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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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적 순종
언약적 순종
에스라 느헤미야서는 바벨론의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는 내용이에요. 에스라 느헤미야서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집은 예루살렘 성전이나 교회 건물과 같은 물질적인 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참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교회와 그들의 삶 모두를 말하는 것이에요. 온 우주라도 하나님의 임재를 다 담기 부족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따라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찾아오시고 우리의 삶을 인도하여 주세요.
하나님의 집을 완성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언약갱신을 해요. 여기서 언약갱신이란 하나님과 다시 약속하는 것을 의미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다시 약속을 하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의 약속이 변했기 때문이 아니에요. 하나님께서는 한번 하신 약속을 절대로 바꾸지 않으세요. 하지만 그 약속을 의지하는 우리의 마음과 믿음은 자꾸 바뀌게 되지요. 그렇기 때문에 언약갱신은 변하기 쉬운 우리의 마음과 믿음을 하나님의 불변하시는 약속의 말씀 앞에서 새롭게 하는 것을 의미해요.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집을 재건하고 언약갱신을 한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여인과의 결혼을 끊고 안식일을 지키고, 첫 태생과 첫 소산을 하나님께 드리고, 성전을 위해 성전헌금을 드리기로 맹세해요. 하나님의 약속 앞에 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켜 행하기로 하는 것이죠. 이렇게 하나님의 집을 재건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섰을 때 그들은 삶은 당연히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갈 것이에요. 자신들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약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지요.
이들의 관심은 누가 더 율법을 잘 지키는가? 누가 더 하나님의 말씀을 더 잘 순종하고 있는가에 있지 않아요. 그들의 관심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잘 살고 있는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그들의 삶의 모습이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가에 있었어요.
그래서 이들은 율법에도 없는 것들을 행해요. 성전을 위해 바치기로 한 세겔의 1/3의 헌물은 율법에 없는 것이었어요. 이들이 스스로 규례를 만들어 이 헌물을 드리기로 한 것은 성전을 유지하기 위한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요. 십일조와 다른 헌물로는 성전을 유지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율법에 없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스스로 그렇게 헌물하기로 결정한거에요..
이들이 안식일을 지키는 규정을 봐도 그래요. 이들은 예수님 시대의 유대인들과 바리새인처럼 어떻게 하면 일이 아닌가 하는 고민하지 않았어요. 그들의 상황에서 안식일을 온전히 지키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렇게 하기로 맹세해요. 이방인들은 안식일이나 그렇지 않은 날이나 모두 물건을 팔지만 공동체는 안식일에는 사지 않기로 결단해요. 또 안식년 곧 7년째 파종하는 않는 율법과 모든 빚을 탕감하는 희년의 법을 지키기로 하는데 50년째가 아니라 스스로 7년마다 빚을 탕감해주기로 하지요. 그들은 율법을 문자 그대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율법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고민하고, 그들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기 위해 힘썼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행하기 시작한 이유는 언약갱신을 통해 자신들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의 약속이 변치 않으신다는 것을 온전히 믿었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자신의 삶 속에서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고 있는 거에요.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것이 무엇인지 율법을 통해 찾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려고 해요. 전적인 은혜로 포로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고, 하나님의 변치 않는 사랑 가운데 살것이라는 확실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위한 삶의 반응으로 연결되요.
우리도 그래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우리의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언제나 사랑하시고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어요. 하나님의 은혜를 알기에, 그 사랑을 알기에, 우리는 그 은혜와 사랑 속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가운데 거하려고 하는 것이지요.
우리의 삶을 돌아보시기 바래요. 우리의 삶의 중심은 어디에 있나요? 나를 위해 살며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시기를 바라고 있지 않나요? 하나님께 순종한다고 하며 예배하며 교회에 봉사하고 사회에서 구제도 하지만 그저 복을 받기 위해 조금 더 괜찮을 삶을 살아야하니깐 그렇게 살고 있지는 않나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그 사랑 속에 거하려고 살고 있나요?
이 둘의 차이는 많지 않아요. 이스라엘 백성들도 처음에는 은혜에 감사하며 그 은혜를 누리기 위해 순종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지만 점차 하나님을 향한 사랑 없이 그저 율법을 지키는 행위만 남게 되게 변질되요. 이 말씀을 돌아보며 우리의 신앙도 처음에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그 사랑을 누리며 살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이 아닌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조금 더 괜찮아 보이기 위해서 순종하고 헌신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면 좋겠어요. 하나님의 백성으로 우리의 삶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으로 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는 모두가 되기를 기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