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기도와 회개를 기뻐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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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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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금 : 먼저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드립니다. 받아주옵소서. 또한 우리의 가장 값진 물질을 봉헌합니다. 주님 받으시고 기쁘게 흠향하여 주옵소서. 이 드림이 우리의 예배가 되게 하시고,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을 가장 영광스럽게 하는 예배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 :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본문 : 요나 3:1-10.
1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3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하나님 앞에 성읍이더라
4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5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
6 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
7 왕과 그의 대신들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이르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8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 옷을 입을 것이요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9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10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기독교가 인기 없는 이유는, 하나님의 용서 때문입니다.
본문 10절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너무도 쉽게 용서하세요.
사람 죽이고,
전쟁 포로도 죽이고,
죽은 사람 두개골로 피라미드도 만들고,
이런 잔인한 민족을 너무도 쉽게 용서하시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가장 극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떠올려보세요.
아이들을 유기, 방치하거나,
끔찍한 살인 및 강간, 성폭행, 온갖 파렴치한 행위를 한 죄인들을 떠올려보세요.
그런 사람들이
너무도 쉽게 하나님의 용서를 받는다는 것을 이해해보세요.
기독교가 인기가 없는 이유가 이런 것입니다.
멀쩡한 사람,
정상적인 사람이면 괜찮은데.
고상하고,
착한 사람들만 모이면 괜찮은데,
온갖 잡다한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모여서,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 교회가 되었다고 생각을 해보세요.
역겹고, 구토가 나고, 더 이상 가까이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바리새인이 말했습니다.
어떻게, “세리와 죄인, 창녀들과 가까이 할 수 있는가?”
어떻게 당신의 스승인 예수는,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실 수 있는가?
여러분, 기독교가 인기가 없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 세상에,
하나님의 용서가 필요없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훌륭한 사람/훌륭하지 않은 사람을 구분합니다.
저 사람은 훌륭해
저 사람은 비열한 사람이야.
나름대로 좋은 사람/나쁜 사람을 구별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어때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이 이르지 못했다. 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기독교가 인기가 없는 이유입니다.
*요나는 싫었습니다.
동쪽으로 가서,
회개의 설교를 하라는 명령이 싫었습니다.
요나는 니느웨 사람들,
잔인하고
악날한 그들이 구원받는다는 게 싫었습니다.
하나님은 너무도 쉽게 그들을 용서해주실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요나는 처음에 불순종했습니다.
요나, 2장에서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죽음이 임박했을 때,
기도로 살아난 요나는,
드디어 하나님 말씀에 다르게 반응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요나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합니다.
1절부터 3절까지입니다.
1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3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하나님 앞에 큰 성읍이더라
약 800킬로미터를 걸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니느웨까지 거리가 800킬로미터입니다.
하루에 30-40킬로미터를 걷는다고 해도,
(군대 다녀오면 알겠지만, 군장매고 1시간에 4킬로미터 걸을 수 있습니다.)
꼬박 10시간 동안 걸으면 40킬로미터니까, 최소 20일, 길면 30일이 걸리는 대장정이죠.
보통 순종이 아닙니다.
굉장한 순종입니다.
30일 동안 800킬로미터를 걸어서 전도하러 갔다!
(우리가 평택대 전도하러 가자! 라고 해도, 순종하기 어렵죠.
일단 부끄럽고,
사람들이 거절하는 게 싫고,
또 거기까지 걸어가는 것도 내키지도 않고,
아마 1.3킬로미터 정도일 것인데,
아직 순원들이랑 친하지도 않고,
그런데
자, 우리 3월달에 전도하러 가자! 이러면 순종하기 어렵죠!)
그런면에서
요나 보세요.
1-2킬로미터가 아니에요.
장장 30일 동안 800킬로미터를 걸어 갔어요.
여러분 그런데요.
요나는 아직 제대로 된 순종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왜요?
3절을 보니까,
니느웨는 3일 동안 걸어야 할만큼 큰, 메가 시티에요.
잠깐 배경 설명하자면,
아시리아의 수도 니느웨는
18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성경이 거짓이라는 근거로 사용되었어요.
왜요?
아무리 고고학자들이 찾아봐도,
성경에 나오는 니느웨라는 도시가 없는 거에요.
그래서 무신론자들이
성경은 틀렸다.
성경에 나오는 도시, 니느웨를 아무리 찾아봐도 없지 않느냐?
그런데,
1842년에, 그리고 1847년에 레이어드에 의해서 니느웨가 발굴되어 버린 것이죠.
