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회복으로, 더욱 성장으로(행2:4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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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3년 2월 19일 주일 청년부
제목 : 다시 회복으로, 더욱 성장으로
본문 : 사도행전 2장 43-47절 *신190
결단찬양 : 다시 일어나
[도입]
저는 다양한 사람들을, 특히 다양한 직분의 사람들 만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들의 이야기, 그들의 경험담이 제가 경험할 수 없는 스토리라 다양한 사람 만나기를 선호합니다.
우리 청년 공동체 안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각자의 직업군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자들이 이곳에 모여 함께 예배를 드립니다. 때로는 자신의 직업과는 별개의 모습으로 이곳에서 섬기기도 합니다.
저는 그런 여러분들과 함께 본래의 제 직업을 가지고, 이곳에서 제가 배운 것 그대로를 활용하기에, 개인적으로 ‘제 믿음보다 여러분의 믿음이 더 귀하다.’ 라고 생각하며 주장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이 교회 공동체가 저는 참 아름답다 고백합니다. 너무나 다른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한 곳에 ‘예수 그리스도’ 를 중심으로 모여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름답다 못해, 어느 곳에서도 이 은혜를 추구할 수는 없는 ‘보석’과 같다 생각합니다.
그렇게 저희 청년부는 1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서로를 알아갔고, 물론 다 알 수 없기에 더 알아가고자 하며 약속하여 지금까지 달려왔습니다. 또 그렇게 저희 청년부는 1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서로를 알기만 하는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기도했고, 위로했고 정말 함께 웃고 함께 울어주는 청년 공동체로써 지금까지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달려갈 것임에 틀림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작년 8월 청년부 첫 수련회가 있었습니다. 사실 수련회라기보다 리트릿에 가까운 시간들이었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 놓고 ‘진리’만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먼저 먹이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올해 2월, 리트릿이란 단어로는 감히 설명할 수 없는 수련회를 우리는 맞이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드렸던 이 수련회는 제게 너무 인상깊었고, 또 개인적으로 받은 은혜가 너무 크고 넘쳤습니다.
(텐트에서 예배 드리는 사진/1-4번)
첫날 예배에는 큰 에너지를 쏟지 말자, ‘조금 더 라이트하게, 조금 더 심플하게' 라는 생각으로 준비했습니다. 그래서 장소에 대한 기준도 딱히 없었고, 어느 곳이나 다 좋다는 생각을 하던 중 누군가의 아이디어로 텐트에 모여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분위기에 제가 취한 것도 물론 있었겠지만, 제가 꿈꾸던 교회의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되는’ 시간이 되기도 했습니다. 어느 곳에나 한 두명이 모여 예배드리면, 형태와 형식에 상관없이 그곳이 ‘예배당’이 되고, 그 시간이 ‘예배의 시간’이 된다는 생각을 추구해왔는데, 첫날의 텐트는 제게 그런 곳이었습니다.
짧지만, 그 시간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제겐 ‘꿈’ 이었던 것을 ‘실현’으로 보여주게끔 하나님께도 너무 감사했지만, 수고해주신 홍성표 집사님의 노고에 너무 감사했습니다.
(특강 사진/5번)
또 특강의 시간도 개인적으로 감사했습니다. 부족한 준비 시간이었던 것도 사실이고, 또 제게는 그럴만한 능력이 없단 것도 잘 알기에 준비하며 ‘될까? 될까?’ 의심의 시간들이었습니다.
사실 청년들의 피드백은 다 알 수 없기에 잘은 모르겠지만, 그저 개인적으로 다시 한 번 구원에 대한 정의를 스스로 정리할 수 있었고, 또 그만큼 어려운 구원이 내게 선물처럼 주어진 것에 대한 감사와 예배를 의무가 아닌 반응으로 생각하여 결단할 수 있도록 ‘스스로의 정리’ 시간이 되어 감사했습니다.
(셋팅 전 예배당 사진/6번)
예배당을 처음 보는 순간 ‘기존 저녁집회의 분위기를 낼 수 있는가?’ 에 대한 고민이 너무 컸습니다. 또 마이크와 장비 자체가 제한되는 것이 많아 걱정이 컸습니다. 하지만 모든 이들의 도움 덕분에,
(둘째날 저녁 집회 사진/7-9번)
이렇게 아름다운 예배당의 모습을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이 날에도 저는 분위기에 취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찬양에 기쁨이 너무 컸습니다. 그리고 함께 모여 이곳에 있음에 참 감사했습니다.
그곳에서의 아쉬움은 저의 부족한 설교가 아쉬웠고, 저의 부족한 준비가 아쉬웠을 뿐 함께한 모든 이들의 모습은 너무나 완벽했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을 통해 확신했었습니다. ‘이곳에 하나님 반드시 함께 하신다.’
