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시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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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 말씀은 빌립보서 3장 17절에서 4장 1절까지 말씀입니다.
제가 가진 성경으로는 신약성경 322페이지에 있습니다.
3: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19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1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4: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함으로 주일 오후예배에 오신 성도님들의 삶과 가정에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이 함께하시길 간절히 기도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사도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자신을 본받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을 본받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고 합니다.
그당시 빌립보 교회에는 십자가의 원수,
즉, 복음을 대적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인정하지 않는 무리가
빌립보 교회에 들어와 사람들의 미혹하고, 오해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향해 십자가의 원수라고 말하며 경고했습니다.
그들이 지금은 부유하고, 성공하는 것 같아 보여도,
그들은 결국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 배, 곧 자신의 탐욕과 성공을 우상으로 숭배하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수치스러운 것을 모릅니다.
오히려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행하는 더러운 모든 것을
영광이라고 여기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잘못된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오직 땅의 일에만 집착하기 때문에
마지막 날, 심판의 날이 오면, 그들은 결국 멸망하게 될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우리들은
이 땅의 소망이 아닌, 하늘의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공부를 하기 위해 잠깐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렇다면 우리의 시민권은 어디에 있습니까?
아직 대한민국에 있겠지요.
대한민국이 어지럽고, 경제가 어렵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왜냐하면, 공부를 마치고 다시 돌아가 내가 살아야 할 조국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연히 좋은 기회가 생겨서 미국의 시민권을 얻었습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마음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여차하면 한국에 돌아가지 않고, 미국에 계속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국심을 가지고 다시 한국에 들어와서
조국을 위해 열심히 일하면서 살면 더 좋겠지요.
그만큼 시민권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큰 영향력이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어서 소개한 예화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깨닫는다면,
우리의 소망은 당연히 하늘에 두어야 합니다.
이 땅에서의 성공과 편안한 삶은 잠깐입니다.
육체의 생을 마감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날이 되면
우리의 영혼과 몸은 우리의 본향 하늘나라로 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땅에서의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늘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면, 모든 것을 이길 힘이 생깁니다.
21절에서 사도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만물을 자신에게 복종하게 하신 것처럼
그 능력으로 우리를 예수님과 같은 영광스러운 몸의 형체로
변하게 하실 것이라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날까지, 끝까지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굳게 서라고 권면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칭찬합니다.
그들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고, 나의 기쁨이고, 나의 면류관이다.
하늘에 우리의 소망이 있다고 믿는 것은,
우리가 처음 예수님을 믿은 이후로, 그 다음 단계의 과정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게 된 순간,
우리의 삶은 이제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시민권도 땅에서 하늘 나라로 옮겨가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늘 나라의 시민권에 어떤 유익이 있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과, 알지 못한 사람의 삶이 질은 완전히 다를 것입니다.
하늘의 시민권이 주어졌다는 것은,
우리가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릴 수 있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유익을 잘 알지 못한다면, 그만큼 풍성하게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사는
천국 백성의 시민권자에게는 어떤 유익이 있을까요?
첫째, 참된 소망을 가지고 살 수 있습니다.
소망은 우리 삶에 정말 중요하고, 필요한 요소입니다.
잘못된 소망은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인도합니다.
그리고 소망이 없이 살아가게 되면, 우리의 삶은 그저 무의미한 일상의 반복으로
마치 끝이 없는 터널을 지나는 것과 같아집니다.
독일의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으로 징집되어 출전했다가
영국군에게 포로로 잡혔습니다.
감옥에서 3년 동안 전쟁 포로로 지내면서 절망의 나락에 떨어졌던 그는
하나님을 통해 소망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소망은 그의 삶을 지탱해주는 원동력이 되었고,
그는 후일에 감옥에서 풀려나, 신학자 ‘몰트만’을 세상에 알리는
‘희망의 신학’이라는 유명한 저서를 남기게 됩니다.
몰트만은 그의 책 ‘희망의 신학’에서 기독교의 소망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으로 인해 절망하기 않게 하는 힘.
뿐만 아니라 종말을 향해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게 하는 태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성경에서도 천국 소망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마지막 날,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고, 온 세상이 회복되는 영광의 날이 올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후에 로마서 8장 24~25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쉬운말 성경입니다.
로마서 8장 24~25절(쉬운말성경)
24 이러한 소망 가운데서 우리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진실로 눈에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미 보이는 것을 소망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25 그러나 우리가 아직 보이지 않는 것을 소망한다면, 우리는 끝까지 참고 견디면서 그 소망을 기다려야 합니다.