니느웨는 일단 성곽만 12km 가 넘는 도시였어요.
뭐, 요즘 사우디 왕자가 짓겠다고 말한 네옴 시티만큼 큰 도시는 아니에요.
그러나, 고대 시대에 그 정도면 굉장히 큰 도시입니다.
아마도 인구가 60만명이었던 걸로 추산합니다.
아마 평택시 인구가 거의 55만명 정도인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엄청나게 큰 도시였던 것이죠.
그렇게 큰 도시인데,
니느웨를 요나가 딱 하루만 설교하고 퇴근해버립니다.
4절을 보세요.
딱 하루 동안만 다녀요.
그리고 설교를 하는데요.
회개하라.
회개하면 산다.
회개하면 하나님이 용서해주신다.
그런 메시지가 아니에요.
40일 지나면, 니네들 다 죽었어.
다 끝날 것이여.
소망의 메시지가 아니고, 그냥 심판의 메시지만 전한 거에요.
그것도 3일 동안이 아니라 딱 하루만 전도하고 치운 것이죠.
여러분 그런데요.
니느웨 사람들의 반응이 독특합니다.
*5절부터 9절까지가 니느웨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5절을 보세요.
니느웨 사람들이 “아멘” 했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라고 할 때, ‘믿고’ 라는 단어가, 히브리어로 ‘아만’입니다.
교회에서 설교했는데 아무도 ‘아멘’을 안해요.
그런데요.
저기 무신론자들이 가득한,
잔인하기로 유명한,
뭐 그런 악한 도시에 가서,
대충 심판에 대해서 설교를 했는데,
이게 왠걸,
설교를 듣는 모든 청중들이 ‘아멘’하면서, 회개를 하는 것이죠.
회개를 하면서,
야, 우리 굶자!
밥 먹지 말자!
물도 마시지 말자!
라고 하면서 회개를 하는 것이죠.
그리고 이 사건이 이제 청와대까지 들린 것이죠.
니느웨를 다스리는 대통령이 이 사건을 들었어요.
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어떻게 합니까?
자기 왕좌에서 벌떡 일어나는 것입니다.
요나, 1장에서
요나야 너는 일어나서 저 니느웨에 설교를 하여라!
이 때 요나는 벌떡 일어나서 배 타고 반대편으로 가버렸는데,
반대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니느웨 왕은 벌떡 일어나서,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국가적인 금식을 선포하고,
고위직 공무원부터 시작해서,
천한 노예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 뿐만 아니라,
가축들도 밥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고,
사람 뿐만 아니라, 가축들도 굵은 베 옷을 입고
(베 옷을 입는다는 것은 회개와 슬픔의 표시에요.)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잘못했던 거 고치고,
더 이상 죄 짓지 말고,하나님께 살려달라고 힘써서 부르짖어 기도하자!
*여러분 기도하면 하나님이 용서해주십니다.
하나님은 즉각적으로 용서하세요.
10절을 보세요.
하나님이 그들이 회개하는 장면을 보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서는,
즉각적으로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셨던 재앙을 즉시에 그쳐버리신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가 이만큼 능력이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거에요.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하나님, 살려주세요.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여러분, 하나님도 알아요.
여러분이 또 죄 지을 수도 있다는 것을.
그렇지만, 하나님은 어떻게 하실까요?
니느웨 사람들,
지금 회개했지만,
조금 평안해지니까, 또 죄 지었어요.
그러니까 어떻게 되었겠어요?
다시 하나님께 심판을 받아서 멸망하게 되었죠.
그건 그렇고,
어쨌든,
여러분이 실수하고 실패할 것 알지만,
기도하는 인생은 항상 용서받는 인생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자녀의 기도에 귀를 막지 않으세요.
반드시 들으십니다.
그리고 듣고 응답하시는 거에요.
하나님의 뜻은 ‘부정적’이지 않습니다.
너, 내 말 안 듣지?
내가 너 무너뜨려버린다.
내가 너 멸망시켜버린다.
이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뜻은 뭐에요?
항상 ‘긍정적’입니다.
심판의 메시지도, ‘회개하라’는 메시지에요.
너 죄 지었지. 너 가만안둬.
근데 그 속마음은 뭐에요?
‘내가 너 망하지 않기를 바래.’
‘나는 너 살기를 바래.’
이게 하나님 마음 아닌가요?
*말씀을 맺습니다.
