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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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자

성경본문: 누가 복음 19장 1-10절

날짜: 04/30/06

여러분 혹시 이산가족 찾기 방송 기억하십니까?

잃어버린 부모와 형제를 찾는 방송이었지요. 분단된 현실 속에, 전쟁 속에서 잃어버린 혈육을 찾아주는 방송프로그램이었습니다. 1983년 6월30일부터 같은 해 11월 14일까지 약 석 달간 진행되었었지요. KBS는 당초 6.25특집방송으로 몇 시간만 방송하고 끝내려 던 것이 예상외로 밀려드는 문의와 신청으로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석 달 동안 쉬지 않고 생방송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방송은 세계의 관심을 집중시켰으며, 대한민국을 울음의 바다로 만들었었습니다.

6.25 전쟁으로 헤어진 남매가 목포와 제주에서 서로를 확인하고, 오빠! 오빠! 하고 부르던 여동생이 결국 혼절하던 장면을 기억하십니까?                                      모녀와 부자가 만나 끝없이 아버지, 어머니를 부르면서 회환의 눈물을 흘리던 애절한 상봉모습에 시청자들은 눈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당시 대한민국 국민은 거의가 다 눈이 퉁퉁부어서 다녔지요. 밤새 울어서요.

통계에 의하면 아직도 70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애절한 마음으로 잃어버린 혈육을 찾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는 것이다” 고 결론짓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잃어버린 자를 찾기 위해서라는 말씀이지요.

그렇다면 이 잃어버린 자란 누구를 의미하는 것일까요?

종종 사람들은 교회는 이 잃어버린 자를 찾아야 한다고들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의 중요한 사명 중에 하나는 바로 잃어버린 자를 찾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잃어버린 자, 잃어버린 양, 또는 영혼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종종 어떤 오류를 범한다는 사실입니다. 분명 잃어버린 자를 찾아야 한다고 말은 하는 데, 그 내용은 성경적이 아니란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잃어버린 자를 오해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류가 있다는 말씀이지요.

그래서 오늘 우리는 이 잃어버린 자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

첫째는 잃어버린 자는 누구인가? 성경은 이 잃어버린 자에 대해서 어떻게 증거하고 있는가? 를 살펴볼 것입니다.

둘째는 잃어버린 자가 가야 할 길은 무엇인가? 궁극적으로 잃어버린 자는 어떠한 구원의 길을 가게 되는 것인가?

마지막으로는 잃어버린 자의 미래는 어떠한 가를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1.     잃어버린 자는 누구인가?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잃어버린 자, 잃어버린 영혼은 누구를 의미합니까?

전쟁과 분단으로 인하여 헤어진 부모, 형제를 말합니까?

신앙생활 잘 하다가 이런 저런 이유로 교회에 안 나오는 소위 말하는 상처받은 사람을 뜻합니까?

우리교회 잘 나오다 다른 교회로 가버린 사람이 잃어버린 자입니까? 그래서 우리는 그 잃어버린 사람을 찾아와야 합니까?

오늘 본문은 잃어버린 자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잃어버린 자’란 누구를 가리키고 있습니까?

물론 당연히 삭개오지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인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잃어버린 자, 즉 삭개오를 찾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구원하십니다.

그러면 잃어버린 자가 삭개오라면, 그렇다면 삭개오가 어떤 사람인가를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잃어버린 자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a.     삭개오는 누구인가?

삭개오라는 이름의 의미는, 정결한 라는 의미지요. 당시 삭개오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과는 참 대조적인 의미를 가진 이름이지요. 당시의 사람들을 삭개오를 의와 정결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 삭개오는 여리고의 세리장이며 부자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Tax collector 로서 세무행정에 종사하고, 세금을 징수하는 관리라는 말씀이지요.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세리는, 주로 세금을 징수하는 집금인() 의미합니다. 그들은 로마제국의 세금징수를 위한 청부인의 수족이 되어 하는 사람입니. 그런데 세리들은, 로마 정부에서 거두어 들이는 금액 이상으로, 가능한 지방에서 돈을 징수하여, 여분의 돈을 자기의 것으로 착복하는 일이 많았습니. 따라서, 그들중 대부분은 민중으로부터 배척을 ( 9:10-13), 또한 비난을 받았습니(21:31). 이런 이유에서, 세리는 유대인 사회에 용납되지 못하, 그의 친구 되는 사람조차 배척의 대상이 되었습니. 신약성경은 세리는 [죄인]( 9:10-,11:19, 2:15-, 5:30,7:34,15:1), [창기]( 21:31), 또는 [이방인]( 18:17, 5:46 6:32 비교)과 함께 멸시와 천대의 대상이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에서 말하는 잃어버린 자란 일차적으로 주님을 아직 영접하지 못한 자들을 가리킵니다. 구원받지 못한 자들, 아직 복음을 받지 못하고, 세상으로부터 멸시, 천대를 받는 배척의 대상을 의미합니다. 창기와 이방인, 그리고 세리등과 같은 당시의 concept 으로 “죄인들”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바로 그런 자들을 위하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흔히 잃어버린 양, 잃어버린 영혼 그래요.

b. 잃어버린 양의 비유

잃어버린 양도 마찬가지예요.

