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으심도 인도하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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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꿈을 좇아 가는가?
누구의 꿈을 좇아 가는가?
이번 주 김동호 목사님을 모시고 15개 높은뜻 교회들이 함께 모여서 높은뜻교역자 연합 수련회를 2박 3일동안 가졌습니다. 김동호 목사님을 모시고 높은뜻 교회가 어떻게 시작되고, 목사님께서 하나님 주인 되시는 교회를 위해서 애쓰고 힘쓰신 이야기들을 다 들을 수 있는 너무나도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금요기도회 설교를 준비하면서, 김동호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 났습니다. 목사님은 개인적인 자신의 뚜렷한 비전이 없으셨다고 합니다. 자신의 가진 학벌, 재주, 능력이 확실한 것이 없으셨지만, 단 하나 붙잡고 사신 원칙이 마치 심방온 자신의 젓가락이 어디로 향하는 지 유심히 보고 준비해 주시던 성도들과 같이 하나님의 젓가락이 어디를 향하는 지 유심히 살펴 보셨다고 합니다. 그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이 내 비전을 아는 것 보다 더 중요하고, 성령께서 내주하심은 하나님께서 내 주하심이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는 특별한 은사를 받은 사람만 인도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증거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습니다. 결정하고서 한 걸음 한걸음 예수님과 동행하며 살아갈 때에 때로는 우리의 계획과 다른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린다면, 분명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고 헌신하고 결단하고 한발 내 디뎠는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다른 곳에 있는 경우를 경험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대학원을 결정할 때, 정말 신중하게 리버티라는 미국 신학교의 한국어 예배인도박사과정을 공부하기로 결정을 한 때에 그 학교가 사라졌고, 일년간의 고민 끝에 서울 장신대학교의 예배설교학 석박사 통합과정에 입학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4년 공부하는 내내, 저는 내가 정말 맞는 길을 왔는지 매 학기 고민하고 교수님께 고민상담을 하였습니다. 내 생각과 계획과는 다른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라는 찬양을 듣게 되면, 그 후렴 가사가 “ 하나님의 꿈이 나의 비전이 되고, 예수님의 성품이 나의 인격이 되고, 성령님의 권능이 나의 능력이 되길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막으심도 인도하심입니다.
하나님의 막으심도 인도하심입니다.
사도 바울은 제 2차 전도여행을 하려던 본래의 목적은 1차 전도여행 때 세워진 교회들을 돌보는 목양적 차원의 여행이었습니다.
36 며칠 뒤에, 바울이 바나바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전파한 여러 도시로 신도들을 다시 찾아가서, 그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살펴 봅시다.”
살펴 봅시다라는 헬라어는 목회적 감독과 연관되어 아픈 사람을 방문하는 것, 과부와 고아들을 돌보는 것과 연과해 성경에서 사용되었습니다. 바울은 교회와 성도들이 성숙하게 자라는 모습을 보는 일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수리아 안디옥을 떠나서 시리아, 길리기아, 더베와 루스드라를 통해서 여러 도시에 교회들을 돌보았습니다.
내륙을 통해서 1차 전도여행 때 방문지를 다시 방문하던 사도 바울 일행에게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는 것을 막으셨습니다.
6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는 것을 성령이 막으시므로, 그들은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지방을 거쳐가서,
사도 바울이 가려던 곳은 소아시아 지역이었을 것입니다. 제가 오늘 나눠드린 그림에 보면 아시아라고 쓰여져 있는 곳이 있습니다. 바울은 1차 전도여행지를 돌아 보며 아마도 해안지역을 따라 전도를 하며 다닐 계획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시아가 어디인가에대해서 또 하나이 의견은 에베소라는 의견입니다.
18 장로들이 오니, 바울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은, 내가 아시아에 발을 들여놓은 첫날부터, 여러분과 함께 그 모든 시간을 어떻게 지내왔는지를 잘 아십니다.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고별 설교를 하면서 하던 이야기 입니다. 에베소는 아시아의 대표적인 도시이기 때문에 아마도 에베소에 가고자하는 계획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막으셨습니다.
그 막으심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다만, 사도 바울은 그 막으심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핍박과 박해, 목숨의 위협 속에서도 복음을 위해 전진하던 바울이 멈췄습니다. 무엇이 그것을 알게 하였을까요? 우리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성령께서는 우리의 길을 막으실 때가 있습니다.
