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향해 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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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 말씀은 누가복음 12장 16~21절 말씀입니다.
제가 가진 성경으로는 신약성경 115페이지에 있습니다.
16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함으로 주일 오후예배에 오신 성도님들의 삶과 가정에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이 함께하시길 간절히 기도하고 축원합니다.
우리는 2011년, 56세라는 젊은 나이에 췌장암으로 사망했던
스티브 잡스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아이폰, 아이패드 등 여러 혁신적인 발명품들로 ‘IT업계의 신화’, ‘세상을 바꾼 남자’ 등의
대단한 평가를 들은 그였지만,
인간의 한계와 유한성을 극복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처럼 인생은 유한하고, 허무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보유한 스티브 잡스도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습니다.
불로초를 구하려 다녔다는 진시황도,
신적 존재로 추앙을 받았던 로마 황제도,
모두 하늘이 내건 시간의 장애물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모세는 시편 90편에서 인생을 아침에 돋는 풀에 비유하면서,
10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요즘은 인간의 평균 수명이 100세까지 늘었고,
지금 살고 있는 우리들은 120세까지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유한하다는 사실에서는, 모세의 주장이 여전히 유효합니다.
우리는 유한하기 때문에, 그 시간을 스스로 잡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시간은 마치 화살처럼 빠르게 우리에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영원한 삶, 죽음 이후에 유한을 넘어선 무한의 삶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땅에 살면서 여전히 유한성 속에서 헤메는 우리가
어떻게 영원을 지향하며 살 수 있을까요?
시계의 째깍대는 소리에서부터 도망가면 영원에 이를 수 있을까요?
단순히 시간의 개념을 잊고 살면, 우리의 삶이 영원한 삶과 좀더 가까워지는 것일까요?
어떤 소설에서 한 도인이 산에서 수행하던 중
몇 가지 곡식 종자를 가지고 인적이 없는 깊은 산중에 들어가
거기서 집을 짓고 살면서 세상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을 초월하고, 인간의 역사를 넘어 존재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산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어떤 나그네가
우연히 그 도인이 살던 집에 이르렀습니다.
딱 보니 이 세상 사람 같지 않아보여서, 그 도인에게 물었습니다.
“이 산 중에 들어와 사신 지 얼마나 되십니까?”
그런데 이 도인이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지금 이 도인은 세상을 초월하고, 역사를 초월하여
인간의 유한성을 뛰어넘고자 이 산에 왔습니다.
그런데 그 도인이 대답하길
“몇 해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둘레의 산이 푸르렀다가 누레지고
다시 푸르렀다가 누레지는 것을 보았을 뿐이요.
그렇게 거듭하기를 한 30여 차례나 되는지 모르겠소.”
분명 시계도 없고, 달력도 없고, 시간을 초원해보고자 산 속에 깊이 숨어 살았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산이 푸르렀다가 누레지는 것을 30여 차례나 보았습니다.
30년의 세월이 흘렀다는 것을 모르고 싶었지만, 모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도인이 산의 변화를 보지 않기 위해 눈만 감으면 되는 것일까요?
그러면 아마도, 몸이 춥고 더워지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란 이처럼 이 땅에 살면서 시간을 절대적으로 거스를 수 없는
유한하고 제한적인 존재입니다.
우리는 시간으로부터 도망갈 수도 없고, 우리의 힘으로 영원에 이를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시간에 매여살고, 이 땅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이 시간의 지배하에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유한한 한계 안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우리는 유한성을 현실이 아닌 양 애써 부정하고,
오히려 영원을 말하며, 영원을 꿈꾸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을 말하고, 노래할 때, 사랑을 어떻게 이야기하나요?
유한한 사랑을 말하나요? 우리는 언제나 영원한 사랑을 이야기하고 기대합니다.
그런데 사실, 여기계신 대부분의 성도님들이 결혼을 해보셔서 알겠지만,
사랑처럼 유한한 것이 없습니다.
얼굴은 3년, 성격은 10년, 평생을 의리로 산다고 하지 말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돈을 벌고, 성공해도 마치 그것이 영원한 것이라 착각합니다.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입니다.
