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적 가치를 붙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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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절대적 가치 2. 절대 가치는 결단을 낳는다. 3. 절대 가치는 믿음을 강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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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 가치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19장의 내용“예수 그리스도라는 절대적 삶의 가치를 찾은 사람들세상에서 절대적 가치를 찾으려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삶의 목적. 절대적 가치를 예수님께 둔 사람들그 것을 달가워 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이죠.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시대와도 굉장히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우리가 예수님을 알아가면 알아 갈 수록, 그 분과 가까워지면 가까워질 수록 우리의 믿음을 흔들고 넘어뜨리려 합니다.
끊임없이 우리의 삶에 도전하고, 어려움을 던져주면서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신뢰”를 유지하지 못하도록 우리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듭니다.
이 곳에 계신 삶과 신앙의 선배님들께 죄송스러운 말씀이지만, 저는 삶이란 늘 도전과 선택의 연속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나의 고비를 넘기면 또 다른 고비가 오고, 그 고비를 넘기면 또 선택을 해야 하고, 선택하고 나면 또 다른 상황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거든요.
도무지 해결될 것 같지 않은 상황들과 나를 지치게 만드는 여러 일들을 통해 우린 때론 낙망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 시간들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더 강하고 굳게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쉽지 않은 시간들을 보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위협하고 의심하도록 만드는 상황이 계속해서 생겨나는 이유세상의 권세 잡은 자 마귀 때문입니다.
그들의 목적은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가진 이들이 그 믿음을 포기하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그 의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갖게 된 나의 목적과 삶의 방향을 의미 없는 것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우리가 어떠한 결단을 하고, 하나님 앞에 시간을 드리려 마음 먹을 때마다 그 믿음을 흔드는 순간들이 생기곤 하는데요.
혹시 내 결단을 흔드는 일들을 경험해 보셨습니까?
제가 종종 인도에서 지내며 경험 했던 일들에 대해 나누곤 하는데요. 제가 인도에 가게 되었을 때도 제 마음의 결단을 흔드는 사건이 참 많았습니다.
원래는 제가 선교 활동을 했었던 필리핀으로 다시 돌아가려 준비를 했었는데, 변수들이 생기면서 인도로 가게 되었습니다. 인도로 학교를 다니기 위해 여러 서류를 준비하는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300만원이 들어있는 통장의 사본을 제출 하는 것이었습니다. 대학생이었던 저에게 300만원이 있었을까요? 없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에게 300만원이라는 돈을 갑자기 마련 해 달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해결 할 방법이 없어 혼자 끙끙대면서 기도하고 있는데, 기도할 수록 하나님은 제가 인도로 가게 될 것이라는 마음의 확신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300만원이 갑자기 어디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또 누가 저에게 그 돈을 빌려 줄 것도 아니기 때문에 저는 인도 가는 것을 포기하려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계속해서 저에게 인도를 생각하고 품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저는 가지 않으려 하는데, 자꾸 그런 마음을 주시니까 너무 답답하더라구요. 하지만 계속해서 마음을 주시니 이유가 있겠다 싶어,
‘당장 내일까지 서류를 제출해야 하고 지금 저에게 그 어떤 답도 없지만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겠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친하게 지내던 친구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여차 여차 해서 인도를 가기 어려운 상황인데, 자꾸 하나님께서는 인도를 품게 하신다. 같이 기도 해달라.” 라고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5분 뒤 그 친구에게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적금을 붓던 것이 있는데 만기가 두달 정도 남기는 했는데, 해지했어. 300만원 보내줄테니까 그 것을 갖고 서류 인증하고 나중에 돌려줘”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에게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서류를 준비해서 제출하고 돈을 돌려 주었습니다.
이제 제가 인도로 가는데 그 어떤 문제도 어려움도 없게 되었습니다.
가장 어려웠던 문제를 하나님께서 해결 해 주셨으니 저는 이제 제가 인도로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선명하게 하나님께서 나의 길을 보여주시니 나는 무조건 간다.’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재정 안에서 비행기 티켓을 사야 하는데, 시중에 있는 티켓은 제가 갖고 있는 돈의 2배나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티켓을 사야 하는 그 기간동안 제가 갖고 있는 재정만큼의 티켓이 판매 된 적이 거의 없다고 할 정도로 구입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찬양하고 있었는데 또 다른 어려움이 저에게 찾아왔던 것이죠.
저처럼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과 말씀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흔들고, 의심하도록 만드는 사건이 삶에 참 많이 등장합니다.
이러한 시간들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매달리도록 만들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우리를 굉장히 지치게 만들기도 합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그 믿음. 예수 그리스도라는 절대적 가치를 빼앗아 가려는 세상의 도전이 끊임없이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절대 가치는 결단을 낳는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렇게 절대적 가치를 빼앗아 가려는 세상의 도전을 잘 담고 있습니다.
바울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를 듣고 변화되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삶의 목적을 되찾고, 구원을 경험한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습니다.
