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으로 인하여 비상하라

2023 겨울수련회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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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길벗 청년부 수련회 1일차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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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전서 개역개정판 (40장)
27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우리의 상황은 어떠한가?

성경은 무엇을 말하는가?

1. 이스라엘의 상황 (27절)

(1)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자신들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말하고 있나요?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내 길이 여호와께 숨겨졌다”라는 말 속에 상당히 절박한 심정이 담겨있습니다.
우리가 마땅히 가야할 길이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할만한 좋은 길이요.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에게는 그런 좋은 길이 보이지 않는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숨기셨다고 표현하는겁니다.
또한 “송사”라는 단어는 “결정”이라는 단어입니다. 어떤 결정이냐면 “하나님께서 그의 정의에 따라 결정하시는 결정”입니다.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라는 말을 다듬어 번역하면
“하나님의 정의에 따른 올바른 판결이 우리에게 없다”라는 의미입니다. 자신들에게 벌어지는 일들이 결코 하나님의 정의로운 판결이 아니라고 인정하지 못하는겁니다.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상황에 대해서 상당히 좋지 않게 생각하는겁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은거죠. 탓하고 있는겁니다.
하나님 도대체 왜 이런 상황을 주십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정의로운 판결로 인해 일어날만한 일이 아닙니다.
이렇게 외치고 있는겁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이 지금 이렇게 자신들의 상황에 대해서 비관적으로 평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진짜로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일명 ‘바벨론 유수’라고 말하는 포로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지금 당시 강대국인 “바벨론 제국”에게 나라를 잃고 포로로 끌려가게 된 상황입니다. 나라를 이끌던 고위 지도자들과 여러 권력자들이 이방 국가의 포로로 끌려가게 된 겁니다.
그뿐 아니라 어떤 이들은 자신들의 가족이, 사랑하는 남편이, 사랑하는 자기 자식들이 포로로 끌려갑니다.
전쟁에 패배한 결과는 이렇게 참혹합니다.
참전군인들의 ptsd 사례를 들어보면 전쟁 자체가 얼마나 끔직한지 알 수 있습니다.
옆에 있는 전우가 죽어가는 것을 경험하고 자신의 국가가 패배하여 씻을 수 없는 모욕을 겪는 것은 아주 끔찍하고 참혹한 결과를 낳죠.
그러한 상황을 겪게 되면 사람들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실만한 정의는 전쟁의 승리와 평화라고 생각했을텐데 그것이 무참히 깨진 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상황입니다.
그러니까 27절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는거죠.
그런데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는 것 같나요?
물론 여러분이 개인적으로 예배와 말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접하고 만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상황을 한번 잠잠히 생각해봅시다.
직장 생활을 보면, 우리나라를 보면, 전세계를 바라보면 어떤가요?
지금 21세기에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나요? 그러나 지구 반대편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죽어가고 있죠.
우리 주변에 도사리고 있는 범죄들은 어떻습니까? 범죄들이 줄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시나요? 범죄들은 더욱 더 악랄해져가고, 교묘해져갑니다.
우리나라 사회를 한번 보세요. 젠더, 세대 사이의 갈등이 끊임없이 한국 사회를 더욱 가르게 만듭니다. 더 분열하고 부딪히게 하죠.
시야를 조금 더 좁혀서 우리의 주변 상황을 한번 생각해보세요. 여러 문제들이 있잖아요. 관계, 재정의 부족함, 물질의 부족함, 영적인 침체, 취업 문제, 학업 문제..
그 문제들 속에서 하나님께서 여러분들과 함께 계시는 것 같나요? 그 문제들을 계속 생각하고 생각하다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