바울은 눈에 보이는 소망은 가짜 소망이라고 말합니다.
이미 보이는 것을 누가 소망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미 돈과 명예, 권력과 성공 이 모든 것들은 참된 소망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세상이 우리에게 계속 보여주고 있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은 교만하여 스스로 넘어지고,
명예를 얻은 사람들은 부패하여 타락하고
권력을 얻은 사람들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결국 죽으면 끝이 난다는 사실을 잊고 살아갑니다.
그 성공에 모든 것을 투자했기 때문에, 그것이 전부이고, 진짜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이 세상에 보이는 것들은 우리의 참된 소망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거짓된 소망에 속아서
그것들을 부러워하고, 바라보고, 우리의 전부를 걸고 달려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사단의 유혹 세상 유혹에 속아 넘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참된 소망, 하늘에 우리의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은
거짓 소망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거짓 소망에는 ‘소망’이라는 단어도 사실 어울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공’이라고 포장된 이 세상의 달콤함은 유혹이지 소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참된 소망을 점점 상실해가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일수록 그리스도들 중 대다수가
천국보다 이 세상의 것들을 ‘소망’으로 바라보고 살아간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가 부유해지면, 그만큼 유혹도 강해지고,
그리스도인들이 그 달콤함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꼭 경제적으로 잘사는 것만이 하나님의 축복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필요하시면 우리를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십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됩니다.
우리가 그 뜻,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인정하고 기대할 때,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삶 가운데 임하게 됩니다.
그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참된 소망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은
그 영원의 관점에서 인생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들을 어려운 말로 ‘종말론적 소망’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소망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힘을 줍니다.
우리의 모든 작은 소망들을 규정하고, 수정하면서
그 작은 소망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할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오후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작은 소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그저 시간 낭비처럼 보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성공하기 위해 1분 1초가 아깝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에서의 성공을 위해 투자하는 것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이 시간이 더 의미 있고 값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소망은 이 땅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면 어떤 유익이 있을까요?
둘째, 정말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이 세상의 일시적인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고,
세상의 것들만을 추구하고 살아간다면,
우리의 소중한 인생은 결과적으로 헛된 것들에 낭비한 인생이 되고 말것입니다.
창세기 25장 27~34절을 보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야곱과 에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이번 주에 새벽예배 때마다 함께 살펴보았던 내용입니다.
두 쌍둥이 형제는 성격도 달랐고, 하는 일도 달랐습니다.
형 에서는 야성적이고, 사냥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동생 야곱은 차분한 성경으로 집안일을 주로 했습니다.
한번은 에서가 사냥으로 인해 허기진 채 들에서 돌아왔습니다.
동생이 끓이는 죽을 보게 되었고, 한 그릇만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뜬금없이 야곱은 장자의 권리를 팥죽 한 그릇에 팔라고 요청합니다.
그런데 더 어이없는 일은,
에서가 아무런 주저 없이 진짜로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버렸습니다.
창세기 기자는 이 사건을 통해 에서가 장자권을 가볍게 여겼다고 기록했습니다.
창세기 25장 34절입니다.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에서는 너무나도 어이없게 하찮은 음식 한 그릇에 장자권을 포기했습니다.
그것은 에서가 눈앞의 유익과 필요에만 집중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런 에서를 ‘속된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히브리서 13장 16절(표준새번역)
또 음행하는 자나, 음식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넘긴 에서와 같은 속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개정개역판에는 ‘망령된 자’라고 표현되어 있는데,
그 의미를 번역해보면, 세상에 속한 사람이란 뜻입니다.
결국 에서는 하늘 소망이 아니라 이 땅에 소망을 둔 사람이었기 때문에
순간의 만족을 위해 영원한 것을 버렸습니다.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인생을 바라보기 때문에,
정말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일에 투자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영원한 가치가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내 삶에서 절대 가볍게 볼 수 없고,
그 분을 위해 기꺼이 우리의 삶을 드릴 수 있게 됩니다.
예전에 어떤 코미디 프로그램의 한 코너 중에 ‘갑과 을’이라는 코너가 있었습니다.
언제든지 갑과 을의 관계가 바뀔 수 있다는 내용으로 된 콩트였는데요.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식당 주인이 에어컨이 고장나서 수리기사를 불렀습니다.
