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복음 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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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 말씀로마서 1장 8~17절 말씀입니다.
제가 가진 성경으로는 신약성경 240페이지에 있습니다.
8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9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10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11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12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13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14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함으로 성전에 나아오신 성도님들의 삶과 가정에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이 함께하시길 간절히 기도하고 축원합니다.
로마서의 주제를 한 마디로 요약하라면,
로마서 1장 1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복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복음이란, 쉽게 말해 복된 소식, 기쁜 소식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바로 하기 위해서는, 복음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주신 성경말씀 전부가, 복음이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는, 복음 중의 복음입니다.
산모가 밤중에 난산을 할 때에,
산부인과 의사가 온다는 소식이 가장 기쁜 소식인 것처럼,
죄와 죽음의 노예가 된 우리에게,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다는 것은
가장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을 좀 한 사람이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말이 매우 익숙합니다.
그러나 1절에서 사도바울이 말한, ‘하나님의 복음’이란 표현은 좀 낯설게 들립니다.
우리가 성경의 진리를 조금만 깊이 이해하기 시작하면,
하나님의 복음이라는 말은, 신구약에 들어있는 내용을 한 단어로 요약
아주 높은 차원의 표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낼 계획을 세웠습니까?
누가 우리를 구원할 계획을 세웠습니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창세전부터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가운데서 나온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하나님의 복음’이라는 말은
더 광대하고, 더 깊은 뜻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복음’이라는 말을 로마서 서두에 사용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로마서에 제일 많이 사용된 단어‘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총 153번이나 사용되었습니다.
복음을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있는 로마서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이렇게 많이 사용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를 구원하실 계획, 즉 복음이 하나님의 가슴에서부터 왔다는 것을
가르쳐 주려는데 그 의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결국, 복음을 이해하면 이해할수록,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을 향하게 됩니다.
우리의 눈은 하나님을 향해 열리게 됩니다.
우리의 입술은 하나님을 향해 찬양하게 됩니다.
바울이 이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었습니다.
로마서 11장 33절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하나님의 그 마음을 아무리 헤아리고 헤아려도 끝이 없다는 말입니다.
“왜 나 같은 것을 구원하려고 하셨는지! 왜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허락하셨는지!”
아무리 연구하고 생각해도 하나님의 심정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 로마서를 마무리하면서 사도바울은 이런 고백을 합니다.
로마서 16장 27절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예수 그리스도라는 복음이 하나님의 뜨거운 가슴에서 나온 은혜임을 알면
누구나 바울처럼 하나님을 향해 두 손을 높이 들고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로마서 1장 1~17절에만 ‘복음’이라는 단어가 7번이나 나옵니다.
그만큼 바울이 복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볼 때, 특별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15절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여기에서 참 흥미로운 사실은 참 흥미로운 사실
바울이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복음 전하기를 원했다는 것입니다.
복음은 본래 어떤 사람에게 전합니까?
안 믿는 사람에게 전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복음을 전한다 하면 우리는 불신자들을 생각합니다.
바울에게도 똑같은 원칙이 있었습니다.
로마서 15장 20절에 보면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복음이란, 예수를 모르는 자에게 전하는 것인 만큼
불신자들이 더 많았던 당시 상황에서
굳이 예수를 알고 있는 자들에게 또다시 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바울은 이런 자신의 원칙을 어겨가면서까지
왜 로마교회 복음을 전하려고 했을까요?
이것은 충분히 관심을 가질만한 주제입니다.
그렇다면 먼저, 로마에 있는 교인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살펴보겠습니다.
로마서 1장 6절에 보면,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로마 교인들은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 믿고 이미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7절을 보면,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이미 ‘성도’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얼마나 믿음이 좋았던지,
8절에 보면,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그들의 믿음이 온 세상에 소문이 났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믿음이 좋고 신앙생활 잘하는 교인들에게
왜 복음을 전하고 싶다고 했는지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바울이 얼마나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어 했는지
10절을 보면,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11절에서는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그들을 너무 보고 싶어하는, 자신의 간절한 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13절에 보면,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그가 한 번만 노력한 것이 아니라, 기회만 있으면 로마교회에 가서 복음을 전하려고
애를 썼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15절에서는,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로 달려가
복음을 전하고 싶다는 자신의 심정을 어필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로마서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바울이 왜 그렇게 로마에 있는 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애를 썼을까 하는 난제를 놓고, 여러 가지 견해를 내놓았습니다.