어제 한 CCC 간사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간사님 부부는 블라디 보스톡에 가기 위해서 열심히 선교 훈련을 받고 해외 필리핀에서 선교사 훈련을 마칠 즈음에 코로나 19가 발생하여서 선교사로 나가지 못하고, 한국에서 간사생활을 하시게 되었다고 합니다. 앞으로 다시 선교지로 나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사역하시는데, 아주 귀여운 아기를 데리고 오셨습니다. 또 몇일전 교제한 목사님 가정은 곧 해외로 출국해서 한인 교회 사역을 하시게 되었는데, 코로나로 원래 사역했던 해외에서 나와서 양가 부모님들의 은근한 한국에서 사역하기 원하는 마음 때문에 멈추어 있다가 다시 해외가 열려서 그곳으로 가게 되자 부모님들 모두 기쁘게 보내주시는 마음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경우가 선교사역 뿐이겠습니까? 높은뜻 교회는 목사만 성직이 아니라 모든 직업을 성직으로 여깁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우리를 막으실 때 우리는 멈출 수 있는 믿음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성경에서 나온 브루기아와 갈라디아라는 지역은 어디일까요? 존스토트 목사는 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라는 곳이 바로 갈라디아주의 브루기아 지방으로 비시디아 안디옥일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이전에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왔을 때 지난 세바스테 가도를 통해서 해안 지방을 따라 에베소로 가려고 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시아 지역으로 가지 않고 오히려 북쪽으로 해서 무시아라는 지역에 가까이 이르러서 비두니아로 더 북동쪽으로 갈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두번째 막으심입니다. 이번에는 허락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7 무시아 가까이 이르러서, 비두니아로 들어가려고 하였으나, 예수의 영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누가는 성령이라는 단어를 두번 쓰지 않고 예수의 영이라는 단어로 성령님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이름을 예수의 영이라고 쓴것은 신약에서는 이곳에서 유일합니다. 로마서에서는 성령을 그리스도의 영, 그리고 빌립보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으로 성령께서 예수님의 지상명령인 사도행전 1:8 “8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의 말씀을 이루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전도여행을 하면서 한 걸음 한걸음,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의 내적음성을 듣고 산다는 것은 그러므로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선택한 길은 북서쪽으로 향하는 길이었습니다.
8 그래서 그들은 무시아를 지나서 드로아에 이르렀다.
새로운 길을 열어 가게 하시는 예수님
새로운 길을 열어 가게 하시는 예수님
바울과 실라 일행은 이제 무시아라는 곳을 지나서 드로아 라는 항구도시에 도착합니다. 그들은 이곳에 도착하기까지 복음을 전하면서 그리고 성령, 예수의 영의 인도하심을 매 순간 구하면서 날마다 기도하며 하나님을 기다리는 시간을 가졌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처음 가는 길이기 때문에 막힐 때 마다, 허락지 않으실 때마다 기도했을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 예수님의 마음이 어디에 계십니까? 하나님의 젓가락이 어디로 향하십니까? 그들은 1차전도여행에 비하여 꽤 먼곳에 까지 와 있습니다. 낯선 지역을 다니면서 의아하고 놀라기도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고 있을 때 바울에게 밤에 환상이 나타납니다. 밤에 나타난 환상은 아마도 꿈을 꾸었을 수도 있고, 밤에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환상을 보았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에게 생생한 꿈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보여 주실 때도 있습니다.
9 여기서 밤에 바울에게 환상이 나타났는데, 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바울 앞에 서서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
환상에서 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바울 앞에서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 주십시오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높은뜻숭의교회에 찬양사역자로 문희곤 목사님께 콜링을 받고 나아서 아내에게 그 내용을 나누고 함께 기도하자고 하였습니다. 사실, 그 때 있던 교회에서 사역한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아내가 꿈을 꾼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꿈에 한 목사님이 아내에게 나타나서 용규 형제가 열매를 많이 맺는 일에 함께 하고자 하나님께서 부르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하나님께서 높은뜻 숭의교회에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2006년1월 부터 높은뜻교회에서 찬양사역자로 사역하기 시작했습니다.
막힌길, 허락하지 않으심은 때로 새로운 하나님의 부르심으로의 초대일 수 있습니다. 그 당시는 알 수 없는 그 먼길을 걸어야 했고, 하나님께서 또 다시 막으셔서 더 멀리 가야 했지만, 바울은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 곳에 성령, 예수의 영을 따라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10 그 환상을 바울이 본 뒤에, 우리는 곧 마케도니아로 건너가려고 하였다. 우리는, 마케도니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이라고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바울과 그 일행 이제 누가가 여기에서부터 함께 하나봅니다. 우리라고 합니다. 마케도니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이라 확신하였습니다. 여지껏 모든 경험들과 하나님의 예언자들의 기도, 성령의 막으심과 허용하심의 이유를 알았습니다. 마케도니아 선교다. 마케도니아는 지금의 유럽입니다.
확신의 결과
확신의 결과
당시에는 아시아, 유럽이라는 개념이 지금과는 달랐습니다. 주의 개념 정도 였습니다. 그런데, 그 유럽에 들어간 오늘의 한 걸음이 유럽이 기독교 대륙이 되게 하였고, 세계선교의 전초기지가 되어서 복음이 아프리카 서남아시아, 동남아시아 동북아시아까지 전세계에 선교를 하게 되는 시작점이 되었다는 것은 오늘 본문이 가진 의미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작은 시작이 작은 순종이 예수님의 마음을 담고 있다면 하나님의 복음 큰 불씨가 되어 타오르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함께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