기독교가 인기가 없는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풍성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미워하고,
세상은 교회를 손가락질 할지라도,
우리는, 이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힘입어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즉각적으로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혜가 풍성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부정적인 분이 아니십니다.
나는 너 망했으면 좋겠어.
나는 너 파괴되었으면 좋겠어.
그런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심판 메시지 속에도,
우리를 살리고자 하시는 “긍정의 은혜”를 심어놓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니 여러분,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즉각적으로 용서하시고,
우리의 기도에 반응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도
하나님처럼, 다른 사람을 용서할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더 잘 살아야 되고,
내가 더 잘해야 되고,
내가 더 개선되어야 하나님이 나를 용서하실 거야.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도 그렇게 대하게 됩니다.
상대방이 더 잘 행동을 해야 용서하고,
변해야 용서하고,
바뀌어야 용서하는 것이죠.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긍휼과 용서가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언제든 회개하면 용서하시고,
언제든 기도로 나아가면 용서하시는 분이시죠.
그래서 교회가 어려운 것입니다.
여전히 변할 것 같지 않은 사람을 대할 때에도, ‘하나님 마음’으로 대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교회 됨의 본질’ 있습니다.
교회 됨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랑과 긍휼입니다.
끊임없이 용서하는 용서에 있는 것입니다.
(찬양단 입장)
이 시간에 우리 함께 찬양하기를 원합니다.
우리 자신을 알면 알수록
우리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됩니다.
반대로
우리 자신을 잘 모를 수록
우리는 다른 사람을 정죄하게 됩니다.
보소서 주님, 나의 마음을, 선한 것 하나 없습니다.
이 찬양곡의 가사처럼,
우리가 진실되게 고백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진심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함께 찬양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들은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겠습니다.
우리 기도에 즉각적으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믿을 수 있도록.
우리의 회개에 언제나 풍성한 용서로 반응하시는 하나님을 믿을 수 있도록.
우리가 이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주어진 말씀에 힘입어,
교회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교회를 이끌어 가시는 담임목사님과 사모님의 영육간의 강건함을 위하여.
저를 위하여.
특별히 행사 준비로 수고하는 우리 리더들, 행사부원들을 위하여.
순장들을 위하여.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일정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다음주에 있을 교회 척사대회를 위해
이 행사를 통해 교회가 더욱 단합될 수 있도록.
또한 26일 청년부 행사를 위하여.
그리고 3월 새학기 개강을 준비하며, 우리 청년들이 나태하지 않고, 개강을 잘 준비할 수 있도록.
한 영혼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관찰 / 이미지
1 두번째로 말씀하셨다.
2 너는 일어나라, 너는 가라, 저 큰 성읍 니느웨로. 너는 그들을 향하여 부르라(카라), 내가 너에 말한 메시지를.
들은 메시지에는 책임이 따른다.
전하라.
3 요나가 일어났다, 여호와의 말씀대로 니느웨로 갔다, 니느웨는 하나님 앞에 큰 성읍이다. 3일 동안 걸어야 할만큼
기자는 ‘수식’하고 있다.
니느웨는 3일 동안 걸어야 할 만큼 크다!
4 요나가 시작하였다, 그 성읍에 들어가기를, 하루 동안 걸으면서, 그가 외쳤다, 그가 말하기를, 40일이 지나면, 니느웨는 무너뜨려진다(니팔, 하파크).
하파크 : 전복되다, 멸하다, 무너지다, 뒤집다
5 니느웨 사람들이 ‘아만’(믿다, 진실하다, 충성하다, 충실하다)하고, 금식을 선포하였다(카라), 그리고 그들이 굵은 베 옷을 입었다, 큰 사람으로부터 작은 사람들에까지.
‘아멘’ 하였다.
니느웨 사람들이 ‘말씀’에 ‘아멘’ 한 것이다.
그들은 금식을 선포하고
베 옷을 입었는데
큰 자부터 ~ 작은 자까지 모두 입었다.
사회적 위치
생년월일
6 그 사건(다바르 / 사건, 말씀)이 니느웨 왕에게 닿았다, 그가 그의 왕좌로부터 일어났다(쿰), 그의 영광(앗데렛 / 왕복, 외투, 화려함)를 벗었다(아바르 / 지나가다, 넘어가다), 그리고 굵은 베 옷을 덮었다, 그리고 에페르(재, 흙, 먼지) 위에 앉았다(야샤브).
요나도 일어났지만,
왕은 바로 왕좌에서 일어났다.
왕은 그의 영광을 지나쳤다.
그리고 굵은 베 옷으로 그 자신을 덮었다.
