”라는 개념 속에 우리는 마치 적을 무찌르고 짓밟고 더 우위의 위치에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마치 이순신 장군 영화에서 이순신이 많은 일본군 선함을 부수고 승리하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기독교의 진정한 승리는 십자가에서 완성되었다. 희생하는 사랑으로 상징되는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진정한 승리를 이루어내셨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승리는, 우리가 믿는 승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세상 속에서 어떤 승리를 거두어야 하는가? 어떤 것이 진정한 승리인가? 바로 우리가 완벽히 승리했다는 소망과 동시에 세상에서 희생의 사랑으로 그 승리를 실천해내는 믿음이 필요하다.
세상의 관점에서 희생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자신의 이익을 최대한으로 챙기는 것이 세상의 목적이다.
그러나 자신의 이익을 최대한으로 챙기는 것은 그들에게 무엇을 주는가? 세상의 사람들은 사실 예수님께서 이미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성취된 모든 것들을 바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세상의 왕이 되며, 세상의 모든 것들을 소유하길 간절히 바란다. 그렇기 때문에 아주 작은 이익들을 모으고 모아서 다 가지고 싶어하고 그것을 위해 살아간다.
그러나 그것들을 이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주셨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이미 우리의 영혼의 평안을 다 누릴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희생은 절대 따르고싶지 않은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희생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따르지 않으면 아무리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살아도 절대로 세상의 모든 것을 극복해낼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죄로 인한 죽음을 결국 이겨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을 어떻게 극복하셨는가? 부활하심으로 이겨내셨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부활이 없으면 평범한 종교입니다. 이집트의 쿠푸왕은 30년 동안 10만 명을 동원하고 2.5톤 바위를 230만개 쌓아서 위 대한 피라미드를 남기고 이슬람의 모하멧도 화려한 무덤을 중국의 진시왕 도 꺼지지 않는 천연가스로 만든 등불을 거대한 무덤을 만들었고 공자 맹 자 위대한 왕과 정복자들도 큰 무덤과 화려한 무덤을 남기고 자랑하고 있지만 기독교는 초라한 빈 무덤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결국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렇습니다. 큰 권력, 부를 가지고 그것으로 죽음을 면하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어떤가요? 빈 무덤만을 자랑합니다. 무덤이 비어있었지만, 즉 무덤에 번쩍이는 금은보화, 수많은 권력을 상징하는 무덤은 아니었지만 무덤이 비어있었습니다. 부활했다는겁니다.
그리스도는 무엇을 하셨는가?
그리스도는 무엇을 하셨는가?
1. 그러나 그의 죽음은 오히려 생명이었다.(11-12절)
1. 그러나 그의 죽음은 오히려 생명이었다.(11-12절)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은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소유하려고 노력해도 얻을 수 없었던 생명을 우리에게 허락하신다.
‘그가 오신 이유’라는 찬양 가사에 이런 가사가 나온다.
“그가 이 땅에 오신 이유 죽어야 다시 살고, 져야만 승리하는 놀랍고 영원한 신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죽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것은 다시 살기 위해서였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지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것은 승리하기 위해서였다.
예수님은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승리를 안겨주신다.
세상은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해하고 그것을 믿는다. ‘물’의 영광 뿐만 아니라 ‘피’의 희생이 바로 그리스도의 승리하는 사랑의 방식이라는 사실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