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Tone Analysis

Overall tone of the sermon

This automated analysis scores the text on the likely presence of emotional, language, and social tones. There are no right or wrong scores; this is just an indication of tones readers or listeners may pick up from the text.
A score of 0.5 or higher indicates the tone is likely present.
Emotion Tone
Anger
0UNLIKELY
Disgust
0UNLIKELY
Fear
0UNLIKELY
Joy
0UNLIKELY
Sadness
0UNLIKELY
Language Tone
Analytical
0UNLIKELY
Confident
0UNLIKELY
Tentative
0UNLIKELY
Social Tone
Openness
0.3UNLIKELY
Conscientiousness
0.27UNLIKELY
Extraversion
0.54LIKELY
Agreeableness
0.6LIKELY
Emotional Range
0.29UNLIKELY

Tone of specific sentences

Tones
Emotion
Anger
Disgust
Fear
Joy
Sadness
Language
Analytical
Confident
Tentative
Social Tendencies
Openness
Conscientiousness
Extraversion
Agreeableness
Emotional Range
A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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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6
.6 - .7
.7 - .8
.8 -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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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기억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 볼 빌립보서는 교도서에서 작성이 되었어요.
사실 교도소라고 하기에는 조금 애매하긴 해요.
왜냐하면 지금 바울은 로마의 한 가택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죠.
물론 감금되어 있고 그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집 밖으로 나갈 수 없어요.
그냥 그 집에서 계속해서 살아야 하는 상황이에요.
갇혀 있는 것이죠.
여러분 대부분 코로나에 걸렸을텐데, 자가 격리 할 때 어땠어요?
편했어요?
저는 자가격리 할 때 잘 수 있어서 좋기는 했는데 힘들었어요.
좀이 쑤시더라구요.
집에서 탈출 하고 싶었어요.
부산에서 동선이 겹쳐서 아프지도 않은데 일주일 동안 집에 갇혀 있었을 때는, 저도 모르게 창문 밖에 걸어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더라구요.
내 의지로 집 밖에 나가지 않는 것과, 자유를 박탈당해 나가지 못하는 것에는 굉장히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그 때 알았어요.
바울도 마찬가지에요.
그 스스로의 선택으로 집에서 나오지 않으면서 빌립보서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박탈 당항 상황이에요.
만약 정말 갑자기 전쟁이 터지거나 말도 안되는 상황이 생겨서, 여러분이 집에 갇혀야 한다면 어떨 것 같아요?
문 앞에서 누군가가 총을 들고 서 있는거에요.
문을 열고 나가면 쏴죽이거나 혹은 매질을 하려고 사람이 서 있어요.
아무런 자유가 없어요.
심지어 스마트 폰도 없고 노트북도 빼앗겼어요.
넷플릭스, 디즈니, 티빙, 왓챠 아무 것도 못봐요.
여러분이라면 쉽게 버텨 낼 수 있을 것 같은가요?
생각만해도 좀 끔찍하지 않은가요?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에 올드보이라는 영화가 개봉을 했었어요.
이 영화의 주인공이 술이 거하게 취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누군가에게 납치를 당해요.
그리고 사설 감금방에 갇혀서 나오지 못하게 되어요.
이만큼 술이 위험합니다.
여러분.
약 8평이라는 제한 된 공간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딱 하나 작은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었어요.
그렇게 1년이 지날때 쯤 뉴스를 통해 아내의 살해소식을 듣게 되었고, 그 살인범으로 자신이 지목되었따는 것을 알게 되어요.
허탈함과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지만 그 것도 실패했어요.
그 이후 주인공은 복수를 위해 체력을 단련하고 자신을 가둘만한 사람들을 다 떠올리면서 이름을 다 기록해요.
이 주인공은 갇혀진 그 공간에서 복수를 계획했어요.
자신이 왜 갇혔는지조차 파악 할 수 없었어요.
아내를 죽인 살해범이 자신이 되어버렸어요.
그래서 그에게 남은 것은 이제 복수하는 것 뿐이었죠.
저는 바울도 어쩌면 비슷한 느낌을 가지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저는 모르고 잡혀서 고통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정말 힘들지만, 그 이유를 아는데 잡혀서 감금 당하는 것이 더 마음이 힘들고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거든요.
바울은 자신이 정말로 사랑하는 그래서 목숨을 바쳐도 아깝지 않을 대상인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다 붙잡힌 거에요.
