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 괜찮아. 괜찮냐?(마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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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3년 2월 11일 토요일, 청년 겨울수련회 둘째날 집회
제목 : 괜찮다, 괜찮아. 괜찮냐?
본문 : 마태복음 6장 31절 *신9
결단찬양 : 주 여호와는 광대하시도다 & 주님 말씀하시면 & 나의 하나님
[도입_수련회를 준비하며]
이번 수련회를 준비하면서 걱정했던 것들이 있다면 무엇이 있겠습니까? 예배팀, 물품팀, 프로그램팀, 식당팀 등 여러 팀으로 나뉘어져서 각자 맡겨진 일들 속에서 준비를 했는데 어떤 고민들을 하며 준비했냐는 거예요.
에배팀의 고민이라면, ‘과연 집회 찬양을 잘 이끌고 갈 수 있을까?’ ‘실수하지 않고 잘 할 수 있을까?’ 를 고민했을 것이고, 물품팀과 식당팀에서는 ‘이만큼 구매하면 적절한 식사를 제공할 수 있을까?’ ‘이정도만 구매해도 괜찮을까?’ 를 고민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또 프로그램팀에서는 ‘그래서 이렇게 준비하면 다들 재밌어할까?’ ‘인원의 유동적인 변화 속에 조가 바뀌어야 하는 모습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고민이 될 수 있습니다.
저라고 고민이 없던 것은 아닙니다. 무려 3년 6개월 만에 다시 오픈되는 외부에서의 수련회라 저 역시 고민이 차고 넘쳤습니다. 청년들이 기획한 시간표를 보면서도, ‘이렇게 휴식이 길어도 될까?’ 또 특강의 순서를 보면서도 ‘특강 잘 준비해서, 잘 할 수 있을까?’ 저녁집회 시간이 다가옴에 따라 ‘오랫만에 진행하는 이 집회에 과연 잘 이끌어갈 수 있는 마음과 준비가 되어 있는가?’ 등을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또 수련회 주제를 정하는 것도 꽤나 일이었습니다. 어떤 메세지가 우리 가운데 지금, 이 시점에 필요할 것인가? 어떤 주제를 정하는 것이 우리에게 시너지가 될 것인가? 를 고민하게 되는데, 이 또한 걱정이고 고민이었다는 겁니다.
그러다 문뜩 ‘괜찮다. 괜찮아.’ 라고 제 스스로에게 수도 없이 말하는 그 모습이,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위로고, 또 함께 시너지가 나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의식하며 계속 ‘괜찮다 광원아. 괜찮아. 너 잘 준비하고 있고, 너 지금 잘 하고 있어.’ 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만져 주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그렇게 하니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아십니까? ‘괜찮다. 괜찮아.’ 라고 말하는데 정말이지 하나도 위로가 안되는거에요.
아주 잠깐, 일시적으로는 위로가 되고 힘이 되기는 아는데 영구적이지 않다는 겁니다. 계속 내 스스로에게 책망하게 되고 절망과 한숨만이 가득했다는 겁니다.
엎친데 덮친다고 계획에도 없던 주일설교가 찾아옵니다. 분명 은혜가 물이 바다 덮음같이 찾아와도 모자를 판에, 걱정이 물이 바다 덮음같이 찾아왔다는 거예요. 한 주의 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간건지 기억도 안나고, 그저 2부 예배 끝나고 조아엘이 눈 앞에 보이는데, 얼마나 반갑던지.
여하튼 제게 한 주는 너무 걱정이었고, ‘이렇게 준비해서는 희망이 없다.’ 는 압박감이 온 몸을 지배하기 시작합니다.
[도입_우리 신앙에서의 고민]
수련회를 준비하는 잠깐의 삶에도 이렇게 고민이 많은데, 우리 신앙에 있어 고민 또한 너무 많지 않습니까?
‘권사님 아들내미가 왜 그러니?’ ‘안수집사 딸내미가 이래도 되는거야?’ ‘다 알자나. 뭘 모르는 척을 해?’ 등 정말 많은 압박되는 말들로 우리 목을 죄어오는게 현실 아닙니까?
부모님의 신앙이 내 신앙이 되어야 하는 그 삶도 너무 어렵습니다. 부모님의 신앙은 부모님껀데, 왜 내가 그렇게까지 되어야 하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신앙 좋은 척’ 합니다.
