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을 부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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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으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겠습니다.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 말씀은
누가복음 4장 14절 말씀입니다.
제가 가진 성경으로는 신약성경 93페이지에 있습니다.
함께 합독하시겠습니다.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 일 시: 2021년 2월 7일 ◉ 장소와 유형: 청년부예배
◉ 설교본문: 누가복음 4장 14절 ◉ 설교제목: 제자들을 부르심
오늘도 청년부 예배를 함께 드리는 여러분들의 모든 삶 위에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이 늘 함께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은 신약 대하설교 4번째 시간,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지난 시간 예수님의 등장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의 길을 예비했습니다.
세례요한은 에세네파 사람으로, 세상과 멀리 떨어져 공동체 생활을 했습니다.
그 곳에서 말씀을 깊이 연구하던 중에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것이
곧 자신의 사명임을 발견했습니다.
그렇게 세례요한을 통해서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시고,
하늘에서 성령이 임하시고, 하나님의 아들임이 선포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왕권이 예수님께 위임되고,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렇게 첫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예수님은 자신의 고향인 나사렛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스스로 자신이 메시아임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어땠을까요?
누가복음 4장 22절
그들이 다 그를 증언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이미 우리가 다 알고있는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어떻게 네가 가난한 자, 약한 자들을 구원하고,
옥에 갇힌 자들을 풀어주고, 소경들을 보게 할 것이냐?
어떻게 우리 민족을 해방시키고, 그 힘을 새롭게 할 것이냐?
어떻게 우리가 알고 있는 요셉의 아들이 기름부음 받은 메시아가 될 수 있는가?
그들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훌륭한 연설을 하는 젊은이를 동네사람들은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습니다.
그가 이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한계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지난시간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예수님은 어린시절부터
초능력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렇게 의심하는 나사렛 동네사람들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24절에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다.”
25~26절에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3년 6개월간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 중에 선택하지 않으시고,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 과부에게 기적을 베풀어주셨다.“
27절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지만,
그 중에서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사람 나아만 장군만 깨끗함을 받았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기적이 고향 땅에서는 잘 이루어지지 않고,
항상 이방에서 먼저 믿고, 구원을 받더라. 이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너희가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하고,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누가복음 4장 29~30절
29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고자 하되
30 예수께서 그들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고향 사람들이 화가나서
예수님을 낭떠러지에서 떨어뜨리려고 합니다.
그 때, 예수님은 그들 가운데로 그냥 지나쳐 가셨습니다.
이 장면이 참 멋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둘러 싸고, 낭떠러지까지 몰아세웠지만
예수님께서 그 사이를 뚫고 그냥 지나가셨습니다.
이 장면을 많은 학자들이 이렇게 주장합니다.
1. 성령의 능력으로 시공간을 초월하여 무리 사이를 지나치셨다.
2. 그분의 인격만으로 무리를 잠잠하게 하셨다.
자신감에 찬 예수님의 모습에 아무도 반응하지 못하고, 길을 비켜주었다는 것.
어떻게 지나치셨는지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지는 않지만,
분명한 것은 힘으로 제압하거나 억지로 대응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응은 특별한 목적이 있을 때 외에 항상 무시 또는 회피 이셨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셨지만,
개개인에게 복음을 억지로 강요하지 않으셨습니다.
믿으면 구원을 얻겠지만,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을 것“이라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맡은 사역에 충실하게 다음 사역지로 장소를 옮기셨습니다.
고향에서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서운해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고향 땅에서 배척당하시고,
발길을 바로 가버나움으로 옮기셨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고향 동네가 아닌, 가버나움에서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랐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권위가 있었던 이유는 예수님은 진리를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랍비들이 가르치는 방식은 다른 사람의 말을 인용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어떤 문제를 던지고, 그 질문을 생각해보게 한 후,
그 문제를 연구했던 다른 랍비의 가르침을 들려주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대학수업의 방식과 비슷한 것입니다.
교수님들이 많이 아는 것 같지만,
사실상 본인의 이론은 박사학위받는 몇 개 뿐입니다.
대부분 다른 학자의 글을 인용하여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에 권위가 있었던 것은,
예수님은 다른 랍비의 말을 인용하지 않고,
성경을 읽고 묵상한 자신의 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우리가 성경을 읽고, 묵상한 후
내가 만난 하나님을 전할 때 능력이 나타나는 줄 믿습니다.
내가 아는 친구가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데, 그 친구가 예수믿더니 변했다더라.