그가 사람들을 괴롭히거나 예수를 팔아 사기를 쳐서 큰 돈을 벌었다는 등 나쁜 행동을 한 적이 없어요.
그저 자신이 사랑하는 예수님.
진리 그 복음을 전했을 뿐인데 잡혀서 지금 감금을 당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 감금의 끝은 기한이 지나면 풀려나는 것이 아니에요.
판결의 끝은 바울의 죽음을 가리키고 있어요.
예수님을 전했을 뿐인데 잡혀서 감금 당했고 이제 곧 죽게 되었어요.
올드보이의 주인공보다 훨씬 더 비참하지 않았을까요?
바울이 잘못한 것 하나도 없는 상황이잖아요?
감금되어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그에게 기쁨과 소망이 있을까요?
예수님이 원망스럽지 않았을까요?
여기에서 풀려 날 수 있다는 소망이 있었을까요?
그런데 그 가택연금 속에서, 그 어떤 기쁨과 소망을 찾아 볼 수 없는 그 상황 속에서 “기뻐하라"고 사람들에게 12번이나 말하고 있어요.
만약 그가 자신 스스로는 전혀 기쁘지 않으면서, 기뻐하라! 라고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라면 반드시 티가 날거에요.
가짜 기쁨은 절대 오래가지 않거든요.
그런데 빌립보서를 쭉 읽어보면 “기뻐하라"라는 이 말이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기 위한 어떤 “정신 승리적인 말"이 아니라 진짜 기뻐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말임을 우리는 알게 되어요.
바울은 그 당시의 빌립보 교인들에게도 그리고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동일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어요.
“기뻐하라"
외부 환경에 어떠하던지, 너의 마음 속에 계시는 그 성령님으로 인해 기뻐하라.
전혀 기뻐 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해서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네 안에서 쉬지 않고 일하시는 성령님의 능력과 기쁨을 찾으라.
우리 가온누리가 진정한 Joyful Community가 되려면, 여러분 스스로가 예수님 안에서 기쁨을 찾고 먼저 즐겨야 해요.
그래야 겉바속촉의 공동체가 될 수 있어요.
우리가 어떤 음식을 먹을 때 “완전 겉바속촉"이다 라고 하면 기대감을 갖게 되잖아요?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외부에서 보았을 때 “이 공동체 뭔데 저렇게들 웃음이 넘치지?” 하는 굉장히 기대감을 주고, 실제 들어왔더니 정말 촉촉하고 꾸덕꾸덕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그러한 공동체가 되어야 해요.
좋은 기억
바울은 감금 된 그 곳에서 저 멀리 떨어진 빌립보 교인들을 생각하며 펜을 들고 편지를 써내려가고 있어요.
바울은 빌립보와 관련된 것만 보면 빌립보 교인들을 떠 올렸어요.
그들과 함께 했던 그 모든 순간들이 정말 행복했어요.
어떤 후회도 남지 않을만큼 서로에게 진심으로 대했고, 나쁜 감정도 남지 않았고, 해결되지 않은 감정의 갈등도 없었던 공동체가 바로 빌립보 교회였거든요.
10년 전에 1차 선교여행에서 관계를 맺게 되었던 그들 그리고 마지막 3차 여행 때 다시 만났던 그들이었어요.
그만큼 다시 만날 날을 기다렸던 사람들이었어요.
시간이 흘러서 그 때의 기억들이 미화되어서 보고 싶고 기다려졌던 것이 절대 아니에요.
그 사람들이 너무 좋았고, 그들도 바울이 너무 좋았어요.
왜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생각 할 때마다 기쁘고 설렜을까요?
여러분은 가온누리를 생각 할 때 어떤 생각 마음이 드나요?
바울이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가 5절에 기록되어 있어요.
“첫 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했다.”
빌립보 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그 순간부터 한 순간도 삶을 소홀히 살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사실 이렇게 매일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 어려워요.
못해요.
할 수 없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립보 교인들이 어떤 상황이던지 간에 감사하려 하고, 기도하려 했어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배척 당하고 밀려나고, 또 무조건 양보해야 하고 온갖 불이익을 다 받고 있는 그 사람들이, 그럼에도 감사합니다.
라고 고백하는 모습이 굉장한 충격으로 바울에게 다가 왔던거에요.
저는 여러분에게 이런 공동체가 되자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에요.
이런 공동체가 된다는 것은 사실 거의 100% 불가능에 가깝거든요.
바울이 정말로 빌립보 교인들에게 단 한개도 실망 한 것이 없었을까요?