근데 한 번 생각해볼 것은, 걱정은 ‘왜’ 오냐는 겁니다. 걱정을 왜 하는 겁니까? 이 모든게 ‘책임감’에서 오는 것 아닙니까? ‘내가 맡고 있는 일에 내가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걱정을 하나 둘씩 하게 됩니다.
[본문_도저히 염려안할 수 없는 세상 속에 놓여진 우리]
그런 우리를 향해 오늘 본문이 어떻게 말합니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는 겁니다.
이게요. 이 한 구절을 받아들이는 두 입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내 평상시의 기분이 좋을 때는 ‘아유 주님. 그럼요 그럼요. 하나님께서 일 하신다는데, 제가 무슨 염려를 하겠습니까? 하나님 마음껏 하십쇼.’ 라고 조금 여유로운 텐션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런데, 내 마음에 여유가 없는데, 염려하지 말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겠습니까? ‘어떻게 제가 그런 고민 없이 삽니까?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고민해도 해결되지 않는게 우리 삶인데, 어떻게 우리가 염려 고민 없이 산다는 겁니까?’ 라고 외치게 된다는거죠.
또 신앙이 좀 있는 사람은 더 어려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너무 많이 알고, 너무 잘 알다보니까 ‘염려하지 말라, 걱정하지 말라’ 는 그 말이 너무 마음을 어렵게 합니다.
아니까 더 힘들어집니다. 오히려 이렇게 걱정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또 걱정합니다. ‘내 믿음이 부족한가? 내 신앙에 문제가 생겼나? 내가 하나님을 잘못 믿고 있는거 아닌가?’ 그렇게 우리는 ‘불필요한 죄책감’ 속에서 살아간다는 겁니다.
이런 문제들 앞에 ‘괜찮다. 괜찮아.’ 라고 말은 하지만, 결코 하나도 괜찮지 않은게 우리의 모습이라는거죠. 오히려 ‘괜찮냐’는 질문이 때로는 마음을 후벼 파기도 합니다. 얕았던 상처를 더 깊고 더 아픈 상처로 만든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이 상처를 방치할 수 없습니다. 이 상처를 하루 속히 치료해야 합니다.
저도 어릴 적, 발바닥에 바이러스가 들어가서 ‘조금 욱신거리네?’ 그래서 방치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몇일 사이에 갑자기 심해지더니 너무 아픈거에요. 발을 딛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고 학교 왔다 갔다 하는 일이 너무 힘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병원에 갔더니, 3달을 마취없이 냉동치료라치고 차가운 가스같은 걸 뿌려대고, 그 부위를 칼로 조금씩 긁어내는데, 다시는 없었음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치료가 끝나고 나니 새 삶을 찾은 것 같았습니다. 이와 동일하게 우리 마음 속 깊은 곳에 쌓여가는 그 상처를 우리는 치료해야만 합니다. 방치하면 방치할 수록 그 상처가 너무 커지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막 찾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지. 막 찾아요. ‘히스기야는 도대체 어떻게 해서 병을 치료했지?’, ‘이스라엘 백성은 어떻게 여리고성을 무너뜨릴 수 있었던 거지?’, ‘기드온과 300용사는 어떻게 이들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이지?’
그렇게 우리는 성경을 통해 방법을 찾습니다. 내 인생의 고난이 잘 풀릴 수 있는 방법을 말입니다.
그런데 그게 찾아집니까? 희망이 없습니다. 세상 것이 헛되고 헛된게 아니라 성경이 헛되고 헛된 것처럼 보인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한 번 더 좌절하고, 절망하고, 낙담하고 쓰러집니다.
[본문_하나님과 여러분의 관계는 괜찮습니까?]
그렇다하여 여전히 그 삶 속에 머물러 있기에, 또 그렇게 있는 여러분들을 방치하기엔 제게도 너무 무책임한 행동이고, 함께 지켜보는 이들로 하여금 심적 어려움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뽑아 버려야 하는 그 뿌리가 무엇입니까? 바로 내가 ‘주인됨’ 아니겠습니까? 내가 중심이 되고, 내가 책임지고 해결하려는 그 모습이 여전히 우리 안에 있는 그 삶. 내 욕심과 욕망이 가득한 삶. 내가 주인됨이 우리 삶 속에서 깨져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럼 누가 내 인생을 대신합니까? 내 인생 내가 주인되서 살지 못한다면, 누가 주인되서 내 삶을 이끌어 줍니까? 하나님이요.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되셔서 이끌어 주셔야죠. 하나님이 주인 되셔서 내 안에서 흔쾌히 일 하시는 그 모습을 우리는 바라며 살아가야지요.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사람들에게, 또 내 스스로에게 ‘괜찮다. 괜찮아’ 라고 말한다해서 괜찮아 지냐는 겁니다. 아니요. 결코 괜찮아 지지 않아요.