2.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 (28절)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은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에게 강하게 반문합니다.
28절을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이스라엘에게 묻습니다. 이스라엘 너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듣지 못했었냐고요.
이스라엘이 항상 하나님과 함께 하셨고, 항상 일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제사를 통해서 그들에게 나타내시고, 어떤 때는 정말 특수하게 직접 임재하시기도 하시고요.
그런데 이스라엘은 지금 상황이 이방국에게 패배하고, 포로가 되었다고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말하는거죠. 여기에 이사야가 해줄 말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아서가 아니라, 지금 이스라엘이 그 문제들 때문에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저서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상황 속에서 문제들과 어려움 속에서, 아까 그 말한 여러가지 우리의 상황들 속에서요. 우리가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심지어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고백할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계십니다.
우리의 신앙의 상태와 고백과는 별개로 하나님은 언제나 존재하십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본문에서 하나님을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가장 먼저 존재하셨으며 미래에도 계속해서 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여호와”이십니다.
여호와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가요? 스스로 존재하는 자입니다. 자존하시는 분. 그 어떤 상황 속에도 존재하시고, 다른 것들에 의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서도 스스로 자존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해도 하나님은 계십니다. 계시지 않는 것처럼 느껴져도 하나님은 계십니다.
결국 우리가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 같이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리의 상황을 하나님보다 더욱 크게 본 것이죠.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시야를 상황이 막아버린겁니다.
우리를 둘러싼 그 각박한 상황들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영원하심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거죠.
그런 상황에 있다보면 어떻게 되냐면 우리는 지칩니다.
청년 여러분.
여러분은 혹시 여러분의 상황을 하나님보다 크게 보게 되어서 지치진 않으셨나요?
(2) 지침의 이유
우리 한번 생각해봅시다. 우리가 지치는 이유가 진짜 일이 많고, 피곤할만해서 그런 것인가 생각해볼게요.
우리의 인생이 재미가 없어서 지칠까요? 사실 우리는 즐길 것이 많습니다. 혹은 여러분 충분히 휴식하지 못해서 지쳐있을까요? 물론 소수는 충분히 휴식을 취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아닐 것이고, 그 휴식 없음이 영적인 지침의 이유는 아닐겁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 시기에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이스라엘이 지치고 피곤한 이유는 포로 시기에 있어서가 아닙니다.
결정적인 이유는 자신들의 삶에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에 영원하신, 자존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을 인식하고 살아가지 않으면 지쳐서 쓰러집니다.

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30절 보세요. 우리 조카가 5살인데요. 체력이 장난 아닙니다. 정말로.
저도 아직 젊기 때문에 체력이 어느 정도 되지만 조카를 감당하기에는 무리에요.
그런데 그 조카도 엄청나게 놀다가 어느 순간 너무 피곤해서 텐션이 떨어지거나 잡니다.
아무리 체력이 좋아도 인간은 다 피곤하고, 쓰러집니다.
힘의 원동력이 공급되지 않으면 쓰러지는거죠.
그렇다면 우리의 삶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3) 우리의 삶의 원동력은 하나님이다.
우리의 삶의 원동력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잃으면 우리는 우리의 유한한 힘으로 살아나가다가 결국 쓰러지고 넘어집니다. 지치는거에요.

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하나님은 피곤하지 않으십니다. 곤비하지도 않으시고요, 명철도 끝이 없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이 우리와같이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무능한 우리에게 힘을 더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은 우리의 힘처럼 유한할까요? 아니라고 오늘 성경이 말합니다.
하나님에게는 피곤함이라는 전제가 없습니다. 피곤함이 있을 수가 없어요. 그러한 분이 우리에게 힘을 주신다면 그 힘은 어떤 힘일까요?
영원히 우리가 일어나 걸어갈 수 있는 힘. 영원히 우리가 달려갈 수 있는 힘. 영원히 우리가 날 수 있는 힘.
그 영원한 힘이 바로 하나님에게 달려있다는겁니다.
(4) 걷고, 뛰고를 넘어서 “날아가라”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여러분 3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습니다.
어떤 힘인가요?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이요.
걸어가고, 뛰어가는 것을 넘어서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가듯 “비상”하는겁니다.
제가 예전에 설교 시작 전에 잠깐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독수리 사진 ppt)
이 당시 고대 이스라엘은 광야 지역입니다.
광야는 지금처럼 고층 건물이 없습니다. 그저 황량한 광야죠.
그곳에서 독수리는 어떤 존재냐면 그 삭막한 광야의 창공을 홀로 휘젓고 다니는 존재입니다.
이사야가 왜 그런 독수리의 이미지를 말하고 있는지 가늠이 되시나요?
하나님께 힘을 받고 도약해서 창공을 휘젓고 다니는 독수리와 같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약속하는겁니다.
그 창공을 자유롭게 휘젓고 다니고, 독수리가 날개짓할 때 그 강력한 힘으로 날아오르는 것을 상상해보세요.
하나님이 새 힘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말그대로 “비상할 수 있는 능력”을 허락하신다는거죠.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1. 우리는 하나님을 “앙망”해야 한다.