(단체사진/10번)
이렇게 저렇게, 또 이런 저런 모습들로 채워져 갔던 첫 번째 외부 수련회가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만들어낸 이 이야기가 너무 아름다운 동화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름에 만들어질 두 번째 스토리가 너무 기대가 됩니다. 그리고 중간 중간 교캉스로 채워갈 에피소드 또한 너무 기대가 됩니다.
이렇게 수련회가 끝이 나고 제 마음 가운데 울림이 있던 생각은, ‘더 이상의 회복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코로나 전부터 ‘회복’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계속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목회자들이 바뀔 때마다 가지고 가는 첫 주제가 ‘회복’ 입니다. 저와 같은 목회자들에게 있어서 ‘회복’이라는 주제가 처음일지 모르나, 이미 남아있던 자들에게 ‘회복’은 ‘또’ 라는 의문점을 가지고 온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래, 더 이상의 회복은 없다. 이제는 성장이다.’ 라는 생각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본문 속으로]
저는 이제 여러분들과 함께 하나의 대서사시를 작성해보려 합니다. 그 누구도 막을 수 없고, 어떤 누가 방해해도 쓰러지지 않을 무기를 지녀 맞서 싸워 승리하는 스토리를 그려갈 겁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의 본문이 첫 발걸음을 띄어냄에 반석이 되길 소망합니다.
[우리가 지향할 공동체는 : 1. 성령 공동체]
먼저 오늘 본문 바로 앞 절의 42절의 말씀을 함께 봅시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본문의 말씀을 어떻게 이곳에 모인 이들과 함께 맛있게 나눠먹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바로 앞에 나온 구절을 함께 보는데, 저는 이곳에서 몇년을 씨름해왔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몇 년간, ‘나의 목회철학은 무엇인가?’ 에 대해 고민했고 찾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구절이 목회철학을 세워감에 있어 실마리가 되었고, 이번 한 주 지인들과의 삶 나눔을 통해, 지식을 나눔을 통해 조금씩 세워갈 수 있었습니다.
먼저는 여기서 사도라는 표현이 ‘복수’ 형태로 쓰여졌다는 것입니다. 즉 여러명이 함께 움직였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들의 가르침은 ‘단수’ 형태로 쓰여져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가르치는 자들은 한 사람이 아닌 여럿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가르치는 내용은 ‘단 하나’ 였다는 것이지요. 즉 이들은 ‘진리’, ‘복음’ 만을 함께 나누고 누렸다는 것입니다.
이건 교회의 본질입니다. 교회는 ‘친교’가 목적이어 오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지식의 터’가 되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어 오는 곳입니다.
그렇게 모인 이들이 행하는 것은 ‘교제’하는 것이며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며 또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교제는 성찬의 의미를 지닙니다. 즉 이들의 모임마저도 ‘예수 그리스도’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행하게 한 힘이 어디로부터 옵니까? 이 구절 바로 앞에 등장하는 사건이 무엇입니까? 마가 다락방 성령 사건입니다. 즉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 힘이 ‘성령’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입니다.
바라옵기로는 우리 공동체 안에 ‘성령 충만’ 함이 임하는 시간 되길 소망합니다. 매 예배 때마다, 우리의 매 순간의 삶마다 ‘성령’이 임하여 은혜가 충만해지고, 그로 인해 진리와 복음으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넘쳐나는 교제요 모임이자 우리의 삶 되길 소망합니다.
[우리가 지향할 공동체는 : 2. 선 없는 공동체]
그렇게 성령이 임하고 나면 청년 공동체 안에 분명 은혜가 충만하게 될 것이고, 또 우리의 삶이 변화됨을 느낄 것인데 두번째로 나누고 싶은 것은 42절의 시작인 ‘그들이’ 라는 것입니다.
이 또한 너무 큰 은혜가 됩니다. 여기서 그들은 또래 공동체로 축소하여 언급함이 아닙니다. 단순 몇 명이 모여 복음과 진리를 알고 나눈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어린아이부터 나이가 많은 노년까지, 또 남자와 여자 등 세대를 아우르는 공동체였습니다.
이번주 국가와 협업하여 청년사업을 하는 한 친구를 만났습니다.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대화는 ‘교회 공동체’ 운영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이 친구의 공동체는 만30까지는 청년 공동체로써, 1년에 한 번씩 공동체가 바뀌는 삶을 살았지만 만30이 넘어가는 순간 ‘가족 공동체’ 속으로 들어간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가족 공동체가 매우 특별합니다. 청년이든, 아이가 있는 부모든 심지어 교역자여도 이 공동체 속에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청년 공동체 때는 어차피 1년 뒤 바뀌기에 ‘내 마음을 굳이 오픈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으로 보냈지만, 가족 공동체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좋든 싫든, 부득이한 사정이 아니고서야 이 공동체에서 이동이 어렵다는 것이지요.