그들이 내놓은 수많은 학설 중에 몇 가지를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첫째, 예방적인 의도를 가지고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대부분의 초대교회가 겪었던 것처럼
언젠가는 이단이 들어와 탈선한 위험이 있기 때문에
예방적인 차원에서 다시 한번 더 복음 전하기 원했다는 주장입니다.
둘째, 유언적인 의도입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한 다음에,
부득이하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간다는 것은, 사지로 끌려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가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성령님께서도 예루살렘으로 가면 죽음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바울은 죽기 전에 유언하는 심정으로 로마서를 기록하였다는 주장입니다.
셋째, 전략적인 의도입니다.
로마는 그 당시 세계 제일의 도시였습니다.
로마를 통해서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로마에 가기 앞서, 미리 로마서를 통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면
후에 로마에 가도 선교하기가 훨씬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전략적인 의도를 가지고 로마서를 기록했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저는 개인적으로, 목회자의 입장에서
바울이 목회적인 의도를 가지고 썼다고 생각합니다.
로마교회가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당시에는 적어도 20년 가까운 전통을 가진 교회였습니다.
그러므로 벌써 로마 교회 안에는
첫 믿음의 순수성과 열정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꽤 많았을 것입니다.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로마서 13장 13~14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로마교회 안에 예수를 믿고 교회에 드나들고 있지만,
무엇인가 잘못된 사람들이 꽤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복음을 다시 듣고, 은혜를 깨달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저는 바울이 영적으로 힘을 잃어가고 있는 그들에게 다시 한 번
복음을 생생하게 전하려는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로마서를 기록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역사가 오래된 교회일수록, 복음이 죽어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요즘은 코로나 비대면 예배의 활성화로
복음의 생동감을 더 느끼기 어려운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가끔은 십자가의 피가 말라버린 것처럼 보입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 영적으로 심각한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조사해보면,
대부분 예수 믿은지 오래된 사람들입니다.
교회 안에서 “왜 저렇게 영적으로 축 쳐져있을까? 왜 저럽게 답답할까?”
하고 염려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예수를 오래 믿음 사람들입니다.
초신자들은 아직 알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습니다.
하나하나 깨달으면서 변화가 시작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복음, 즉 예수 그리스도를 정말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더 많다.
그래서 고 옥한흠 목사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다시 한번 깨어져야 할 사람이 교회 안에 있고,
하나님의 사랑 앞에 그 굳고 교만한 마음이 녹아져야 할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고,
예수 이름 앞에 자기 자신이 죽고, 다시 태어나야 할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습니다.”
로마교회 안에 있었고, 지금 한국교회 안에도 있습니다.
혹시 모릅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저와 여러분들 중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전하는 저도 예외는 아닙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참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구나. 참 많이 회개했습니다.
교회를 다녀도 복음에 대해서 무지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래 예수님을 믿음에도 불구하고, 십자가가 어떤 의미인지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구원받았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영생을 얻는 문제에 대해서도,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바로 복음을 다시 들어야 할 로마 교인들이었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우리 주변에서도
복음 이야기만 하면 교만한 태도들 드러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복음의 내용을 다 안다고, 십자가 설교만 하면 다 안다고,
죄 용서를 받아야 한다고 말하면 다 안다며, 팔장을 끼고 눈을 닫습니다.
동시에 마음도 굳게 닫고, 자기 생각에 빠져버립니다.
정말 큰 문제입니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비대면 예배가 활성화되면서,
유능한 목사님들의 설교를 언제든지 내가 원하는 취향에 맞게
들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내가 정말 필요할 때, 무언가 신앙의 권태기가 찾아올 때,
감동과 마음에 큰 울림을 주는 좋은 명설교를 듣고,
이 복음도 언제든지 다시 상기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단언코 말하지만, 모두가 사단이 주는 생각입니다
복음은 좋은 설교를 듣고, 마음에 감동이 되어서, 지식으로 깨달아져서
이정도면 됐어 하는 만족감과 뿌듯함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 앞에 서게되면, 부끄러워서 얼굴조차 들 수 없습니다.
