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10 아침기도회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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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2. 가나안을 향한 여정의 맥락에서의 레위기

지난 번에도 언급했지만 이스라엘은 지금 애굽에서 탈출한 이후에 시내산에서 1년간 머무르며,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거룩하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는 율법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왜 이런 율법을 주십니까? 구원 받기 전의 이집트의 문화에서 구원 받고 난 후에, 이제 하나님나라의 DNA와 문화로 바뀌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는데 여전히 애굽의 가치로 살아선 안되는 것이죠.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통해 안전한 울타리를 쳐주고 계신 것입니다.
또한 지금 이스라엘이 향하고 있는 곳이 어디이죠? 가나안 땅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된다면, 이스라엘은 그들에게 동화되는 것, 즉 가나안화 되어선 안됩니다. 가나안화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과 DNA를 녹여낸 삶과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 것이죠.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께 나아가고 관계할 수 있는 제사법들을 포함하여 그들의 먹고 마시고 입는 모든 일상의 부분에서 ‘어떻게 거룩할 것인가'에 관한 레위기의 규례들은 매우 중요합니다. ‘어떻게 거룩할 것인가'에 레위기의 규례들은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 23장의 내용은 ‘절기'에 관한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을 볼 때는 각 절기마다의 특성을 들여다보기 보다는 ‘여호와의 절기’가 가리키고 있는 신학적인 의미와 적용적인 의미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절기에는 크게 대표적인 매주의 절기를 지키는 ‘안식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매년 지켜야 하는 절기가 있는데 크게 봄에 지키는 절기와 가을에 지키는 절기 두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봄에 지키는 절기에는 5절부터 소개 되는 유월절과 무교절 초실절과 칠칠절이 있습니다. 이어서 가을에 지키는 절기도 있죠. 23~25절에 소개되는 나팔절과 속죄일, 그리고 33절부터 시작되는 초막절이 있습니다.

3. 절기의 의미

1) 절기 의미

그렇다면 이러한 절기의 본질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왜 하나님은 이들에게 절기를 지키라고 말씀하신 것일까요?
절기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과거의 베어있던 죄의 모습들, 애굽의 가치에 젖어 있던 옛사람이 절기를 통하여 이제는 새로운 통치를 받고 있음에 감사하고, 백성들이 하나님나라의 꿈을 꾸도록 만드는 것이죠.
아,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구나! 하나님은 이런 일을 하셨구나! 하나님이 이런 은혜와 사랑을 베푸셨구나! 나는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구나!
감탄하며 하나님 찾고 감사하는 것이죠. 성경은 항상 그 메시지를 받는 일차독자에게 어떤 말씀으로 주어졌을지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봅시다. 이들에게 절기는 하나의 아주 중요한 문화였습니다. 어떤 문화입니까? 국가적으로 함께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배하는 문화였습니다. 또 쉬는 문화입니다. 함께 음식을 나누고, 기뻐하기도 하는 문화이죠.
1)노동의 개념
그래서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 아주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것이 “너희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라는 말씀입니다. 이집트의 노예문화에서 쉼없이 무언가를 생산해내야 먹고 살고, 이런 가치가 그들의 정체성과 존재의 의미를 부여했었다면, 이제는 그 존재와 정체성은 ‘노동' 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정의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을 감사하고 기뻐합니까? “하나님이 하신 일"을 감사하는 것이죠. 그래서 철저하게 절기에는 노동을 쉬는 것입니다. 특히 노동을 쉰다는 것은 나 한사람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공동체적이고 타자성의 문제죠. 노동을 쉬어야만 종과 이방인들이 일을 쉴 수 있고, 가축들도 쉴 수 있습니다. 사업장도 그렇죠. 오너가 출근하면 직원들도 출근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안식일을 비롯해서 이 절기를 지키므로 통해서 무엇을 주시려고 하시는 것일까요?
바로 노동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를 주시려고 하는 것이죠. 하나님은 생산공장에서 이스라엘을 돌려서 그들에게 무엇을 얻어내셔야 하는 분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그렇게 생존하도록 두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무엇을 얻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것을 주시려고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공급 속에서만 살 수 있는 것이죠. 하나님의 일하심 속에서만 그 백성들의 ‘노동'도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절기를 통해 자신을 기억할 때 모든 노동을 중단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일을 쉬면, 죽는다. 생산력을 더 높이지 않으면 인정받지 못한다. 더 많이, 더 빠르게 더 열심히 더더더”
이런 문화와 가치 안에, 심지어 채찍과 매를 맞으면서까지 압제와 폭력까지 시달렸던 이스라엘에게, 그런 삶이 구원받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백성들에게 ‘절기'를 지키며 노동을 중단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축제와 예배를 드린다는 의미를 생각해보십시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뼛속까지 녹아있던 과거의 묵은 때를 벗겨내는 일은 만만한 것이 아니죠.
결국 이것은 ‘누구를 따를 것인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어떤 왕을 섬길 것이냐, 너희가 정말 여호와가 구원자라는 것을 믿느냐!, 너희의 먹고 살것을 책임지는 공급자라는 것을 믿느냐.” 라는 질문이기도 하지요. 변화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뼛속까지 심겨있던 과거의 묵은 때를 벗겨내는 일은 만만한 것이 아니죠.
정리하자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절기를 지키므로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한 구원자이심을, 하나님이 그들의 왕이며, 진정한 주인이심을" 기억하고 가슴에 새기도록 원하셨던 것입니다.

