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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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요즘 어디를 가든, 50억을 받아도 무죄가 된 판결에 대해서 분통을 쏟아내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어제는 가람이네를 갔습니다. 오일을 갈면서 대뜸하는 말이 50억을 받아도 무죄가 되는 나라라고 분통을 터트리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먹을려면 화끈하게 50억정도 먹어야 무죄가 되지 애매하게 800원을 먹으면 죄가 된다는 말을 듣습니다. 무엇이 정의인지 헷갈리는 세대입니다. 무엇이 의로운 것이고 무엇이 불의한 것일까요? 오늘 성경을 통해서 무엇이 불의한 것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사람은 불의합니다.

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1 Corinthians 6:7 NKRV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기독교인은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기꺼이 손해를 감수해야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법과는 정반대의 길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이미 복음서에서 명령했던 내용입니다.
마태복음서에서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Matthew 5:39–42 NKRV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손해 보는 삶을 예수님은 그리스도인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당시 로마시대에는 소송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어느정도 사회적인 위치가 있어야 했습니다. 결코 노예신분은 소송을 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당시의 로마 법정에서는 언제나 부자들이 승소했었습니다. 네로의 스승이기도 했던 스토아 학파의 세네카 역시 로마 사회의 불합리한 법정 체계에 대해서 지적한 바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당시 로마 법정의 판사들을 “불의한 자들"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1 Corinthians 6:1 NKRV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언제나 부자는 좋은 변호사를 사용해서 승소합니다. 오늘날과 마찬가지이지요. 50억을 받고도 무죄가 되는 세상은 예전 로마시대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본문 1절에서 송사를 일으키는 사람은 언제나 법원으로 갈 수 있고, 좋은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에는 부자와 노예와 가난한 사람들이 함께 있었습니다. 가난한 사람과 노예는 본인이 부당한 일을 당해도 소송을 걸수 없었습니다. 오직 사회적 지휘가 있는 사람만이 소송을 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당하는 불이익과 손해를 회복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나쁜일인가요? 바울은 이 질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차라리 손해 보는 것이 덕이 됩니다. 만일 손해보지 않으려고 한다면, 그것이 “불의한 일"이고 “속이는 행위"입니다. 자신이 당한 불의한 일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행위를 한다면, 그것이 “불의한 일", “속이는 행위"가 됩니다. 즉, 나의 이익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행위, 즉 나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 하는 모든 법적인 행위는 그리스도인 답지 않는 행위입니다.
저희 모교에도 이슬람 선교를 가르치는 교수가 한 명 있습니다. 이 양반은 툭하면 소송을 걸어서 여러사람들을 어렵게 만듭니다. 자신이 돈이 있고, 아는 변호사가 있다고 해서 소송을 남발하는 행위는 옳지 못합니다. 바울의 말씀에 따르면 그것은 “불의한 일"입니다. 그리스도인 답지 못한 행동입니다.
기독교인은 고난중에 구원을 받습니다. 기독교인은 불이익을 받는 중에 구원을 받습니다. 기독교인은 불의를 당하는 중에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선조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40년동안 광야에서 고난을 받고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예수님은 죄도 없이 구타 당하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은 햇빛도 들지 않는 카타콤에서 고생을 하다 구원받았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일본 감옥에서 갖은 고문을 받고 순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불의를 당하고, 불이익을 당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앞으로 올 영광, 즉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 당하는 고난과 비교도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나에게 불이익을 주는 사람에 대해서 눈감아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2.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도덕적으로 살지 않는 사람이 불의한 사람입니다.

