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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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만에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찬93 (통일93) 예수는 나의 힘이요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창세기 30장 1~13절까지 말씀입니다.
1절 한절만 함께 읽고, 한 절씩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오늘도 말씀을 사모하여 새벽에 성전에 나아온 성도님들의 삶과 가정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함께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가 지난 지간에 창세기 29장을 통해
하나님께서 야곱의 사랑을 받지 못하여 고통받는 레아를 긍휼히 여기셔서
4명의 아들을 낳게 하신 사실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사건에 이어서, 레아와 라헬의 출산 경쟁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야곱의 두 아내이자 자매인 레아와 라헬이 야곱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자신의 몸종까지 동원하여, 출산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출산 경쟁의 결과 야곱은 약 14년 동안
레아에게서 6명, 레아의 몸종 실바에게서 2명
라헬에게서 1명, 라헬의 몸종 빌하에게서 2명 등
모두 11명의 아들과 레아가 낳은 딸 디나까지 포함하여 총 12명의 자녀를
하란 땅에서 얻게 되었습니다.
21절에 디나의 이름이 등장하는데, 오늘 본문은 아니지만 설명을 드리면,
일반적으로는 여인의 이름이 기록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특별히 디나의 이름이 언급된 것은, 창세기 34장에서 특별한 사건이 있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가족이 가나안으로 돌아온 이후에 세겜 땅에서
세겜 족속 추장이 디나를 강간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로인해 시므온과 레위가 그들에게 할례를 행하는 조건으로 디나를 주겠다고 거짓말을 하여
할례를 행했을 때, 세겜 족속을 모두 죽여버리는 죄를 저지릅니다.
그로 인해 시므온과 레위가 장자의 순위에서 밀려나 결국 유다가 그 뒤를 잇게 되지요.
그만큼, 세겜 족속의 디나 강간사건은 중요한 영적 흐름 속에 있는 사건입니다.
그래서 디나의 이름이 오늘 본문에서 특별히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편 레아와 라헬의 자녀 출산 경쟁은 라헬의 태문이 막히면서부터 문제가 시작됩니다.
1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2 야곱이 라헬에게 성을 내어 이르되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3 라헬이 이르되 내 여종 빌하에게로 들어가라 그가 아들을 낳아 내 무릎에 두리니 그러면 나도 그로 말미암아 자식을 얻겠노라 하고
4 그의 시녀 빌하를 남편에게 아내로 주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하나님께서 라헬의 태문을 닫으셨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나와있지 않지만, 문맥의 정황을 살펴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라헬이 레아를 시기하는 태도가 심상치 않습니다.
은밀하게 시기하는 것이 아니라, 야곱에게 대놓고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겠다” 아주 노골적입니다.
라헬이 시기하여 억지를 쓰는 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일 대예배 말씀을 통해서 창세기를 살펴보면서
이런 라헬의 모습을 여러번 보지 않았습니까?
라헬의 이런 성급하고 천박한 행동은 20년 동안이나 애를 낳지 못하면서 계속 됩니다.
자식을 낳지 못해서 기도와 간구로 주의 뜻을 구했던 리브가
성전에서 눈물 흘리며 기도했던 한나의 모습과는 너무 큰 대조를 이룹니다.
우리는 흔히 라헬 하면, 야곱이 너무 사랑해서 그녀를 얻기 위해
14년 동안 고생할만큼 아주 아리따운 여인으로 생각합니다.
그만큼 얼굴이 아주 예쁜 여인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쁜 사람들은 다 얼굴 값을 하는 법입니다.
라헬도 성격이 만만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 라헬의 성경을 알았던지, 라헬이 죽겠다고 화를 내니깐
야곱이 이제는 익숙해졌는지, “당신이 임신 못한 것이 하나님 때문이지, 그게 내 탓이냐?”
야곱도 참을 만큼 참았던 것입니다.
결국 라헬이 여종 빌하를 통해서 아들을 낳게 되는데,
그때 라헬이 고백하기를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호소를 듣고 아들을 낳아주셨다”
이렇게 고백을 하며 아들의 이름을 ‘단’이라고 짓습니다.
그런데 ‘억울함을 푼다’의 원어 뜻을 살펴보면, ‘공의를 베풀다’라는 의미입니다.