너무 감사해서 내 전부를 드려도 다 갚을 수 없는 사랑에 엎드려집니다.
지금까지 바라보았던 모든 가치를 내려놓고, 주님을 따르게 됩니다.
내 삶 전부를 다 드려도 아깝지 않고,
오히려 너무 부족해서 드릴 수 있는 것이 없음에,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이 작은 것이라도 받아주심에,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이 진짜 복음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이 무엇이라고 오늘 말씀에서 정의하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바울은 16절에서 복음에 대한 자신의 강한 확신을 말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은, 그것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그가 로마교회에 복음 전하기를 그토록 원했던
또 하나의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로마교회가 꺼져가는 복음의 능력, 하나님의 능력을 회복하기 원했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처음으로 예루살렘을 요란하게 했을 때,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향하여 큰소리로 선포한 말을 생각해 보세요.
사도행전 3장 6절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이 말을 듣자, 앉은뱅이가 일어섰습니다. 복음의 능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그 이름 하나가 굉장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귀신이 떠나가고, 질병이 사라지고, 죄가 달아납니다.
고린도전서 2장 2절을 보면,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데, ‘예수님의 십자가’ 하나면 충분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증거하자,
예루살렘에서 3,000명이 회개하는 대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부활의 메시지’ 자체에 하나님의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십자가, 부활이 곧 복음이고,
이 메시지 자체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복음이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말에는 중요한 한가지 사실이 더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도행전 1장 8절을 보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이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 성령의 능력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복음이 이 악한 세상에 전파되기 위해서는 막강한 초자연적인 힘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분명히 복음 자체가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셨는데,
굳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성령의 능력이 더 필요할까요?
네.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사단이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면, 그것 자체가 사단에게는 공격행위가 됩니다.
우리가 사회생활 하면서 ‘나는 예수믿는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불신자들을 보면, 예수 믿으라고 전도합니다.
믿는 사람들끼리는 서로 모여서 성경공부도 하고, 기도회도 합니다.
주일에는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고, 봉사도 하고, 교제도 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이 사단에게는 공격행위가 됩니다.
사실 우리는 방어자가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의 삶을 통해 사단을 공격하고 있고,
오히려 사단이 항상 방어하는 입장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공격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더 유리한 조건일까요?
군사학에서 보면, 어떤 나라가 다른 나라를 침공하게 되면,
공격하는 군대는 수비하는 군대보다 3배 이상은 더 강해야 승산이 있다고 합니다.
옛날의 전쟁을 보더라도, 공성전을 하면 어떻습니까?
훨씬 더 많은 병력과 기술들이 있어야 그 성을 함락시킬 수 있지 않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복음 증거자는 사단보다 3배 이상 강해야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단보다 더 강할 수 있습니까?
사실 매일 넘어지는 자신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냥 사단의 밥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단과 맞써 싸울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복음 전하는 자에게 성령의 능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단의 세력을 전복시킬 수 있도록, 하나님의 능력, 복음의 능력을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사단의 세력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킬 수 있습니다.
16절에 보면,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얼마나 능력이 큰지, 믿기만 하면 한 사람도 빠짐 없이 능력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능력으로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구원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유대인, 이방인 다 구원하신다는 말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복음의 능력이 얼마나 강한지,
많은 구원의 조건이 필요없고, 단지 한 가지만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복잡하지 않습니다. 유일한 조건은 믿음입니다.
이것 저것 요구하지 않는 이유는 그만큼 복음의 능력이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17절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그런데 여기에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복잡합니다.
성경 학자들은 여러 가지로 해석합니다.
어떤 학자는 구약 성도들의 믿음으로부터 시작해서, 신약 성도들의 믿음에 이기까지의
모든 믿음의 과정을 통틀어서 말한다고 합니다.
어떤 학자는 첫 단계의 믿음부터 마지막 단계의 믿음까지 다 통과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가장 정확한 해석은,
시작도 믿음으로 시작해서, 마지막 구원에 이를 때에도
믿음으로 마치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오직 믿음으로’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다른 조건이 필요 없습니다. 오직 믿기만 하면 구원을 주십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믿음으로 신앙생활 하고, 믿음으로 천국갑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믿음으로 얻게되는 복음의 능력으로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하기 원하실까요?
