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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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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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4:5–14 NKRV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오늘 살펴본 말씀은 우리가 많이 듣고, 보고, 기억하는 이야기입니다. 사마리아 수가에서 살고 있는 한 여인과 예수님이 만난 이야기입니다.
제가 청년교구에 있을 때, 청년교구 한 오이코스 이름이 불타는 수가성 여인이었습니다.
아주 강력한 이름인데요. 이 오이코스 이름을 처음 알게 됐을 때에 어떤 의미인지 묻지 않아도 왜 이름을 이렇게 했을지 예상이 되더라구요.
저 뿐만 아니라, 아마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출석했던 많은 청년들이 이 이름을 보고 그렇게 느꼈을 것입니다.
그만큼 이 이야기가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 중 우리에게는 제법 익숙한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제가 유치부 아이들에게도 이 이야기를 많이 전했는데요.
오늘은 이 유명한 이야기를 토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유대 땅에서 갈릴리로 가기 위해 사마리아를 통과하시기로 합니다.
그리고 유대 땅에서 위로 올라가 사마리아 수가라는 동네에 이르러서 좀 쉬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때가 여섯시라고 말했는데요. 오늘날로 바꾸면 낮 12시인 정오를 가리킵니다. 가장 더울 때죠.
예수님께서는 조금 쉬기 위해,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기 위해 야곱의 우물에서 쉬십니다.
그 때 사마리아의 한 여자가 물을 길으러 나옵니다.
성경을 읽는 우리는 그냥 여자가 물을 길으러 왔구나 생각하겠지만, 당시 일반적으로 많은 여성들은 아침과 저녁에 물을 길으러 나왔습니다.
해가 강하지 않은 선선한 때에 함께 나와서 물을 길러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죠.
그런데 이 여인은 다른 여인들이 나오지 않는, 아무도 우물 곁으로 나오지 않을 가장 더운 정오에 물을 길으러 나온 것입니다.
이 여인이 다른 여인들과는 함께 있을 수 없던 것이에요.
즉, 부도덕한 여인이었던 것입니다.
아무도 이 여인과 대화하지 않으려 합니다. 부정한 여인이라고 사람들이 상종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때 예수님께서 이 여자에게 말씀하십니다.
물을 좀 달라.
그러니까 이 여인이 깜짝 놀라며, 당신이 유대인이면서 사마리아인인 나에게 왜 말을 거십니까? 얘기합니다. 사실 그 뿐만 아니죠. 사람들도 피해 나올 정도로 유대인 뿐만 아니라 사마리아인들도 상종하지 않는 자인데, 예수님이 이 여인에게 물을 달라하시니 여인이 놀란 겁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 여인에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4:10 NKRV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사실 오늘 이 말씀이 오늘 설교에서 큰 포인트입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네게 물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도리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고,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알면, 구한다는 것입니다.
여자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았나요? 아니요. 알지 못하고, 예수님께 도리어 반문합니다.
요한복음 4:11–12 NKRV
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이 여자가 예수님께 이 우물은 깊고, 당신은 물 길을 그릇도 없으면서 어떻게 그 생수를 얻을 수 있습니까?
이 우물은 야곱이 판 우물입니다. 당신이 야곱보다 더 대단한 사람입니까?
묻는 것이죠.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이미 알고 있는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이 여인을 보며,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면 이런 말 못하지~ 라며 반응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전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친히 자신이 주는 생수가 어떤 것인지 말씀해주십니다.
요한복음 4:13–14 NKRV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예수님이 주시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될 것이다.
여러분은 혹시 이 이야기를 보시면서 어떤 것을 느끼시나요?
저는 이 말씀을 볼 때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진정한 생명이신 것을 더욱 발견합니다. 깨닫게 됩니다.
생명은 사람에게 있어서 정말 중요한 이슈입니다.
하나님은 처음 사람을 만드시면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그 코에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 넣으셔서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죽지 않고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 땅을 다스리기 위해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래로, 인간은 죄에 대한 값으로 죽음을 맞게 되었습니다.