돈도, 권력도, 명예도 가지면 가질수록 사람의 욕심은 채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모든 것이 영원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항상 영원한 삶, 영원한 세상을 꿈꿉니다.
과거에 많은 왕들이 늙지 않고, 아프지 않고, 영원히 살기 위해서
수많은 방법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영원히 산다는 생각은 인간 역사의 모든 문명을 형성할 정도였다’고 말할 정도로
영원의 개념은 우리 인간에게 깊이 박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를 성경에서 설명해줍니다.
전도서 3장 11절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실 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도 모르게 영원을 향해 우리의 팔을 뻗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영원을 지향하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기 때문에
그냥 마음속으로 동경하면 되는 것일까요?
아니면 소설 속 도인처럼 세상을 등지고 시간을 잊고 살면 되는 것일까요?
아니면 진시황처럼 적극적으로 불멸과 영생을 찾아나서면 되는 것일까요?
첫째, 영원을 지향하는 삶이만, 현실을 피하지 않는 것입니다.
과거에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흰옷을 입고 산에 올라가
하늘만 쳐다보며 곧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이라며 승천하길 기다렸습니다.
학교도 관두고, 가정도 팽개치고, 회사도 떠나는 등
현실의 모든 의무를 내버리고 오직 세상의 종말이 빨리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영원을 지향한다는 것은 현실을 모두 버리고, 회피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기독교는 그동안 현세를 무시하고, 내세만 중시하던
지나친 내세주의로 인해 현실의 책임을 게을리 한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소위 광신도라 하여 주변의 이웃들과의 관계는 무시한 채
무조건 자신의 신앙 관점만을 옳다고 주장하며 주입하려는
신앙 이기주의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소위 ‘하늘의 떡’을 말하면서, 이 땅에 있는 배고픔의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2011년도에 랍 벨이라는 미국 목사님이 쓴 ‘사랑이 이긴다’라는 책에서
균형을 잃은 기독교 내세주의를 이렇게 비판했습니다.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에 대해 가장 말하는 사람이
이 땅에 임하는 천국에 대해서는 가장 적게 말하는 것을 자주 본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주기도문에서 우리에게 늘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뜻을 하늘에서 이루심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 주시옵소서.
하늘의 천국, 우리가 소망하는 영원한 삶이
지금 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인즉, 우리가 천국을 바르게 이해하고 실천한다면
지금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세만을 중요시하여 하늘의 천국만을 소망하는 사람들은
내세주의에 빠져, 이 땅에서의 천국에는 전혀 관심없이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영원을 지향하며 사는 삶, 이 땅에서 천국을 경험하는 삶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둘째, 영원의 관점에서 우리의 인생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영원의 기준으로 평가해보는 것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우리의 삶은 영원에 이어져 있습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 다가 아닙니다.
하나의 기다란 실이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 실은 우리의 인생, 우리의 삶입니다.
우리는 그 실 위를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뒤로는 갈 수 없고, 앞으로만 갈 수 있습니다.
그 실은 끝이 없는 아주 기다란 실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그와 같이 끝없는 영원한 삶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끝이 없는 기다란 실 가운데, 아주 작은 한 지점
그 지점에서 머물러 우리는 짧게는 50년 길게는 100년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원을 지향하는 사람은 인생에 대해서
더 확장된 관점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삶이 다가 아니라,
우리는 그저 영원한 시간, 영원한 인생 가운데
아주 짧은 지점을 머물러서 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이 땅이 전부인 마냥 인간의 유한성에 갇혀 사는 사람과는 다른 인생을 살게 됩니다.
오늘 본문 누가복음 12장 16~21절에는 한 부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자기 형과의 유산 문제에 정신이 팔려있는 한 청년에게
인생에 대한 관점을 바꿔주기 위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 이야기 속의 부자는 사업에 크게 성공했습니다.
그래서 평생 먹고 놀아도 될 만큼의 큰 재산을 모았습니다.
