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만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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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바꾸는 변화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가운데 나아와서 하나님께 찬양하고 예배드리며 나아갑니다. 이 시간 오직 하나님만 영광 받으시고 오늘 올려드린 찬양이 우리 삶의 고백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간구함으로 간절함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성령 하나님 함께하셔서 위로하여주시고 말씀을 통하여 말씀하셔서 삶의 변화가 일어나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옵소서. 감사하오며 살아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누가복음 19:1-10 입니다. 교독해서 읽으시고 마지막은 같이 읽겠습니다.
누가복음 19:1–10 NKRV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오늘 금요기도회에 나오신 여러분들을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좌우에 계신 분들과 이렇게 인사하시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한번 더 인사하실까요? 조금 긴데요. 이렇게 인사하겠습니다. 당신과 예배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모두 돈을 써서 무언가를 가졌거나 노력을 해서 얻은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너무나도 가지고 싶었던 물건이 되었든 쟁취해낸 어떤 것이든 간에 우리는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지기 위해서 부던히 노력을 하곤 합니다. 20,30대의 요즘 소비 트렌드의 키워드를 전문가들은 흔히들 말하는 플렉스 문화가 강하다고 합니다. 모든 청년들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돈을 모아서 호캉스를 가기도 하구요. 한 번 식사에 십만원이 넘는 오마카세를 가기도 합니다. 값이 나가는 태블릿과 노트북을 지르기도 합니다. 진짜 돈 많은 사람이 아니고서야 돈 모아서 날 잡고 하겠죠. 아니면 카드로 할부를 긁어서 할 것입니다. 또 다른 소비의 키워드는 ‘추억’ 이라고 합니다. 기억나시나요? 얼마전에 포켓몬 빵이 유행했었죠? 편의점마다 없어서 못팔 정도 였고, 알바생들이 따로 챙겨놓았다가 주거나 다른 비싼 상품에 묶어서 파는 등 뭔가 지금 생각하면 웃긴 일이 벌어졌습니다. 또 지난달 부터는 어릴때 방영했던 디지몬 어드벤쳐 캐릭터가 나오는 디지몬 빵이 출시했는데 출시 첫 일주일간 25만개 판매되었다고 해요. 결국엔 이것도 가지고자 하는 노력이 없으면 얻을 수 조차 없는 물건이었습니다. 또 다른 키워드는 인스타그래머블이라고 합니다. 인스타를 할 수 있는가?죠. 다들 인스타하시죠? 저도 하는데요. 많은 인스타의 인플루언서들이 사진 찍기 좋은 카페나 음식점, 어떤 장소에 가서 사진 찍고 사진을 업로드 합니다. 인플루언서가 아니더라도 많이들 이쁜 장소에 가서 사진찍고 업로드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발품 팔아서 좋은 장소에 가서 좋은거 먹고 이쁜 사진 찍는 것이죠. 그렇게 하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보면 알 수 있듯이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가치’를 위해서 노력하여 소비합니다.
저도 그러한 노력을 하곤 합니다. 특히 저는 이어폰, 헤드폰과 같은 음향기기나 컴퓨터, 노트북, 태블릿등의 IT제품을 너무 좋아합니다. 그래서 유튜브로 그러한 제품들의 리뷰를 자주 봅니다. 돈 모아서 사기도하구요. 카드로 할부를 끊기도 해서 삽니다. 중고로도 많이 삽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부터 이런거 좋아해서 많이 알아보고 사기도 하고 제가 못사지만 주변에 이런거 좋다 추천해주기도 하고 했습니다. 나중에는 이런 것들 살 때 주변에서 많이 물어봅니다. 제가 추천해주는건 실패하지 않는다면서요. 많은 리뷰 시청경력과 구매경험으로 인한 것이죠. 저한테 물어보시면 잘 알려드립니다. 아무튼 이렇게 시간쓰고 돈 써가면서 만족도 하고 후회도 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분들은 어떠신지 모르겠으나 저는 무언가 이렇게 마음먹고 살 때는 제 자신의 변화를 바라고 사는 경우도 많습니다. 