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에 주께서 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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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만에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찬송가 495장 (통일찬송가 271장)
익은 곡식 거둘자가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누가복음 10장 1~16절까지 말씀입니다.
1절 한절만 함께 읽고, 한절씩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그 후에 주께서 따로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오늘도 말씀을 사모함으로 성전에 나아오신 성도님들의 삶과 가정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함께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새벽마다 함께 읽고있는 누가복음은
9장까지 예수님의 1차, 2차, 3차 갈릴리 사역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10장부터 19장까지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전까지의
예수님의 행적을 살피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9장에서 예수님께서 12사도를 파송하신 이후에
이어서 70명의 제자를 다시 파송하는 장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70명의 제자를 세우시고 파송하시면서 하신 말씀을
두 단락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1~9절까지는 권면의 말씀,
10~16절까지는 복음을 거절하는 사람에 대한 심판의 경고를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한 ‘70명 제자파송’에 관한 내용은 누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내용이 마태복음 10장에서
예수님께서 12사도를 보낼 때 주셨던 말씀과 매우 비슷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습니다.
4절‘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라’는 내용이 추가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그만큼 복음 전파의 임무가 시급하기 때문에
길에서 문안하느라 시간을 소비할 여유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공생애의 마지막 시간이 다가오면서,
복음 전파의 시급성을 강조하셨습니다.
한편 여기서 70 이라는 숫자는,
창세기 10장에서 언급된 70개의 모든 민족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70명의 제자를 파송했다는 것은
70개 나라의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특별히 선택한 사람을 뜻하는 것입니다.
또한 70 민수기 11장에서 모세가 임명한 장로들의 숫자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모세의 율법을 완성한 사람으로서
모세가 70명의 장로를 세워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공동체를 지도했던 것처럼
예수님께서 70명의 제자를 파송해서 완성한 율법인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하는 사명을 감당하겠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복음을 전할 때에,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님께 권위를 부여받은
70명의 제자 중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또한 70개 나라에 70명의 제자를 파송했다는 것은,
복음 전파의 사명을 받은 한 사람에게 한 나라의 구원이 달려있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서 복음 전하는 일에 전심전력해야 합니다.
2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3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추수할 일꾼이 적다는 것은, 이전에 12사도를 보낸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지금 70명의 제자를 추가로 보낸 것입니다.
그러나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낸 것과 같이 세상은 녹록치 않고,
우리들은 그 세상을 이길만한 힘이 없는 연약한 어린 양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리로부터 지켜줄 목자가 필요하고,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실 주님을 의지하면 맡겨진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4 전대나 배낭이나 신발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
고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오랜 시간동안 서로의 안부를 나누고
입맞추는 것이 우애있는 인사법이었습니다.
만약 시간이 급하다고 허둥지둥 달려가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로만 인사를 한다면
그것은 대단한 무례가 되었습니다.
또한 오랜만에 만난 사람이 아니라, 평소에 자주 만나는 사람일지라도
마을이나 동네 어귀에서 만나게 되면, 그때마다 목을 안고 입을 맞추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리고 손을 잡고 인사를 나누면서 여러 가지 제스처로 친근감을 표현합니다.
이렇게 인사를 나눈 후에도 서로의 안부를 묻고, 30분 정도 서로를 칭찬하기도 하며,
이런 저런 말들로 같은 말을 되풀이 하면서 많은 시간을 서서 보내는 것이 일상입니다.
그런 다음 다시 양팔로 서로를 껴안고 이별을 고한 후, 자기 볼 일을 보러 떠납니다.
이런 인사법과 예절 때문에 팔레스타인에서는 문안하는데 여러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여행 도중에 만난 여행자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서로 환영을 뜻하는 표현을 되풀이하고, 여러 가지 질문과 인사를 나누는데 시간을 빼앗겨서
여행 여정을 많이 지연시키기도 합니다.
결국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에서 계속해서 인사를 나누게 되면,
여행에 큰 방해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70명의 제자들을 파송하면서
길에서 많은 시간을 빼앗기지 말고, 신속하게 맡은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5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6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의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7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
8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놓는 것을 먹고
9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성경시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나그네나 손님을 접대할 때 굉장히 후대했습니다.
그래서 못보던 사람이 마을에 나타나면,
마을 사람들은 그 사람을 서로 초대하여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위선에 가까울 정도로 후대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어떤 사람이 나그네를 정성껏 대접하지 않았다면,
마을 사람들은 이것에 대해 분노할 뿐 아니라 심할 경우 서로 다투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이렇게 극진한 환대를 받게 되면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됩니다.
식사를 마친 후에도 잡담과 여러 형식적인 행위로 인해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집, 저 집 다닐 경우에 대접받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70명의 제자를 파송하시면서,
먼저 기거하기에 적합한 집을 찾아 그 마을에서의 임무가 다 끝날 때까지는
그 집에만 머물러 있고, 다른 집으로 대접받고, 초대받는 것을 금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10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거리로 나와서 말하되
10절부터 16절까지복음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제자들이 취해야 할 행동에 대해서 가르쳐 주십니다.
‘거리로 나와서 말하라’는 것은 복음을 거부한 자들에게는
공개적으로 행동을 보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11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하라
12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 날에 소돔이 그 동네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발에 묻은 먼지를 털어버리는 행위는,
경건한 유대인들이 부득이하게 이방인의 마을이나 가정과 접촉했을 때,
자신의 종교적, 도덕적 정결을 지키기 위해 하는 행위입니다.
그 의미는 먼지를 털어버림으로 더러운 것으로부터 자신을 깨끗하게 한다는 의미가 있고,
부정한 것들을 내가 책임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본인의 죄에 대한 심판의 책임은 스스로가 전적으로 져야 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결국, 복음을 거부하는 자에게는 복음을 전하는 자가 굳이 상관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더 이상 당신의 영혼에 대해서 관연하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13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14 심판 때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고라신과 뱃새다 지역은 예수님께서 많은 기적을 행하셨지만
복음을 등한시하고 배척했던 지역입니다.
두로와 시돈부패의 온상으로 늘 책망의 대상이 되었던 도시입니다.
그러나 기적을 경험하고도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도시가
부패하고 타락한 도시보다 더 못하다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15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16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
가버나움은 갈릴리 주변 지역으로 예수님께서 갈릴리 사역을 하셨을 때
가장 많이 머물렀던 곳입니다.
가버나움에서 수많은 기적과 병고침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곳 사람들은 복음을 거부하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버나움복음을 거부한 전형적인 경우로 지목받았고,
그 형벌이 아주 심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높아지겠느냐, 음부에서 낮아지겠느냐’ 이 말은
가버나움이 많은 기적을 보았음에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교만함에 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만큼 교만한 도시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더 가혹한 심판을 내리실 것입니다.
복음은 구원의 메시지와 함께 심판의 메시지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거부하는 자들에게 심판을 선언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전할 때 구걸하듯이 전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감 없이 담대히 선포함으로 하나님의 귀한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우리에게 맡겨주신 영혼들과 사명을 돌아보며, 영적 추수의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2. 구원과 심판의 메시지를 기억하며, 복음을 거부하는 자들에게 담대하게 전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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