사도바울이 로마서를 쓰면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한 이유에 대해서
13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여기서 말하는 열매는 전도의 열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의 능력을 통해 우리가 전도의 열매를 맺길 원하십니다.
로마교회가 복음을 다시 듣고 구원의 감격과 하나님의 능력을 되찾으면
그 순간부터 폭발이 일어납니다.
먼저 믿은 성도들이 다시 한번 깨어나면,
가는 곳마다 사람들을 붙잡고 열심히 전도할 것이고,
그 결과 당연히 전도의 열매를 풍성히 거두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세계를 복음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로마가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세계사를 보면, 바울의 꿈이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하고, 3~4년 후에 죄인의 신분으로 로마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 후 바울은 로마에서 3년 가까이 머물면서
감옥에 지내기도 하고, 풀려나기도 하면서 계속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그 당시 로마교회가 거둔 전도의 열매였습니다.
네로 황제의 박해 속에서 바울이 순교당하던 그 때에,
이미 로마 시내에는 예수믿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어떤 역사가의 기록에 보면, 네로황제가 바울을 죽일 당시에
로마시에는 유대인 기독교 신자만 2만명이 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대인 기독교 신자만 2만명이면, 이방인 기독교 신자는 얼마나 더 많았겠습니까?
로마시에 기독교인이 셀 수 없이 많아서, 기록에는 ‘거대한 군중’이라고 표현되었습니다.
그러면 그 당시 로마시에서 예수믿는 사람들에 대한 대우가 형편이 좋았던 것일까요?
예수 믿는다고 하면, 대접받고, 인정받고, 일이 잘 풀리고
세상말로 복을 많이 받아서 그렇게 부러움을 사는 존재들이었을까요?
예수 믿는 사람들은 미친개의 밥이 되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임을 당하고,
짐승 가죽에 돌돌말려 톱으로 잘림을 당했습니다.
심지어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네로의 궁전 뜰에서 소나무 막대기에 꽂아놓고,
기름을 잔뜩 부어 횃불로 사용했습니다.
여기저기 기상 천외한 방식으로 예수믿는 사람들을 처형했습니다.
그리고는 마차를 몰고 돌아다니면서, “내가 만든 예술작품을 보라”며 발광했습니다.
그 당시 순교했던 사람의 수가 얼마인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습니다.
이렇게 악조건의 상황 속에서도
로마교회가 넘치는 전도의 열매를 거둘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복음을 다시 듣고, 구원의 감격과 하나님의 능력을 회복했기 때문입니다.
로마교회는 숫자만 늘어난게 아니었습니다.
끔찍하고 살벌한 박해 속에서도 이렇게 순교자가 많이 나올 수 있었다는 사실은
그만큼 신앙의 양과 질이 함께 성장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우리도 코로나라는 악조건 속에서 고군분투 하면서
신앙을 지키려고 부단히 애쓰고 있습니다.
비대면 예배라도 제대로 드릴 수 있도록, 방송.음향장비를 갖추고,
성도님들이 스마트 장비들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안내하고, 교육하면서
어떻게든 빠지지 않고 드리려고 예배를 사수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예배를 드리는 횟수는 줄지않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지켜내고 있는데,
과연 예배를 드리는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 복음의 열정은 아직 살아 숨쉬고 있습니까?
비대면 예배를 사수하기 위해, 비대면 예배를 통해서 은혜받고,
받은 말씀대로 삶에서 살아내기 위해서 어떤 수고와 헌신을 하고 계십니까?
요즘 코로나 때문에 교회나오라고 말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직접적으로 복음을 말하는 것이 어려운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삶을 통해, 변화를 통해, 다른 간접적인 방법을 통해서
복음 전하기를 애쓰고, 고민하고 있습니까?
제가 아는 목사님의 아들이 학교에서 임원수련회 간다고 주일을 빠지겠다고 했답니다.
목사님이 옛날 같으면 바로 “너 죽을래?” 이렇게 했을텐데...