우리 엄마 권사님은 어렸을 때 성령체험해서 병을 고침받았어.
우리 목사님이 그러는데, 성경을 읽다보면 술.담배를 자연스럽게 멀리하게 된대.
이런 말들은 권위가 없습니다.
내가 만난 예수님을 전할 때,
그것이 나에게도, 그들에게도 진짜 복된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서 가르치고 계실 때,
귀신들린 사람이 방해를 합니다.
예수님,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우리를 멸하러 오셨습니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줄 다 압니다.
빨리 여기서 떠나십시오.
누가복음 4장 33~36절
33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34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35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귀신이 그 사람을 무리 중에 넘어뜨리고 나오되 그 사람은 상하지 아니한지라
36 다 놀라 서로 말하여 이르되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위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 하더라
예수님께서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말씀하시니 귀시니 떠나간 것입니다.
이것을 보고, 사람들이 예수님의 권위와 능력에 놀랐습니다.
이 일이 사방에 퍼지고, 예수님은 다시 그 자리를 피하여
베드로의 집으로 갔습니다.
베드로의 집에 갔더니, 장모가 열병으로 앓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번에는 열병을 꾸짖으시니, 병이 떠나갔습니다.
이 일이 또 퍼져서,
그날 밤에 수많은 병자들이 병고침을 받고자 예수님께 찾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일일이 다 안수하시며 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밤새 병자와 귀신들린 자들을 고치시고,
아침이 되어서야 그곳을 피하여 한적한 곳으로 가셨습니다.
누가복음 4장 42~44절
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시고
44 갈릴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더라
예수님께서는 목적은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44절에 예수님께서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전도는 (전할 절 / 길 도, 가르칠 도) 가르침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의 가르침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는 어떤 곳인지,
예수님 자신이 그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 우리에게 천국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을 전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관심이 없었고,
오로지 예수님의 기적과 능력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 나라가 복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시고, 병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을 불쌍히여겨
그들을 고쳐주시면, 그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피하셨습니다.
요즘도 성령사역을 빙자하여 병고침과 귀신을 쫓는 것으로
많은 성도들을 미혹하여 잘못된 교회론을 심어주는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본질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우는 곳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무엇이고,
그 나라를 소망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매일 고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침마다 큐티를 하고, 말씀을 읽어서,
그 말씀을 매일의 삶에서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를 묵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가르치는 사역과 병고침, 귀신쫓는 사역을 하시고,
이제 제자들을 부르러 가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시몬 베드로를 부르셨습니다.
그날도 어김없이 예수님께서는 무리들을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누가복음 5장 3절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배에 올라가셔서 육지에서 조금 떼어달라고 부탁하십니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음향시스템이 잘 갖추어진 강당이 없었습니다.
그냥 산에서, 들에서, 회당에서 가르치던 때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자 멀리있는 사람들까지 한번에 다 들을 수 있도록
약간 육지에서 떨어져서 배 위에서 말씀을 전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말씀을 다 마치시고, 이제 베드로에게 제자 테스트를 하십니다.
”깊은 곳에 그물을 던져 보아라.“
누가복음 5장 4~7절
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6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7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베드로는 어부입니다. 고기잡는 전문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리라고 했던 게네사렛 호숫가는
깊은 곳에서 고기가 잡히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베드로는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았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상식과 경험으로 이해되지 않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순종해서 깊은 곳에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두 배에 가득 차서 배가 가라앉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능력을 능력을 경험했던 베드로의 반응은 무엇입니까?
누가복음 5장 8~11절
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9 이는 자기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으로 말미암아 놀라고
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11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베드로가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알아보자 즉각적으로 보인 반응은 회개였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면 회개가 일어나게 되어있습니다.
세례요한도,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면서 회개의 복음을 외쳤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인 동시에, 심판주로 오십니다.
우리가 깨끗하지 못하면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권위있는 말씀을 들으면서도,
그 분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올 메시아보다는
당장 시급한 자신의 문제 해결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진짜 메시아를 만나게 되면, 우리는 그 분 앞에
추악한 모습이 발가 벗겨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거룩하신 그분이 나의 주인으로 오시는데,
우리의 더러운 영혼이 그분을 감당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죄인임을 인정하고, 철저하게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변화는 곧 회개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만나면 변화됩니다.
그 시작이 바로 회개이고, 회개의 열매가 곧 삶의 변화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메시아를 만난 베드로의 두 번째 반응은 무엇입니까?
11절에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예수님을 만나면 삶의 가치관, 방향성이 변합니다.
