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한 부활의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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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다 (마 26:1–5; 막 14:1–2; 눅 22:1–2)

45 마리아에게 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이 그를 믿었으나

46 그 중에 어떤 자는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알리니라

서론
기독교와 다른 종교의 큰 차이 : 부활
기독교와 여타 종교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부활 신앙”이다.
부활은 그 어떤 종교의 교리나 사상과는 구분되는 특수성과 우월함을 가지고 있다.
부활이 가지는 특수성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육체적 부활”에 있다.
그 어떠한 사상과 종교도 인간이 육체의 죽음을 극복해낼 방법을 주지 못했다. 실제로 어떠한 인간들도 육체의 죽음을 극복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분 예수 그리스도만이 역사적으로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육체적 죽음을 완벽하게 극복하신다.
또한 그 분은 자신의 부활을 끝으로 남겨두지 않으시고 자신을 믿는 모든 자들을 부활에 참여하게 하신다.
본론
부활과 소생의 차이
오늘 본문은 죽은 나사로가 살아난 유명한 본문이다.
우리가 한 가지 유의해야 할 부분이 있다. 그것은 이것이다.
고린도전서 15:20 에서는 예수님이 죽은 자들의 첫 열매라고 말하고 있다.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그런데 예수님이 부활하시기 전에 다시 살아난 나사로,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야이로의 딸도 예수님은 다시 살리시는데 이들은 어떤 자들인가?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아니라는 것인가?
그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기 이전에 다시 살아남을 경험한 자들은 부활이 아닌 “소생”을 겪은 것이다.
부활과 소생의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 부활을 경험한 자들은 그 이후 육체를 가지고 영원히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소생을 경험한 자들은 잠시 살아났을 뿐 다시 육체적 죽음을 경험하게 된다.
나사로나 야이로의 딸과 같이 예수님이 다시 살리신 자들은 지금은 육체가 죽은 상태인 것이다.
그러므로 부활과 소생은 그 이후 영원히 죽느냐, 또 다시 육체적 죽음을 경험하느냐에 큰 차이가 있다.
또한 아직까지 온전한 부활을 경험한 자는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온전하게 이루어진다.
2. 나사로가 경험한 소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나사로가 경험한 소생은 부활을 아주 희미하게 맛보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부활은 아니나, 부활의 경험을 조금이나마 맛보게 하는 것이다.
나사로는 그것을 직접 경험했으며, 그것을 주위에서 본 자들은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낌으로써 미래에 있을 부활을 조금이나마 맛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나사로의 소생은 곧 그당시 곧 있을 예정이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표하는 역할을 한다.
예표란 어떠한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나타내시기 원하시는 것을 언뜻 보이시는 것이다.
나사로의 소생은 부활은 아니었으나 예수님의 온전한 부활을 언뜻 나타낸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나사로를 살리기 전에 어제 본문을 통해서 자신이 “부활이요 생명이니”라고 말씀하신다.
먼저 부활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보여주신 것이다.
본문 39절을 보면 나사로는 시체의 부패가 일어날 정도로 정말 죽은 상태였다.
요한복음 11:39 NKRV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믿음을 통해 살아남을 말씀하신다.

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예수님이 믿음을 통해 다시 살아남을 보여주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신다.
예수님은 실제로 그러신 분이다.
3. 적용 : 우리에게 부활은?
예수님은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소생을 보여주시고 계신다.
그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경험하지는 않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생은 부활을 예표하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까지 성경을 통해 전해들었으며, 그것이 우리에게 실제로 영향을 미치는 사실이며 진리인 것을 믿고 있다.
우리는 정말 부활을 믿으며 사는 자들인가?
육체의 부활을 온전히 믿는다면 우리의 육신의 욕심대로 살아가는 것들은 없는가?
나사로가 육체가 다시 살아나고나서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요한은 명확하게 기록하고있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상식적으로 상상해볼 수 있다. 만약에 예수님이 나사로에게 다시 동굴로 들어가라고 명한다면 나사로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절대로 들어가지 않으려 할 것이다. 이미 시체 썩은내가 나고, 어두컴컴한 굴 속으로 다시 들어가라니..
그러나 우리는 놀랍게도 삶을 살아가면서 시체 썩은내가 나는 동굴로 다시 돌아가려는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우리는 이제 온전한 부활 이후에는 정말 아무 쓸모 없는 육체적 만족을 부활보다 더 크게 여길 때가 많다는 것이다.
부활 이후에 과연 우리가 이 땅에서 추구하는 육체적인 소망들이 쓸모가 있을까?
재정적 안정이, 육체적 즐거움이, 삶의 안정이 과연 부활 이후에 소망이 있는가?
그러나 우리는 그 부활의 소망보다 육체적 소망을 더 크게 두고 중요하게 여길 때가 많다.
이러한 모습이 바로 시체 썩은내 나는 동굴로 들어가려는 죄인들의 습성이다.
새소망을 경험하고 믿게 된 자들은 결코 옛 소망을 추구하는 습성으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부활이 얼마나 그들에게 큰 의미인지 알고 믿기 때문이다.
부활은 완전히 우리의 삶을 회복시켜 이 땅에서의 모든 것들이 부활 앞에서 작아지는지 알게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부활이 무엇인지 말씀하여주시는 하나님은 더이상 시체 썩은내나는 육체의 동굴 소망이 아닌, 빛나고 생생한 부활의 천국 소망으로 우리를 안내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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