이 사람들은 원래 하늘의 별을 보고 숭배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삶의 목적을 찾기 위해 별을 연구하기도 했고 다양한 우상들을 숭배하기도 했고, 점집을 찾아다니면서 부적을 사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노력하고 돈을 써도 삶의 목적을 찾을 수 없었고 오히려 더 허무한 감정이 커져 갔습니다.
돈과 시간을 쓸 만큼 써봤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목적도 가치도 찾지 못했던 그들이 예수님에 대해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을 통해 자신이 살아가야 할 목적과 붙들어야 할 가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경험한 구원의 은혜를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나누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많아져가면서,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도 함께 많아졌습니다.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은 예수라는 신 때문에 자신들이 먹고 살기 어려워졌다고 불평을 쏟아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당시 에베소에는 부적을 파는 가게가 굉장히 많았으며, 그 부적을 만들어 납품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또한 에베소에는 세계에서 손 꼽히는 불가사의한 건축물인 아데미 여신의 신전도 있었습니다.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엄청난 크기의 신전에서 일하는 사제들도 정말 많았습니다.
삶이 어렵고 답답할 수록 사람들은 부적을 계속해서 사들였고, 신전에 찾아가 돈을 바치면서 자신들의 인생을 가짜 신에게 책임져 달라고 요청 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라는 신을 사람들이 믿게 되면서 부적을 사러 오지 않게 된 것이죠.
아데미 신전에 오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해지게 된 것이죠.
하지만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왜냐하면 에베소 지역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죠.
그런데 그 때 한 가지 사건이 등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절대적 가치는 그 것을 믿고 신뢰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삶의 중요한 결단을 하도록 만듭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말도 안되는 사건이 터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19장 19절에 기록된 마술을 행하고, 배우길 원했던 많은 사람들이 은 오만이나 되는 책을 다 불살라 버린 사건이었습니다.
은 오만을 당시 화폐였던 드라크마로 살펴보자면, 드라크마 5만개입니다.
노동자의 하루 품삯은 1드라크마였습니다.
또 이 것을 우리 나라 화폐로 계산하면, 최저시급 9,620원. 하루 일당은 76,960원입니다.
76,960원을 받는 사람 5만명의 돈을 모으면 약 38억 5천만원이 됩니다.
하루 만에 38억 5천만원어치의 책이 불탔습니다.
정말 많은 책이 불에 탔기 때문에 불도 거셌을 것이고 하늘로 올라가는 검은 연기도 꽤나 오랫동안 지속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기로 한 사람들은 다시는 마술책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결단을 담아 태웠고,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 책들이 불에 타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만약 그 현장에 있었다면, 그리고 내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면 불에 타는 그 많은 책들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셨을 것 같으신가요?
저라면
“아. 너무 아깝다.. 태울거면 차라리 나한테 당근으로 팔지.. 싸게 팔지.”
“도대체 예수가 누구이길래. 이렇게 많은 책을 태울까?” 라는 생각을 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있어 책을 태우는 것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었을거에요.
부적 가게와 아데미 신전 그리고 마술책을 파는 서점에 사람들이 발길이 점점 적어집니다.
책이 불타오르는 것을 본 사람들이 예수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여기에 관련된 사람들의 마음에 불평이 점점 더 커져갑니다.
불평하던 사람들 중 데메드리오라는 사람이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적극적으로 이 위기를 헤쳐나갈 계획을 세웁니다.
이 상황을 해결하지 않으면 자신들이 망할 수도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이 상황을 해결하려고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만큼의 책이 불태워졌고 또 사람들이 변해가고 있었다면 "도대체 무엇이 저들을 변하게 만들었을까?”를 생각해야 하는데, 이들은 당장 자신들이 보고 있는 손해에만 집중해 “사람들이 변한 이유”를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자신들의 손해를 회복하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을 괴롭히기로 마음 먹습니다.
자신들의 삶의 주인이자 목적 그리고 절대적 가치인 “돈"을 벌기 위해, 진짜 주인 “예수 그리스도"를 적극적으로 밀어내기로 합니다.
데메드리오는 굉장히 똑똑하고 정치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에게 빼앗겨 버린 삶의 주도권을 되찾아 오기 위한 방법으로 아데미 여신의 이름을 팔면서 분위기를 만들어 가기 시작합니다.
27절입니다. 사실 사람이 만든 우상은 떨어질 위엄도 명예도 없습니다. 진짜 사라지는 것은 우상을 만드는 사람의 명성입니다.
그런데 그는 사람들에게 “아데미 여신의 위엄이 떨어지고 있다"라고 말하며, 교묘하게 아데미 여신을 들먹이며 분위기를 몰아갑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던 사람들과 실질적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던 사람들이 데메드리오의 말에 선동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밖으로 나가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라고 외칩니다.
처음부터 많은 사람들이 외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라 외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들이 가장 사랑했던 아데미 여신의 이름을 외치는 것이었기에 사람들이 점점 불어납니다.