청년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 속에서 무엇을 바랍니까?
여러분의 삶에서 열심히 살아가면서 어떤 결과를 꿈꾸십니까?
우리가 소망하고 바라야 할 방향은 어디일까요? 우리가 열심히 살아낸 결과일까요? 아니면 그 결과보다 더 궁극적인 목표가 있나요?
우리에게 결과보다 중요한 목표가 있습니다.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앙망하다”라는 말은 “소망하다”, “간절히 바라다”라는 말입니다.
누구를 소망하고 간절히 바라야하죠?
여호와를 앙망해야 합니다. 새 힘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을 앙망하고, 소망해야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의 목표와 수단이 주객전도 되면 안됩니다.
우리의 삶의 목표는 “하나님”이에요. 우리가 삶을 통해 일궈낸 결과물들이 있죠? 성취해낸 모든 것들이 있습니다.
열심히 살아내서 일궈낸 나의 멋진 모습, 돈, 뿐만 아니라 돈을 통해서 할 수 있는 많은 누릴 것들.
이런 것들 자체가 목표는 아니라는겁니다. 이런 목표들을 향해서 달려갈 때는 언젠가는 끝나는 유한한 힘만을 충족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유한한 힘들로 충족받을 때 그 힘이 끝나는 결말은 너무나도 끔찍합니다.
또 겪는 좌절과 절망입니다. 유한한 힘의 충족을 원하는 자들은 좌절과 절망이라는 결과를 향해서 열심히 달려가는겁니다.
그러나 무한한 힘을 충족받는 하나님을 목표로 삼고 그 하나님을 향해 달려가는 자들은 달려가려고 하면 날라가게 됩니다.
비상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무한히 공급받는 힘으로 계속해서 창공을 날게 됩니다.
우리는 누구를 향해 달려가고 있나요? 그 방향성이 우리에게 오는 힘의 양과 질이 달려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달려가는 자는 무한히 날아갈 것이고, 그외의 다른 방향을 목표료 삼으면 유한한 힘으로 충족을 받을겁니다. 그러나 그 끝은 너무나도 뻔하게도 절망과 좌절일겁니다. 피곤하고, 곤비해서 좌절하는 그 결과로 치닫을겁니다.

그리스도는 무엇을 하셨는가?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제가 좋아하는 찬양 중에 “주님은 산 같아서”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안개가 날 가리워 내 믿음 흔들리려 할 때 나 주님께 나아가네
주님은 산 같아서 여전히 그 자리에 계셔 눈을 들면 보이리라 날 위한 그 사랑
제가 자주 하는 비유인데요.
우리의 시야는 좁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모두 보기에는 매우 좁죠.
우리는 그저 눈 앞을 보는데 그칩니다.
우리가 저 멀리에 아주 높고 오래된 산이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그 산은 언제나 변함없이 그 자리에 우뚝 서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눈 바로 앞에 골프공을 둔다고 생각해보세요.
우리 앞에 보이던 산은 어디갔는지 온데간데 없고 골프공만 보이죠.
그런데 우리가 우리의 상황을 보며 절망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그 산을 떠올리지 못하고 눈 앞을 가린 골프공을 보면서 절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변함없이 우뚝 솟은 산처럼 항상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어려운 상황들은 아주 작은 골프공인데도 우리의 눈 앞을 가로막는 특징을 가졌죠.
하나님을 떠올려야 하고, 변함없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골프공을 봅니다. 그러면서 좌절합니다.
그러나 청년 여러분. 이제는 우리가 좌절하고 피곤해하지 않을 이유가 생겼어요.
골프공이라는 상황이 우리를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변함없이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함께 “주님은 산 같아서”라는 찬양하면서 기도회를 진행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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