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217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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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십자가만
오직 십자가만
여러분 다들 잘 지냈나요? 캠프를 마무리하고 이렇게 또 함께 모이게 되어 너무나도 반갑습니다.
이번에 하임 캠프를 위해서 수고해주신 분들이 정말 많으신데요, 다들 너무 고생 많으셨습니다. 여러분들의 헌신을 통해 하나님께서 많은 이들에게 은혜를 부어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이번 하임 캠프를 통해서 많은 것들을 느꼈는데요, 가장 컸던 것은 교회의 미래가 밝다는 것을 보았던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우리 교회의 미래가 정말 많이 걱정되는 사람 중에 한명이었거든요, 젊은 세대들이 신앙을 가지지 않는 비율이 높아지고, 심지어는 신앙을 배척하는 이들도 지속적으로 많아졌기 때문에 앞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더 나아가서 교회를 세우는 것이 정말 힘들어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캠프를 통해서 보니 아직도 주님을 갈망하는 젊은 세대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을 바라볼 수 있었고, 제 개인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그 마음으로 인해 많은 감동을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캠프를 통해서 각자가 다양한 은혜를 누릴 수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 은혜를 우리만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향해서도 널리 퍼뜨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폐회예배 시간에도 말씀을 전하기는 했지만, 하나님은 우리만 은혜를 누리기를 원하시지 않고, 더 많은 이들이 그 은혜를 함께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자들을 보내시고 우리를 보내신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들 어땠나요? 이번 한주간 그러한 삶을 살아가고 있나요?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우리의 삶은 참 힘들고,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것을 현실에 적용하기란 참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주님께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라고 묻게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한 우리에게 주님은 말씀을 통해 답을 주십니다.
바로 바울 사도가 전한 오늘의 말씀이죠. 바울 사도는 우리 기독교 역사에서 선교하면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죠.
초대 교회 시기 교회를 세우고 하면서 선교의 기틀을 닦은 인물이고, 실제로 많은 이들을 전도한 인물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그 바울이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전도를 했는지를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보면서 바울이 어떠한 마음으로 전도를 했는지,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전도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 1절을 보면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하지 아니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뭐라고 하죠? 2절에서 나오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의 못 박힌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예수님과 십자가만 알기로 했다라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복음을 선포함에 있어서 다른 어떤 것을 하나도 첨가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왜 그렇게 했을까요? 바울이 다른 것들을 첨가할 재주가 없어서 그랬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바울은 당대 모든 사람들을 살펴보아도 손꼽힐 정도로 학식이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여기서 나온 것처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교육을 받았다는 것은 유대인 중에서 엘리트 교육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거기다 바울은 로마 시민권까지 있는 사람이었어요. 유대식 교육 뿐만 아니라 헬라문화에도 익숙한 사람이었다는 것이죠. 성경의 지식에다 헬라 철학에도 능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그러한 모든 세상적인 지식을 사용하지 않겠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에는 조금 이해가 안가죠. 만약에 복음을 전할 때, 그런 세상의 지식들을 조금 첨가한다면 사람들이 복음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러면 복음전파가 더 쉬울 것 같은데, 바울은 그러한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더 놀라운 내용이 등장합니다. 3절을 보면 뭐라고 하죠?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다고 말합니다.
물론 바울 역시도 스스로가 말솜씨가 엄청 뛰어났다라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사도행전에서 유두고가 졸다가 떨어지는 사건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뭐 1타강사처럼 대단한 말솜씨를 가지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것보다는 서신서를 쓴 것처럼 기록쪽에 더 은사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울이 두려워했다라는 것은 상상하기가 힘듭니다. 아니 그렇게 학식이 있고, 실제로 전도의 능력을 행했던 사람인데, 두렵고 떨었다니 이 역시도 놀라운 부분입니다.
대체 바울은 왜 이러한 모습을 보이는 것일까요. 이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은 이어지는 4절과 5절에서 등장합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그렇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모든 복음선포가 자신의 능력을 통한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능력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렇죠. 당연히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서 이루어져야죠. 다만 우리에게 의문이 생기는 지점은 뭐에요, 왜 바울은 자신의 지혜를 전혀 드러내고자 하지 않았느냐는 것이죠.
