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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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 말씀은 빌립보서 4장 10~13절 말씀입니다.
제가 가진 성경으로는 신약성경 322이지에 있습니다.
10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함으로 수요기도예배에 오신 성도님들의 삶과 가정에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이 함께하시길 간절히 기도하고 축원합니다.
오늘은 빌립보서 말씀을 함께 살펴보면서, ‘최고의 무기’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먼저, 빌립보서의 배경을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빌립보는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도중 아시아를 넘어 도착한 유럽의 첫 관문이었습니다.
바울은 거기에서 루디아와 점치는 여종, 그리고 간수의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이들이 모여 세운 교회가 바로 빌립보 교회입니다.
그런데 이때 바울이 감옥에 갇히게 되면서, 그의 경제적 형편이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빌립보 교인들이 정성을 다해 헌금을 모았습니다.
그렇게 모은 헌금을 가지고 빌립보 교회의 목회자 에바브로디도는 로마로 향했습니다.
로마에서 바울을 만나고, 바울과 더불어 교회의 일을 이야기하던 중에
교회 안에 유오디아파와 순두게파가 대립하고 있다는 사정을 말하게 됩니다.
그런데 갑자기 에바브로디도가 그곳에서 그만 병을 얻게 됩니다.
바울은 그로 인해 많은 걱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에바브로디도가 건강을 회복하여 빌립보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로 돌아가는 에바브로디도를 통하여 빌립보 교회에 편지를 보내는데,
이 편지가 바로 빌립보서입니다.
바울은 에바브로디도가 건강을 회복하여 기쁘고,
빌립보 교인들이 정성을 다해 헌금을 보내준 것이 기쁘고,
빌립보 교회가 하나님과 이웃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 참 기쁘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으라고 권면합니다.
바로 이런 내용을 담고있는 편지가 빌립보서인데,
우리가 이런 배경을 생각하면서 본문 1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10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바울은 선교 헌금을 보내준 빌립보 성도들에게 감사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빌립보 성도들의 선교 헌금을 바울이 얼마나 기뻐했는지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여러분, 오직 복음을 위하여 남의 나라에까지 가서 선교하는 선교사들의 개인적인 고민 중
가장 큰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다름 아닌 자녀 교육과 사역의 성과라고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파송된 선교사들이 공식적으로 167개 나라에 2만 2천명 가량 됩니다.
그 선교사들의 거주지를 분석해 보면, 70% 정도가 도시에 머물러 있는데,
바로 자녀 교육 문제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합니다.
선교사들의 어려움은 사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우선 언어 문제, 문화적 이질감 문제가 가장 피부에 와닿을 것입니다.
본국에 두고 온 부모와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도 클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선교헌금마저 끊긴다면
자녀 교육과 사역에 커다란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은 힘있는 선교사역을 기대하기 어려워집니다.
우리가 선교사님들의 이러한 사정을 생각하고 본문의 말씀을 볼 때,
바울에게도 이같은 일이 발생했다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선교헌금을 보내주기로 약속한 빌립보 교회는
상당히 오랜기간 동안 후원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바울이 감옥에 갇히고 나서, 그때 비로소 헌금을 하게 된 것입니다.
비록 자족하는 비결을 배우고, 여러 가지 고난의 훈련을 통해 잘 인내했던 바울이었지만,
매우 고생하던 차에 손에 쥐어진 선교헌금이라 더욱더 기뻐했을 것입니다.
물론 ‘이제는 고생이 끝났구나’ 하는 기쁨만은 아니었습니다.
성도들의 선물을 풀어보는 기쁨과 함께
그들이 자신의 고난을 이해하며 함께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기쁨이 훨씬 더 컸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성도들의 후원이 다시 이어지는 것을 새싹이 나는 것에 비유했습니다.
10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바울은 오랫동안 황량하고 얼어붙었던 땅에서, 다시 싹이 나온 광경을 보는 듯 했습니다.
그것은 곧 생명령의 상징이었습니다.
선교사 바울은 헌금하는 성도들의 마음속에서
복음의 생명력을 발견했기 때문에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선교헌금은 선교사님들에게
새싹이 나는 것과 같은 생명의 기쁨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이 이 땅에서 불편함 없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도,
선교사님들은 많은 대적들과 싸우며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영적 최전방에서 고군분투하는 선교사님들을 위해 얼마나 기도하고 있나요?
하나님께 작정한 선교헌금을 정성껏, 성실하게 보내고 있습니까?
혹시나 잠시 잊었다면, 다시금 선교사님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과
선교헌금을 보내는 일에 힘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선교사님들은 우리의 손길을 통해 새싹의 생명력을 느낄 것입니다.
다시금 힘있게 복음을 위해 자신의 몸을 던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공간을 뛰어넘는 아름다운 하모니를 위해
우리의 작은 정성을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환절기가 되면 감기에 걸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유독 환절기에 감기 환자가 느는 까닭이 무엇일까요?
