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세상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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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초막절에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예루살렘에 올라가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자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선언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당돌하고 당당한 자기소개에 혀를 두릅니다.
‌사실 유대문헌에 따르면 ‘세상의 빛’이라는 단어는 많이 사용됩니다: 이스라엘, 예루살렘, 12족장, 메시야, 하나님께, 심지어 유명한 랍비/율법에도 사용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증언에 대해 소위 객관성 문제를 제기합니다(13). 논쟁의 핵심은 ‘예수님의 증언이 과연 참된가?’ 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세 가지가 차이점들 들어 반박하십니다.
‌1) 지식의 기준 - 나와 너희가 다르다 : 예수님은 아는데, 바리새인들은 모른다. 내가 어디서오며 어디로 가는지 아느냐? (14절). 너희는 나도 모르고 아버지도 모른다 (19절).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지만 피조물에 불과하지만, 예수님과 아버지는 창조주이십니다. 피조물이 뛰어나도 그 지식은 피조물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2) 판단의 기준이 다르다 : 예수님은 육체를 따라 판단하지 않지만, 바리새인들은 육체로 판단한다 (15절). 육체는 눈에 보이는 것을 말합니다. 요9장에서 제자들은 날때부터 맹인된 사람이 누구의 죄때문인지 예수님께 묻습니다. 자기의 죄입니까? 부모의 죄입니까? 이것이 교육을 많이 받은 바리새인들의 사고입니다. 예수님은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함으로써 세상을 심판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9:39). 심지어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9:41)
‌3) 증인의 기준이 다르다. 즉, 증언의 무게감이 다르다 : 예수님은 혼자가 아니고, 예수님이 자신을 보내신 아버지와 함께 증언하시므로 그 증언은 참되십니다 (16~18절). 예수님이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자신의 뜻을 행하러 온 것이 아니고 자신을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러 왔다고 일관되게 말씀하십니다(요6:38,39). 그러므로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들은 다 예수님께 오게 됩니다(요6:45). 목적은 생명의 빛을 얻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초막절은 이스라엘이 광야 40년 생활을 기념하며 약속의 땅으로 가는 과정을 기념하며, 집 앞에 초막을 지어서 일주일간 지내며 먹고 즐기는 축제이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도시를 밝히는 횃불인데, 이 광경이 아주 장엄하다고 합니다. 설교하신 곳이 헌금함 옆인데, 이곳은 소위 ‘여인의 뜰’에 속합니다. 여기서 초막절 점화식이 열리고, 일주일 내내 밤마다 춤을 췄다고 합니다. 바로 이곳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증언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도시를 밝히는 횃불인 것과 같이 온 세상에 자신의 빛을 비추십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의 빛으로 세우셨습니다(사42:6,7 읽기)
‌교육선교가 자칫 ‘교육’이라는 ‘전문성’에 발이 묶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궁극적인 진리의 기준(요17:17)인 것을 증거하는 거룩한 통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겸손과 확신이 우리의 섬김의 자세가 되기를 기도. 육체를 따라 판단하지 않는 것이 겸손이고, 예수님이 세상의 빛이고 절대적인 진리라는 것을 포기하지 하지 않는 것이 확신입니다.
‌우리 교육선교팀의 섬김이 ‘세상의 빛’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선한 통로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세상에서 비틀거리는 영혼들에게 희망의 통로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지식의 기준 예수, 판단의 기준 예수, 그리고 생명의 빛 예수를 누리도록 교육선교팀이 쓰임받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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