세계관이 통째로 변하게 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이고,
그 분이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해 죽으시고,
나와 함께하자고 하시는데, 우리가 다른 것에 집중할 수 없는 것이지요.
그 분은 자신의 전부를 던져서 우리에게 주셨는데,
우리도 그분에게 전부를 드리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이것은 받았기 때문에, 드리는 give and take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실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한낱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당연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죄를 지어서 그분과 멀어짐으로 우리의 본분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 우리는 처음 지음받았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처음 창조되었던 목적에 맞게,
하나님께 마땅히 드릴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 자연히 깨닫게 됩니다.
우리의 영원한 소망은 하늘 나라에 있구나.
예수님께서 그 나라를 우리에게 주시러 오셨구나.
우리가 잠시 잠깐 사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있는 일은
그 나라를 소망하며, 그 나라를 준비하는 일에 전부를 바치는 삶이구나.
우리가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에게 있는 모든 물질, 명예, 권력, 인기, 사랑
이 모든 것은 한낱 허무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영원한 것, 참된 것, 가장 좋은 것을 우리가 경험하면
세상의 유한한 것, 거짓된 것, 다른 것들과 비교하면서 조금더 좋은 것들은
모두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배에 가득찰 만큼의 물고기를 얻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적은 누구를 알게 하기위해 보여주셨나요?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알게 하기 위해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기적을 통해 얻게된 그 많은 물고기와 자신의 생업 전부였던 배들을 버려두고
곧바로 예수님을 쫓았습니다.
누가복음 5장 26~28절
26 모든 사람이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오늘 우리가 놀라운 일을 보았다 하니라
27 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28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제자로 부르신 후에,
중풍병자를 고치시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사람들이 그 기적을 보고 놀랐습니다.
예수님은 그 자리를 떠나시고, 세관에 앉아있는 세리 레위를 부르셨습니다.
레위 또한 그 즉시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다보면 자주 헤깔리는 부분이 사도와 제자의 차이입니다.
제자는 부름받는 사람이고, 사도는 보냄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기적을 보고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그 중에서 예수님을 특별히 제자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 제자들 중에서 예수님과 3년의 공생애 사역을 하면서
훈련된 사람을 이제 세상에 보내는 자로서 12명의 사도를 세웠습니다.
어떤 성경에는 열두 제자, 또 어떤 성경에는 열두 사도, 그냥 사도
이렇게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쉽게 생각하면 무리 > 제자 > 12제자(사도)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12명의 제자, 열두 사도는 이렇습니다.
오늘 누가복음 4장, 5장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의 사역과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을 함께 살펴봤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기 원했던 기쁜 소식은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많은 무리들은 하나님 나라에 관심이 없었고,
오직 예수님의 기적과 능력만을 보고 예수님을 쫓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중심을 아셨고, 말씀을 마치시고는 급히 그 자리를 떠나셨습니다.
무리를 모으고, 선동하고, 세력을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을 모으는 데 관심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오직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진정한 제자 한 사람을 찾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진짜 메시아라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은
자신의 전부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자신의 직업, 물질, 명예, 권력, 인기, 사랑
모든 것이 예수님보다 좋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무리들
자신의 건강, 성공, 명예, 이익을 얻기 위해 예수님을 쫓았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의 보이는 가치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얻게 되면,
때로는 우리가 누리는 육체적 만족과 편안한 삶을 내려놓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 세상의 성공이나 건강,
부귀영화를 주러 오신 분이 아니십니다.
진정한 하나님 나라를 주러 오셨습니다.
이 땅은 공중권세 잡은 마귀가 통치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얻게 되면, 이 땅에서는 고난을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면 우리는 늘 평안하고,
세상의 권력과 권세는 없지만 세상이 감당할 할 수 없는 말씀의 권위가 우리를 감싸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고향 땅 나사렛에서 자신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드러냈을 때,
그들은 예수님을 낭떠러지에서 떨어뜨려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당당한 인격과 말씀의 권위 앞에 어떻게 할 수 없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를 제자로 부르십니다.
여러분은 무리입니까? 제자입니까?
예수님의 능력과 인기를 쫓는 추종자, 예수님의 팬입니까?
아니면, 그분의 삶을 닮고자 우리의 전부를 버려두고 따라가는 제자입니까?
우리가 이시간 함께 두가지 기도제목을 가지고 기도하고 예배를 마치기 원합니다.
1. 회개에 합당한 거룩한 삶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2. 예수님의 기적과 능력을 쫓았던 무리에서 벗어나
나의 전부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가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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