9절~10절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1 Corinthians 6:9–10 NKRV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을 받지 못하는 불의한 자에 대해서 10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십계명도 10가지이지요. 바울은 분명 구약의 내용과 연결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불의를 당해도 되는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불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9절과 10절은 1절에서 언급하는 송사의 내용을 말합니다. 바울 사도가 언급하는 10가지 악은 두 가지로 분류 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성적인 범죄이고, 또 하나는 재산상의 범죄입니다. 지금 고린도교인 중 로마 법정에 소송을 거는 사람은 이러한 성적인 범죄와 재산상의 범죄에 관하여 소송을 건 사람입니다. 그러한 죄는 교회뿐만 아니라 로마에서도 심각한 범죄입니다. 그러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 그리고 그러한 범죄의 피해자인 사람이 사회적인 지위도 있고 돈도 있는데 마땅한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법정에 호소하는 것이 무엇이 나쁜 일인가요? 그런데, 바울은 그러한 범죄를 당해도 세상 법정에서 판결을 받는 것은 불의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 입니다.
첫째, 그러한 범죄를 저지른 이들은 이미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그러한 범죄를 판결할 수 있는 권한이 이미 교회에 있기 때문입니다.
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1 Corinthians 6:5 NKRV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교회는 판단할 수 있는 지혜와 권한이 있습니다. 그리고 판결을 내릴 수 있습니다. 교회는 형제가 형제에게 범죄하면, 정죄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치리라 합니다. 가장 심한 처벌은 출교입니다. 교회는 중한 범죄에 대해서 출교할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출교란 결코 천국을 가지 못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 법정은 죄에 대해서 처벌하거나 손해배상을 하면 끝나지만, 교회는 영원히 죄로 죽게 할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준 권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위에 교회를 지으시고,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닫으면, 천국에서도 문이 닫힙니다. 교회에서 열면, 천국에서도 문이 열립니다. 세상 권한보다 더 큰 권한이 교회에 있습니다. 그럼으로 불의를 당했을 때 교회가 판결할 수 있습니다. 세상 법정은 불의하지만, 참된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판단합니다.
그 하나님의 기준이 십계명이고, 바울이 9절과 10절에서 열거한 10가지 죄악입니다.
우리는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은 마음의 내적 상태입니다. 어떤 사람의 마음의 내적 상태는 어느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만 아십니다. 하지만, 적어도 어떤 사람이 믿음의 여부를 추론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도덕적으로 사는 삶의 행위가 바로 그 사람이 믿음이 있음을 보여 줍니다. 믿음이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도덕적인 삶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도덕적인 삶을 사는 것이 100퍼센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믿음을 입으로 시인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도덕적으로 살아갑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믿음이 있고 입으로 그 믿음을 시인하는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지 않는다면 그는 거짓말하는 자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
우리는 이전에는 이 10가지의 죄악을 저지르며 살아왔던 자들입니다. 그런데, 세례로 말미암아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1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1 Corinthians 6:11 NKRV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11절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을 받았다는 말은 세례를 받았음을 말합니다. 세례는 더러운 죄를 정결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모두 세례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죄로 부터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그말은 다른 말로 거룩함을 입었다는 말이고,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언제 세례를 받습니까? 바로 마음으로 믿고 그 믿음을 입으로 시인할 때 세례를 받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옛 지은 죄들을 깨끗이 씻습니다. 그리고 거룩하게 됩니다. 그리고 의롭다 하심을 받습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을 때 의롭게 되지 않습니다. 그냥 의롭다고 여겨 주십니다. 하나님이 의롭다고 여겨 주셨으니 우리는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행위로 증명해야 합니다.
믿음이 있으십니까? 그러면, 행위로 보이십시오.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결론

오늘 본문에서 불의에 대해서 여러번 언급합니다. 첫 번째, 불의는 재판장에서 부자들과 유력한 사람들에게만 유리한 판결을 하는 판사들이 불의합니다. 50억을 받고도 무죄를 내리는 사람과 같겠죠. 또한 불의한 사람은 누구 입니까? 도덕적으로 올 바르게 살지 않는 사람이 불의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불의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자신의 이익을 지키고자 세상 법으로 할 수 있는 무슨일이든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서 이러한 불의로 부터 깨끗하게 되었고,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의롭다 하심을 얻었습니다.
불의를 버리고,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을 선택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는 믿음있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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