어때요? 지금 내 모습, 내 신앙에 만족 하십니까? 하나님과의 관계 괜찮으십니까?
[본문_하나님을 구하라]
더 늦기 전에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죠. 하나님 바라보며, 하나님 붙들고 살아가야죠.
근데 31절을 보면 방법을 추구해야 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그런데, 이는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방법에 대한 간구가 아니라, 33절,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하나님의 다스림’을 구하는게 핵심이라는 거죠.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방법을 구합니다. ‘하나님, 어떻게 해야 제가 고민 없이, 염려 없이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럼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게 아니라, 오히려 해결사 하나님으로 제한하고 우리는 바라보게 되는거죠. 그런데, 잘 아시자나요. 하나님이 해결사로서 제한되면 안된다는걸 말입니다.
하나님은 저 공중의 새를 보라, 저 들밭에 핀 백합화를 봐라. 왜요? 그것들을 주관하시는 이가 누구냐? 하나님 아닙니까? 그러니 염려와 걱정도 누가 주관하시겠냐는 거에요? 하나님이 그것마저도 주관하신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잘 믿어도 내 학업 생활에 고민과 염려 있죠. 하지만 그 고민과 염려 마저도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거예요. 또 하나님을 잘 믿어도 내 직장 생활에 있어 고민과 염려 있겠죠. 하지만 그 고민과 염려 마저도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겁니다. 내 가정에서의 고민, 내 개인적인 염려. 이 모든 것을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그것들 마저도’ 주관하신다는 거예요.
먹고 마시는 우리의 모든 삶 속에 부담과 불편함이 있음에도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은 오히려 위로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이 주관하신다. 우리가 ‘괜찮다, 괜찮아.’ 라고 말해주는 일시적 위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말씀하시는 ‘괜찮다. 괜찮아’ 의 영원한 위로를 우리는 누려야 합니다.
이제 그 위로를 어떻게 누릴 겁니까? 지금이야 수련회니까 꾸역꾸역 들어 알겠는데, 이 삶을 우리는 어떻게 지속시키고 유지시켜 살아가겠냐는 겁니다.
말씀 붙들어야죠. 기도해야죠. 찬양해야죠. 모여야죠. 하나님이 내 안에 거주하시도록 더 힘써야죠.
[결론]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우리 삶에 주관자요 핵심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바라봅시다.
[결단찬양 1]
주 여호와는 광대하시도다
[기도제목]
1) 승리의 하나님, 나의 삶 가운데 함께 하셔서 승리로 인도하심을 누리는 우리 되게 하소서
2) 하나님만 온전히 의지하는 우리 되게 하소서
3) 삶의 고난이 올 때, 방법을 구하기보다 이것마저 능히 이기실 주님을 보게 하소서
4) 나의 삶의 고민들, 염려들 주께서 응답하시어 뜻하신 그곳에 우리가 가게 하소서
[결단찬양 2]
주님 말씀하시면
[기도제목]
5) 주님 뜻하신 그곳에 서 있는 우리 되게 하소서
6) 주님 뜻 이루며 사는 청년 공동체 되게 하소서
[결단찬양 3]
나의 하나님
[기도제목]
7) 더욱 주님 알길 소망하는 청년 공동체 되게 하소서
8) 주님을 만나 삶의 이유와 예배의 이유를 알게 하는 시간 되게 하소서
9) 서로의 기도제목을 나누며 기도합시다. (옆의 사람과)
10) 서로의 기도제목을 나누며 기도합시다. (나랑 가장 어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축복송]
하나님의 사랑이
1) 수련회로 나아온 우리를 축복합시다.
2) 대학생 청년들을 축복합시다.
3) 직장인 청년들을 축복합시다. + 아직 축복 받지 못한 자
4) 소그룹 리더들을 축복합시다.
5) 찬양팀을 축복합시다.
6) 방송팀을 축복합시다.
7) 박효진 자매님을 축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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