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Tone Analysis

Overall tone of the sermon

This automated analysis scores the text on the likely presence of emotional, language, and social tones. There are no right or wrong scores; this is just an indication of tones readers or listeners may pick up from the text.
A score of 0.5 or higher indicates the tone is likely present.
Emotion Tone
Anger
0UNLIKELY
Disgust
0UNLIKELY
Fear
0UNLIKELY
Joy
0UNLIKELY
Sadness
0UNLIKELY
Language Tone
Analytical
0UNLIKELY
Confident
0UNLIKELY
Tentative
0UNLIKELY
Social Tone
Openness
0.2UNLIKELY
Conscientiousness
0.13UNLIKELY
Extraversion
0.44UNLIKELY
Agreeableness
0.6LIKELY
Emotional Range
0.2UNLIKELY

Tone of specific sentences

Tones
Emotion
Anger
Disgust
Fear
Joy
Sadness
Language
Analytical
Confident
Tentative
Social Tendencies
Openness
Conscientiousness
Extraversion
Agreeableness
Emotional Range
Anger
< .5
.5 - .6
.6 - .7
.7 - .8
.8 - .9
> .9
배와 풍랑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동편으로 이동하기 시작합니다.
배에 오르기 전 예수님은 제자가 되려고 찾아 온 사람 둘을 돌려보내셨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묵상하며 참 감사하다.는
고백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나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받아주셔야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가 요청하기도 전에 저를 선택하셨고 제자로 삼아주셨더라구요.
참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2가족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먼저 택하셔서 우리를 제자로 삼아주신 것에 감사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동편으로 이동하기 위해 같이 배에 오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타고 다녔던 배에는 최소 5명에서 최대 16명이 탈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배에는 예수님을 제외하고 최대 15명 정도.
그 분이 제자로 삼아주신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는 것이죠.
배에 오르기 전 많은 무리들을 대상으로 사역하셨기 때문에 굉장히 피곤하셨던 예수님은 배에 오른 후 바로 잠에 빠져듭니다.
그 때 큰 파도와 폭풍이 배를 찾아옵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형적인 이유로 풍랑이 일어나는 것이 꽤나 익숙했기 때문입니다.
이 호수 양 옆에는 800m에 달하는 높은 산들이 산맥을 이루고 있습니다 .
그래서 봄과 가을이 되면 동쪽 산에서 불어내려오는 바람으로 인해 2-3m 파도가 자주 생기곤 했습니다.
풍랑이 불고 그로 인해 물이 배에 들어오는 것은 흔한 일이었습니다.
또 이 배에 탔던 사람들 중 일부는 평생을 어부로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풍랑을 만났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만난 풍랑과 파도가 생각보다 강했습니다.
그들은 두려워하기 시작합니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들을 동원했음에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모두가 긴박하게 움직이고 소리 치고 바람이 불어 배가 출렁이는 그 속에서 정말 혼자 평온한 분이 있었습니다.
누구죠? 네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 정말 너무 너무 피곤하셔서 깊은 잠에 빠져서 옆에 이야기가 들리지 않았던 것일까요?
저는 한번 잠이 들면 옆에서 무슨 소리가 나도 잘 일어나지 못하는데요.
저처럼 예수님도 잠귀가 어두워서 그랬던 것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에게는 확신이 있었던 것이에요.
하나님께서 나를 여기에서 죽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
혹은 죽어도 나는 하나님과 함께이다.
라는 그 믿음의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평온하게 잠을 잘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깨워 “주여 구원하소서!”라고 말합니다.
파도와 풍랑에 익숙했던 그들이었는데, 최대 15명이나 있었는데 한사람도 빠짐없이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적은 자들”이라 말씀하시며 풍랑을 꾸짖으십니다.
그리고 풍랑이 거짓말처럼 잔잔해졌습니다.
여기에서 사용된 “꾸짖다"라는 단어는 귀신을 쫓아낼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예수님은 풍랑을 잔잔하게 만들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위협하고 그 마음에 불안감을 주는 모든 요소들을 꾸짖음을 통해 다 쫓아내셨습니다.
믿음과 두려움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좋지 않은 상황이어도 하나님이 보호하신다는 것을 확신한다면 두려움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됩니다.
사람들은 지금 “풍랑을 꾸짖고 계시는 예수님"을 통해, 내가 지금 함께 하고 있는 분이 누구인지를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는 중에 있습니다.
사실 배에 탄 예수님의 제자들은, 제자들이지만,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나섰지만 아직 예수님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면, 그 분이 메시야라는 사실을 정말로 믿었다면 풍랑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평온하게 주무시고 계시는 예수님을 보며 우리는 반드시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라는 믿음을 갖고 흔들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떤가요?
우리는 상황 앞에 섰을 때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을까요?
나 자신? 주위에 믿을만한 사람? 예수님? 우리는 누구에게 가장 먼저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나요?
배에 탔던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리고 지금 우리들의 믿음은 계속해서 성장하는 중입니다.