감기를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특정 계절에 더 많은 활동을 하기 때문일까요?
사실 문제는 외부에 있기보다 우리 신체 내부에 있습니다.
바이러스는 늘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호시탐탐 틈을 엿보고 있어요.
그러다가 계절이 바뀌면서 찾아온 외부 환경 변화에,
우리 몸이 적응하지 못하고 상대적으로 약해진 틈을 타 공격해 들어오는 겁니다.
틈을 노리는 것은 감기 바이러스만이 아닙니다.
편을 나누어 우열을 다투는, 모든 스포츠 경기에서도 항상 존재합니다.
스포츠 경기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전술은
상대방의 약점과 빈틈을 찾아내어 그 부분을 집중 공략하는 것입니다.
농구든 축구든 이종격투기든 어떤 종목이든지,
선수는, 상대편 선수의 빈틈을 찾아 그곳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승기를 잡으려 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닐까요?
사탄이 우리를 공격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충만할 때 사탄은 쉽사리 공격해 오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늘 충만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때론 작은 틈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사탄은 기가 막히게 그 틈을 찾아내어 우리를 쓰러뜨리려고 달려듭니다.
우리에게는 많은 틈이 있지만, 사탄이 집중적으로 노리는 틈이 있습니다.
어떤 틈일까요? 바로, 욕망이라는 이름의 틈입니다.
그런데 욕망이라는 이름의 틈이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는 말이 있습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욕망이라는 틈은 항상 “조금만 더!”를 외칩니다.
그리고 사탄은 안테나를 높이 세우고 있다가 우리가 “조금만 더!”를 외칠 때,
기가 막히게 알아듣고 찾아와 바로 그 욕망이라는 이름의 틈을 파고듭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니까 아주 희한한 사람이 있습니다.
자유를 잃어버리고 갇혀 있으면서도
너무나도 행복하고 평온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입니다.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사람이 자유를 만끽하며 살아도 ‘조금 더, 조금 더’ 하기 마련인데,
바울은 모든 것이 부족하고 모든 것이 아쉬운 감옥에 앉아서도 싱글벙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한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감옥 안에서 크게 기뻐할 일이 뭐 있었겠어요?
그런데도 바울은 크게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왜 기뻐하는가 봤더니, 빌립보 교회에서 보내준 선물 때문이었습니다.
갇혀 있는 사람에게 밖에서 보내주는 물품들이 얼마나 요긴하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사도 바울이 기뻐했던 이유는
빌립보 교인들이 보내준 선물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17절 앞 부분에서도 바울의 심정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사도 바울이 기뻤던 것은 선물 때문이 아니라
빌립보 교인들이 사도 바울을 잊지 않고 여전히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기뻤던 것입니다.
사실 사도 바울은 이미 욕망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일체의 비결을 깨달은 상태입니다.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이는 참으로 인상적인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은 그가 어떤 믿음의 소유자인가를 가르쳐줍니다.
특별히 이 구절 속에서 우리는
바울이 어떤 상황에 있든지 자족하는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족’이란 말은 ‘환경과 상관없이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자기 충족감’을 의미합니다.
그런 사람은 높은 데 있다고 교만하거나, 낮은 데 있다고 비굴해 하지 않습니다.
왠만한 풍파에는 끄떡도 하지 않는 내적인 만족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유혹이나 시련도 거뜬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결국 바울의 고백은 그가 성숙한 믿음의 소유자였음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다음으로 가장 닮고싶은 성경인물로 바울을 꼽는 것 아닐까요?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이라는 복음성가에서도
2절에서,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그렇게 살 수 없을까” 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그만큼 성숙한 신앙인으로 훌륭한 신앙의 본을 보인 사람입니다.
성숙의 개념은 어린아이를 살펴보아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인내할 줄 모릅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되는데 참지 못하고 부모를 조릅니다.
또한 단편적인 사실만 본 채, 더 깊은 뜻을 모르고 쉽게 오해합니다.
부모는 치아의 건강을 위해 아이스크림이나 사탕을 자녀에게 많이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것을 참지 못할 뿐 아니라,
그것을 주지 않는 부모의 심정을 모르고, 무작정 떼를 쓰고 조르고 봅니다.
마찬가지로 아직 성숙하지 못한 성도일수록 어려움에 처하게 되면, 가장 먼저 원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나에게 이러한 환경을 허락하셨는지 그 섭리를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숙한 성도는 그러한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자족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믿음과 감사의 문제입니다.
어떤 상황이든 하나님의 섭리를 믿기에 만족할 수 있고,
상황을 초월하여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 안에서 자족하는 것은 성숙한 신앙의 필수 요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숙한 성도입니까?