수리기사가 에어컨을 바로 수리하지 못하고 한참을 해매자
수리기사 그것도 바로바로 못고치냐면서 갑질을 합니다.
“수리기사가 몇 년을 에어컨만 고쳤는데, 딱 보면 몰라?”
그렇게 갑질을 당하고 식당을 나오는데,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났는지 수리기사가 다시 식당으로 들어갑니다.
식당 주인이 에어컨 하나 제대로 못 고치는 찌질이들이 왜 다시 기어들어왔냐며
구박을 주는데, 수리기사 태도가 갑자기 변합니다.
“어이 주인~ 메뉴판 가져와봐.”
주인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치며 메뉴판을 가져옵니다.
그 때 수리기사가 “우리가 배가 너무 고픈데 뭘 먹으면 좋을까?”
“그걸 왜 나한테 물으세요?”
“딱 보면 몰라? 장사를 10년을 넘게 했는데”
“손님을 딱 보면 뭘 먹고 싶은지 그거 하나 못 알아봐서 어떻게 장사를 해!”
여러분, 이 수리기사의 태도가 갑자기 왜 바뀌었을까요?
수리기사에서 손님으로 신분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을에서 갑으로 신분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식당 주인은 왜 수리기사에게 아무 말도 못했던 것일까요?
반대로 에어컨 고객에서 손님을 접대하는 식당 주인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이 땅의 관점을 가지고 바라볼 때는,
우리 인생의 주인이 나 자신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그저 나의 성공을 도와주는 종교, 여러 신 중의 하나,
내가 선택한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갑’이고, 하나님은 그저 나를 돕기위해
여러 종교 중에 내가 선택한 ‘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은
철저하게 우리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사는데, 그 하늘 나라의 주인이 하나님이십니다.
제일 높은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늘에서 잘 살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대장인 하나님께 잘보여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철저히 하나님 앞에 ‘을’이 되고, 하나님은 우리의 ‘갑’이 되십니다.
여러분, 만약에 내일 여러분 집에 대통령이 방문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물론 지금의 대통령은 우리가 너무 존경할 수 없는 분이지만,
그래도 대통령이 여러분 집을 방문한다고 하면
평생 가문 대대로 남을 역사적 순간이라고 생각하며 집을 청소하고,
사람을 부르고, 최고의 음식을 준비하면서 어쩔 줄을 몰라 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대통령은 지금 내가 사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대한민국 국민으로 있는 한, 나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분이라고 판단되기 때문에, 실수하면 안되고, 잘 보여서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야 합니다.
철저하게 대통령이 갑이고, 내가 을이 되어서 그분을 모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심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온 우주만물의 ‘갑’이 되시고, 나는 그 모든 만물 중에 아주 작은 피조물,
즉 ‘을 중에 을’, 가장 미천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더 작아지고, 더 겸손해집니다.
고린도전서 15장 9절에서 사도바울은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고 고백합니다.
에베소서 3장 8절에서는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
디모데전서 1장 15절에서는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합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세상에서 가장 많은 일을 했던 그리스도인들은
하늘나라에 대해 가장 많이 생각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도바울도 하늘 나라를 생각할 때마다, 조급했을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80년, 100년이, 하늘나라의 영원한 삶을 결정한다는데
지금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안 남았구나.
조금이라도 빨리, 더 많이 주의 복음을 위해 헌신해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며 더 열심히 살지 않겠어요?
우리에게 주어지는 영생, 영원한 삶이라는 것이 어떤 형태인지는 모르나
만약에 예를 들어, 이 땅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았느냐가
죽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영원한 삶의 질을 결정한다고 하면
머리가 제대로 박힌 사람이라고 하면, 누구나 다 이 땅에서의 남은 삶을
조금이나마 영원한 삶을 준비하는데 사용할 것입니다.
예수를 20살에 믿은 사람은 남들보다 20년이 더 부족하다고 생각할거에요.
100살 중에 20살을 까먹었으니깐 80살밖에 안 남았다고 아쉬워하면서
더 열심히 주를 위해 살 것입니다.
50살에 믿은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믿은 사람보다 주어진 시간이 50년 더 짧다고 느껴
하나님의 뜻을 위해 더 집중해서 정신없이 달려갈 것입니다.
이렇듯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은
절대로 이 세상에서 무기력한 삶을 살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나은 삶을 준비하기 위해,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가장 값지고 귀한 일들에 헌신하며 몸부림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천국을 바라보며 이 땅을 살아가게 되면
천국뿐 아니라 이 땅에서의 의미있는 삶을 덤으로 얻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이 땅에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
예수님을 믿는 순간 이미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 나라”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면 어떤 유익이 있을까요?