지금 제가 들고 있는 이 아이패드만 해도 그렇습니다. 이거 사면 여러가지 공부도 열심히하고 이것으로 책도 보고 하겠지? 라고 생각해서 샀습니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제 주변의 몇몇 분들이 이렇게 이야기어요. “나는 이걸로 다양한 것을 해보려고 샀는데 사서 넷플릭스랑 디즈니플러스만 보고 있다.” 그게 나쁘다고는 이야기 못하지만 처음 의도와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또 무언가 물질이든 시간이든 소비를 하고나면 처음에는 굉장히 좋았다가 조금 지나면 이미 질려서 그 때의 행복감은 못느낍니다. 제가 그렇습니다. 뭔가 좋은 것을 사면 굉장히 행복할 것 같지만 그 때 뿐입니다. 무언가를 사거나 하기 위해서 노력해서 쟁취해 내도 행복은 그때뿐이고 무언가를 가져서 내 자신이 변하고 더 좋아지길 원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하기도 하고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보통은 다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구태여 이것을 언급하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영원한 행복과 진정한 변화를 가져다 주는 가치 있는 만남을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이 체험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주일학교 부터 교회를 다니신 분이라면,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본문입니다. 예수님을 보고 싶었지만 키가 작아서 나무 위에 올라갔던 삭개오가 나오는 본문이죠. 여러분들은 아실지 모르겠는데 주일학교 때 자주 불렀던 찬양도 있습니다. ‘엉금엉금 뽕나무 위에 키작은 삭개오, 예수님이 부르셨어요. 키작은 삭개오’ 오늘 설교준비하다가 갑자기 생각나서 틀었다가 굉장히 추억 돋았습니다. 아 이것도 일종의 추억소비일까요? (쉬고)
본문 그 당시의 배경을 먼저 알아보자면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유대 이스라엘은 로마 제국의 손에서 식민지 살이를 할 때입니다. 식민지에서 로마는 무엇을 받았을까요? 당연히 세금이었습니다. 일종의 통치해주는 대가로 반강제로 세금을 받아갔는데, 세금을 걷기 위한 세리들이 있었습니다. 세리들은 유대인들에게서 돈을 걷어서 로마에게 가져다 바치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세금을 걷었던 세리들도 같은 유대인들이었어요. 예전에 일제강점기 때로 치면 한국사람을 일제의 앞잡이로 세운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니 어땠겠습니까? 당연히 민족의 등꼴이나 빨아먹는 악덕 관리로 보였을겁니다. 실제로도 세리들은 과도한 세금을 거둬들여 그 차익을 자신이 챙겼습니다. 이 세리에도 종류가 있었습니다. ‘갑바이’라는 세리와 ‘목케스’라고 불리는 세리가 있었습니다. 갑바이는 일반적인 수입세를 거둬들이는 세리였고, 목케스는 세관에서 관세를 받는 세리였습니다. 전자보다는 후자가 더욱 악질적으로 세금을 징수했는데, 당시 로마사람들은 통행세, 관세, 사용세 등의 간접세라고 불리는 세금을 거두는 일을 경매를 부쳐서 최고 입찰자에게 대행하도록 했습니다. 이러한 세금들은 고정되어 있는 세율이 아니었기 때문에 부당한 세금을 걷을 수 있는 방법이 아주 차고 넘쳤던 것 같습니다. 또 이렇게 임명된 세리는 로마로부터 세금 징수에 대한 봉급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원래 내야 할 세금보다 더 많이 세금을 받는 것이 당연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당연하다 하더라도 세금을 내는 유대인들의 입장에선 별 상관없는 일이었을것이고, 세금을 받다보면 자신의 봉급을 정당하게 챙긴다는 목적과는 달리 욕심이 생겨서 많은 이득을 취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목케스 세리에 해당하는게 예수님의 제자인 레위라 불리던 마태였습니다. 그런데 마태는 지금으로 치면 일개 평사원에 불과한 세리였고, 오늘 성경은 삭개오가 세리장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안그래도 보기 눈꼴시린 세리인데, 그러한 사람들로 부터 커미션, 수당을 받는 세리의 우두머리인 세리장은 어땠겠습니까.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나라를 실시간으로 팔아먹는 매국노들의 우두머리이고, 죄인 중의 죄인이 바로 오늘 등장하는 삭개오입니다. 또 성경은 그가 부자였다고 합니다. 그는 원래도 부자였을 거에요. 경매로 따야하는 직종의 책임자였으니 이미 재산은 많았을 것이고 부당한 이득으로 재산을 엄청나게 불렸을 겁니다.