빌립보 교인들이 바울의 모든 것이 다 마음에 들었었을까요?
여러분은 제가 다 마음에 드나요?
저랑 맞지 않다 라고 생각하는 청년들도 있을 것이고, 혹은 말씀이 나와 잘 맞지 않는다 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을거에요.
저라고 여러분이 다 마음에 들까요? 아 전 여러분이 너무 좋고 사랑스러워요.
다 음.. 마음에 들어요.
서로가 서로에게 100% 만족하는 관계는 거의 없어요.
있을 수 없을거에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바울과 빌립보와 같은 관계가 되자고, 그런 공동체가 되자고 말하고 싶은 것이 절대 절대 아니에요.
바울은 그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열심을 알고 있었어요.
6절을 보면 “이루실 줄"이라는 표현이 있어요.
바울은 확신하고 있었어요.
“이루다" 계획과 목표를 따라 결실을 맺을 하나님을 그는 믿고 확신하고 있었어요.
하나님께서 이 빌립보 교인들을 영적으로 성장 시키고 계신다.
이제 막 신앙을 갖게 되었고 정말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이들을 본인의 사역에 참여하게 하셨다.
함께 팀플을 하자고 제안을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니, 이 것을 이끌고 가서 목표를 이루어 내실 것이라 내가 확신한다! 라는 그 믿음이 있었어요.
하나님의 열심이 있는 한 이 공동체는 무조건 기쁨의 공동체가 될 것이다! 라는 그 무한한 확신이 있었어요.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에나르초마이.
대단히 엄숙하고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내가 진지하게 말한다.
하나님은 반드시 이 목표를 이루어 내신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셨기 때문이다.”
에나르초마이.
개시했다.
하나님께서 주도하신다.
에나르초마이.
모든 것은 하나의 길로 향하게 된다.
그 계획에는 하나의 오점도 없으며, 반드시 완벽하게 이루어 질 것이다.
바울은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하나님"이기 때문에,
우리의 삶에 굴곡이 있고 웃을 수 없는 상황이 분명 존재하겠지만,
궁극적으로 우리 모두는 그 안에서 기쁨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라고
그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분명하고 강력하게 말하고 있어요.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 함께 하고 계시며, 인생을 이끌어가고 계시는 그 분을 정말로 믿고 신뢰하나요?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은 “에나르초마이!”라고 지금 이 시간 고백해야 해요.
바울은 루디아 라는 여인을 만나요.
그리고 그녀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라고 말했던 바울의 말을 그대로 받아드리기로 마음 먹었어요.
별거 안했어요.
“에나르초마이!”
나는 아직 하나님 당신이 누구인지 잘 모르지만, 한 번 믿어보겠습니다.
아직 진짜 확신하지는 못하겠지만 “내 마음을 열어보겠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열은 루디아를 통해 하나님은 선한 일을 시작하셨고, 루디아의 집에서 처음으로 예배를 드리게 되었어요.
그리고 확신 할 수 없으나, 나를 사랑하신다고 하는 그 하나님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열었던 그녀를 통해,
빌립보에 교회가 세워졌고 많은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게 되는 놀라운 일이 생기게 되었어요.
단 한 사람.
그 여인의 순종.
그리고 에나르초마이!라고 하는 그 고백을 통해서 말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기쁨의 공동체는 어떤 특정한 사람만을 통해 세워지지 않아요.
나라는 한 사람이 예수님을 향해 마음을 열 때,
나라는 한 사람이 예수님과의 교제를 회복 할 때,
나라는 한 사람이 에나르초마이!
라고 고백할 때,
그 모든 고백이 모여 기쁨이 넘치는 공동체가 될 수 있는거에요.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통해 이 가온누리를 기쁨의 공동체로 만들기로 작정하셨어요.
그렇게 만들기 위해 이미 열심을 내고 계셔요.
우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그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절대 포기하지 않으실거에요.
저는 노션이라는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저의 하루, 한 주의 계획표를 정리하고, 모든 회의를 기록하고, 묵상하는 내용들을 정리하고 있어요.
그리고 저는 계획표를 지워나가며 제가 해야 하는 일들을 하나씩 하고 있어요.
대부분 비슷 할 것이라 생각해요.
무엇이 되었던 계획대로 혹은 순서대로 일들을 진행 하고 있을거에요.
그 것처럼 하나님도 하나님의 스케쥴에 따라 일하고 계셔요.