하나님의 능력에 우리의 지혜까지 더해지면 더 힘있게 복음전파가 진행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우리 한번 생각해보자구요. 바울이 만약에 말씀에 나온 모습이 아닌, 세상의 모든 지혜를 가지고서 복음을 설명했다면, 또한 그렇기에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물론 그 복음선포를 통해 믿는 이들이 많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전파되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요? 그저 지식적으로 이해되는, 하나의 새로운 학문정도에 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담긴 처절한 낮아지심의 사랑보다 또다른 철학으로서 사람들에게 다가가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전하는 바울이 예수님보다 더 드러나게 되었을 것입니다. 결국 어떻게 되는 거에요? 우리가 그리스 철학을 배우듯이 바울 학파로서 사람들에게 존재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전파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려는 것인데, 하나님이 아닌 바울 자신만을 알게 되고, 결국에는 바울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할 수 있음에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로지 그리스도와 십자가 사랑만을 전하며 나아갔던 것입니다.
이로 인해 바울의 모든 전도를 통해 바울 자신이 아닌 그리스도가 전파되었고, 그 십자가 사랑은 수많은 성도들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의 입을 통해 우리에게 전도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오늘 우리에게 전달해주시고 계십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전도는 절대 우리의 어떤 능력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서만 역사하십니다.
심하게 말하면 신학 교수님이 전도한다고 해서 전도가 더 잘되는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예수 믿으세요만 한다고 해서 전도가 안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결국 전도가 능력을 일으키는 것은 우리의 소관이 아닌 하나님의 소관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면 아무리 대충 전도를 하여도 그 능력이 일어납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구약에 등장합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요나서가 그렇죠.
요나는 자신의 나라를 무너뜨린 니느웨 도시로 나아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그들을 회개하게 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우리로 치면 일제시대에 도쿄에 가서 일본사람들을 회개시켜라 하는 것과 같은 거에요. 요나 입장에서는 어떻겠어요. 정말 하기 싫었을 거에요.
그래서 우리가 잘 알듯이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과는 반대로 행하게 됩니다. 시작부터 니느웨 반대 방향으로 향하고, 물고기에 먹혀 니느웨로 다시 돌아오자 어쩔수 없이 전도를 하면서도 삼일길을 걸어야 하는 니느웨를 단 하루만 걸으면서 대충 말씀을 선포합니다.
아마 요나는 그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고 멸망하기를 바랬기 때문에 그렇게 했을 거에요.
그런데 어떻게 되었을까요? 니느웨 백성들이 그 대충 선포하는 말씀을 듣고서 모두 회개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결국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인간의 말솜씨나 지혜나 어떤 세상적인 것들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앞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말씀대로의 삶, 우리가 다짐하는 삶들을 완벽하게 살아가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그 부족한 모습들을 통해서도 그의 일을 행하십니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그 조차도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의 마음 가운데 내가 아무것도 못 이루기 때문에 나는 구제불능이야 라는 생각이 있었다면, 혹은 반대로 내가 잘해야만 모든 것이 이루어질 수 있어! 라고 생각했다면 다 내려놓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습이 부족하면 부족한 만큼 사용하시고 잘 준비되었다면 그만큼 또 사용하십니다. 부족한 것은 주님께서 은혜로 그만큼 채워주실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겠지만, 이제 곧 또 국내선교라는 사역이 있습니다. 캠프가 끝나고 바로 이어지는 사역이라 육체적으로 지칠 수도 있고, 시간도 촉박하기 때문에 캠프를 준비했던 것 만큼의 완성도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이 사역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나아갈 그 교회 가운데 분명히 은혜를 약속하실 것이고, 그 은혜를 우리를 통해 부으실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준비가 부족해서 실수하고 엉망진창인 것보다 잘 준비해가면 더 좋겠죠. 하지만 그 좋음은 그저 우리의 기분이 좋다는 것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분이 좋다고 해서 은혜를 더 부어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의 모습이 어떠하든, 주님은 분명 약속한 은혜를 우리를 통해 부어주실 것이고, 그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는 그 은혜를 누릴 것입니다.
그러니 여기 있는 우리 준비팀 분들은 그저 주님이 주실 은혜를 기대하며 누릴 준비를 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준비팀이 아니신 분들은 준비팀을 위해 기도할 때, 완벽한 준비를 위해 기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약속된 은혜를 모두가 누릴 수 있도록 기도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이번의 이 선교가 완벽한 선교가 아니라 은혜로운 선교가 될 수 있도록 한 마음이 되어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말씀을 정리할게요. 오늘 바울 사도가 전도했던 모습을 통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삶에서 무언가를 자꾸 행하고 이루려는 모습이 아니라 우리를 통해 일하실 주님을 기대하고 의지해야 한다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번 캠프, 그리고 선교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삶에서 나의 능력을 드러내기보다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을 드러낼 수 있는 우리 모든 지체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함께 찬양할까요? 함께할 찬양은 주가 일하시네 입니다. 우리 가운데 일하실 주님을 기대하고 의지하는 마음으로 함께 찬양하도록 하겠습니다.
말씀을 놓고
우리의 삶을 놓고
국내선교를 놓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