1절에 보시면 예수님께서는 삭개오가 살던 여리고를 지나가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날 일어날 일을 이미 알고 계셨고, 여리고에서 머무고자 하셨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님을 보고 싶어합니다. 성경은 삭개오가 왜 예수님을 보고 싶어했는지 자세히 기록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짧게 ‘어떠한 사람인가’ 하고 보고 싶어했다 라고 쓰고 있죠. 이미 당시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을 고치고 기적을 일으키심으로 소문이 나서 굉장히 유명해져있는 상태였습니다. 아마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유명 인사를 보고 싶은 호기심에 지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그저 유명 연예인 보러가는 기분이었겠죠. 가까운 곳에 지금 유명한 아이돌이 와서 무료로 게릴라 콘서트를 한다고 하면 가서 보고 싶잖아요? 아마 별 생각 없이 그냥 그런 가벼운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점점 삭개오가 있는 곳으로 오십니다. 근데 삭개오는 보고 싶은데 장애물이 두 가지 있었어요. 3절입니다.
누가복음 19:3 NKRV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일단 잘 아시듯이 키가 작았다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려든 것입니다. 일단 키도 작은데 사람들이 많이 몰려드니 앞을 가려서 볼 수 없었습니다. 만약 그가 사람들에게 인망이 있고 주변인들과 잘 지내던 사람이었다면 사람들이 그냥 앞으로 보내줬을 것 같아요. 비켜달라고 이야기 해봐도 사람들이 그의 말은 투명인간 취급하면서 안듣고 무시했을 수도 있고, 애초에 삭개오 본인이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을 알아서 말 조차 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너무 보고 싶었던 삭개오는 기지를 발휘합니다. 예수님이 걸어가시는 방향 앞쪽으로 달려가서 거기에 있던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갑니다. 성경에서 이 나무는 이곳에서 단 한번 등장하는데요. 중동 일대에서 자라는 뽕나무와 비슷한 이 나무는 우리가 아는 맛있는 오디를 맺지는 않지만 나무기둥이 짧고 가지가 넓게 뻗어서 올라가기 아주 쉽습니다. 키가 작았던 삭개오라도 충분히 오를 수 있는 나무였죠. 그렇게 삭개오는 그렇게 까지 하면서 만나고 싶었던 예수님과 대면합니다. 5절입니다.
누가복음 19:5 NKRV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만나고 싶었던 연예인과 갑자기 독대하게 됩니다. 생각지도 않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말을 걸어오십니다. 그냥 보려고만 했는데 삭개오 입장에서는 빅이벤트가 벌어지는거죠. 말도 걸어주셨는데 갑자기 자신의 집에 오겠다고 하십니다. 이때의 삭개오의 기분을 상상해 보면 무슨 느낌이었을까요? 주변에 있는 아무도 나랑 안어울려주는데 갑자기 슈퍼스타가 우리집에 찾아온다고 합니다. 저 같으면 처음엔 무슨 상황인지 분간이 안되서 벙쪄가지고 한참을 생각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삭개오는 의외의 강심장이었나봅니다. 뒤도 안돌아보고 그냥 내려옵니다. 급하게 내려와서 “네 가시지요” 하고 바로 예수님을 자신의 집으로 즐겁게 맞이합니다. 그냥 삭개오는 예수님 얼굴만 보고자 했는데 예수님은 삭개오의 이름을 부르시고 삭개오에게 다가오셨습니다. 주님께 나아가서 주님의 얼굴을 보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이 기대했던 것보다 더 큰것을 누리게 됩니다. 내가 어떤 것을 기대하고 무언가를 샀다가 후회하는 것과는 달리 오히려 기대보다 큰 것을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삭개오에게 이름을 물어보시지도 않고 삭개오야라고 부르십니다. 누군가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는 것은 굉장히 기분 좋은 일이죠? 삭개오는 볼 것도 없이 외톨이였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런 그를 이름으로 불러주는 사람이 있었을까요? 그냥 고용된 하인들에게 주인님 정도 불러지는게 일상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번 보고는 싶었지만 생판 모르는 사람이 다가와서 이름을 불러줍니다. 삭개오는 거기서부터 큰 위로를 얻었을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택하신 백성들의 이름과 상황을 모두 아십니다. 그렇게 부르십니다. 이렇게 불려진 그리스도인의 반응은 어떠해야 할까요? 내려오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급히 내려오는 삭개오처럼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낮은 곳으로 내려와야합니다. 삭개오가 한 것처럼 지체 말고내려와야합니다. 삭개오는 그래도 꽤 높은 관리였습니다. 나름 자기가 높다고 생각하고 허영심과 교만에 가득차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그는 변했습니다. 낮은 곳으로 급하게 내려와서 자신을 겸비하여 나아가야합니다. 주님을 진정으로 만난 사람의 반응은 이렇습니다. 주님 앞으로 겸손하게 나아가야합니다. (쉬고)