우리 옆에 달아둔 하나님의 스케쥴에 따라 열심을 내며, 일을 이루어내기 위해 지금도 빡씨게 달리고 계셔요.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위해 계획 해 놓은 일. 그리고 가온누리를 기쁨의 공동체로 만들겠노라는 그 분의 계획은 절대적으로 이루어질 거에요.
손상되지 않고, 완벽하게 실행 될거에요.
하나님은 파이팅만 불어놓고, 일만 벌려놓고 말을 쏙 빼지 않으실거에요.
본인이 시작한 착한 일을 반드시 마무리 지으실거에요.
우리는 그 일들이 마무리 되어 가는 현장 위에 서 있는 존재들이에요.
비록 저와 여러분은 변덕스럽고 불안정적인 존재라서 믿지 못하고 흔들리고 다른 생각을 갖겠지만요.
하나님은 완전한 존재이기에 반드시 기쁨의 공동체를 이 땅 위에 우리를 통해 이루어 내실 거에요.
그렇게 하기로 먹은 마음을 절대 돌이키지 않을거에요.
복음과 하나가 되다
하나님이 그렇게 마음을 먹고 열심히 달리고 계신다면 우리도 그에 맞춰 움직여야 해요.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이 가온누리를 기쁨의 공동체로 세우기 원한다는 것을 믿고 “에나르초마이!”라고 외쳤다면, 이제 우리는 그 것에 대한 확신을 갖고 살아야 해요.
“에나르초마이!”
나는 아직 하나님 당신이 누구인지 잘 모르지만, 한 번 믿어보겠습니다.
아직 진짜 확신하지는 못하겠지만 “내 마음을 열어보겠습니다.”
라고 한 고백을 지키기 위해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해요.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삶의 그 모습을 기쁘게 받아 주실거에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삶을 통해 내가 그것을 믿고 신뢰하고 있음을 증명"해 내야 해요.
증명 해 내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어요.
첫째,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진리임을 세상에 보여주는 것이에요.
5절과 7절을 보면, 저와 여러분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 한 사람이면서 동시에 복음을 변명하고 확정함에 참여한 사람이다.
라고 말하고 있어요.
“참여”라는 이 말은 저와 여러분이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 소유권자이다.
라는 뜻이에요.
저와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해서" “공통의 목표" 진리를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해요.
지하철에 가서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라는 것이 아니에요.
그저 여러분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그 무엇인가를 통해,
나의 삶의 결을 통해 진리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노래하면 되는거에요.
노래를 부르면, 그 곡의 분위기에 따라 나의 감정이 변하는 것처럼,
진리를 붙들고 있는 삶이 얼마나 기쁜 지를 삶의 노래로 보여주세요.
둘째, 내 삶의 노래를 통해 경험한 하나님의 기쁨을 버디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에요.
내가 한 주간 살면서 경험한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것. 나의 삶을 상대방과 나눈다는 것은 정말 굉장한 일이에요.
내 믿음을.
그리고 너의 믿음 우리의 믿음을 더 강하고 튼튼하게 맺어주는 것이 되기 때문이에요.
살다보면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게 말이 돼?”
“왜 하나님은 나만 힘들게 해?”
혹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
내가 믿고 있는 진리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되는 순간들이 있을 때가 있죠.
바로 그 때 나의 기쁨의 고백이.
상대방의 기쁨의 고백이 흔들리는 믿음을 붙들어 주는 역할을 하게 되는거에요.
우리를 정말 더 강한 그리고 정말 은혜의 기쁨을 누리고 경험하게 해줄거에요.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내가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어야 해요.
은혜를 나누면 나룰수록 우리의.
나의 기쁨은 커지게 되어요.
셋째, 포기하지 않고 상대방을 기다려주는 것이에요.
하나님은 여러분이 다시 이 자리에 나오도록, 그리고 다시 관계가 회복되도록 끈질기게 기다리고 계셔요.
포기하지 않고 정말 끈질기게 때론 질척거리는 것처럼 우리를 향한 그 마음과 신뢰를 거두지 않고 있어요.
우리를 향해 먼저 사랑을 시작하셨기 때문이에요.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 그 착한 일을 이루어 내실 분.
그 착한 일을 이루어내기 위해 우리에게 끊임없는 은혜와 힘을 공급해주고 계시는 그 분은 우리를 향한 마음과 신뢰를 절대 거둘 수 없어요.
거짓이 없으신 분이기에, 스스로 시작한 이 일을 절대 포기 할 수 없거든요.