셋째, 경건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3장 2~3절
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요한일서 3장 2절을 보면, 우리의 상태를 정확히 짚어주고 있습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구원받은 우리가 지금 현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상태가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고, 심판의 날이 오게 되면
우리는 예수님과 같이 완전한 모습으로 변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보면, 그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다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우리가 예수님과 같아지고,
그 참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믿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란, 이미 구원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인’으로 불러 주시지만, 완전한 의인은 아닙니다.
우리는 아직도 여전히 죄를 짓는 연약한 죄인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참모습과 같은 완전한 ‘의인’으로 완성되어 갈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지막 날에 예수 그리스도의 참모습과 같이
완전한 의인이 된다는 사실을 믿고, 그 소망을 가진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깨끗하심과 같이 스스로를 깨끗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하늘에 소망을 둔다는 것은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몸은 땅에 살고 있지만, 하늘 백성의 정체성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저는 미국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민권을 예로 들려다보니, 자꾸 미국 얘기를 하게 됩니다.
시민권 하면 미국 시민권이 제일 좋다고 다들 생각하시기 때문에
미국 시민권을 예로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여러분이 만약에 미국을 정말 좋아합니다.
미국에서 살고 싶은 사람이에요.
저는 아니지만요.
아무리 얻으려고 애를 써도 쉽게 구할 수 없는거에요.
그런데 아주 우연한 기회로 미국 시민권을 얻게 되었어요.
그런데 여러분의 몸은 아직 한국에 있습니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여러분은 곧 미국에 가게 될 거에요.
그러면 여러분은 지금, 가장 먼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아마 제일먼저 영어공부를 시작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미국의 어디에 살면 좋을지 도시들도 알아볼 것이고,
미국 사람들의 생활 패턴이라든지, 문화, 정치, 사회 등
머릿속이 온통 미국에 관한 생각들로 차있을 것입니다.
언어는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담고 있지요.
그래서 그 나라를 제대로 알려면, 먼저 영화나 드라마를 봐야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좋아하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모범형사, 주말드라마,
아침드라마를 다 끊고, 이제부터 미드를 보기 시작합니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영어 제스처가 나오는거에요.
“오 마이 갓!” “와~우!” “아이 가릿” “굳~” “땡큐”
아주 짧은 단어부터 시작하면서, 어느새 미국 사람이 되어갑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손가락질 하면서 물어볼겁니다.
“야, 너 왜 그래? 왜 이렇게 오버하고 그래?”
“너 미국사람 아니야. 여기 한국이야”
그러면 여러분은 뭐라고 대답하시겠어요?
“아니야, 나 미국사람이야, 나 미국 시민권 있는 사람이야”
“나는 이제 곧 미국으로 떠날거야. 미국에서 살 사람이라고”
이렇게 대답할까요? 아니죠. 이렇게 대답하겠죠.
“노~우, 아이엠 어~메뤼칸!” 블라블라~
그 뒤에 문장은 잘 모르겠어요.
여러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늘에 시민권이 있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갈까요?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과 문화, 언어와 생각을 가지고 살아갈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무엇입니까?
영어로는 "The Kingdom of God"
“하나님의 왕국, 하나님의 다스림, 하나님의 통치”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그대로 실현되는 나라입니다.
그 말인 즉, 내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내 삶에 그대로 적용되어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삶을 통치하시면, 나의 언어와 생각과 행동을 내 뜻대로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뜻대로 그대로 실행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런 나라의 시민권을 얻은 백성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 삶을 지향하고, 바라보고, 기대하고, 닮아가려고 애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예수 그리스도의 깨끗하심 같이
우리 스스로를 깨끗하게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군산삼학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리고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들로서 하늘의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면
이 땅에서 어떤 유익이 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곧 사라질 눈에 보이는 거짓 소망이 아니라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절대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소망,
참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곧 썩어 없어질 것에 투자하지 않고,
정확하고 바른 방향성을 가지고 옳은 일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가치있는 일을 통해
우리 스스로 그 나라의 백성답게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거룩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 거룩한 삶, 참되고 가치있기 때문에 집중해서 이루어야 될
하나님의 뜻이 구체적으로 무엇이 있을까요?