삭개오는 기뻐하면서 자신의 집으로 예수님을 모십니다. 이 때 사람들이 삭개오와 다정하게 인사하고 그의 집으로 들어가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수근거립니다. 7절 같이 읽으시겠습니다
누가복음 19:7 NKRV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그렇습니다. 그들이 보기에는 삭개오는 죄인 중의 죄인이었습니다. 상종 못할 사람이었던거죠. 그런데 그 엄청난 죄인의 집에 예수님께서 그가 권한 것도 아닌데 그에게 직접 말하셔서 묵으러 가십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사고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부정한 죄인과 어찌 같이 식사하고 그 집에서 잠을 청할 수 있는가. 그들에게는 정말 비상식적인 일이 그들의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의 바탕에는 자신들은 저 사람과 같지 않고 난 깨끗한 사람이다. 난 죄인이 아니다. 라는 것이 깔려있었습니다. 아니요. 그들 모두 죄인입니다. 오히려 그 자리에서 저기 저 삭개오를 섣불리 죄인이라고 판단하고 비난하는 죄를 실시간으로 짓고 있습니다. 그들도 모두 예수님을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대면한 삭개오는 겸손하게 주님 앞으로 나아갔지만, 저 사람은 죄인이고 나는 아니라고 생각했던 무리들은 교만했습니다. 예수님을 보긴했지만 그냥 눈으로 봤을 뿐 만나지는 못한 것입니다. 그들은 삭개오와 달리 변화되지 못했습니다. 다같은 죄인이었지만 그 자리에서 구원을 얻은 것은 그들이 죄인이라고 생각했던 키작은 삭개오였습니다. 여러분 구원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겸손해야만 합니다. 어떤 사람을 보면서 저 사람은 안될꺼야 저 사람은 나보다 더 죄인일꺼야라고 은연중에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게 쉽지 않죠. 앞에 서 있는 저도 그렇습니다. 저도 오랫동안 교회생활을 해왔고 그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저기 삭개오를 비난했던 군중들과 다르지 않은 교만입니다. 우리는 원래 의인이 아니었고 이렇게 예배드릴 자격조차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 우리를 의인이라고 칭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구원받았고 의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쉬고)
삭개오는 예수님을 집으로 영접한 뒤에 예수님께서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는데 갑자기 뜬금없이 이렇게 말합니다. 8절입니다.
누가복음 19:8 NKRV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이야기하시지도 않았는데 예수님께서 자신의 집에 오신것에 대한 감사표현으로 자신의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속여서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배로 갚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자신의 죄를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이미 행한 잘못들을 고치기 원합니다. 삭개오가 하겠다고 한 이 두가지 행동들은 당시 세리들에 대해 갖고 있던 사회 전반적인 인식의 정반대의 행동입니다. 오히려 자신이 경건하다고 여기는 사람들보다 더합니다. 먼저 삭개오가 자신의 재산의 절반을 판다고 했던 내용을 보면 당시 유대사회에서는 자신의 소유의 20퍼센트를 나누어주면 자비롭고 관대한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것의 2배보다 많은 양을 내놓겠다고 했습니다. 삭개오가 부자라고 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가히 천문학적인 액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네 배나 갚겠다고 한것은 이렇습니다. 출애굽기 22:1 입니다.
