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하나님 사랑하는것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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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본문의 질문을 동일하게 여러분들께 드리는 것으로 모임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J4U 예배팀 여러분, 여러분은 이 사람들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십니까?”
교회에 다녔던 분이라면 한 번은 들어봤을 법한 아주 기초적인 질문이지만, 신앙의 연차가 많아지면 많아 질수록, 해가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대답하기 어렵고 까다로운 질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을 본격적으로 말하기 앞서 그 전에 있던 일을 간략하게 살펴 보면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다시 자신의 생업 전선으로 뛰어 들게 되죠. 죽은 줄로만 알던 예수님이 갈릴리 호수에 왔고, 베드로는 예수님이라는 소식에 배에서 내려 허겁지겁 달려와 주님 앞에 앉아 있는 장면입니다. 이런 상황속에서 베드로도 예수님으로 부터 동일한 질문을 받고 있습니다. 요21:15 함께 읽겠습니다.
요한복음 21:15 (DKV)
그들이 아침 식사를 끝마치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예, 주여, 제가 주를 사랑하는 것을 주께서 아십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어린양 떼를 먹여라.”

요한의 아들 시몬아.

성경을 한 글자 한 글 자 살펴 보면 예수님의 섬세함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를 사랑하느냐?’ 이전에 이때 베드로를 부르는 명칭이 무엇인가요? 바로 요한의 아들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이렇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라고 부른 경우는 딱 두 번 입니다. 오늘 본문과 요1:42 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요한복음 1:42 (DKV)
그리고 그는 시몬을 예수께 데려왔습니다. 예수께서 시몬을 보고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구나. 이제 너는 게바라고 불릴 것이다.” (‘게바’는 ‘베드로’라는 뜻입니다.)
이 장면은 동생 빌립이 예수님을 처음 만나고, 그 형인 베드로를 예수님께 데려 가는 장면입니다. 즉, 예수님과 베드로가 처음 만나는 장면이라는 것입니다. 그 처음 만날 때, 예수님은 베드로를 가리켜 ‘요한의 아들 시몬’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곤 배신하여 낙심하고 있는 베드로게 다시 ‘요한의 아들 시몬'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처음 불렀던 명칭을 지금 이 순간에 다시 부르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낙심하고, 좌절하고 있는 베드로에게 다시금 첫 만남을 상기시키고, 그때 하나님을 따르겠다던 그 순수함을 초심을 회복하게 하려고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처음 어떤 마음을 가지고 예배팀에 지원하셨나요? 여러분 가운데 혹시 초심을 잃어 버린 분이 있지는 않습니까? 편해서든 바빠서든 이유가 어찌 되었든, 하나님과의 첫 만남을 그저 추억으로, 하나의 기억으로 담고 있지는 않냐는 겁니다. 만약 여러분이 초심을 잃었다면, 여러분 왜 여러분이 이 자리에 있고, 왜 섬기려고 했는지 다시 한 번더 기억하는 시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사람들 보다.

그 다음 바로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어보시지 않습니다. 그 전에 또 나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 보다' 입니다. 여기서 이 사람들 보다 약간의 중의적인 의미를 가져 올수 있어 이해하는데 혼선을 줄 수 있습니다. 크게 두 가지만 살펴 보면
네가 이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네가 이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보다
첫 번째, 만약 예수님의 질문의 의도가 첫 번째 의도였다면 베드로는 지난 날 어느 누구보다 열정 있게 뜨겁게, 주님을 사랑했던 모습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의 질문의 의도가 두 번째 의도였다면 베드로는 자신이 사랑했었던 사람들을 등지고 예수님을 믿었던 모습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떤 의도로 베드로에게 질문했을까요? 전자일까요? 후자일까요? 아니 그전에 베드로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베드로는 무슨 일만 있으면 경쟁을 하면서 까지 얻으려고 했던 사람인요? 많은 사람을 사랑하여 관계를 맺는 것을 소중히 여기던 사람이었나요?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베드로의 모습은 유난을 떨면서라도 무언가 있으면 얻으려고 했던 모습 아닌가요? 그렇다고 한다면 예수님의 질문의 의도는 무엇이겠습니까? 분명 첫 번째 였을 테고, 예수님이라고 한다면 유난을 떨면서까지도 하나님을 믿으려고 했던 그 열정을 상기 시켜주기 위함이 었을 것입니다.
가진 것을 모두 버리고 주님을 따르며, 주님의 최측근에서 무모하리만큼 열심히 복음을 전하던 베드로의 그 열정 말입니다. 물론 미숙했지만 그 열정만큼은 분명 순수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좌절하고, 정죄감에 빠져 있는 베드로에게 지난 날에 순수했던 열정을 상기켜주시며, 무너진 베드로의 마음을 일으켜 세워 주고 계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여러분 안에 열정을 잃어 버린 분이 있으세요? 여러분이 섬기시면서 다른 것 바라지 않고, 오직 주님의 이름 하나로 충분하여 나의 모든 것 드려도 아깝지 않을 때 없으셨나요? 그런데 이제 그 열정은 온데 간데 없고, 오직 형식만 남고, 책임감만 남아서 그 자리를 지키고 계시지는 않으세요? 혹시 그러신 분들이 있다면 이 시간 다시 한 번 더 열정이 샘솟길 축복합니다.

사랑하느냐?