죽음이 찾아온 이래로 사람들은 죽지 않기 위해서 열심을 냅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면서 그들에게 바뀐 것이 단순히 영원히 살지 못하게 된 것만 있나요?
그들이 원래는 영원히 살 수 있는데, 아 이제 기한이 정해졌구나 정도만 바뀐 것인가요?
아담이 930세까지 살았다고 하는데, 아 그정도면 많이 살다가 죽었구나 생각하면 되는 것인가요?
아니죠. 그들이 선악과를 먹은 그 즉시 눈이 밝아져 자신이 벌거벗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수치를 느끼게 됐습니다. 그리고 황급히 몸을 가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로부터 숨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며, 하나님의 사랑의 풍성한 임재 속에 거할 때, 그들은 전혀 자기 자신으로부터 수치심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생명이 끊어지자,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그러지자, 그들은 먼저 자기 자신과의 관계가 어그러졌고, 곧바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 그리고 이 세상과의 관계가 어그러졌습니다.
사람이 영원히 살지 못하고 이제 죽게 됐다는 것 뿐만 아니라, 사람 존재 자체에 대한 큰 훼손이 일어난 것입니다.
영적인 죽음을 맛보게 된 것입니다.
그 다음부터는 어떤가요?
하나님이 없어진, 구멍이 뻥 뚤린 곳을 어떻게든 채워보려고 안간힘 씁니다.
인간이 창조되길 하나님과 함께하며 영원히 사랑하는 존재로 창조되었는데, 이 인간의 존재 목적에서 가장 큰 부분이 펑하고 빠져버리니 인간은 당연히 공허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기에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발버둥칩니다.
하나님을 대체하는 가지각색의 것들을 가지고 옵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그 공허함을 채워보려고 애씁니다.
사람들이 저지르는 수많은 죄들. 왜 죄를 지을까요?
안 좋은거 알면서 왜 저지를까요?
죄는 우리에게 약속을 합니다. 네가 이 일을 하면 그 공허함이 채워질 거야. 아주 행복할꺼야! 기쁠꺼야!
그렇기에 우리는 나의 공허함을 채워줄, 나를 시원케해 줄 것을 기대하며 죄를 짓습니다.
그런데 여기 있는 우리 모두가 압니다.
어떤 종류의 죄이든지, 죄가 잠시 잠깐 우리에게 쾌락을 선사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 오히려 그 뒤에는 죄책감이라는 것이 우리를 짓눌러 오히려 더더욱 큰 공허함을 선사합니다.
가인과 아벨, 아담과 하와의 두 아들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향한 분노를 품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먼저 오셔서 죄를 다스릴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가인은 그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동생을 쳐죽여야만 자기 마음이 살 것 같은지, 동생을 결국 죽입니다.
그 결과로 그는 사람들을 피해다니며 땅을 유리하는 자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그들 스스로 얼마나 큰 환멸을 느꼈을까요?
그들이 선악과를 먹을 당시에는 이 일들을 예상했을까요? 선악과를 먹을 때는 이 것을 먹으면 지금보다 더 좋을 것이라고 꿈꾸며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정말이지 참혹했습니다.
사람은 뻥 뚫려버린 하나님과의 관계를 채워줄 무언가를 계속해서 찾습니다. 나를 시원케 해줄, 나를 살아있다고 느끼게 해줄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찾습니다.
하나님을 대체할 수많은 우상들을 섬깁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들을 채울 수 있을까요? 그들에게 진정한 생명을 줍니까?
이것이 문제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벌어지는 모든 근본적인 문제는 사람이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을 대체하기 위한 다른 것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나는 하나님이 싫어서 하나님 말고 어떻게 해서든지 다른 것을 세워봐야겠다고 막 다짐을 하면서 우상을 섬기나요?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겠으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겠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들 나름대로 자신이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찾는 것입니다.