그는 자기만을 위해 축적된 그 재산으로 인해 삶이 안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심지어는 자신의 영혼까지 안전할 것이라고 착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의 기준에서 그 사람을 평가할 때
‘어리석은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이 땅에서 크게 성공한 것으로 보였지만, 사실을 실패자였습니다.
그는 유한한 이 땅의 관점에서만 인생을 보고 평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원을 지향하는 사람은 그런 실수를 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 이야기의 부자처럼 한시적이고 현세적인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영원한 삶을 위해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쌓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꿈과 계획, 성공과 관계 모든 것을 영원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평가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골로새서 3장 1~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셋째, 영원을 지향하는 삶이란, 영원을 미리 준비하는 삶을 말합니다.
성경은 이 땅에서의 삶이 영원한 세계의 준비 과정임을 분명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한 모든 일은 언젠가 하나님 앞에서 평가를 받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원한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특별히 예수님은 이 세상의 종말이 오면,
하나님의 나라도 오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말이 오기 전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 전에
항상 깨어서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된다고 권면하셨습니다.
열 처녀 비유로 잘 알려진 마태복음 25장의 말씀이 그 내용입니다.
10명의 처녀들 가운데 5명은 등과 함께 여분의 기름을 준비했지만,
나머지 5명은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둘 다 신랑이 예상보다 늦게 와서 졸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에 대해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자정이 되어서 신랑의 도래를 알리는 외침이 들렸고,
처녀들은 일어나서 등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분의 기름을 준비했던 자들은 문제가 없었지만,
그렇지 못했던 5명의 처녀는 꺼져가는 등을 위해 그제서야 기름을 준비하느라
부산을 떨다가 신랑을 놓치게 되어 혼인잔치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기름이 무엇일까요?
대부분 우리는 여기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기름은 성령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충만을 준비해야된다.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재림하셨을 때 성령의 기름 기도불이 꺼지지 않도록
계속 기도해서 항상 뜨겁게 준비되어 있어야된다.
이렇게 본문을 오해해서 해석합니다.
기름의 감춰진 의미를 찾으려고 애쓰는 것은 무의미한 일입니다.
이 비유의 중요한 포인트는 준비되었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처녀들은 신랑이 늦어질 것에 대해 미리 준비했지만,
어리석은 처녀들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얼핏 보면, 기름을 준비하지 않는 처녀들도
너무나 들어가고 싶은 혼인잔치에 거절당한 것처럼 느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거절한 쪽은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미리 준비하지 않았던 다섯 처녀였습니다.
신랑이 조금 늦어지자, 혹시나 시간이 오래 걸릴까 조마조마하며
미리부터 기름을 준비했던 자들은, 그만큼 혼인잔치에 대한 사모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충분하였음에도 준비하지 않은 처녀들은
미리 준비한 처녀들보다 기대함이 적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이야기를 하신 후 “깨어 있으라” 라고 말씀하시면서
재림의 때가 언제일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준비하고 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섯 처녀가 준비했던 기름이 성령일 수 있고, 기도일 수도 있고,
봉사일 수도 있고, 전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열 처녀 비유를 하시고, 같은 목적으로
천국을 설명하시면서 했던 비유가 바로 마태복음 25장 14~30절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입니다.
달란트 비유는 주인이 타국에 멀리 가면서 3명의 종에게
각각 1달란트, 2달란트, 5달란트를 맡겼습니다.
2달란트와 5달란트를 받았던 종은 열심히 일을 해서
각각 2달란트와 5달란트를 남겼습니다.
그러나 1달란트를 받은 종은 어떻게 했습니까?
땅에 묻었습니다.
주인이 돌아왔을 때, 3명의 종을 각각 어떻게 평가했습니까?
받은 만큼 열심히 일을 해서 이윤을 남겼던 두 종은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하였습니다.
그러나 땅에 그대로 묻어두었던 종에게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하였습니다.
여러분, 달란트가 무엇입니까?
달란트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재능일수도 있고, 물질일수도 있고,
교회에 덕을 세우기 위해 주신 은사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달란트가 무엇이냐’ 가 아닙니다.
