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시 말하노니 누구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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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만에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찬송가 445장 (통일 502장)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고린도후서 11장 16~33절까지 말씀입니다.
16절 한절만 함께 읽고, 한 절씩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6 내가 다시 말하노니 누구든지 나를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 만일 그러하더라도 내가 조금 자랑할 수 있도록 어리석은 자로 받으라
오늘도 말씀을 사모하여 새벽에 성전에 나아온 성도님들의 삶과 가정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함께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어제는 사도바울이 거짓 사도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거짓 사도들의 위선을 폭로했습니다.
자신이 진정한 참 사도임을 입증한 바울은
이제 오늘 본문에서 그가 사도의 직분을 감당하면서 겪어야 했던
극심한 고난과 수고를 설명합니다.
이것은 바울이 사도권의 정통성을 입증하는 세 번째 증거이자 자랑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렇게 자신을 자랑하는 것은
단순히 자신의 공로를 나타내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사도됨이 거짓 사도들에 비해, 모든 면에서 월등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입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거짓 사도들의 허탄한 자랑에 현혹되어 진실을 바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말에 현혹되어 바울과 복음을 무시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는수 없이 성도들에게 온전한 가르침을 위해서
‘자랑’이라는 어리석은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바울이 자신의 공로를 자랑함으로써
거짓 사도들의 외적 조간만을 보고 현혹된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돌이켜 회개하기를 기대했습니다.
16 내가 다시 말하노니 누구든지 나를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 만일 그러하더라도 내가 조금 자랑할 수 있도록 어리석은 자로 받으라
17 내가 말하는 것은 주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어리석은 자와 같이 기탄 없이 자랑하노라
18 여러 사람이 육신을 따라 자랑하니 나도 자랑하겠노라
19 너희는 지혜로운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기쁘게 용납하는구나
20 누가 너희를 종으로 삼거나 잡아먹거나 빼앗거나 스스로 높이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21 나는 우리가 약한 것 같이 욕되게 말하노라 그러나 누가 무슨 일에 담대하면 어리석은 말이나마 나도 담대하리라
바울이 이렇게 자신의 헌신과 수고를 자랑한 이유는,
그만큼 자신이 복음과 교회를 위해서 목숨을 바쳤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사도가 아니라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가 아니라면
굳이 이렇게까지 생명을 바쳐서까지 헌신할 수 있겠느냐는 반증입니다.
바울은 주의 사역에 대한 수고와 고난은 어느 누구도 자신을 따라올 수 없을 것이라며
유치하리 만큼 자랑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덕이 되지 않다는 것을 앎에도
거짓 사도들에게 현혹된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위해서 자신의 신념 마저도 내려놓습니다.
바울은 이미 고린도후서 6장에서 설명했듯이
인간의 한계를 초월할 만큼 극심한 것들을 견뎌 냈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극심한 고난을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이 받은 사명 곧 복음 증거를 위해 자신의 전 삶을 예수 그리스도께 바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을 비난하고 모함했던 거짓 사도들은
굳기 바울이 당했던 것과 같은 고난을 겪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목표는 복음 전파가 아니었습니다.
고린도교회의 실권을 장악해서 자신들의 욕망을 달성하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차이점이 바울의 사도권을 증명해주는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거짓 사도들의 위선을 폭로시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고난이 닥치기 전에는 과연 누가 진정한 사도인지 분간하기가 어렵습니다.
또한 진실된 성도와 명목상의 신자를 가려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가 참된 그리스도인이요, 참된 사역자라면
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려는 태도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이 땅에서 겪는 고난이야말로
하나님 나라에 속한 우리의 신분을 입증해 줄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신앙 인격을 좀더 성숙하게 단련시켜서,
주님의 뜻을 위해 더욱 헌신할 수 있는 제자로 만들어 줍니다.
22 그들이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냐 나도 그러하며
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28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29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더 중요한 사실은 바울이 자랑했던 점입니다.
바울이 자신의 화려한 육체적 조건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약함을 자랑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약함을 자랑함으로,
오히려 모든 사역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되었다는 것을 반증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일의 초점이 하나님께 집중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진정한 겸손은 자신을 낮추는 모습 뿐만 아니라,
우리의 낮춤을 통해서 하나님이 더 높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30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31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내가 거짓말 아니하는 것을 아시느니라
32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고관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켰으나
33 나는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
육체를 따라 하는 자랑은 어리석고 무익하며 제한적입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서는 우리의 약함도 자랑이 됩니다.
주님 안에서 하는 자랑이야 말로 참으로 지혜롭고 유익하며 영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육체를 따라 하는 자랑에 미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육체를 따라 많은 자랑을 늘어놓는 세상 사람들을 부러워 하거나, 위축될 필요가 없습니다.
사도바울처럼 육체의 약함, 그래서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고난에 감사하며
그것을 자랑할 수 있는 은혜가 우리 가운데 넘처나길 소망합니다.
오늘도 예수님 때문에 더 낮아져서 겸손하게 이웃을 섬기고,
많은 영혼을 살리기 위해 수고와 헌신을 아끼지 않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의 연약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이 더욱 크게 드러날 수 있도록
우리에게 닥친 고난과 어려움이 나의 자랑이 될 수 있도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