그 우상이 나의 부족함을 매워줄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며,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하나님을 알기 전에는 절대로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전시 백성으로 세우고자 하셨던, 그래서 놀라운 하나님의 행사를 경험했었던 이스라엘조차도 똑같은 악을 행했습니다.
예레미야 2:13 NKRV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이들이 왜 그랬을까요?
그들이 하나님이 생수의 근원이시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격체이신 하나님과의 교제가 없으니 그 살아있는 진리가 그들 가운데 함께 하지 않고, 그저 이론만 머리에 가득차서 하나님을 위해 몇가지 종교적인 의식은 할 지 모르지만,
하나님을 전혀 자신들의 생수로, 생명으로 여기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이죠.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부흥책 앞부분에서 꽤 많은 분량을 할애해서 전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이삭이 그랄 땅에서 물을 얻기 위해, 블레셋 사람들이 매워놓았던 아브라함의 우물을 판 이야기를 토대로 말씀을 전합니다.
그는 이것을 통해서 부흥이 오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살펴봅니다.
이삭이 흉년이 들어서 그랄 땅으로 이주하는데,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너에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고 말씀하시며,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너에게 이루어 주리라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이삭이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고 하나님 말씀대로 그랄 땅에 거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믿은 이삭에게 큰 복을 주시어 그의 농사가 백 배나 소출을 얻게 하십니다. 양과 소가 심히 많게 하십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유업을 얻게 된 것이죠.
그런데 그 땅에 살고 있던 블레셋 사람들이 이를 시기하여서 아브라함 때에 팠던 그 우물을 흙으로 가득 매워버립니다.
그리고 그 땅의 왕이었던 아비멜렉은 이삭에게 이곳을 떠나라고 하죠.
그래서 이삭이 그랄 골짜기로 이주해서 옛적 자신이 아버지가 팠던 우물로 갑니다. 그리고 블레셋 사람들이 메워버린 우물을 다시 파서, 생수를 얻어 냅니다. 생수가 있어야 본인도 마시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신의 가족과 종들, 가축들도 다 살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깨끗한 물을 공수하는 것을 가장 우선순위로 삼은 것입니다.
그는 그의 책에서 이삭이 물을 얻기 위해 블레셋 사람들이 매워버린 자신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우물을 다시 팠던 것처럼, 우리도 생수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의 생명을 맛보기 위해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막고 있는 영적 쓰레기들을 제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영적인 쓰레기가 제거 되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을 맛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맛보지 못하면, 목이 말라서, 물을 공급해줄 다른 웅덩이를 팝니다. 그 웅덩이가 잠시 물을 내서 우리를 잠시 잠깐 시원케 할지는 모르겠으나, 그 웅덩이는 터진 웅덩이라, 물을 가두지 못하여 이내 생명이 고갈됩니다.
그렇게 여러가지 웅덩이를 파는 것입니다.
가장 지혜로운 길은 무엇일까요? 이삭이 했던 것처럼 마르지 않는 샘물로 가서, 그 위에 매워진 흙과 쓰레기를 없애고, 그 샘물을 통해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생수의 근원이 다른 어떤 것이 아닌 바로 하나님 자신인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막은 영적 쓰레기들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이 영적 쓰레기들을 죽은 전통주의, 불신앙 등으로 말하는데요.
책을 읽어보면 표현만 다를 뿐, 이 쓰레기가 거짓신앙체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복음 책에서도 우리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 다루고 나서 가장 먼저 거짓신앙체계를 다루는 것입니다.
이 쓰레기가 걷어져야 진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이 무엇이고 사랑한다는 것이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야 하나님의 진정한 생명을 맛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쓰레기가 걷어지는 것이 단순히 지식의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삶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속적으로 점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몇번 뗀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가 현재,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는 가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주일 설교를 통해서 십자가의 복음을 다시 보고 있지 않습니까?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할 사항이기 때문입니다.
오이코스 예)
또 십자가의 복음 한다.
그런데 그렇게 살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함. 그리고 주님의 은혜를 구함.
