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3:22-30
유대의 결혼식에서 두 명의 신랑 친구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대개는 신랑의 가장 친한 친구들이 맡으며, 결혼식 내내 자질구레한 일들을 책임져 처리해 줍니다. 특히 그들의 가장 큰 역할은 신부를 신랑에게 데리고 오는 일입니다. 그리고 신랑이 첫날밤을 보낸 후 신부가 정혼 기간에 순결을 잘 지켰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외치는 소리를 밖에서 맨 처음 듣고 기뻐하는 일입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은 신랑의 친구이며, 예수님이 바로 신랑이시라고 소개합니다. 자기 역할은 신부를 신랑에게 데리고 가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신부는 바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회개해 정결해진 하나님의 신부인 이스라엘 백성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역할을 세례 요한이 맡은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순결한 백성을 보고 기뻐하실 때 같이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신부는 신랑을 위해 존재하므로 저 건너편의 많은 사람이 신랑을 찾아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그곳에서 얼마 동안 머무시면서 세례를 베푸셨습니다. 앞서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다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의 세례는 물세례를 말하는 것일까요?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앞서 언급했듯이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은 두 가지 종류의 세례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에스겔 36장의 예언을 성취하는 것으로, 메시아 예수님이 보내신 성령을 따라 받는 세례를 뜻합니다. 따라서 여기서 물세례는 앞서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것과는 다른 것 같습니다.
둘째, 4장 2절을 보면 실제 예수님이 세례를 베푸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베풀고 있는 것으로 나옵니다. 그렇다면 이 세례는 세례 요한의 세례와 다름없이 메시아의 오심을 준비하는 ‘회개의 세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직은 자신을 메시아로 알리지 않으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통해 사람들에게 “메시아가 올 때가 가까웠으니 회개하라”라고 촉구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메시지는 바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4:17)입니다.
‘흥하다’(αὐξάνω, 아웈사노)(30절)는 요한복음에 한 번밖에 등장하지 않는다. 이 단어는 원래 식물이나 사람이 건강하게 성장하는 것을 뜻한다(예. 마 6:28; 13:32; 눅 1:80; 2:40). 그러나 사도행전에서는 이 단어가 자주 교회의 부흥을 묘사할 때 사용된다(행 6:7; 12:24; 19:20). 한편, 바울과 베드로는 이 단어를 주로 개인의 영적 성장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한다(고후 10:15; 엡 4:15; 벧전 2:2; 벧후 3:18). 이와 같이 아웈사노의 신약 용례는 크게 개인의 자연적 성장, 교회의 성장, 개인의 영적 성장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이 단어를 좀 더 고차원적으로 사용한다. 비록 한 번밖에 쓰이지 않았지만, 신약의 다른 용례들의 최종 목적을 설명한다. 아웈사노는 예수님의 명성이 높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개인과 교회 성장의 궁극적 목적은 예수님의 영광이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높아지시는 것을 묘사하기 위해 아웈사노를 사용한다.
‘쇠하다’(ἐλαττόω, 엘라토오)(30절)는 신약 성경 전체에서 단 3번 등장한다. 이곳을 제외하면, 히브리서에서 두 번 언급된다.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님의 성육신과 고난을 표현하기 위해, 예수님이 천사보다 ‘못하게 되셨다’(엘라토오)고 한다(히 2:7, 9). 이는 원래 시편 8:5에 나오는 내용인데, 히브리서 2:7은 이를 인용하며 기독론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히브리서 2:9에서 죽음의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을 소개하고 있다. 70인경에서 엘라토오는 사람의 수가 줄어 나라의 국력이 약해지거나(70인경 렘 37:19), 양식이 없어 궁핍한 상황을 묘사하기도 한다(70인경 삼상 2:5; 삼하 3:29; 시 33:11; 렘 51:18). 따라서 우리는 세례 요한의 쇠하여짐을 짐작할 수 있다. 엘라토오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요한복음은 세례 요한의 고난과 죽음을 암시하고 있다.그의 낮아짐은 그리스도의 낮아짐을 닮는다. 그의 낮아짐은 결국 그리스도를 높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