하나님의 뜻은 딱 한가지, 아니면 3가지, 10가지 이렇게 정리해서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 삶에서 정말 많은 부분에 걸쳐 주님께서 세밀하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말씀을 정리하면서 예수님께서 하셨던 말씀으로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결론을 맺고 싶습니다.
누가복음 16장 9절, 예수님께서 하셨던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16장 9절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우리가 이 말을 그대로 해석하면 불의하게 돈 버는 사람도
그 돈으로 친구들을 많이 사귀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불의의 재물’은 세상의 물질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친구’는 나를 이롭게 하는 친구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 때로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가난한 자에게 한 것이
곧 예수님께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을 세상의 물질로 돕게 되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돕게 된 것이고, 그것이 곧 구원의 열매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얻는 것이고, 천국이 내 마음에 임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가장 모범적인 인물이 삭개오입니다.
그는 여리고 지방의 세리장으로 많은 돈을 모았습니다.
그의 돈은 어쩌면 주님의 말씀대로 “불의의 재물”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는 주님을 영접하고 그 회개의 표시로
그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불의하게 빼앗을 재물을 4배로 갚겠다고 했습니다.
이 고백을 들으신 주님께서 그가 구원받았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삭개오는 불의한 재물로 예수님을 친구로 사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님을 친구로 사귀기 위해서는 반드시 회개해야 합니다.
특별히 물질의 회개를 해야합니다.
이 물질의 회개는 입술의 회개보다 더 어렵습니다.
마태복음 19장에서 어떤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따르려고 하자
주님은 재산을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고 따르라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어려웠는지, 결국 그 부자 청년은 예수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하여
주님의 제자가 되는 길을 포기했습니다.
이것은 물질의 회개가 우리에게 얼마나 어려운가를 잘 보여줍니다.
성경은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늘 나라에 시민권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래서 우리의 소망을 하늘에 두고 살아갑니까?
그렇다면 우리의 삶, 우리의 물질을 하늘나라를 위해 투자하며 살고 있습니까?
요즘 우리가 정치를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민생 안정,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한다고 하지만,
국가예산의 가장 많은 돈을 어디에 쓰고 있습니까?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국민들은 지도자의 말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습니다.
한 나라의 지도자도 돈을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서
백성들이 그 사람의 마음을 판단하는데,
우리 스스로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어떻습니까?
나는 정말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가지고, 그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고 있는가?
불의의 재물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친구로 사귀고 있습니까?
진지하게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 우리가 “하늘 소망”이라는 찬양을 고백하며,
들은 말씀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기 원합니다.
이 곡이 사실 조금 어려운 곡인데, 나온지는 20년이 훨씬 넘어서
찬양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어르신들도 많이 아시더라구요.
아마 우리 군산삼학교회는 수준이 아주 높기 때문에
금방 따라 부르실 것이라고 믿고, 같이 찬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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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단기도
1. 곧 없어질 눈에 보이는 거짓 소망에 유혹되지 않고, 참된 소망을 인내함으로 끝까지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을 주시도록
2.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물질을 통하여 가난하고 연약한 자들, 예수 그리스도를 친구로 사귀는 일에 집중하여 투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3. 천국 백성의 정체성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삶에서 이루어지도록
3가지 기도제목으로 기도하시고, 제가 축도로 예배 마치겠습니다.
사랑하는 주님의 이름 한번 부르고, 다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세상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성공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영원한 소망, 예수 그리스도에게 우리의 모든 삶을 걸고 달려가기 원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바라보는 시선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참되고 가치있는, 영원한 삶의 시선으로 우리의 전부를 바라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으로 열려있는 우리의 모든 관심을 하나님께로 돌리고
영적인 눈과 귀가 열려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닌, 하늘에 속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세상의 권력, 지도자들을 갑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진정한 주인 되신 하나님은 최고의 분으로 모시고 살 수 있는
믿음의 담대함을 주시옵소서.
그래서 우리 삶에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의 마음과 생각, 말과 언어가 예수님을 닮아 거룩한 삶으로 변화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축도
이제는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끝까지 참고 기다리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과
우리 안에 지금도 함께 계시는 성령 하나님의 내주하심이
하늘에 시민권을 소유한 백성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정체성을 가지고 우리에게 주어진 세상의 물질과 시간과,
나의 삶 전부를 드려 예수 그리스드를 친구로 사귀며, 그분을 닮아가길 원하는
여기 모인 군산삼학교회 모든 성도님들 머리머리 위에
지금으로부터 영원까지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