이제 ‘사랑하느냐’고 질문하십니다. 아마 베드로는 이 부분에서 이미 오열을 하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 묵상해봅니다.
여러분 혹시, 하나님 사랑해서 무언가와 싸워 보신 적 있으십니까? 그 대상이 어떤 환경, 문화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일 수도 있구요. 그것이 죄가 될 수도 있구요. 아니면 내 자아 일수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다 다를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내가 싸우는 무언가에 처참하게 패배해보신 적 있으십니까? 그때 마음이 어떠셨나요? 비참하고 참담합니다. 이건 정말 제대로 살아 보려고 했던 사람 아니면 느낄 수가 없는 감정입니다. 저는 예배팀까지 섬기는 여러분 중에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싸움을 해보지 않은 분은 없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그렇게 처참하게 패배했을 때를 그 순간을 생각해봅시다.
그렇게 넘어진 이유가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아서 그랬나요? 누구는 그렇다고 하는데 저는 전혀 동의가 되지 않습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그 싸움도 시작하지도 않았겠죠. 그렇다면 우리가 넘어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우리가 연약해서 아니겠습니까?
베드로도 그랬을 것입니다. 베드로! 어리숙의 대명사요, 무모함의 상징이죠. 하지만 분명 미숙하지만 그 안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정죄감이, 죄책감이 그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불씨를 꺼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정죄감으로 인해, 죄책감으로 인해 숨겨져 있던 사랑의 불씨에 시 한 번더 활활 타오를 수 있도록 정죄감과 죄책감이 아닌 사랑으로 이 길을 걸어 갈 수 있도록 불쏘시개를 넣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꼭 죄책감과 정죄감은 아니더라도 다른 무언가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식어져 버리거나 꺼져 버린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희미해졌다면 그 사랑의 마음이 회복되길 소망합니다.

예, 주여, 제가 주를 사랑하는 것을 주께서 아십니다.

이제 베드로가 대답을 하는데요. 베드로의 대답을 살펴 보기 앞서, 제가 오늘 말씀을 시작하며 여러분들에게 드렸던 질문의 여러분의 답을 회상해 보십시다. 거기서, 여러분들 중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라고 고백했던 지체 있습니까?
저도 말씀을 준비하면서 저에게 동일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하지만 저의 대답은 ‘NO’ 였습니다. 지난 날 저의 생각과 행동과 태도를 보니까 도무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인간적으로 생각했을 때, 베드로보단 잘 산 것 같아요. 저는 예수님을 부인하진 않았거든요. 예수님을 나 몰라라 버리진 않았거든요. 그런데 베드로는 낯짝도 두껍지 어떻게 예, 주여 제가 주를 사랑하는 것을 주께서 아십니다. 라고 대답 할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너무나도 간단합니다. 앞서 살펴 본대로 베드로는 이미 예수님의 그 질문 속에서 느껴지는 마음을 캐치 한 것입니다. ‘너 왜그랬니’, ‘왜 날 배신했니’와 같은 정죄가 아니라 다시 초심으로 회복하길 바라는 마음을 느낀 것이고, 열정을 회복하길 바라는 마음을 느낀 것이며, 다시금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훨훨 타오르길 바라는 예수님의 간절한 염원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성경 구절만 봤을 때 베드로는 실제로 배짱도 좋게 대답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구절이면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베드로가 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응답이요, 반응말곤 없던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응답이요 반응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분이 우리에게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사랑을 먼저 비춰 보여 주셨기에 거기에 사랑한다 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함 주님이시요, 우리의 사랑의 고백을 이끌어 내시는 분도 주님이십니다. 오늘 이시간 하나님의 사랑을 충만히 누리고 그 사랑에 반응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어린양 떼를 먹여라.

이 주님의 섬세한 사랑을 느낀 베드로에게 이제 예수님은 사명을 부여 하십니다. 내 어린양 떼를 먹여라. 이것은 분명 양육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꼭 그렇게 선을 이분법적으로 긋지 않아도 됩니다. 어떤 섬기는 자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여도 큰 틀에서 그리 어긋나지 않는 해석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배를 섬기는 우리에게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이들이 하나님의 어린 양 떼를 먹여야 할까요?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어린양 떼를 먹여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 그 깊은 사랑에 응답한 사람, 그 사람이 하나님의 양 떼를 먹여야 합니다.
왜일까요? 하나님의 그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면 능히 이 일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무대에 서고, 예배를 조율하며, 기획하고 이거 처음엔 멋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닌거 여러분 잘 알고 계시지 않나요? 그럼 이 일을 인간의 의지로, 용기로 감당해 낼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 말입니다. 시험들 일이 얼마나 많고, 어려운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아니요! 저는 제 용기로 해왔는데요, 할 수 있는데요! 그건 만용에 불과합니다.
애초에 하나님의 사역은 하나님의 사랑의 힘입어 진행할 수 밖에 없게 설계가 되어 있고, 하나님의 은혜에 힙입어 견디게 만들어 져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은혜와 사랑이 없이 이 일을 진행한다? 지금은 몰라도 언젠가는 문제가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단지 시간 문제입니다.
그렇기에 여러분이 어떤 양떼를 먹이는 사명을 가지고 나아가려거든 분명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제가 예배팀 담당 교역자로 오면서, 예배팀을 보면서 예배팀을 향한 한 가지 소망이 생겼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라는 질문에 앞에 예, 주님 제가 주를 사랑하는 것을 주께서 아십니다. 라고 대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누구에 의해서 사역하고, 그냥 잘나서 사역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섬김 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베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그 섬김에 우리함의 어떠함과 전혀 관련없이 하나님의 모습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많은 지체들은 주님을 더욱 깊이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힘이나 능력이 아닌 오직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에 힘입어 주님이 우리에게 맡겨 주신 양떼를 먹이시는 J4U 예배팀 되시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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