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생명의 강으로 던져라

요한일서 강해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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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상황은 어떠한가?

우리는 요한일서를 살펴보며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가에 대해서 3달간 설교를 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이 요한일서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시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는지 오늘 한번 다시 되짚어보길 바랍니다.
오늘은 요한일서 연속 강해 설교 마지막입니다.
오늘 마지막 5장 13-21절 본문은 요한일서가 왜 쓰여졌는지에 대해서 한번 더 강조하면서 요한일서의 핵심 포인트들을 다시 짚어가고 있습니다.

성경은 무엇을 말하는가?

1. 배경 “요한일서의 기록 목적”

(1) 영생의 확신을 주기 위해서
요한은 편지를 받고 있는 자들에게 영생의 확신을 주기 위해서 요한일서를 쓰고 있다.
요한일서의 배경을 살펴보면 영생의 확신을 가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단이나 율법주의자들이 복음을 왜곡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복음을 왜곡한다.
그들은 잘못된 믿음을 전한다. (PPT)
먼저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몸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2.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뭔가 다른 것을 해야한다고 한다. 예를 들면 일정 율법을 더 지켜야한다던가 하는 행위이다.
복음을 왜곡하는 전형적인 방식이 있습니다. 신앙 고백을 빼버리거나, 추가하거나 하는겁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자 인간이시다라는 고백에서 인간으로 오신 것을 뺀거죠.
또 예수님이 구원에 대하여 모든 것을 이루셨는데 그걸로 부족하니 우리가 무언가를 더 해야한다고 하는겁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복음을 왜곡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신데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다(성육신). 또한 그러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것이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다.
요한일서는 복음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려주고, 복음을 믿게 함으로써 영생의 확신, 구원의 확신을 알리기 위한 책이다.

2. “사망에 이르는 죄”와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의 의미

(1) “사망에 이르는 죄”(PPT)
찰스 피니라는 유명한 북미 부흥사가 있었다. 제2차 대각성 운동이라고 불리는 북미의 대대적인 부흥을 이끌었던 목사님이다. 이분이 어느날 한 지역에 가서 부흥 집회를 인도하던 중 거한이 다가와 자신과 얘기하자고 요청한다.
찰스피니의 주변 동료들은 위험할 수 있으니 가지 말라고 할 정도로 인상도 험악한 자였다.
그러나 찰스 피니는 그의 집으로 찾아가 그의 얘기를 듣게 된다.
그자는 정말 어떠한 죄도 구원받을 수 있느냐고 묻는다. 찰스 피니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은 총으로 다섯명의 사람을 쏴 죽였다고 말했다. 이런 자신도 구원받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찰스 피니는 구원받을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뒤에 있던 커튼을 열고 자신의 아내를 보여주며 자신이 아내와 결혼할 때 반강제적으로 아내를 데리고 와 결혼했다는 사실을 말하며 자신이 구원받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니까 이 남자는 자신의 가정의 상황도 좋지 않고 서로 사랑하지 않는 가족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찰스 피니는 그러한 죄를 대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알겠다고 대답한다.
그 다음날 찰스 피니는 아무래도 그 집에 다시 가봐야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다시 그 집을 방문한다.
그런데 그 집은 완전히 난장판이 되어 있었고, 그 남자는 눈이 충혈되어 한 숨도 못잔체 있었다.
그 가족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믿게 된다. 그 가족들은 서로가 서로를 용서하며, 서로가 자신의 가장 사랑하는 가족임을 고백하고 있었다.
우리가 용서받지 못할 죄가 있는가?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본문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죄가 아닌, 복음을 완전히 거부하는 죄이다.
이들은 복음이 자신에게 다가와도 복음을 거부한다.
(2)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즉 결과론적으로 보았을 때,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할 정도의 기도를 말하는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에 있다. 하나님의 권한 안에서 그들의 구원을 위해서 노력하고 기도하는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지 않으실 영혼들에 대해서 구원해달라고 하나님을 협박하는 기도가 불가능하다.
고로 믿음이 없는 자들, 믿음을 거부하는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합당하다. 그러나 구원의 결과에 대해서는 우리가 확신하고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아신다.
(3) 소결론 : 공동체 안의 모든 자들이 영생을 누리도록 기도하라
결국 요한이 말하는 바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을 구하라는 것이다. 그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은 “죄를 짓고 있는 영혼들을 위한 기도”이다.
우리는 우리 공동체 안의 믿음이 연약하고, 아직 영생의 확신이 없는 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점이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다면 그 죄인들에게 생명을 허락하신다.
(4) 적용 : 공동체의 죄를 놓고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가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 기도할 때 어떤 기도를 해야할까?
그 기도제목들 중 하나가 바로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요한이 말하는 바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계속해서 우리 공동체 안에 구원받는 자들이 늘어나기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또한 그 구원받는 공동체가 점점 더 확장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PPT)
한 가지 유념할 사실은 공동체가 확장되어간다는 것은 단순히 청년부의 출석 인원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공동체가 확장되어간다는 의미는 크게 두 가지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다.
먼저 구원을 받은 영혼의 수가 늘어나는 점이다. 단순히 인원이 느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고 고백하는 자가 늘어나야 한다는 점이다. 진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의 수가 늘어나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우리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오늘 말씀이 말하고 있듯이 이것은 하나님의 영역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해서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라면 하나님은 그 구하는 바를 주시기 때문이다.
두번째로 공동체가 확장되어가는 것의 의미는 믿음의 성장을 의미한다. 한 영혼이 믿음이 생기는 것 이상으로 믿음의 성장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숫자가 늘어나지 않아서 확장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 믿음이 잘 성장한 한 명의 영혼은 하나님께서 그 분량에 맞게 그를 통해서 일하신다. ‘일당백’이라는 말이 있듯이 믿음의 성장을 잘 이룬 영혼은 ‘일당백’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 가지 구체적인 교회의 영혼들을 위한 기도 제목을 가지게 된다. “구원을 받는 영혼의 수가 늘어나도록”, 또한 “믿음을 가진 자들의 성장이 일어나도록” 기도할 수 있다.