그 것처럼 우리도 옆에 있는 나의 버디들, 동역자들을 기다려 주어야 해요.
그 기다림이 나와 옆에 있는 동역자를 성장하게 만들어 줄거에요.
제가 25살 때의 일이에요.
저의 모교회는 매년 여름과 겨울이 되면, 지역 교회를 섬기기 위해 청년들을 주축으로 연합 캠프를 준비했어요.
많이 올 때는 꽤 많은 교회들.
총 800여명이 신청을 했어요.
예배와 모든 프로그램은 교회에서 진행을 하고, 잠은 근처 대학교 기숙사에서 자도록 했었어요.
캠프 준비를 시작 할 때 모든 청년들에게 핫 이슈가 하나 있었어요.
그 것은 바로 "캠프의 메인 건반은 누가 될 것인가?”였어요.
그 때 반주자가 6명 정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 중 한명이 메인 건반이 되는 것이었어요.
6명의 반주자 모두 티를 내진 않았지만 은근히 ‘내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 때 사건이 터졌어요.
그 중 하나가 “메인 건반을 치고 싶다.”라는 야욕을 자신의 싸이월드 다이어리에 기록 한 것이에요.
그리고 그 것을 본 많은 청년들이 “이 사람이 메인 건반이 아니면 누가 될까?” “메인 건반은 그 사람이야"라고 말하고 있었어요.
야욕을 드러낸 그 사람은 사람들이 인정을 하며 여론이 몰려가기 시작하자 싸이월드에 또 글을 올렸어요.
“메인 건반이 아니더라도 나는 예배의 자리에서 섬기겠다.”
아닌 척하면서 굉장히 오글거리는 교만한 글을 쓴 것이죠.
메인 건반주자에 대한 이슈가 점점 더 커져가던 그 때, 청년 담당 목사님께서 그 청년을 부르셨어요.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휘석아.
난 너에게 좀 실망을 했다.
어떻게 너 스스로 그렇게 메인 건반을 치고 싶다는 글을 올리니? 그 글로 인해 지금 많이 시끄러운 것 알지?”
“나는 휘석이가 그 마음을 내려 놓았으면 좋겠어.
하지만 반주를 해도 괜찮아.
다만 잠잠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아.”
이 이야기를 들었던 25살의 휘석이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바로 찬양팀 집사님을 찾아갔어요.
그리고 “저는 이번 캠프 때 반주를 하지 않겠습니다.
그 외 어떤 역할을 시키시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섬기겠습니다.
고민하게 해드려 죄송합니다.”라고
말씀을 드렸어요.
저에게 그러한 말을 해주셨던 분은, 올 여름 필리핀으로 단기 선교를 가게 되면 만나게 될 목사님이에요.
그 목사님께서 이슈가 되자마자 저를 부르셨던 것이 아니에요.
제가 목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수긍 할 만큼 오랜 시간 기다리셨고, 제가 준비가 되었을 때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저는 그 말씀에 어떤 상처도 받지 않고 오히려 나를 걱정해 주신다는 마음을 받았어요.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 착한 일을 이루어 내실 분.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분을 통해 제가 쓸데없었던 욕심을 기꺼이 내려 놓을 수 있도록 성장 시켜 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에요.
저도 여러분도 옆에 있는 모든 동역자들을 기다려 주어야 하고, 품어 주어야 해요.
왜냐하면 내가 기다려주는 것만큼 상대방도 나를 기다려주고 있거든요.
나만 누군가를 기다리고 품어주고 용서해주고 있는 것이 아니에요.
상대도 똑같이 나를 용서하며 품고 기다려주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해요.
첫째,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진리임을 세상에 보여주기
둘째, 내 삶의 노래를 통해 경험한 하나님의 기쁨을 버디들과 함께 나누기
셋째, 포기하지 않고 상대방을 기다려주기
이 세가지를 기억하면서 올 한해를 살아간다면 우리는 반드시, 기쁨의 공동체를 만들어 낼 수 있어요.
가온누리 하면 웃음만 나오고 그 만남이 기다려지는 공동체가 여러분을 통해 세워질 수 있게 될거에요.
어제 우리가 누렸던 기쁨의 교제들과 찬양 콘서트가 우리가 힘든 그 어느 날,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시간이 되길 바래요.
오늘 말씀을 통해, 지친 그 어느 날 나를 사랑하고 품어주고 기다려주는 공동체가 있음에 힘을 얻고 감사함을 고백하는 시간이 주어지기를 소망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전심으로 축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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