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를 진 제자로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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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누가복음 9장 23절(신약 107쪽)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반갑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늘 충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저는 신앙생활 가운데 우리가 곱씹고 되새겨야 할 주제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제 삶에 있어서 신앙에 관한 중요한 주제 중 하나가 ‘사랑’입니다.
일전에 다른 기회를 통해서 몇 차례 얘기했는데요. 간단하게만 말씀드리자면, 제가 목사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하게 했던 것이 바로 이 사랑으로 인함입니다.
성경은 그것을 크고 중요한 계명으로 가르치고 있고 그것을 수호하고 전파하는 것이 결국 목사의 일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우리 공통의 중요한 신앙의 주제는 ‘구원’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어떻게 보면, 우리 신앙생활의 목표는 구원이라도 할 수 있으니까요.
그 외에도 자주 되새겨 볼 여러 신앙에 관계된 주제들이 있습니다. 저는 오늘 그중에서 한 가지의 주제를 이야기하려 합니다.
그것은 바로 ‘제자’입니다.
이 주제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먼저 여쭤봅니다. 마음속으로 답해보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성경은 제자의 중요성에 관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마태복음 28장 18절-20절 말씀(신약 52쪽)입니다.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명령하신 말씀입니다. 흔히 이것을 ‘지상명령’ 곧 최고의 명령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깐, 제자를 삼는 일 또는 제자에 관한 주제는 참으로 중요한 신앙생활의 주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주제에 관해서 생각하고, 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마음을 먹었던 것은 작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한 권의 책을 접하고였습니다.
책의 제목은 “팬인가, 제자인가” 입니다. 이 책은 2012년 출판이 되었지만, 2017년에 개정증보판으로 또 나왔습니다. 저는 2017년 개정증보판을 읽었고요.
이 책의 저자는 미국의 사우스이스트 크리스천 교회(Southeast Christian Church)의 담임목사님인 카일 아이들먼(Kyle Idleman)입니다.
최초 출판일을 기준으로 하면, 약 10년이 넘은 오래된 책인데요. 그러다 보니 최근의 화젯거리를 담고 있지는 않지만요.
여전히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 중요한 이야기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앞서 말씀드린 ‘제자’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책의 시작에서 저자인 카일 아이들먼 목사님은 자신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하는데요.
어느 부활주일을 앞둔 날이었는데요. 저자는 평소보다 설교준비가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부활주일은 평소보다 많은 이들이 예배를 참여했다고 하는데요. 그중에는 그 날만 모처럼 교회에 나오는 이들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멋진 설교를 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고 해요. 또 모처럼 교회에 나온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서 다음 주에도 아니 앞으로 쭉 예배에 나오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했다고 합니다.
이리 저리 궁리를 하던 중에 문득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를 생각하며, 성경을 찾아보았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큰 충격을 받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특별히 물고기 2마리와 떡 5섯개로 5천명 이상을 먹이신 사건 곧 오병이어 사건에서 그러했습니다.
오병이어 사건을 경험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쫓아왔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썩을 양식을 구하지 말고 자신을 따라 하나님의 일에 참여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떠났습니다(요 6:66).
그 성경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깨달았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원하신 것은 제자였지 팬이 아니었다고 말이지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 열광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 헌신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면서 저자는 이제껏 자신이 제자가 아니라 팬을 만들고 있었던 것을 깨닫고 반성하면서요. 더이상 사람들에게 매력적이고 편안한 길로 포장하려 했던 팬의 길이 아니라, 책을 통해 절대 쉽지 않은 제자의 길을 우리에게 전합니다.
그렇다면, 제자와 팬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몇몇 성경의 이야기를 통해 이를 살펴볼 수 있는데요. 같이 성경을 찾아보겠습니다.
신약성경 요한복음 3장 1~2절(신약 145쪽)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어느 날 밤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그는 예수님께 호의를 가지고 찾아왔지만, 그의 행동에서 우리는 그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 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니고데모가 바리새인이며 유대인의 지도자라고 소개합니다. 당시 바리새인은 율법에 정통하고 사람들에게 그 행실이 존경받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바리새인을 날카롭게 비판함으로 그들과 충돌하고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또 니고데모를 유대인의 지도자로 소개하는데, 이는 산헤드린공회원을 말합니다. 이는 당시 유대인들의 종교적인 문제를 재판하는 최고의 사법기관으로 여기에 소속된 이들은 유대인들 중에서 지도자적 위치에 있는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깐 니고데모는 당시 사회에서 굉장히 유능하고 존경받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찾아온 시간은 밤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이목을 피하고, 예수님과의 만남을 숨기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과의 만남이 알려지면 니고데모에게 여러 가지로 손해가 생기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팬은 손해를 감수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 호의적인 반응을 나타내더라도, 적당히 거리두기를 합니다. 예수님이 좋다고 말하지만, 내가 손해 보는 선택은 주저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예배에 참여하는 것은 내 시간과 기분에 따르고, 봉사는 나와 관계 없는 일로 치부해 버립니다.
그것은 제자가 아닙니다. 그것은 팬일 따름입니다.
또 다른 성경의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같이 성경을 찾아봅시다.