출애굽기 22:1 NKRV
사람이 소나 양을 도둑질하여 잡거나 팔면 그는 소 한 마리에 소 다섯 마리로 갚고 양 한 마리에 양 네 마리로 갚을지니라
그는 자신이 돈을 부당하게 취했지만 이것을 엄청난 액수였던 소나 양을 뺏은 것처럼 생각하고 그들에게 갚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삭개오는 그냥 해야되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된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의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삭개오의 모습은 화려한 제사는 드리면서 공의와 정의를 행하지 않았던 포로로 잡혀가기전 유대인들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이러한 삭개오의 모습은 전장인 18장에 등장하는 어떤 부자 관리와는 다른 모습입니다. 그는 자신이 어려서 부터 계명도 잘 지키며 경건하게 살았는데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라고 하셨고 그 부자 관리는 근심하며 돌아갑니다. 하지만 삭개오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정확히 인식하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을 돕겠다고 합니다. 그것도 일반적인 액수보다 훨씬 크게. 이것이 주님을 진정으로 만난 사람의 반응입니다.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냐면 자신의 우선순위를 바꾸게 됩니다. 그 어떤 것보다 1순위였던 재산이 후순위로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그에게 중요하게 된 것은 그것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도 하지 못했고 경건한 부자관리도 못했지만, 삭개오는 했습니다. 주님을 만나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쉬고)
그러한 삭개오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라고 선언하십니다. 세리장으로서 자신의 동포들을 수탈했던 삭개오는 자신의 민족적, 종교적 정체성에 대해서 심히 고민했을 것입니다. 그러한 삭개오에게 예수님은 너는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이다.라고 선언하십니다. 이것은 바울이 믿음의 자녀라고 부르는 그런 아브라함의 자녀입니다. 갈라디아서 3 장 7절입니다.
갈라디아서 3:7 NKRV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고민을 하고 있는 삭개오에게 너는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믿음의 자녀이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천국백성이야라고 선언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정체성을 주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받는 천국백성이야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사명을 주십니다. 10절에 보시면 주님이 오신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서 구원하려 하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주님의 사역의 본질입니다. 주님을 머리로 하는 몸된 교회된 우리들의 비전의 본질은 주님의 사역의 본질과 같아야합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세리장 삭개오처럼 잃어버린 사람들, 배척된 사람들을 그냥 그대로 방치된 채로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찾아 회복시키는 도구가 되어야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삭개오는 주님을 만나고자 하는 열망으로 나무에 올라갔고 주님을 만나서 변화되어 주님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를 알았습니다. 주님을 만나면 분명히 변화됩니다. 그것이 오늘 삭개오처럼 엄청 클수도 있지만 그 변화가 작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분명히 변화된다는 사실입니다. 그 변화는 주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의 우선순위의 1순위가 다른 어떠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되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변화된 하나님의 사람은 주님을 사랑하는 다른 사람도 사랑합니다. 변화된 삭개오 처럼 주님을 그 어떤 것보다 사랑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이시간 말씀을 생각하면서 찬양하실텐데요. 주님 만난 날이라는 찬양입니다. 생소한 찬양일 수 있지만 어린이 찬양이라서 아주 쉽습니다. 같이 가사를 생각하시면서 찬양하시겠습니다.
기도
이 시간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겠습니다.
첫번째 기도 제목입니다.
주님을 만나 변화된 삭개오처럼 삶에 방향성이 올바르게 되는 진정한 변화가 있어서 주님을 사랑하게 하옵소서.
주님을 만난 사람은 삭개오처럼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삶의 변화가 있게 됩니다. 주님 내가 더욱더 주님 사랑하기 원합니다라고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2. 다른 사람을 판단하며 교만했던 마음을 용서하여 주시고, 이웃들을 더욱 사랑하게 하옵소서.
삭개오를 판단했던 군중들은 주님을 보긴 했지만 주님을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수근거렸습니다. 그런 교만을 내려놓고 겸손하게 하시고 더욱더 이웃들을 사랑하게 하옵소서, 아프고 힘든 사람들을 위로하게 하옵소라고 같이 기도하시면서 나아가겠습니다.
3. 내 삶의 우선순위가 다른 것이 아닌 오직 주님 한분이 되게 하옵소서.
진정한 삶의 변화는 우리의 삶의 우선순위를 뒤바꿉니다. 주님의 말씀에 아멘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라고 같이 기도하시면서 나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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