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의 축복
〈133:1〉 연합하여 동거함
시작하는 절은 하나님의 백성들(개역개정, “형제”-역주) 가운데 연합하여에서 찾을 수 있는 만족할 만한 기쁨에 경이로워한다. “하나님의 사람들”(아힘[’aḥîm])이라는 구절 배후에 있는 히브리어는 문자적으로 “형제들”이다.
여기서 형제들은 동일한 아버지에게서 나온 자녀를 가리킬 수 있지만, 더 넓은 의미에서 먼 친척과 심지어 긴밀하게 맺어진 사회 또는 동일한 부족이나 국가의 구성원으로 함께 사는 자들을 가리킬 수 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아주 짧은 시기에만 이런 연합을 이뤘으며, 그때도 불완전하게 이뤘을 뿐이다. 분명하게 심지어 연합이 없었어도 연합의 축복을 가르칠 수 있다. 갈등(strife)은 더 많은 힘이 필요하지만, 반면에 평화로운 연합은 공동체가 압박이 덜한 가운데도 공동의 목표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이 협력하면 이들의 노력은 배가된다.
〈2–3〉 얼마나 보배로운가
이 마지막 절들은 연합하여 동거하는 자들이 경험하는 만족할 만한 기쁨의 종류를 표현하는 두 가지 놀라운 직유를 제시한다.
첫째, 대제사장 아론의 머리에 부어 아론의 수염과 심지어 옷에서 흘러내린 보배로운 기름에 관한 것이다. 기름은 이스라엘의 건조한 기후에서 피부를 촉촉하게 하기 위해 널리 사용하지만, 또한 제사장, 왕 그리고 때로 선지자들의 직무에 대해 기름을 붓는 데 사용한다.
기름은 이런 중요한 직위자들이 자신들의 책임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영이라는 선물을 나타냈다.
아론을 선택하여 이미지에 엄숙함을 더하는데, 이는 불안함에서 구원의 의미를 전달한다. 실제로 토라는 아론을 그의 직무에 임명한 것과 그의 머리에 부은 특별한 기름에 대해 말한다(출 29:7, 21; 30:22–33; 레 8:2, 12). 흘러내리는 기름의 그림은 풍요로움을 보여 주며, 또한 아론의 각기 다른 부분, 즉 수염과 옷의 연합함을 시사할 수도 있다.
둘째, 여기저기서 흘러내리는 시원한 액체(이 경우, 이슬)를 그린다. 실제로 아론의 머리에 기름을 부어 수염과 옷에 흘러내리게 할 수 있겠지만, 3절에서 제시하는 상황은 상상의 각본을 그린다.
헐몬 산은 이스라엘에서 유일하게 꼭대기가 눈으로 덮인 높이 솟은 산으로, 나라의 북쪽 경계를 표시한다. 시온은 성전이 위치한 예루살렘의 언덕이다. 먼 북쪽에 있는 헐몬은 강수량이 상당히 부족한 지역인 시온보다 이슬이 더 많을 것이다. 헐몬의 이슬이, 마르고 먼지 많은 시온에 떨어진다는 묘사는 만족할 만하고 행복한 상황일 것이다.
시편 기자는 또한 시온에 주목하게 했다. 시온이 실제로 헐몬만큼 장엄하지는 않을지라도, 세상의 영적인 중심지이다. 그리고 여기서 하나님은 축복을 베푼다.
의미
이 시편은 관찰함으로써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즉 하나님의 백성들(형제들) 사이에 연합(unity)은 만족할 만하며 기쁨을 야기한다. 퍼스(Firth)가 지적하듯이, 시편 기자는 권고할 필요 없이 관찰로 적절한 행동을 촉구한다(Firth 2005:168–169). 만족할 만한 경험(pleasurable experiences)이라는 이미지는 연합을 추구하려는 동기를 강화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 연합을 경험하는 때 이 기도는 우리의 행복을 표현한다. 공동체 가운데 소란의 시기 때 이 기도는 연합에 대한 열망으로 읽을 수 있다. 이 시편의 그리스도인 독자는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기도를 기억한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예수님 당시와 미래의 추종자들)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요 17:2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