신약성경 누가복음 7장 36~38절(신약 102쪽)입니다.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어느 날 시몬이라는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식사자리에 초대합니다. 예수님이 이에 응해 그 바리새인의 집에 있을 때에 한 여인이 찾아와 예수님의 발을 눈물로 씻고 향유를 붓습니다.
이 장면 속에서도 우리는 팬과 제자의 모습을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 시몬은 팬이고 여인은 제자입니다. 어찌보면, 갑작스럽게 난입해서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는 여인이 팬인 것 같지만요.
우리는 바리새인 시몬의 모습 속에서 그가 팬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 바리새인은 율법에 정통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앞에 오랫동안 기다려온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그는 손님 대접에도 소홀함을 보입니다.
예수님은 시몬이 발을 씻을 물을 제공하지 않은 것과 정확한 용도는 모르겠으나 머리에 부을 감람유를 제공하지 않은 것을 지적하셨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당시 사회에서 손님을 대접하는 관습이었을 겁니다.
반면에 갑자기 난입한 것 같은 여인은 예수님의 발을 눈물로 씻기고 향유를 붓습니다. 이러한 행동을 하는 것에 여인은 많은 손해를 감수해야 했습니다.
우선은 성경은 그가 죄 많은 여인이라고 소개합니다. 그가 구체적으로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알 수 없지만, 사람들 앞에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분명 손해를 감수해야만 했을 겁니다.
마치 한낮에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우물물을 길으러 오던 사마리아 여인처럼 말입니다. 결코,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일은 여인으로서는 좋은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향유는 값비싼 물건이었습니다. 다른 성경구절에서 그 값이 300데나리온으로 나오기도 하는데, 이는 노동자의 약 1년치 품삯에 해당되는 금액입니다.
이처럼, 여인은 많은 것들의 손해를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것이 제자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하나님 말씀도 많이 아는 바리새인이 더 예수님의 제자로 적합해 보일지 모르지만요. 진정으로 눈 앞에 있는 주님이 누군신지도 알아보지 못하는 지식이라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물론 지식이 필요 없다는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에게 필요한 지식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제대로 아는 지식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기에 기꺼이 손해를 감수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예수님을 제대로 안다면 손해를 감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고 니고데모는 변화되었습니다. 그는 한때 예수님의 팬이었지만, 훗날 그는 예수님의 제자로 변모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에 그는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 “몰약과 침향”을 가지고 옵니다.
몰약과 침향은 꽤 값비싼 물건입니다. 변화된 니고데모는 이렇게 기꺼이 손해를 봅니다. 더욱이 돈 이상의 손해를 각오합니다. 그는 예수님의 장례에 관여함을 통해 예수님의 제자임을 명백히 드러냅니다. 이는 그가 더이상 밤에 예수님을 찾아온 팬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로 변화되었음을 말해주는 사건입니다.
이렇게 팬과 제자는 구분됩니다. 둘은 겉으론 비슷하게 예수님을 좋아하고 예수님께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지만, 제자는 손해보고 헌신할 수 있음에도 팬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제자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이 오늘 우리가 처음 읽은 성경 본문입니다. 다시 한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누가복음 9장 23절(신약 107쪽) 입니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려거든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것의 의미를 아래의 성경구절을 통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9장 57-62절(신약 109쪽) 입니다.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려는 이들에게 뒤를 돌아보지 말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는 예수님을 따르는 일에 곧 제자로 살아가는 삶에는 적당히 타협하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실제로 집도 버리고 가족도 버리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다만, 적당히 신앙생활은 없습니다. 아무리 그럴듯한 말로 포장한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뒤돌아볼 무엇이 있다는 것은 예수님보다 더 중한 것이 있다는 말이 될 테니까요.
이렇게 제자의 길은 혹독한 것입니다. 혹시라도 예수님 믿고 편하고 안락한 삶을 꿈꿔왔다면, 죄송하게도 그런 길은 없다고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넓은 문이 아니라 좁은 문으로 인도하십니다.
설교의 시작에 했던 질문을 기억하십니까? 이제 다시 묻습니다. 마찬가지로 마음속으로 답해보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어쩌면, 처음과 다른 대답을 하실 분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제자의 길이 그렇게 힘들고 고된 것이라면, 제자의 길을 들어서길 주저하거나 망설여질 분이 계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희망적인 이야기를 한 가지 드리자면 이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능력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가능한 일입니다.
사실 우리는 역사 속에 등장했던 성인과 같은 삶을 살아갈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는 평범한 사람들이고, 이제껏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왔는데, 그것이 부족하다면, 더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도무지 대책이 서지도 않습니다.
맞습니다. 어느 누구도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심지어 역사 속에서 성인이라고 일컬어졌던 이들도 고뇌하고 갈등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우리의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의 한계를 마주하고 그것으로부터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할 때, 우리는 비로소 예수님의 제자로써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기까지 우리는 자신의 무능함과 마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전까지 나의 신앙생활을 괜찮다고 믿는다면, 우리에게는 변화의 가능성이 없습니다.
내가 제자가 아니라, 팬으로 살아왔던 시간들을 돌아보고 나의 힘으로써는 도무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 비로소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에 한발짝 다가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라건데, 저는 우리 모두가 성령의 도우심에 힘입어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는 신앙생활에 적당히라는 말을 지워버리고, 뒤를 돌아보지 않는 제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그와 같은 변화가 저와 우리 성도님들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