지금까지 성장하여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던 것처럼,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그 뒤를 따라가야 합니다.
지금처럼 계속 따른다면 우리는 상황 앞에 다른 이들이 아닌 예수님을 가장 먼저 떠오르고 그분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쉴 수 없는 예수님
예수님은 우리가 상황 앞에 움추려 들거나 두려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쉴 틈 없이 계속해서 일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꾸짖음 앞에 잠잠해진 풍랑을 보며 사람들은 “이 사람 도대체 뭐지?”라는 생각을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 할 수 없는 상황이거든요.
아마 저와 여러분이 그 자리에 있었어도 똑같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 사람 도대체 뭐지?”
“꾸짖었는데 풍랑과 바람 그리고 파도가 사라졌네?”
이런 생각을 하며 배에 내려 예수님을 따라가고 있는데 또 한번 이해 할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하게 됩니다.
귀신 들린 자들이 무덤 사이에서 뛰쳐나와서 예수님 앞에 엎드렸거든요.
당시 무덤들은 가족묘로 사용했기 때문에, 깊숙히 길을 파고 들어간 후 무덤의 입구를 세웠습니다.
바위들 틈 사이에 길이 있고 더 들어가야 입구가 있는 구조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귀신 들린 사람들과 나병환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시체가 있는 곳이라 정말 특별한 일이 아니고선 사람들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 곳만큼 숨어 살 수 있는 곳이 없었거든요.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그 길 틈 사이에서 귀신 들린 자들이 뛰쳐 나왔습니다.
웬만한 사람은 굉장히 놀랐을 것이라 생각해요.
심지어 여기에서 나타난 이 사람들은 힘이 세고 굉장히 폭력적이고 사나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강한 풍랑을 마주했던 것처럼 또 예상 하지 못했던 상황을 맞딱드리게 된 것이죠.
그런데 더 기절 할 만한 일이 생깁니다.
그들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나를 괴롭히려고 오셨습니까”
라고 말하며 달려왔거든요.
왜 귀신들이 예수님에게 이런 말을 했을까요?
귀신들은 자신들은 예수님의 명령을 들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그들은 “고통만 있는 그 곳으로 나를 보내지 말아달라고 간구합니다.”
예수님은 그 자리에서 귀신들을 쫓아내며 영원한 고통이 있는 지옥으로 바로 보내실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지금 당장 중요해 보이는 일이라도, 하나님께서 장차 하실 심판의 계획 앞에 작은 일이기에 순리대로 흘러가도록 하기 위하여 바로 지옥으로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주위에 있는 돼지 떼에 귀신들을 보내십니다.
귀신들의 이름은 군대입니다.
당시 로마제국의 군대는 6,000명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그만큼 많은 귀신들을 예수님은 약 2,000마리나 되는 돼지 떼로 보내십니다.
“가라"
예수님은 배에서 내려 귀신 들린 사람을 만난 이후 딱 한 마디 하셨습니다.
단 한 마디이지만, 이 말에 담겨져 있는 권위는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이 한 마디에 하나님의 모든 권위가 담겨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 자리에서 이 상황들을 보고 있었다면 어떤 느낌이 드셨을 것 같으십니까?
풍랑이 잠잠해지는 것부터 귀신들이 돼지 떼에 들어가고 비탈길을 달려 호수로 뛰어들어가는 장면.
그리고 호수에 빠져 죽은 2천마리의 돼지들이 물 위에 떠오르는 것을 다 목격하셨다고 가정한다면 어떤 것을 느끼셨겠습니까?
“이 사람 뭐지?”라는 생각에서
“이 사람은 진짜다.
진짜 하나님이 보내셨다.”
로 생각이 바뀌지 않았을까요?
기르던 돼지들이 죽었습니다.
돼지를 치던 사람들의 생계 수단이었던 돼지들이 몰살 당했습니다.
돼지 주인들은 와서 따져야 합니다.
배상하라고 큰 소리를 쳐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화를 내지 않고 “떠나달라고 간청합니다.”
두려웠기 때문이에요.
같은 사건을 목격했지만 이 돼지 주인들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놀라운 기적 앞에 “그가 누구인가?”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저 내 삶의 터전을 파괴시킨 못된 마술사이다.
라고 생각했을 뿐이에요.
구세주보다 돼지 떼를 선호했기에, 무서운 저주를 내린 이 마술사가 당장 떠나기만을 바랬어요.
믿음은 두려움을 몰아낸다.
사랑하는 제2가족 여러분.
이 본문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첫째, 나의 믿음이 아직도 성장 중이라는 것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상황 앞에 좌절하거나 혹 두려워하고 있었다면, 하나님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먼저 떠올랐다면,
나의 믿음이 여전히 자라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계속해서 성장 시키며 기회를 주고 계시는 하나님께 감사함을 반드시 표현해야 합니다.
둘째, 제대로 볼 수 있도록 해달라 하나님께 간청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두 무리가 등장합니다.
배를 타고 예수님과 함께 건너 온 한 무리는 “믿음은 두려움을 몰아내며, 평온함을 주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돼지 떼의 주인들은 동일한 예수님을 보며 “사악하고 두려운 마술사"라 여겼습니다.
당장 눈 앞에 보이는 손해와 불이익만 바라 보았기 때문에, 자신들을 괴롭히던 그 귀신들이 인정하고 두려워하던 대상 예수님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던 것이죠.
나의 생각, 습관 혹은 신념들로 인해 예수님을 바로보지 못하고 말씀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한다면 우리 역시 예수님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제2가족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우리 함께
나를 포기 하지 않고 계속해서 성장하는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와
예수님을 바로 보고 느낄 수 있는 내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기를 소망합니다.
진짜 믿음은 상황이 주는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이 두 가지 기도를 통해 진짜 믿음을 소유하는 은혜가 있는 이 시간 되기를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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