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 후에 바사 왕 아닥사스다가 왕위에 있을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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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만에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찬송가 459장 (통일 514장) 누가 주를 따라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에스라 7장 1~10절까지 말씀입니다.
11절 한절만 함께 읽고, 한 절씩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이 일 후에 바사 왕 아닥사스다가 왕위에 있을 때에 에스라라 하는 자가 있으니라 그는 스라야의 아들이요 아사랴의 손자요 힐기야의 증손이요
오늘도 말씀을 사모하여 새벽에 성전에 나아온 성도님들의 삶과 가정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함께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의 1절에서 ‘이 일 후’라는 것은
다리오왕 제6년에 성전 봉헌식을 올린 때, 에스라 6장의 사건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누는 에스라 7장 말씀은 6장과 상당한 간격을 두고 기록된 말씀입니다.
에스라 1장에서 6장까지의 내용은 유다 백성들의 제 1차 포로 귀환과
성전 재건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나누는 7장은 제 2차 포로귀환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제1차 포로귀환은 B.C 516년, 제2차 포로귀환은 B.C 458년에 이루어진 사건으로
에스라 6장과 7장 사이에는 58년이라는 시간적 공백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에스더 사건이 발생했고,
바사, 즉 페르시아 제국의 통치자 역시 4대왕 다리오에서
5대왕 아하수에로를 거쳐, 6대왕 아닥사스다로 바뀌어진 뒤의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에스라서가 처음에는 6장까지만 기록이 되었다가,
제2차 포로귀환을 계기로 다시 7장이 쓰여졌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1 이 일 후에 바사 왕 아닥사스다가 왕위에 있을 때에 에스라라 하는 자가 있으니라 그는 스라야의 아들이요 아사랴의 손자요 힐기야의 증손이요
2절에서 등장하는 ‘사독’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대제사장이었던 사독을 말합니다.
그 뒤로 이어서 대제사장 가문의 족보로부터 에스라가 왔음을 밝힙니다.
2 살룸의 현손이요 사독의 오대 손이요 아히둡의 육대 손이요
3 아마랴의 칠대 손이요 아사랴의 팔대 손이요 므라욧의 구대 손이요
4 스라히야의 십대 손이요 웃시엘의 십일대 손이요 북기의 십이대 손이요
5 아비수아의 십삼대 손이요 비느하스의 십사대 손이요 엘르아살의 십오대 손이요 대제사장 아론의 십육대 손이라
제2차 포로귀환의 주역인 에스라는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 유다 백성들을 이끌고 나옵니다.
여기서 말하는 바벨론은 나라 이름이 아니라, 한 도시의 이름을 말합니다.
페르시아 국가의 바벨론이라는 도시에서 에스라가 유다 백성들을 이끌고
제2차 포로귀환의 여정을 시작하게 됩니다.
제3차 포로귀환은 느헤미야 주도로 수산에서부터 예루살렘으로 이동하는 여정입니다.
제2차 포로귀환을 바벨론에서부터 시작했던 것
에스라가 제2차 포로귀환 때에 귀환하지 않았던 사람들과 함께
바벨론 지역에 대부분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예배 처소이며, 율법 교육의 장소였던 회당이 바벨론 지역에 많이 있었고,
에스라는 그곳에서도 유대인들의 신앙 성숙을 도모하여
율법을 교육하는 중요한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6절을 살펴보면, ‘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 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올라왔다는 표현은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높여서 표현한 말입니다.