2명의 종은 받은 달란트로 주인을 위해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책망받았던 종은 주인이 준 달란트를 그냥 땅에 묻어 두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가지고 우리는 얼마나 성실하게 살고 있는가.
내가 받은 재능과 은사, 물질을 가지고 누구를 섬기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 사용하였는가.
하나님은 ‘우리가 천국을 위해 얼마나 준비하고 있는가’를 바라보십니다.
우리는 지금 영원이라는 인생의 실 위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뒤로 갈수도 없고, 앞으로만 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 중 작은 점과 같은 이 땅에서의 순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유한한 인생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80년, 100년 인생 중에서 절반, 어떤 분은 2/3지점을 가고 있다고 생각되지만,
영원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우리는 그저 작은 점에 서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남은 인생 10년, 20년, 길게는 50년을 다 살아간 후에는
끝없는 영원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 영원을 준비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될까요?
우리는 끝이 없는 기다란 인생의 실 위에서
시간을 따라 앞으로밖에 나아갈 줄 모르지만,
하나님은 앞으로 뒤로, 그리고 우리의 차원을 넘어서서 좌우로 움직이시며
우리의 인생을 다각면으로 살피십니다.
심지어 하나님은 우리가 걷고 있는 실 위로도, 아래로도 움직이며
우리의 시간, 공간, 차원을 초월하여 우리의 인생을 인도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진정한 영원을 소유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그 영원 위에 온전히, 충만하게 거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과 함께 손을 잡고 걸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창조하실 때부터 우리에게 손을 내밀고 주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여 낙원에서 쫓겨날 때에도
가죽옷을 입혀 그들의 죄를 덮으시고 용서하셨습니다.
이미 우리를 창조하셨을 때부터, 우리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을 때부터
우리가 죄 지을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이미 시공간을 초월하여 예수님과 성령님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우리를 건져내실 구원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창세기의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을 계획하셨듯이
요한계시록의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을 완성하셨습니다.
우리가 영원한 삶을 지향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영원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분과의 사귐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영원한 삶, 천국을 누리는 삶으로 더 깊이 나아가게 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영원을 찾지 않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며, 유한한 모든 것을 초월하여 영원한 세계에서 우리를 초대하는
하나님께 우리의 인생을 맡기고 나아갈 수 있는
믿음의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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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단기도
1. 현실을 피하지말고, 맡겨진 영혼과 사명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2. 이 땅의 기준이 아닌 영원의 관점에서 나의 삶을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을 주시도록
3. 우리에게 맡겨진 재능과 은사, 물질과 시간을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사용하여 영원의 삶을 준비할 수 있도록
3가지 기도제목으로 기도하시고, 제가 축도로 예배 마치겠습니다.
사랑하는 주님의 이름 한번 부르고, 다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가 영원의 삶을 지향하는 삶에 대해서 함께 나누었습니다.
현실을 피하지 말고, 맡겨진 영혼과 사명에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유한한 가치와 기준에 메이지 않고,
영원한 가치와 기준으로 우리의 삶을 바라보고 평가할 수 있는 믿음의 눈을 열어주시고,
그렇게 주신 믿음대로 살고, 전하며, 가르칠 수 있도록 지혜의 영을 부어주시옵소서.
우리에게 주신 재능과 은사, 물질과 시간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시고,
가난하고 연약한 자들, 하나님의 복음이 필요한 자들, 우리에게 붙여주신 많은 이웃들을
섬기고 봉사하는데 귀하게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우리가 이 땅에서 부한 것이 아니라, 천국에서 부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축도
이제는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끝까지 참고 기다리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과
우리 안에 지금도 함께 계시는 성령 하나님의 내주하심이
우리에게 주신 재능과 은사, 물질과 시간을 통해
맡겨주신 영혼과 사명에 최선을 다하여
영원한 하늘의 것을 준비하기 원하는
여기 모인 군산삼학교회 모든 성도님들 머리머리 위에
지금으로부터 영원까지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