4. 오늘 우리의 시간 속에서 ‘절기'의 의미는?

오늘은 절기 각각의 의미를 자세히 살펴보기보다는, 절기라는 큰 틀 속에서 시사하는 ‘안식'이라는 의미를 살펴보았습니다. 사실 이 절기의 중요한 신학적 의미는 이 그리스도께서 이 모든 절기의 주인이며, 성취자라는 것입니다.
하틀리 라는 신학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안식을 통해 일상의 노동의 속박으로부터 자유하게 하신다. 쉼은 안전과 축복을 의미한다”
안식은 노동의 속박으로부터의 자유이며, 안전과 축복을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성취하신 그리스도는 자신이 안식의 주인이라고 말씀하시죠.
누가복음 6:5 (NKRV)
또 이르시되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더라

1)나의 안식의 주인은?

말씀처럼 안식일과 모든 안식의 주인이 누구이십니까? 이 안식을 성취하신 분이 누구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오늘날 절기를 적용한다면 이 안식의 의미는 ‘그리스도 안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기의 내용들을 살펴보면서 나에게 참된 안식을 주는 대상이 무엇인가를 정직하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나의 안식은 정말 그리스도인가? 나에게 진지하게 예수그리스도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시간이 있는가? 나에게 노동을 중단한다는 의미는 삶의 자리에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나에게 안식인가 두려움인가”
를 질문해야 합니다.
이 질문과 함께 여러분의 일상에서 ‘휴일'의 모습은 어떤지 적용하여 생각해보십시오.
쉼의 시간, 여러분의 휴일은 하나님과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누군가에게 쉼은 하루종일 침대에서 뒹굴거리는 것이고, 넷플릭스와 유튜브를 시청하며 복잡했던 머리의 회전을 멈추고, 잠시 멍하게 모니터 속으로 빠지는 것일 수 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안식과 쉼의 영역에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배제될 수 있는 것일까요?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몸과 장소, 어떤 특정한 것들을 거룩하게 하기도 하셨지만, 우리 삶의 “시간이란” 측면도 ‘거룩성'을 부여하시고 구별하셨습니다. 즉 안식의 시간도 그리스도와는 뗄 수 없는 동전의 양면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모든 쉼의 시간과도 연결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동을 중단한뒤 무엇을 했습니까? 하나님을 기억하기 위한 예물과 예배, 감사의 축제를 드렸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정신적, 육체적 노동의 쉼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빼지마십시오. 그분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일을 안식에서 제외해선 안됩니다. 주님은 우리 가운데 진정한 쉼을 주시는 분임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2) 공동체성

