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각 성 각 마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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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만에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찬송가 521장 (통일 253장) 구원으로 인도하는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누가복음 13장 22~35절까지 말씀입니다.
22절 한절만 함께 읽고, 한절씩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22 예수께서 각 성 각 마을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더니
오늘도 말씀을 사모함으로 성전에 나아오신 성도님들의 삶과 가정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함께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게 될 자의 조건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23절에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라는 어떤 사람의 질문으로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원얻을 자의 양이 얼마인지를 묻는 이 질문에
직접적으로 답변하지 않으시고,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것인가’를 말씀하십니다.
보다 궁극적인 대답을 하시면서 누가 들어갈 수 있는지에 대한 조건을 알려주십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을 정리해보면,
첫째,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야 합니다.
누가복음 13장 22~24절
22 예수께서 각 성 각 마을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더니
23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세상의 유혹을 뿌리치고 회개와 성결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구원으로 들어가는 문이 좁기 때문에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많은 유혹들에 쉽게 걸려 넘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성결한 삶을 살기 위해서 애써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13장 25절
25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예수님의 재림의 때는 아무도 모르지만, 분명하게 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완성된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나라는 오직 준비하는 사람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와 슬기로운 다섯 처녀의 비유에서 볼 수 있듯이
믿음으로 영적 준비를 한 사람만이 하나님 나라의 혼인잔치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인원수 제한이 있는 것이 아니라, 준비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이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셋째,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생각과 같이 외적인 요소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참된 회개와 온전한 믿음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곳입니다.
누가복음 13장 26~27절
26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27 그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 하리라
하나님 나라는 정기적으로 교회 출석을 잘하고,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잘했다고 해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무리 주님 앞에서 성도들과 먹고 마시며 교제하고
우리가 주님의 가르침을 배웠다고 하나
진실한 회개와 온전한 믿음이 없으면 갈 수 없는 곳입니다.
넷째, 하나님 나라는 혈연이나, 민족, 신분, 인종 등 어떤 관계가 있어서
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부한다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도 버림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비록 죄인이고, 신분이 미천하고,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겸손히 받아들이고, 온전히 믿고 따른다면
어떤 조건과 상관없이 우리를 모두 받아주시고, 안아주시는 곳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누가복음 13장 28~30절
28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29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니
30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선민사상을 가지고 있어서,
자신들만 무조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은 지옥의 땔깜으로 써야될 존재들이라고 여길만큼
선민사상에 강하게 지배되어있던 민족입니다.
그런 유대인들을 향해서 예수님의 이런 말씀들은
그들에게 구원관에 대한 경종을 울리면서,
한편으로 이방인들에게는 소망을 주는 말씀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방법과 상식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세상의 불의와 타협하고 악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적응하고 인정하며 살아서는 안됩니다.
성경은 분명히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삶의 기준을 하나님께 맞추어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심판하실 것에 대한 올바른 종말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이 얼마나 하나님 말씀을 좇는 것이었는지에 따라 심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래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면서
현재의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행하는 성실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헤롯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니 이곳을 떠나라고 말합니다.
이 장면만 보았을 때,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헤롯으로부터 보호하려고 말하는 것 같지만,
나중에 예수님의 대답을 보면, 악한 의도를 가지고 말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바리새인들은 헤롯의 사주를 받고, 예수님을 위협하여
헤롯의 영토에서 떠나도록 하기 위해서 헤롯이 죽이려 한다고 거짓정보를 흘린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님과 바리새인, 그리고 헤롯의 미묘한 삼각관계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본래 바리새인과 헤롯은 적대 관계였으나, 공통의 적인 예수를 몰아내기 위해서
연합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치에서는 오늘의 적이 내일의 동지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31 곧 그 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
32 이르시되 너희는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그런데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의 거짓정보를 바로 알아차리고
헤롯을 가리켜 교활한 여우를 빗대어 표현합니다.
그러면서 아무리 교활한 헤롯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계략을 세운다 하여도
예수님은 본래 이 땅에 오셔서 마쳐야 할 사명을 계획대로 이루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그 사역은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고,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이 모든 사역을 이루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33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묵묵히 자신의 사명을 감당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바리새인은 헤롯이 예수님을 죽일 것이라고 말하지만,
예수님은 예루살렘 밖인 헤롯의 영토에서 절대 죽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십자가 사명을 감당해야 할 목적으로 이 땅에 오셨고,
하나님께서 그 계획을 이루실 것을 확실히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해 안타까운 마음을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심장이며 중심입니다.
그렇게 거룩한 도시가 거룩과 공의를 저버리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들을 죽이는
살인자들이 우글거리는 도시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결국 예루살렘의 배신은 곧 하나님의 사랑에 등돌린 이스라엘의 모습을 반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전 세계를 구원하실 계획과 함께 이스라엘도 돌아오길 바라시면서
많은 선지자들을 보냈지만, 결국 예루살렘에서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도 예루살렘에서 십자가 피를 쏟으려 하십니다.
34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35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34절에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았다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그 품 안에 품으신 그 사랑으로 돌보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진정한 구원과 온전한 삶의 방식을 주기 원하셨는데,
그들이 항상 원했던 것은 성공과 세상의 방식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거룩한 삶의 방식이었던 율법을 떠나 세상의 방법을 쫓았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에도, 그 분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부강하게 하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들은 예수님을 신성모독죄로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결국 그렇게 황폐하게 되어버린 이스라엘을 이제는 하나님께서 버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말씀을 통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과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외면하여, 결국 하나님께 버림받은 이유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우리도 교만하여 자기 의에 빠져 나의 노력과 선한 행실로 구원받는다고
착각하며 살지는 않았는지, 내가 교회의 직분을 감당하고 있고, 교회에서 인정받고,
오랫동안 교회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구원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처럼 자기 의와 욕심에 빠져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외면하지 않도록
항상 겸손하게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고, 주님의 긍휼하심을 구함으로
온전한 구원과 거룩한 삶으로 승리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며, 성공과 세상 방식을 따르지 않도록
2. 우리에게 주신 거룩한 삶의 방식, 성경을 바르게 알고 실천하는데 힘쓸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