누가 복음 15장을 보십시다.

1절에서 7절까지의 말씀은 너무나도 우리가 잘아는 잃어버린 양의 비유지요.

신약성경 121 page 를 보십시다.

주님께서는 이 잃어버린 양의 비유를 누구에게 말씀하시고 있습니까?

1절 말씀을 보십시다.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가까이 나아오니”

이 말씀은 세리와 죄인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 대상이 세리와 죄인이란 말씀입니다. 잃어버린 양이란 바로 세리와 죄인을 의미한다는 말씀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 이 땅에서 복음을 접하지 못한 소외된 사람들을 의미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우리 주위에는 아직도 세상 속에서 방황하는 많은 영혼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잃어버린 자요, 그들을 오늘 주님께서는 찾으십니다.

 

그러면 두번 째로, 잃어버린 자란 구원받지 못한 자를 의미한다면, 예수님께서 그들을 지금도 찾으신다면, 그 잃어버린 자가 가야 할 길은 무엇이겠습니까?

근원적으로 주님께서는 이런 저런 모양으로 그들을 부르십니다. 여러 경로를 통하여 주님을 만나게 하십니다. 그런데 그 부르심을 통하여 잃어버린 자는 주님께 나아가는 결단을 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회심입니다. 마음을 돌이켜, 주에게서 멀어졌던 모든 것에서 돌아서서 주님께 나아가는 것, 그것이 회심입니다. 이제껏 소중하게 여기던 모든 세상적 가치를 넘어서 진정으로 이 세상속에서 가치있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돌아서는 것, 그것이 회심입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구원의 서정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잃어버린 자가 가야할 길은 회심의 길입니다.

2.     잃어버린 자가 가야 할 길: 회심

그러면 어떻게 회심의 길을 갈 수 있을까요?

a.    회심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함에서 시작된다: 세리장이-부자: 죄인 (1-2절)

사람이 회심할 수 있다는 사실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소망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회심은 하나님과 만나려는 간절한 필요요 절실한 마음입니다.

오늘 삭개오는 자신이 죄인임을 알았습니다. 세리장이며 부자였던 그는 세상적으로는 부족한 것이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풍족한 생활 속에 아무런 부족함이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께 나아옵니다. 근원적으로는 주님께서 부르셨기에 나아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죄인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나아옵니다.

죄인임을 인정한다는 것은 소망이 살아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회심의 길을 갈 수 있을까? 두 번째는,

b.      회심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보려는 필사적인 태도를 수반하여야 합니다.

                                                 i. 예수님 보기를 갈망한다. (3절)

그럼 이 잃어버린 자 삭개오는 어떻게 구원을 받습니까?

3절-4절을 보십시다.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집안에 앉아서 주님 오시옵소서. 나를 일으켜 세우소서. 나를 구원시키소서. 나는 목마른 영혼입니다. 그렇게 합니까?

아니죠. 주님께 나아옵니다. 그리고 주님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자리 잡습니다. 주위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체면과 자존심을 다 버리고 오직 주님을 보려는 열심으로 나아갑니다. 그래서 뽕나무 위로 기어올라갑니다. 작은 키, 즉 자신의 열등감을 극복하고 주님께 나아갑니다.

이때 주님께서 부르십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주님의 부르심이 임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영접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주님의 요구는 한 가지입니다. 영접하라. 영접하라입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을 영접한 후에 구원을 이루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대하여 삭개오는 어떻게 반응합니까? 기쁜 마음으로 주님을 영접하고, 그 부르심에 순종합니다. 6절 보십시오.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그리고 그는 회개합니다.

오늘 이 어거스타 지역에는 수 천명의 잃어버린 자들이 갈 길을 헤메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뽕나무아래로 인도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이 주님을 영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위치로 안내하여야 하진 않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오늘도 잃어버린 자를 찾으십니다. 잃어버린 자는 회개하는 자요, 주님을 영접하는 자요, 주님으로부터 구원받는 자입니다.

진정한 교회의 사명은 그래서 진정으로 잃어버린 자를 찾는 것입니다. 주님을 영접하여야 할 우리 믿음의 형제들을 찾는 것입니다.

 

따라서 잃어버린 자, 또는 잃어버린 양을 찾는다는 의미는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하는 자가 구원의 반열에 들어오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 12절, 13절을 보십시다. 신약성경 30p. (마 18:12-13)

[ 18:12- 18:13] (12)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일백 마리가 있는데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13)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 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기뻐하리라

 

여기서 우리는 간과하지 말아야 할 두 가지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첫째는, 18장의 잃어버린 양에 대한 본문 역시 15절이하 죄에 대한 회개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왜 잃어버린 양의 본문이 회개와 이어질까요?