그리고 그는 왕좌 대신에 ‘먼지’ 위에 앉았다.
아파르는 ‘연약함’을 의미한다.
왕의 즉각적인 ‘회개’를 보여준다.
7 그리고 그가 자아크(부르짖다, 도움을 청하다)하였다, 그리고 니느웨에 말하였다, 왕과 큰 자(가돌)들이, 타암(조서, 맛, 판단, 분별), 말하기를, 사람(아담)이나 베헤마(가축, 짐승)이나 바카르(소떼)나 양떼나 아무것도 타암(맛보다, 깨닫다 / 미완)하지 말 것이다, 그들은 먹지도 말 것이고 물도 마시지 말 것이다.
‘타암’이 반복된다.
타암을 내려서, 타암하지 말라고 말한다.
아무것도 맛보지 말 것이다.
8 그리고 그들은 굵은 베 옷을 입을 것이다,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그들은 부르짖을 것이다(카라), 하나님께, 호즈카(심히, 크게, 힘써), 그리고 그들은 슈브(돌아가다, 돌이키다)할 것이다, 각각 그 악한 길로부터, 그리고 그들의 손으로 행한 하마스(흉악, 포악, 폭력)으로부터.
기도하라는 요청이다.
모든 사람은 기도하라.
힘써 기도하라.
그리고 돌이키라는 요청이다.
회개하라.
각각 그 악한 길로부터
그리고 그들의 손으로 행한 흉악으로부터
기도 / 회개
요나가 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9 누가 알겠느냐? 그가 슈브(돌이키다 / 미완)하실 지, 그리고 그가 니함(슬퍼하다, 후회하다, 위로하다 / 니팔)하실지, 하나님이, 그리고 그가 슈브(돌이키다)하셔서, 그의 코의 진노로부터. 우리가 아바드(망하다, 멸망하다, 죽게 되다 / 미완)되지 않으리라.
‘슈브’가 두 번 반복된다.
하나님이 돌이키실지
하나님이 돌이키셔서
그의 코의 진노로부터
우리가 멸망하지 않으리라.
‘회개’의 이미지가 반복된다.
회개하라.
회개하면, 하나님이 그 뜻을 바꾸시리라.
10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들이 그들의 악한 길로부터 슈브(돌이키다)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후회하시고(니함), 말씀하신 라아(악한, 재앙)를, 그들에게 행하리라고, 행하지 아니하셨다.
그들이 행한 것 = 그들이 악한 길로부터 회개한 것
그들에게 행하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행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니느웨의 ‘회개’에 즉각적으로 ‘회개’하셨다.
하나님도 회개하시는데,
우리의 회개에 즉각적으로 회개하신다.
하나님은 그들이 ‘라아’로부터 떠나자, 그들에게 ‘라아’를 행하지 않으셨다.
연구
구원과 회복 후에, 요나는 다시 니느웨로 가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이번에는 그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지 않습니다.
요나는 이제 ‘순종’하기 시작합니다.
3장 1절은, 1장 1절로 거의 유사합니다.
이스라엘과 니느웨 사이의 거리는 500마일이다. 804킬로미터이다.
사막 여행가는 보통 20-25마일을 이동했다. 25마일은 40킬로미터이다.
이토록 먼 거리를 이동해서 도착한 것에 비해서, 설교한 시간은 “하루”에 불과했다.
그러나 설교에 대한 니느웨 사람들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그들의 반응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기대하셨던 모습이다.
그러나 자기 백성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반응이다.
굵은 베 옷을 입는 것은 - 세상의 안락함과 쾌락을 거부하는 것을 상징하였다.
니느웨 왕이라는 칭호는 요나서에 특유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일부학자들은 이 책에 페르시대 시대(기원전 539-331년)에 저작된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 때 아시리아는 막연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일반적인 호칭은 '앗수르 왕'이다(참조, 왕하 19:36). 그러나 요나의 사명이 아시리아가 약하고 취약한 BC 8세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니느웨 왕'이라는 칭호가 전혀 부적절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서론, pp. 65-66 참조).
왕은 ‘다바르’를 들었다.
요나가 선포한 말씀을 들었을 수도 있고,
요나의 말씀에 반응하여 행동했던 백성들이 회개한 사건을 들었을 수도 있다.
먼지나 재 가운데 앉았다는 것은, 자신의 인간적 연약함과 무가치함을 인정하는 행위이다.
회개의 대상에 ‘동물’까지 포함한 것은, 왕과 귀족들이 감지한 위협의 심각성을 분명히 강조한다.