한 가지 더 절기를 통해 보고 싶은 중요한 것은 ‘절기의 공동체성’입니다. 안식은 한 개인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이죠. 이들은 함께 구원받았고, 함께 고난을 겪었으며, 함께 말씀을 받고 거룩을 훈련해가는 동지들인 것이죠.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이 너무 개인화 되어버렸습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주어진 빛이 나를 통하여 누군가에게 반사되어야 하는데 나에게만 머물게 하고 싶은 것이죠. 이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신앙은 개인이 변화되어, 공동체를 향해, 더 나아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어제 아침 튀르키예를 위해 기도하는데 마음이 아팠습니다. 갑작스레 목숨을 잃은 그들 때문이 아니라, 저 때문이었습니다. 왜요? 지진으로 수천명, 수만명이 죽었는데도, 제 가슴에 안타까움과 긍휼의 눈물이 터지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가슴이 냉랭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죠.
내 자녀는 손가락만 조금 찧어도 속상해서 가슴을 치고, 조금만 아파도 병원에 데려가서 안절부절 못하는데 타인에겐 그것이 처참한 죽음일지라도 무감각한 저를 본 것이죠. 여전히 위대한 하나님의 구원이 개인에서 머무르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율법도, 절기도, 구원도 모두 먼저는 개인에게 적용하셨지만, 개인에게 적용된 그 율법, 절기와 규례들, 하나님의 원리는 결국 타자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래서 주님은 마테복음 22:36~40에 이렇게 말씀하셨죠.
마태복음 22:36–40 (NKRV)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율법을 성취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가슴에 하나님을 품고 ‘사람'들에게 가셨습니다.
기도의 자리에서 사람이 있는 자리로 나아가지 못하고,
말씀이 있는 자리에서 사람의 자리로 연결되지 못하면
무언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방금 읽은 마테복음 22장에 바로 뒤이어 23장에서 바리새인들을 꾸짖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이 말을 몇번이나 반복하시는지 모릅니다.
그리스도는 나를 위해서 오셨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나의 관점이며 전제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은 더 넓고 크고 옳습니다. 주님은 구원받은 백성 모두를 위해 오셨습니다. 내 스타일이아니고, 내 맘에 들지 않고, 나와 관계없어보이는 그를 위해서 오셨습니다.
주님은 깨진 세상에 고통과 신음 가운데 있는 자들을 위해 오셨습니다. 여러분, 이제 한걸음 성장할 때입니다.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짐은 일상에서 사람을 통해 열매맺습니다.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그리고 그 ‘사람'을 귀하게 여기십시오. 우리 공동체 지체들이 얼마나 귀한 하나님의 선물인지를 보십시오.
우리가 자라고 성숙하는 것은 바로 옆에 있는 지체들 때문입니다. 그들을 사랑하기를 연습하십시오. 혼자만 안식을 누리지 마시고, 함께 안식을 누리도록 위로하고 격려하고 권면하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은혜가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여러분의 직장에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레위기 ‘절기'라는 주제를 가지고 ‘안식'이라는 키워드와 연결하여 개인과 공동체를 적용하여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하나님 이 말씀을 기억하며,
“모든 율법과 절기의 주인이시며 성취자이신 그리스도를 인생의 주인으로 삼게 하옵소서.”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으로 세상에 저항하게 하옵소서"
“나의 안식 뿐만 아니라 교회와 세상의 안식을 향해 한 뼘 넓어지는 우리의 믿음의 시아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튀르키예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우리들을 기억하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
“하나님 튀르키예에 고통당하는 많은 난민들을 기억하여 주옵소서"
언제나 우리를 위로하시고, 슬픔가운데 찾아오시는 하나님이시여.
“그들을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자연을 주관하시고, 만물을 통치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더이상 여진이 나지 않게 하시고, 더 이상 슬픈 죽음과 고통이 없도록 주님 막아주옵소서"
이어서 2/11에 있을 교사 세미나 , 2월의 선교기도회, 또 주일에 있을 초등부와 청소년 학부모 설명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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