마침 42절의 말씀을 나누고 있었던 저 였기에, 더 반가운 사례처럼 들려졌습니다.
그런데 이게 남 이야기가 아니라는 겁니다. 참으로 놀랍게도 우리는 은연 중에 이런 공동체를 위해 힘쓰고 있었다는 거에요.
보세요. 결혼한 지체가 함께 있습니다. 나이가 어린 청년들로부터 나이가 조금 더 있는 청년들까지 함께 합니다. 이제 여기에 노년의 성도님이 함께 계시다면 42절이 말하는 ‘그들’의 은혜 아니겠습니까?
많은 교회가 ‘선’을 긋습니다. 부서별로 연령대별로 성별로. 물론 그런 문화가 ‘공감대’ 형성에는 너무나 탁월하나 ‘예수 그리스도’를 전함에 있어 반드시 나눠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린 아이여도 ‘예수 그리스도’를 나눌 수 있습니다. 그들의 방식으로 말입니다. 나이가 많아도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지혜로 말입니다.
바라옵기로는 이어진교회에서의 청년부는 ‘선 긋는’ 공동체가 아니라 ‘선’들이 모여 ‘면’을, ‘면’이 모여 ‘모형’을 만들어가기에 힘쓰는, 연합을 위해 애쓰는 공동체 되길 소망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주 ‘레몬청’을 나누며 함께 예배를 위해 힘쓰는 것, 함께 기도해달라 요청하는 것, 청년부를 위한 관심과 사랑을 나눠주는 시간을 갖는 것이 매우 큰 시간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지향할 공동체는 : 3. 깐부 공동체]
마지막으로는 우리 공동체는 ‘깐부’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오영수 배우 삶에 문제가 대두되기는 했지만, 그가 배역으로써 나왔던 오징어 게임의 오일남 대사 중 이런 대사가 있습니다. ‘깐부끼리는 니거 내꺼가 없는거야’
43절부터 47절까지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서로 ‘통용’ 했다는 것입니다. 니거 내꺼 없는 세상이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은 ‘내 것’ 지키기에 여념없는 세상입니다. ‘내’가 늘 먼저여야 합니다. 내가 편해야 하고, 내가 기뻐해야 하고, 내가 즐거워야 하고, 내가 더 많아야 합니다.
세상 뿐입니까? 교회는 안그렇겠습니까? 내가 먼저 편한 자리에 앉아야 하고, 남들이 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이 들어 ‘나는 편히 있다 가야지.’ 라 생각하는게 우리 아닙니까?
늘 우리는 ‘내’가 먼저인 시간 속에 거합니다. 하지만, 초대교회 성도들은 내가 먼저가 아니었습니다. 다른 이의 필요에 따라 ‘내 것’을 기꺼이 내어줄 수 있는 용기가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담임목사님 설교 중 이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로 이동해 철학이 되었고, 로마로 옮겨서는 제도가 되었다. 그 다음에 유럽으로 가서 문화가 되었다. 마침내 미국으로 왔을 때, 교회는 기업이 되었다. 그리고 교회는 한국으로 와서는 대기업이 되었다.’
이미 헬라 철학으로 넘어가는 순간 초대교회의 ‘남’을 생각하던 이들의 마음이 ‘내 지식으로써의 학문’으로 변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오늘날 우리 인생에 ‘이웃’이 아닌 ‘나’만 보게 만들지 않았습니까?
[결론]
청년 여러분. 이제 성장의 대로를 걸어야 합니다. 이웃이 내가 되었음 회복 아닙니까? 아니요. 이들도 내가 기준인 삶에서 ‘이웃’으로 성장한 겁니다.
내것만, 내 이득만 챙기던, 내 삶이 우선되던 이들이 ‘경계’를 무너뜨렸습니다.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만민 모두에게 주어진 은혜인 것처럼 끼리끼리의 문화가 아니라 모두가 하나되는 공동체로 성장했습니다.
우리 함께 성장합시다. 너 혼자, 나 혼자가 아니라 우리 함께. 우리 함께 성장합시다. 함께 모여 성장합시다. 함께합시다.
[기도제목]
Ⅰ 회복과 성장의 기쁨을 누리는 청년 공동체 되게 하소서
Ⅱ 성령 하나님이시여, 우리 삶의 주관자 되어 인도하여 주소서
[찬양 후 기도제목]
Ⅲ 서로를 세워주는 우리 되게 하소서
Ⅳ 이웃을 세우며 내게 허락할 은혜를 기대하게 하소서
[축도]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사랑과
성령 하나님의 감동 감화 역사 임재하심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힘입어 서로를 사랑하겠노라 다짐한 자들과
나보다 공동체를 먼저 사랑하고 세우고자 결단한 자들 머리 머리 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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