에베소 전체의 분위기가 이상해졌을 것입니다.
외치는 소리가 많아지고 커져 갈수록 사람들이 점점 격해집니다.
바로 얼마 전 은 오만이나 되는 책을 태우며 나의 믿음을 공개적으로 고백했던 이들에게 엄청난 위협이 닥쳐왔습니다.
그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에베소 사람들이 과격하게 그리고 살벌하게 “크도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라고 외치기 시작했거든요.
그들의 믿음을 뒤흔들만한 엄청난 위협과 공격이 시작되었어요.
그들은 자신들의 삶의 주도권을 빼앗아 간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바울에게 모든 분노를 풀기 위해 두란노 서원으로 몰려갑니다.
그러나 그 곳에는 가이오와 아리스다고가 있었을 뿐 바울은 없었습니다.
분노에 찬 그들은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데리고 25,000명이 모이는 극장으로 데려가 가운데 세웁니다.
그리고 그 곳에 가득 찬 사람들은 앞에 사람을 세우고 고함을 질러댑니다.

절대 가치는 믿음을 강하게 한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다 선동 된 사람들입니다. 32절 하반절을 보면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사람들 대다수는 이유도 모른체,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니까 같이 질렀고, 같이 화를 내니까 화를 냈고, 극장으로 들어오니까 같이 들어 왔을 뿐입니다.
데메드리오로부터 시작 된 선동이 불씨가 되어 최소 25,000명의 사람들이 불같이 타오르며 화를 냈지만 그들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잘 몰랐습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 무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마술 책을 태우고, 부적을 사지 않으며, 아데미 여신의 신전으로 가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제서야 삶이 목적과 방향을 찾았는데 그들의 마음을 흔드는 엄청난 사건이 지금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굉장히 중요한 순간 앞에 서 있습니다.
공개적으로 고백했지만, 그 믿음을 포기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 앞에 서 있습니다.
나 혼자 어려움을 겪는 것은 괜찮지만, 나의 고백으로 인해 나의 가족이, 자녀가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 소동이 잘 해결되지 않는다면 이들은 ‘믿음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제서야 “삶의 목적과 절대적 가치를 찾았는데" 그 것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그들 앞에 일어나게 된 것이죠.
(쉬고)
이러한 위협 앞에 선 이들.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가 종종 부르는 찬양 중 돌아서지 않으리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이 찬양에 관련 된 이야기가 있는데, 저는 이 이야기가 고함을 지르는 25,000명 앞에 선 “절대적 가치 나의 믿음을 위협하는 상황 앞에 선 사람들의 고백"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인도에 어느 마을에서 일어났던 실제 이야기에요.
그 마을의 한 가족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게 되었어요. 이 일로 인해 마을 사람들이 화가 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그 가정을 마을 광장으로 거칠게 끌고 왔어요.
그리고 마을의 지도자가 가장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만약 당신과 당신의 가족이 믿음을 부인하지 않으면 너희는 오늘 모두 죽을 것이다.”
뭐라고 해야 할지,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아무 생각이 나지 않던 그 때 한 노래의 가사가 떠올랐어요.
그가 하나님을 믿고 자신의 삶을 드리기로 처음 결심했을 때 작사한 곡이었어요.
“예수님 따라 살기로 했네. 뒤돌아 서지 않겠네. No turning back”
그리고 그의 자녀들은 끔찍하게 살해 당했어요.
마을의 리더는 그에게 또 똑같은 질문을 했어요. 그 질문에 또 이렇게 대답했어요.
“아무도 나와 함께 가지 않아도 나는 따르리, 뒤돌아 서지 않겠네"
아내가 무참히 살해 당했어요. 그리고 또 같은 질문을 받았어요. 그의 대답이에요.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뒤돌아 서지 않겠네"
이처럼 절대적 가치.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고 있는 사람그 믿음을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
삶의 실질적인 어려움과 위협이 끊임없이 찾아온다 해도, 내가 붙들어야 할 것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고백하며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제2가족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믿음을 고백하며 살아가고 계십니까?
어떤 믿음을 고백하며 살아가고 싶으신가요?
만약 우리가 나의 믿음의 상태를 매일 확인하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모른체 그저 따라다니며 “크도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라고 외쳤던 목적 없는 사람들처럼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 가야 할 이유와 목적 그리고 절대적 가치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나의 믿음개인의 경건생활을 통해 확인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믿음을 흔드는 세상의 공격과 위협에서 승리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사랑하는 제2가족 여러분.
절대적 가치를 붙들고 신뢰하는 사람은 오만이나 되는 책을 불태울만큼, 나의 것을 기꺼이 포기하는 결단을 이루어 냅니다.
그 결단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기도합니다.
절대적 가치를 붙들고 신뢰하는 사람은, 내 믿음을 흔들어대는 사건 앞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며 믿음을 강하게 고백합니다.
그 고백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소망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살아 갈 이유와 목적 그리고 붙들어야 하는 가치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음을 고백하는 오늘의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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