그런데 결국 거짓신앙체계를 버리지 못하면, 진정한 생명을 맛볼 수 없다.
그러면 다른 우물을 판다.
오늘 우리가 주님의 생명을 맛보고 누리지 못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다른 우물을 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지속적으로 다른 우물을 파는 우리에게 주님께서 오셔서 진정한 생명이 여기에 있다고 끊임없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이야기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 이 여인은 자신의 목마름을 채워줄 것으로 남자를 택했습니다. 뒤에 나오는 이야기이지만, 이 여인은 여러 남자를 거쳤고, 지금 함께 살고 있는 자도 남편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이 여인을 향해서 손가락질합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 여인의 삶이 어떨까요? 이 여인은 진정한 기쁨을 누려 본적이 있을까요?
진정한 생명을 맛본 적이 있을까요?
그저 아무도 물 길으러 나오지 않을 정오의 태양 아래서, 그래도 살기 위해 우물까지 걸어 온 것입니다.
그 여인에게 예수님께서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여인에게 생수를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4:13–14 NKRV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하나님을 버리고, 자신의 원대로 다른 구덩이를 파고 있었던 여인에게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예수님이 생명이신 것을 전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똑같지 않습니까?
나의 예)
고멜과 같은 나를 발견. -> 그런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주님의 자비를 알게 되고 엎드림.
생수의 강물 가운데 거함.
저 또한 매번 나와 하나님 사이를 매우고 있는 영적 쓰레기들은 없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주님을 향한 감격이 사라지고, 형식화되기 시작할 때가 있다.
그 때 보는 성경적 진리들은 무시간적 진리가 된다. 나와는 관계 없는
그럴 때, 저와 하나님 사이를 근본적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좋은 도구가 십자가의 복음
영적 쓰레기들을 하나씩 거두어 나갈 때, 주님의 임재가 회복되고 그 속에서 진정한 생명을 누리게 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주님이 인격적 진리가 되시는 것을 선명히 발견합니다.
그분이 나를 정말로 만드신 분이시며, 나를 가장 잘 아는 분이시며, 나의 필요가 무엇인지 가장 잘아시며, 나의 결핍을 가장 완벽하게 채워주실 분이시며, 나를 이 온 우주에서 가장 사랑하시는 분이라는 것
진정한 생명을 누리는 순간입니다.
우리는 이 진정한 생명 속에서 주님이 우리의 모든 것임을, 주님이 우리의 유일하고도 온전한 만족이심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는 하나님께서 단순히 내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시는 분이 아니라, 사실 이 온 땅을 만드신 창조주이시며, 내 모든 삶을 받기 합당하신 내 삶의 주인, 온 땅의 주권자. 모든 영광을 받으셔야 하는 분이신 것을 주님과의 교제 속에서,
주님의 압도적인 임재, 그 넘치는 생명의 강물을 통해서 깨닫게 됩니다.
요한계시록에는 모든 찬양을 받기 합당하신 주님께 셀 수 없는 큰 무리들이 어떤 찬양을 올려드리고 있는지 잘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들이 주님의 큰 구원과 그 임재 속에서 어떠한 생명을 누리는지 잘 보여줍니다.
요한계시록 7:9–17 NKRV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요한복음에서 영생, 생명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영원한 생명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이 단어는 우리가 영원히 살 것을 포함합니다.
그런데 더 분명한 의미에서 이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이 땅에서부터 누리는 하나님 나라의 생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알게 될 때, 그 진정한 생명을 주님께 구하고, 주께서 부어주시는 생수를 통해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이 우리가 정말로 살아있음을! 진정한 생명을 이 땅에서부터 누리게 됩니다.
요한복음 4:14 NKRV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진정한 생명을 발견한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이 가지고 왔던 물동이를 버려두고, 자신의 수치를 거두고 사람들 앞에서 서서 자신이 본 메시아를 사람들에게 전합니다.
요한복음 4:28–29 NKRV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통해서 이 땅에서부터 진정한 생명을 맛보고 누리고 전하는 모든 분들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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