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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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시편 150:6(구약 911쪽)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반갑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늘 충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일전에 한번 말씀을 드렸는데요. 청소년부와 청년부가 2월 중에 ‘찬양의 밤’이라는 행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깐 찬양집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 찬양집회의 주제의 ‘찬양’에 관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주제와 관련해서 묵상하고 나름 공부도 하고 있습니다.
그제와 어제 있었던 청년부 수련회를 통해서도 이 주제에 관해서 2번의 예배를 통해 짧게 나눴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 주제를 공부하면서, 우리 성도님들과도 얘기를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공부를 하면서 깨닫을 것이지만, 우리가 찬양의 의미와 가치를 생각보다 잘 모른다는 것을 알았고요. 그것을 부분적으로만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가령 이런 겁니다. 우리가 찬양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면,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찬양을 음악에 관계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교회를 통해서 주로 접하는 찬양은 음악의 형식을 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실제로 찬양의 중심이 되는 시편이라는 책도 악기를 통해서 연주했던 찬양집인 것을 고려하면, 그것이 성경적인 이해라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찬양을 부분적으로만 이해한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좀더 명확해 집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음악 없으면 하나님을 찬양하지 못합니까? 다시 말해서, 찬양하기 위해서는 음악을 알아야 하고, 그에 걸맞는 악기연주를 반드시 해야 합니까?
사실 그렇지않습니다. 찬양은 엄밀하게는 음악이 아니면, 하나님을 향한 신앙고백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단지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가 음악일 따름입니다.
왜 찬양을 신앙고백이라고 하는가 하면요. 찬양은 음악과 달리 하나님이라는 분명한 대상을 향해 있습니다. 세상의 음악은 반드시 하나님을 대상으로 만들어지지 않지만, 찬양은 반드시 하나님을 대상으로 만들어집니다.
그러니 찬양은 하나님에 관한 신앙을 바탕으로 하고, 그 신앙에 따른 고백입니다. 이는 달리말하면, 우리의 찬양에서 신앙고백이 없다면, 그것은 진정한 찬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찬양을 음악이라는 요소에 가두어 두면 안 됩니다. 찬양은 꼭 음악이라는 형식으로 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분명한 믿음의 고백이라면 어떤 형태로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찬양은 곧 음악이라는 생각을 한다면 그것으로부터 생각을 돌이키시고 그것보다 생각을 넓히셔야 합니다.
또 한편으로 찬양은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선의 것이며 최고의 것입니다. 우리의 경험에서 찬양은 예배 전에 짧게에 이뤄지고, 예배순서의 중간중간에 들어가는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찬양이 예배의 부분적인 요소라 생각하지 전적인 요소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더욱이 찬양은 분위기를 띄우거나 잡는 정도로 마치 음식에 넣는 조미료처럼 역할하는 것으로 보여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찬양을 할 때 모두가 열심히 찬양하지도 않고 때로는 찬양과 무관한 행동들을 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주보를 뒤적거리는 등의 행위 말입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의 중심이 찬양이라고 할 수 있고, 우리가 유일하게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이 찬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하나님께 과연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기뻐받으실 만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고 모든 것을 소유하신 분인데,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받는다고 기뻐하실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가진 것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만한 것이 사실상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단한가지 우리가 확실하게 드릴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마음일 것이고, 그 마음을 담은 또는 우리의 신앙고백을 담은 찬양만이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찬양은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선의 또한 최고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것에 소홀하다면, 사실 우리는 하나님께 아무것도 드리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더욱이 예배를 드린다고 하지만, 우리의 마음이 없은 형식적인 예배를 드릴 뿐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마음을 담은 찬양이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찬양을 온전히 드리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우리의 삶으로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이것에 관해 많은 분들이 오해할 수 있습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찬송가나 복음서를 부르는 것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앞서 찬양이 노래만을 뜻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신앙고백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찬양은 하나님에 관한 믿음으로 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이는 먼저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종교개혁자인 칼빈은 우리는 하나님을 인식해야한다고 하면서, 의식과 인식의 차이를 나눕니다. 사람들이 영적인 존재를 느끼는 것이 의식이라면, 그 영적인 존재가 하나님임을 아는 것이 인식입니다.
마치 이런 것입니다.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 훌륭한 우리의 어머님들은 물건을 꼼꼼히 살펴서 좋은 물건을 삽니다. 저의 눈에는 다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어머님의 눈에는 더 좋은 것이 있음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저의 눈이 의식에 관한 것이라면 어머님의 눈은 인식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제대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똑같이 영적인 존재를 느낄 수 있음에도 인식과 의식은 다른 것입니다. 신천지도 영적인 존재를 느낌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함으로 엉뚱한 것을 쫓습니다. 그러니 겉으로는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진정으로 하나님을 아는 일이 참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찬양의 가사들은 대부분 성경의 내용을 통해서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음악에 취하면, 그 가사의 의미보다 멜로디와 리듬에 마음이 빼앗기고 맙니다.
그래서 우리가 찬양 가운데 ‘영광, 은혜, 거룩’ 등의 말을 하면서도 정작 그것의 의미를 생각지 않고 음악의 멜로디에 그저 흥얼거리기만 할 뿐입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그 찬양의 가사를 이루는 말씀을 통해 더욱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일이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는 찬양의 가사 속에서 하나님을 쉽게 부르지만, 하나님이 그렇게 쉽게 부를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온 세상을 만드시고, 우리의 생명의 주인이신 분을 우리는 결코 가볍게 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그냥 부르면 감흥이 없어서, 거기에도 여러 수식어를 붙입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 자비로우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하나님 등등’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을 감히 우리가 부를 수 있다는 것 또 그 분이 우리에게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도록 해주신 일들이 참으로 놀랍고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이 가치를 알고 이 의미를 아는 사람들에게 찬양은 그저 음악에 따른 흥얼걸임에만 그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우리가 찬양하는 것은 우리의 찬양의 대상이신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삶을 통해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을 이루지 않고서 진정한 찬양을 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진정으로 찬양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고,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몸으로 나타내 보이는 사람입니다. 우리 안에 그와 같은 삶이 온전한 찬양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바라건데, 오늘 저와 우리 성도님들께서는 하나님을 온전히 찬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입술의 고백만이 아니라 삶을 통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