3. “앎”과 “영생”의 관계 (18-20절)

(1) “아노라”, “아는 것”의 반복
요한은 18-20절 사이에서만 “앎”에 대해서 네 번을 반복하고 있다.
요한이 계속해서 “앎”을 강조하는 이유는 당연히 거짓 선지자들을 겨냥한 것이다.
거짓 선지자들은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들만이 깨달은 것이 진리라고 생각하고 그 특별한 영적인 지식을 알아야 영생에 이른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잘못된 것이었다. 왜냐하면 진정한 앎은 특별한 영적인 지식이 아니었다.
영생을 주는 “앎”에 대해서 요한은 네 가지를 말한다.
먼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가 범죄치 않는 것이다.
또한 요한일서 편지의 대상인 믿음 공동체인 교회가 하나님께 속하고 교회에 속하지 않은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했다는 것이다.
세번째로 예수님이 참된 지식(지각)을 주셔서 참된 자(하나님)를 알게 하신 것이며
네번째로 교회가 예수님 안에 있다는 것과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라는 사실이다.
이 내용들은 요한일서의 요약과 같다.
우리는 요한일서의 주요 내용들을 다음과같이 알고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자로서 이제는 죄에 속하지 않고 선한 행함을 할 수 있는 자들이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 범죄치 않는 것은 단순히 죄를 짓는다는 것이 아니라, 그 방향성이 선한 방향성으로 가게 되는 존재가 되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죄를 짓더라도 점점 죄를 짓지 않는 방향성으로 나아가는 것이지 죄를 더 많이 짓는 방향성으로 간다는 것이 아니다.
또한 요한일서는 우리에게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고, 영생이라는 점을 계속해서 강조한다. 그리고 그것을 믿는 것이 바로 참된 지각이다. 특별하게 지적인 지식을 통해 그들만이 깨닫는 어떤 신비한 지식이 참된 지식이 아니다. 참된 지식이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며, 유일한 영생의 길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이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고, 영생을 얻을 수가 없다. 이것이 요한일서의 전체의 주요 내용들이다.
(2) 적용 : 하나님께 속한 자로서의 삶
하나님께 속한 자들은 한번 속했다면, 즉 진짜 믿음이 그 마음 가운데 존재한다면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을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러나 그것이 속박이 아니라 진정한 자유를 주는 것이 바로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다.
하나님께 속한 자들은 이제 영생의 소망을 예수님 안에서 찾는다. 그래서 모든 충족과 만족을 예수님께 구한다.
예수님으로부터 영생의 소망을 찾지 않는 자들은 계속해서 세상에 속한 자들과같이 사는 것이다.
세상에 속한 자들이 찾는 소망은 너무나도 뻔하다. 돈, 명예, 성취감, 이성 등
이것들이 가지는 중요한 특징은 무엇인가? 바로 그들의 욕심으로 세운 우상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요한은 21절에서 말하고 있다.(PPT)
요한1서 5:21 NKRV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
우상은 인간의 욕심의 마음이 세운다. 그 자체로는 우상이 아니지만 인간의 욕심이 우상으로 만들어버린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영생을 누리는 자들은 이러한 우상의 속박에서부터 풀려난다.
왜 풀려날 수 있는가? 우상으로부터 공급받으려했던 소망들이 헛되고 허망하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사는 것이 우리의 영원한 힘이다.
영생은 무엇인가? 단순히 영원히 사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영원히 살아가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받는 것까지 의미한다.
그러므로 영생은 지금,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힘이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힘을 영생 즉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공급받지 않으면 우리는 결국 말라간다.
우상에 대한 두 가지 비유를 좋아하는데 한 가지는 바닷물 비유이다.
바닷가에서 표류한다고 상상해보자. 배가 난파되어 뗏목 위에서 계속해서 표류하고 있다. 햇빛은 뜨겁고 점점 갈증이 생긴다. 그 갈증을 못참고 바닷물을 조금 마셔본다.
그러면 갈증이 해소되는가? 물을 마시긴 마시나 계속해서 갈증이 더 심해질 뿐이다.
우상은 바닷물이다. 그때 잠시는 갈증이 해소될 것만 같지만, 결코 해소되지 않고 오히려 더욱 더 해결되지 않는 갈증에 목이 마를 뿐이다.
완벽한 갈증의 해소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영생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수를 마시는 것 뿐이다.

그리스도는 무엇을 하셨는가?

영생의 확신
우리는 영생의 확신을 가져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생의 길에 먼저 들어가셨다.
우리를 알게 하셨다. 그리고 알아가게 하셨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자신을 항상 알려주신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 안에 거하려고 한다면, 알아가려고 한다면 그 분은 여지없이 충분하고 넘치게 예수님에 대해서 알아가게 하신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우리를 영생의 풍성함으로 인도하시기 위한 방식이다.
말씀의 풍성한 생명수 가운데로 들어가면 예수님은 이미 우리에게 풍성한 예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을 알리신다.
그것으로 우리는 갈증의 우상이 아닌 해갈의 생수를 마시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강으로 우리의 전인격을 던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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