이 말은 곧, 자족하는 삶을 살고 있냐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대개 자기의 형편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많은 재물을 가진 부자도 ‘조금 더, 조금 더’를 외칩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자신의 처지가 못하다고 생각되면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만약 우리의 모습이 이와 같다면, 우리는 아직도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입니다.
성숙한 신앙인은 더 나은 미래를 추구하되,
현위치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자족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현재에 형편이 어떠하든지,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바울은 이렇게 자족할 수 있는 일체의 비결을 배운 성숙한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러니 이런 바울에게 빌립보 교인들이 보낸 선물 그 자체가 무슨 큰 의미가 있었겠습니까?
바울 사도는 그 선물보다도 그 선물에 담긴 빌립보 교인들의 아름다운 마음,
자신을 잊지 않고 생각해주는 그들의 마음을 보고 한없이 기뻐했던 겁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의 마음이 담긴 선물을 보고 한없이 기뻐했다면,
저와 여러분도 한없이 기뻐할만한 지상 최대의 선물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 선물이 뭘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믿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허락된 영생이라는 선물도 감사하지만,
우리를 더욱 감동케 하는 것은 우리에게 영생의 선물을 주시기 위해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죽기까지 내어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담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그 마음의 선물이 우리를 감동케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상상을 초월하는 지상 최대의 선물을 받은 자들입니다.
사도 바울이 어떤 형편에 처해 있어도 항상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었던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가난함도 부함도 문제될 것이 없었습니다.
감옥 안이든, 감옥 밖이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사실 우리는 이 말씀의 해석을 오해해서 많이 사용합니다.
왜냐하면 비슷한 성경구절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마가복음 9장 23절 말씀과 함께 많이 인용됩니다.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마가복음 9장 23절과 같은 의미로 이해될 때,
오늘 본문의 13절 말씀은 ‘믿는 자에게 불가능은 없다’ 라는 의미가 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문맥을 보면, 이 말씀은 어떤 여건 속에서도 만족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즉 바울은 자신이 자족할 수 있게 된 비결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능력주시는 자’는 곧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주 안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같은 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특별히 ‘내게 능력주시는 자’ 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괴로움과 궁핍, 심지어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자족하며 인내할 수 있었던 능력의 원천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울이 고린도에서 유대인들에게 많은 공격을 받아 괴로울 때,
그를 위로하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사도행전 18장 9~10절
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예수님께서는 매번 바울이 힘들 때마다 나타나셔서 격려해주셨습니다.
바울은 늘 예수님과 함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함께 모든 고난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속에서도 자족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의 이런 고백처럼, 우리는 능력 주시는 자, 예수님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다’에 강조점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는가?
우리가 ‘능력 주시는 자 안에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포인트라는 겁니다.
우리가 그 분 안에 거할 때 가난도 부함도 우리에게 큰 차이를 만들어 내지 못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조금 더! 조금 더!’를 외치게 했던 욕망도,
예수님이라고 하는 선물, 즉 하나님의 마음이 담긴 지상최대의 선물을 받은 우리에게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기만 하면, 우리는 사도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모든 상황 가운데에서 만족할 수 있습니다.
이미 예수님이라는 지상 최대의 선물을 받은 우리는,
그 어떤 선물도 그 크기에 상관없이 기쁨과 감사의 이유가 됩니다.
사탄은 빈틈을 노립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큰 빈틈은 ‘조금 더, 조금 더’를 외치게 하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빈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이 담긴 지상최대의 선물, 예수 그리스도를 선물로 받은 우리에게
더 이상 ‘조금 더, 조금 더’는 없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은 그저 감사의 조건이고 기쁨의 이유일 뿐입니다.
욕망의 빈틈을 노리는 사탄에겐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겠지만
바로 이것이 예수님을 선물로 받은 우리들의 진정한 태도,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많이 부르는 찬양의 가사처럼 예수님 안에서 자족의 비결을 배운 우리는
‘주님 한분만으로 나는 만족해’라고 노래할 수 있습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도 만족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우리가 가진 최고의 무기입니다.
우리의 빈틈을 노리고 들어오는 사탄의 공격을 무력화시켜 승리의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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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주신 말씀을 생각하며 3가지 기도제목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1. 수고하고 헌신하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가정, 자녀와 사역 위에 은혜를 부어주시도록
2. 내게 능력주시는 예수님 안에서 자족할 수 있는 성숙한 신앙인이 될 수 있도록
3. 욕망이라는 빈틈을 노리는 사단에게 예수 그리스도 한분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최고의 영적 무기로 대적할 수 있도록
이 3가지 기도제목으로 기도하시고, 각자 주기도문으로 마무리하시기 바랍니다.
안수 기도를 받기 원하시는 분들은 기도방석으로 나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주님의 이름 한번 부르고, 다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