기원전 8세기는 아시리아 역사에서 가장 빈약하게 기록된 시기 중 하나이다.
그들은 힘차게 부르짖었다.
아주 강하게 ‘기도’하였다.
기도는 살기 위해 하는 것이다.
살기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이 살려주신다.
‘타암’, ‘라아’ 먹는 것과 관련된 동사이다.
맛보다 - 법령, 칙령
방목하다 - 악, 재앙
이방인 선장과 선원처럼, 니느웨 왕과 귀족들은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인정한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의 자비를 바라보고 있다.
‘슈브’와 ‘니함’의 반복
‘니함’은 다르게 행동하기로 결정한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첫번째 행동이 열등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수세기 동안 학자들은 ‘니느웨’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고, 이를 성경이 거짓이라는 증거로 활용했다.
그런데 1845년 우연히 영국 고고학자가 고대의 가장 위대한 도시 중 하나인 이 도시를 발견하게 되었다.
40일 후의 큰 심판에 대하여, 니느웨 사람 60만 명이 믿었다.
니느웨 성의 둘레가 55-65마일 정도였다.
이는 100km 의 둘레이다. 3일을 걸어야 할만큼 큰 도시이다.
니느웨는 큰 성읍으로 세 번 묘사된다(1:2, 3:2, 4:11).
도시는 내벽과 외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내벽의 높이는 100피트이다. 너비는 50피트이다.
요나는 무력한 피조물에게 자비를 베푸실 하나님의 권리를 거부하였다.
그러나 요나는 불순종하여 하나님의 자비를 경험하게 되었다.
요나 역시 ‘무력한 피조물’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요나에게 ‘자비’를 요청하고 있다.
그것은 ‘용서’라기보다는, ‘선언’이다.
하나님은 단지 ‘말씀을 전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요나는 이것도 완전히 순종하지 못한다.
하나님은 불순종한 요나에게 ‘다시 한번 말씀’하시는 분’이시다.
요나는 곤경에 처했을 때 솔로몬에게 하신 ‘성전에 관한 약속’을 회상하며(왕상 8:38-39) 성전을 바라보며 도움을 청했다.
1 Kings 8:38–39 NKRV
한 사람이나 혹 주의 온 백성 이스라엘이 다 각각 자기의 마음에 재앙을 깨닫고 이 성전을 향하여 손을 펴고 무슨 기도나 무슨 간구를 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사하시며 각 사람의 마음을 아시오니 그들의 모든 행위대로 행하사 갚으시옵소서 주만 홀로 사람의 마음을 다 아심이니이다
이 약속에는 “이방인”도 포함된다. 왕상 8:43
1 Kings 8:43 NKRV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이방인이 주께 부르짖는 대로 이루사 땅의 만민이 주의 이름을 알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처럼 경외하게 하시오며 또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을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줄을 알게 하옵소서
그러나 요나의 생각 속에는 ‘이방인’이 없다.
심판은 ‘하나님의 진정한 뜻’이 아니다.
하나님은 ‘살리고’ 싶어하신다.
그의 신성한 사명에 불만을 품은 이 괴로운 선지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쳐 큰 물고기 뱃속에서 놀라운 경험을 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길에서 벗어난 후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르기로 결심하고 마침내 니느웨로 갑니다. 그러나 아무런 노력 없이 자신이 전한 내용이 실제로 그 도시 사람들에게 들리는 것을 보고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원수들을 구해 주실 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께 화를 냅니다.
요나는 ‘몸’은 돌이켰으나, ‘마음’은 돌이키지 못했다.
하나님과 닮은 마음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이 백성을 벌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이 요나를 몹시 괴롭게 합니다. 요나는 이 백성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이야기는 우리 삶의 이야기를 반영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반응하는 방식, 하나님의 자비와 진노를 이해하는 방식, 우리 자신의 폭력적인 성향 등입니다.
니느웨 사람들도 ‘폭력적’이었으나, 그들의 ‘멸망’을 기대하는 요나 자신도 ‘폭력적’이기는 마찬가지다.
기도
기도는 우리를 아버지와 영원한 교제 가운데로 이끈다.
성경공부는 우리의 지성을 변화시킨다.
그러나 우리들로 하여금 인간 마음의 가장 깊고 가장 높은 행위 속에 들어가게 하는 것은 기도이다.
진정한 기도는 생활을 변화시킨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수록 우리의 부족함을 더 잘 보게 되고, 그리고 그리스도와 일치하기를 더욱더 원하게 된다.