억울함을 푼다는 것은, 그전에 아이를 낳지 못했던 것이
내 잘못이 아님에도 억울하게 당했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제는 내가 부당하게 당했던 것을 해결해주셔서 아이를 낳게 하셨다.
그런 의미이지만,
공의를 베푸셨다는 의미는, 하나님께서 공평하게 일을 처리하셨다는 의미입니다.
공의는 억울함과는 다른 차원입니다.
벌을 받아야 할 사람은 벌을 받고, 상을 받아야 할 사람은 상을 받는 것이 공의입니다.
그러니깐 라헬이 그동안 사람 앞에, 하나님 앞에 아름답지 못한 모습 때문에
벌을 받아 아들을 낳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라헬이 그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께 겸손하게 나아갔더니
회개의 증거로서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셨다 라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라헬 또한 스스로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태문을 막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5 빌하가 임신하여 야곱에게 아들을 낳은지라
6 라헬이 이르되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호소를 들으사 내게 아들을 주셨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의 이름을 단이라 하였으며
라헬이 시녀 빌하를 통해서 두 번재 아들을 낳습니다.
그렇게 두 번째 아들을 낳고 나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언니와 크게 경쟁하여 이겼다.”
그런데 아직 이기지 못했습니다.
레아는 아들이 4명이고, 라헬은 아들이 2명입니다.
여기에서 라헬이 레아를 이겼다는 것은, 야곱의 관심을 끌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라헬이 계속해서 아이를 못 낳고, 레아만 4명까지 아이를 낳게 되니까
아무리 라헬을 사랑해도, 아이를 4명이나 낳아서 키우고 있는
레아에게 관심을 쏟을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4명에 비하면 2명이 적은 아이지만,
이제 막 태어난 2명의 아이는 얼마나 이쁘고 귀엽겠습니까?
그리고 사실 야곱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했습니다.
아무리 자녀를 4명이나 낳았다고 해도, 자신이 정말로 사랑했던 라헬이 2명을 낳은 것이
훨씬 더 기뻤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제 막 태어난 아기들에게는 손이 많이 갑니다.
챙겨줘야 할 것도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자연스레 레아에게 쏟았던 관심이 다시 라헬을 향하게 됩니다.
라헬은 야곱의 관심이 자신에게 향한 것을 보며,
자신이 언니와의 경쟁에서 크게 이겼다고 기뻐하고 있습니다.
이런 라헬의 모습을 볼 때,
아직도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숙했졌다고 말하기엔 많이 부족해 보입니다.
7 라헬의 시녀 빌하가 다시 임신하여 둘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으매
8 라헬이 이르되 내가 언니와 크게 경쟁하여 이겼다 하고 그의 이름을 납달리라 하였더라
아직까지는 레아가 4명, 라헬이 2명인데, 야곱의 관심이 라헬로 다시 돌아가자
레아 또한 조급해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출산이 멈춘 것을 직감하고는, 라헬과 같은 방법으로
자신의 시녀 실바를 통해서 자녀를 낳기 시작합니다.
9 레아가 자기의 출산이 멈춤을 보고 그의 시녀 실바를 데려다가 야곱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였더니
10 레아의 시녀 실바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으매
11 레아가 이르되 복되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갓이라 하였으며
12 레아의 시녀 실바가 둘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으매
13 레아가 이르되 기쁘도다 모든 딸들이 나를 기쁜 자라 하리로다 하고 그의 이름을 아셀이라 하였더라
이렇듯 레아와 라헬의 자녀 출산 경쟁은 시기와 질투에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이들이 낳은 11명의 아들은 라헬이 가나안 땅에서 낳은 베냐민과 함께
이스라엘의 12지파의 근간이 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하셨던 그 약속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살펴볼 때, 레아와 라헬의 출산 경쟁 배후에는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하심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레아와 라헬의 시기와 질투, 첩의 문제 등이
모두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의 허물과 연약함까지도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계획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결국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인간은 허물이 많아, 실패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실수많은 연약한 모습까지도 사용하셔서 선으로 바꾸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약함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약할 때, 강함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은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그렇게 우리 모두가 우리의 실패조차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방편으로 사용하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인생을 온전히 맡길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시기와 질투로 하나님의 섭리르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깨닫고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하나님의 기쁨이 되어질 수 있도록
2.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온전히 내 삶을 드릴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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