그것은 잃어버린 자, 잃어버린 양은 앞에서도 말씀 드렸다시피 죄인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마 18:15-마 18:18]

(15)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16)만일 듣지 않거든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17)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잃어버린 양은 죄인을 의미하는 것이고, 잃어버린 양을 찾는 다는 것은 회개하는 가 구원에 이른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말씀입니. 여기서도 역시 죄인은 이방인과 세리로 표현되고 습니. 회개없이, 주님께 돌아오지 않는 자는 그냥 죄인으로 사는 수 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17) 회개없는 이방인과 세리는 구원의 반열에서 떨어져 나감을 뜻합니다.

두 번째 포인트는 18장 13절은 “만일 찾으면” 이란 조건문으로 찾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c. 회심이란 예수님의 초대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5절 말씀을 보십시다.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우러러보시고,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와 수치, 그리고 우리의 필요를 아십니다. 그것을 채워주시고자 바라보십니다. 그리고 부르십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삭개오는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니” 부르심에 대하여 응답할 때, 즉 주님을 영접함으로 믿음으로 구원의 반열에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c.      회심은 삶의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음을 뜻한다. (7절-8절)

삭개오는 죄인이었습니다. 7절에서 “뭇 사람이 수군거려” 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삭개오가 이방세력인 로마를 위해 일하는 자신들의 배반자요, 자신들의 재물을 착복하는 죄인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자신이 죄인임을 공공연하게 인정합니다. 그리고 회개합니다. 그리고 그 회개의 열매가 행위로 이어집니다.

“(8)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회개는 삭개오의 삶을 전체적으로 변화시킵니다. 죄의 길로부터 의의 길로 완전히 돌아섭니다. 착복에서 구제로의 길로 돌아섭니다. 진실된 회개였기에 이와 같은 결과들이 이어집니다. 그의 삶에 있어서 가치관이 바뀌었음을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그래서 삶을 바꿉니다.

 

마지막으로 잃어버린 자의 미래는 어떠한 가를 살펴봅시다.

[계 3:19-계 3:22]

(19)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20)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21)이기는 (overcome-극복)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22)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3.                    잃어버린 자의 미래 (계 3:19-22)

a.      회심한자: 문을 연다----구원으로 이끌어진다.

b.      회심치 않는 자: 문을 열지 않는다----구원의 반열에서 멀어져 간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문밖에 서서 두드리고 계십니다. 문을 열고 주님을 영접하십시다.

회개는 예수님을 구원자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9-10절)

예수님은 잃은 자를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형제, 자매 여러분

주님께서는 이 땅에 잃어버린 자를 찾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이 세상으로부터 소외되고 복음의 빛 아래에 있지 못하고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을 건져내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이 땅의 잃어버린 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그것은 바로 회개입니다. 회개가 선행될 때,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됩니다. 그래서 회개란 믿음을 필요로 합니다. 믿음은 바로 아버지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넓은 가슴에 그대로 안기는 것입니다. 나는 비록 자격이 없지만 아버지께서 아들로 여기시니 아들입니다. 아버지가 사랑하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아버지 안에서 자기를 발견하는 것이 믿음이요 회개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자신의 주장을 포기하고, 자신의 노력과 수고 접어두고, 그저 아버지의 마음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인정하는 가치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가치를 새로 발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새롭게 아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주님께 두 손 들고 주님께로 나아갑시다. 그리고 잃어버린 양을 찾아서, 진정으로 이 땅에서 복음의 말씀이 필요한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을 찾아 나섭시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잃어버린 자를 찾으십니다. 잃어버린 자는 회개하는 자요, 주님을 영접하는 자요, 주님으로부터 구원받는 자입니다.

 

기도합시다.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는 이 땅에 잃어버린 자를 찾기 위해 오셨습니다.

분주한 세상속에서 빛되신 주님의 복음을 깨닫지 못하고

아직도 어두움속에 있는 우리 형제, 자매들! 저희들 바라보게 하시고,

그들을 구원의 반열로 이끄는 저희들 되기를 원합니다.

사랑의 주님!

잃어버린 자는 찾음으로 그들을 회개의 길로 인도하고, 주님을 영접하는 영광을 얻게 하시고, 주님으로 구원받는 축복이 함께 하기를 소원합니다.

생명이신 주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그래서 교회는 그런 잃어버린 자들을 위한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사교모임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냥 오후에 잠깐 들러서 밥이나 먹고 가는 곳이 아니란 말입니다. 잃어버린 자들을 위하여 그들에게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곳이고 주님을 예배하는 곳이란 말입니다.

 

 

2절 말씀은 15: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합니다. 왜요? 자신들이 생각할 때, 자신들과 같은 의인들과 식사도 같이하고 교제도하고 해야 하는 데, 엉뚱한 사람들, 즉 죄인들과 식사도 하고 교제하니까 원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사람들이 수근거려요. 왜요? 주님께서 죄인의 친구이니까요. 7절을 보십시다.

 

 

우리가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마태복음 18:12-13: 잃은 양을 찾지 못할 가능성은 언제든 있다는 것도 우리는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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