그 아들 녀석이, 수련회가서 스마트폰으로 비대면 예배를 드리겠다고 하니깐
보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라는 얘기를 들으면서
목사님 아들도 못말리는데, 성도님들은 오죽할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과연 그 목사님 아들이 임원수련회가서 비대면으로 예배를 잘 드릴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중요한 것은 예배를 대면으로 드리느냐, 비대면으로 드리느냐가 아닙니다.
무엇보다 먼저 복음을 다시 듣고,
구원의 감격, 복음의 능력을 하루 속히 회복해야 합니다.
시편 51편 12절에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다윗이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주시길 간구했던 것처럼,
우리도 구원의 감격, 자원하는 심령을 회복해야 될 줄 믿습니다.
우리가 구원의 능력에 사로잡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드리기 원하는 뜨거운 가슴이 우리에게 있다면,
우리는 전도하지 않고는 못 배깁니다.
예수를 잘 믿는 한 초등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빠는 예수를 믿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이 학생이 얼마나 큰 은혜를 받았던지, 구원의 감격으로 가슴이 벅차올라
이 기쁜 소식을 자신만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예수님, 나만 믿어서는 안 돼.”
“아빠도 믿어야 되고, 엄마도 믿어야 돼!”
그 이후로 이 아들은 예수 안 믿는 아버지를 보고, 날마다 예수 믿자고 졸라댔습니다.
그 아빠는 아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 그저 귀엽기만 했습니다.
“그래 그래. 너부터 먼저 믿으렴. 아빠도 여유가 생기면 믿을게.”
“너무 아빠를 괴롭히면 내가 오히려 부담스럽지 않겠니?”
이렇게 해서 적당히 달래 넘어가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슴 아프게도 교통사고가 나서 그 아이가 죽고 말았습니다.
부모의 슬픔을 무엇으로도 달랠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죽은 아들이 사용하던 방에 들어가 그 아이의 유품을 하나하나 만져보았습니다.
옷도 만져보고, 읽던 책도 만져보고, 그러다가 노트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일기장이었습니다.
그 일기장을 펴 본 아빠는 기절할 것 같이 놀라고 말았습니다.
죽기 며칠 전에 쓴 일기 내용에 이런 기도문이 적혀 있었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빠 꼭 예수 믿게 해주세요.”
“하나님! 아빠가 예수 믿기 위해서 내가 죽어야 한다면 나는 죽기를 원합니다.”
“내가 죽어서라도 아빠가 예수 믿게 해주세요.”
그가 그 글을 읽으며 받은 충동과 후회와 감동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이렇게 중요한 것인가?”
“생명을 내어놓고 내가 믿어야 할 일이었던가?”
드디어 그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아들의 생명과 자기 구원을, 바꾼 셈이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우리나라에 대학생선교회 CCC를 창단했던 김준곤 목사님입니다.
구원의 감격, 복음의 능력을 회복하면 하나님께 열매를 드리고 싶은 마음이
가슴 속에서부터 치솟아 올라 견디지 못합니다.
안 믿는 가족을 보면 못 견디고, 안 믿는 이웃을 보면 못 견딥니다.
우리 모두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는 복음의 능력이 식어 있지는 않은가?”
“왜 그럴까? 내가 복음을 들으지가 너무 오래되어서 그런가.”
“다 아는 내용이고, 귀가 아프게 들은 것 같지만...
실상은 예수님의 이름, 십자가의 능력, 복음의 능력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지난 몇 년 동안 복음을 귀담아 들으며 감격한 일이 몇 번이 있으십니까?
혹시 한 번도 없으셨다면, 그래서 이것이 나를 무력하게 만들고
전도의 열매를 맺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다시 복음 앞에 서야 합니다.
그리그 그 능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군산삼학교회 성도 여러분,
이제 어린아이 같은 심정으로, 복음 앞에 나아오지 않으시겠습니까?
이 시간 다같이 “다시 복음 앞에” 라는 찬양을 할 때
우리가 복음을 다시 새겨듣고, 신앙을 새롭게 하여,
구원의 감격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승리하시는
군산삼학교회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제목
겸손하게 다시 복음앞에 나를 돌아보고, 하나님의 능력, 구원의 감격을 회복시켜 주시도록
코로나로 어려운 상황속에서 위험을 기회로 바꾸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도록
코로나로 인해 몸과 마음의 질병,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고통받는 성도님들을 지켜 주시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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