“요한 웨슬리”
하나님은 오직 기도에 응답하여 일하신다.
믿음의 최전방에서 탐험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기도는, 그들의 삶의 변두리에 덧붙은 작은 습관이 아니라 그들의 “삶 자체”이며, 그들의 “가장 생산적인 시기의 가장 진지한 일”이었다.
“닫힌 세계’를 주장하는 것은 성경이 아니라 스토아 철학이다.
현상태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체념하도록 강조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께 가까운 사람들이 아니라 에픽테투스에 가까운 사람들이다.
모세는 그가 상황을 바꿀 수 있고, 심지어 하나님의 마음까지도 바꿀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렇게 담대하게 기도하였다.
사실상 성경은 우주가 열려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고, 하나님은 “자신의 변함없는 사랑”을 따라 마음을 늘 바꾸신다는 것을 말해준다.
용서
“아버지”라는 말이 좀처럼 사랑과 용납의 느낌을 주지 않고 오히려 공포, 불안, 상처 그리고 실망 등의 단어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 하늘 아버지의 사랑에는 한계가 없다.
예수님은 우리를 기다리시는 것에 시간의 제약을 두지 않으셨다.
Romans 8:32 NKRV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하나님은 억지로 용서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기꺼이 용서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초점은 ‘죄’에 있지 않고 ‘죄인’에게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죄’에 초점이 있다.
그러나 아버지의 초점은 ‘아들’에게 있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
이 사실을 알면, 우리의 형상은 회복된다.
니느웨
성벽, 조각품, 정원, 광장, 왕궁, 신전 같은 고고학적 유적은 니느웨가 영광의 절정(신 앗수르 시대)에 있었던 인상적인 도시였음을 보여 준다. 니느웨는 1842년에 보타(Botta)에 의해 처음 발굴되었고, 나중에 1847에 레이어드(Layard)에 의해 발굴되었다. 레이어드의 발굴은 그의 1851년 저서 Nineveh and Its Remains : A Narrative of an Expedition to Assyria("니느웨와 그 유적: 아시리아 탐험 이야기")으로 인해 가장 유명해졌다. 이 책에는 레이어드(Layard)가 발견한 부조, 건축물, 거대한 동상에 대한 몇 가지 개인적인 그림이 포함되어 있다. 그는 종종 이미지에 발굴자를 포함하여 발견물의 규모를 묘사했다. "거인의 머리"라는 제목의 이미지에는 동상의 머리가 자신들보다 더 크다는 사실에 놀란 두 발굴자가 나온다
니느웨는 당시에는 큰 도시였지만, 그 둘레가 12킬로미터로서 횡단하는 데 3일이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는 것은 또한 그들의 회개의 기적적인 본질을 강조한다.
본서에 나오는 앗수르 왕이 역사에서 아슈르단 3세(B.C. 771–754년)이며, 그가 요나의 메시지를 듣고 회개한 것은 세 차례에 걸친 국가의 큰 재앙(B.C. 765년의 돌림병, B.C. 763년의 일식, B.C. 763년의 돌림병) 직후였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열왕기하 14장 23~25절에 따르면, 그는 북쪽 왕국의 여로보암 2세(기원전 793~753년) 왕이 이스라엘의 북쪽 국경을 회복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요나가 전도한 니느웨는 아시리아 제국의 주요 도시였습니다. 그것은 티그리스 강 동쪽 기슭의 메소포타미아 북동부(현대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북쪽으로 약 220마일)에 위치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오랜 적인 아시리아인들은 전투에서 잔인했습니다. 사실 고대 앗시리아 예술품은 그들이 정복한 사람들을 끔찍하게 다루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으며, 이스라엘은 결국 기원전 722년에 앗시리아에 함락될 것입니다.
사실 요나서는 하나님께서 니느웨 사람들에게 회개할 수 있는 40일의 창을 주셨기 때문에 은혜의 메시지입니다. 인종, 사회, 계층, 문화를 초월하여 모든 사람들이 회개하고 구원받는 것을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묵상
회개를 기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죽이기보다 “살리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회개할 때, 하나님은 즉각적으로 재앙을 돌이키신다.
요나의 ‘심판에 대한 설교’가 실제적이고 힘이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요나 자신이 3일 동안 물고기 뱃속에서 ‘죽음’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요나의 불순종도 사용하신다.
그의 불순종도 선하게 사용하셔서, 구원을 위한 메시지가 되게 하신다.
적용 / 서론 / 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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