실제로 예루살렘은 해발600~800m로 높은 산악지대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항상 오르막길이기 때문에
올라간다는 표현을 많이 사용합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생각할 때에도, 예루살렘은 시온성, 하나님의 성이라는 의미가 있어서
하나님께로 나아간다는 의미로, 예루살렘에 올라간다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에스라가 페르시아의 바벨론이라는 지역이 그당시 문명의 중심이고,
더욱 강한 나라의 포로국가로서 귀환하는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하나님께 나아감으로 영적인 성장을 통한 회복을 염두해 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6절에서는 제2차 포로귀환을 주도했던 에스라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대제사장 아론의 후손으로서 율법에 정통한 학자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에스라는 아닥사스다 왕의 신임을 받는 관직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유다 백성들을 지도하기에 충분한 신분과 자격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6 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음으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이더니
6절까지 에스라가 제2차 포로귀환을 이끌고 나오기에
충분한 자격과 요건을 갖추었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유다 백성의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 4개월의 이동과정
7절에서 10절까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편, 7절에서 ‘몇 사람이 예루살렘에 올라올 때에’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제2차 포로귀환 때 장정만 1,773명을 포함하여 약 9천명의 사람들이 귀환했습니다.
적은 수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바벨론 지역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단순히 ‘몇 사람’만 올라왔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이런 구성으로 기록된 본문은 하나님께서 아무나 자신의 일꾼으로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분히 준비된 사람을 불러서 사용하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에스라가 유다 백성의 제2차 포로귀환을 주도하고
또한 예루살렘에서 신앙 부흥 운동을 일으킬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것은
단지 그가 대제사장 아론의 후손이라는 신분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율법에 익숙한 학자로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을 만한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비록 세상 지위가 보잘것 없고,
학문적 지식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되고, 경건한 신앙을 가진 자를 택하여
하나님의 일꾼으로 사용하십니다.
7 아닥사스다 왕 제칠년에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과 느디님 사람들 중에 몇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올 때에
8 이 에스라가 올라왔으니 왕의 제칠년 다섯째 달이라
또한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 이동하는 여정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직선거리로는 약 900km지만, 실제로 구불구불한 도보길을 계산해보면
약 1,500km에 가까운 귀환길을 그 많은 백성을 이끌고 가야 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하나님께서 도와주셨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9절에서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었기 때문에 갈 수 있었습니다.
9 첫째 달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다섯째 달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
하나님께서는 애굽을 떠나서 가나안 땅을 향해 가던 이스라엘 백성을
험난한 광야에서 40년 동안 아무 부족함 없이 돌보셨습니다.
이제 그 하나님께서 에스라가 이끄는 험난한 여정 또한 지켜주십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천성을 향해 믿음으로 나아가는
우리 성도들의 인생 여정 역시 언제나 도와주시며 보호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동행해 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누리며,
날마다 하나님을 향해 더 가까이 나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것은 바벨론에서보다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하거나
안락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고 준행하며,
율례와 법규를 유다 백성들에게 가르치기 위해서였습니다.
10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성경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히브리어 성경에는
10절 맨 앞에 “왜냐하면”으로 번역되는 히브리어 “키”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을 추가해서 10절을 읽어보면
‘왜냐하면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겸심하였더라“
그러니깐, 9절에서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은 까닭이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라고
10절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10절에서 “결심하였더라”의 원어를 그대로 직역하면,
“마음에 두었다”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즉 이것은 에스라가 유다 백성들을 마음으로 사랑해서
가르치기로 결심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단지 모세의 율법에 지식으로만 정통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잘하는 것이 가르치는 일이고, 그것이 자신의 본분이어서
한마디로 직업이 학자여서, 직업이 이스라엘 포로귀환 총 책임자여서
그들을 계몽시켜 잘 살도록 해야 자신이 페르시아에서 인정받을 수 있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유다 백성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가르치기로 결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에스라의 마음을 기쁘게 받으시고,
에스라가 하는 모든 일들에 선한 손의 도우심으로 함께 하셨습니다.
바로 이런 에스라의 태도는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교회에 덕을 세우며, 다른 성도들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우리들의 사명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에스라처럼 우리 자신이 무엇을 위해 일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성찰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는 삶의 궤도로부터 이탈하지 않고,
말씀으로 무장하고 삶으로 준비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거룩한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에스라처럼 말씀으로 무장되어 하나님이 쓰시기에 준비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함께 하셔서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이루시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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